제8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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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이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철도에 한명구 보고합니다. 해주에서 쌀이 도착했습니다.》

《아! 쌀이요? 얼마나?》

김책은 자리에서 펄쩍 일어나며 환성을 질렀다.

《10개 방통입니다. 5개는 정미한 쌀이고 5개는 벼입니다. 그런데 김책동지! 사고가 났습니다.》

한명구의 음성은 부르르 떨었다.

《사고라는건 뭐요? 쌀이 다 왔는데.》

《박원식동무가 총에 맞았습니다.》

《뭐, 박원식동무가?》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량쪽 수화기에서는 유도음이 얼음장처럼 굳어진 청각을 아프게 자극할뿐이였다. 이윽해서야 코멘소리로 한명구가 자세한 정황을 보고하였다.

박원식은 의식을 잃은채 병원에 누워 구급처치를 받고있었다. 김책은 급히 김일성동지께 보고를 올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뒤미처 김일성동지께서 병실안으로 들어서시였다. 환자는 수술을 끝내고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그이께서는 방안사람들, 의사들과 간호원 그리고 한명구와 김책의 표정을 쭉 일별하신후 박원식이 누운 침대가까이로 다가가시였다. 백포밑으로 손을 넣어 상처를 받았다는 가슴을 만져보시였다. 가슴에서 배로 그다음에는 허리로 옮겨갔다. 또 다음에는 오른쪽다리 다시 그다음에는 왼쪽다리를 쓸어만지시였다.

《김책동무! 상처는 가슴에만 있다고 했는데 이 넙적다리는 왜 처맸소?》

그이께서는 백포를 쳐들어보시였다.

《그건 서울에 갔다오다가 평산벌에서 총에 맞은것이라고 합니다.》

《평산벌에서, 그러니 양춘만을 따라가다가 그랬구만.》

《그렇습니다.》

《그런걸 내가 왜 다리를 저는가 하니까 길을 많이 걸어 발이 부르텄다고 했소.》

그이께서는 의자에 앉아 백포밑으로 다시 손을 넣어 박원식의 팔을 붙잡으시였다. 손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미쳐왔다.

《박원식동무! 기운을 내오. 수고했소. 수고했단말이요.》

그이의 음성은 갈수록 차츰 더 갈리면서 나중에는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들을수 없게 되였다. 잠든듯이 누워있는 박원식이 무엇이라고 했던들 들어낼수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으시였지만 그이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북받치는 울분과 비애와 그 절통한 감정을 이겨내실수 없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벌써 방안에 꽉 찬 침울한 공기, 사람들의 얼굴마다에 새겨진 불안과 초조, 그것으로써 박원식의 생명이 예민한 천평에 올라있다는것을 느끼시였다.

《동무는 참말 큰일을 했소. 지금 형편에서 우리가 황금덩어리와도 바꿀수 없는 쌀을 그렇게 많이 구해왔거던. 김책동무, 안그렇소?》

그이께서는 한걸음 뒤에 서있는 김책을 향해 고개를 드시였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동지!》

김책은 진심이 어린 얼굴로 그이를 쳐다보았다. 이때 그는 눈굽이 젖어있는 그이를 볼수 있었다. 기쁠 때는 기뻐서, 이렇게 가슴을 저미는듯한 고통이 있을 때는 또 서로 돕고 고무하기 위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가까이 있는 김책을 불러 말을 건늬고 정을 나누시는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김책은 김책이대로 또한 가슴속에 있는것, 지어 끝없이 모색하고있는 모든것을 남김없이 그대로 열어보이는것으로써 힘을 얻고 위안을 느끼군 하였다.

《정말 모질기도 하잖소.》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굶고있는 사람들에게 쌀을 실어다주는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소. 글쎄 전투마당에서 적아로 나뉘여 판가름을 할 때면 무슨 일인들 없겠소. 한데 이것은 정말 리해하기도 어렵고 참기도 바쁘구만···》

그이께서는 이렇게 그 누가 들으라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혼자소리도 아닌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설음과 울분이 동시에 북받치는것을 참고계시였다.

《장군님!》 한쪽구석에 피해 서있던 한명구가 코에 대였던 수건을 떼면서 말씀을 올리였다. 《제 잘못으로 해서 박동무가 이렇게 되였습니다. 제가 해주에 갔더면 박동무는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한명구는 사연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는데 결국 어슷비슷한 말을 거듭 반복하였다.

《이 박원식동무는 원래 이런 동무요. 어렵고 위험한 고리가 있으면 언제나 그가 먼저 가군 했소. 장백에서 39년 겨울 우리가 포위에 들었을 때도 그렇고 그전에 오중흡동무가 전사한 륙과송에서도 단신으로 적진에 뛰여들었던 동무요.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고 볼수 있습니다.》 말씀을 중단하시고 그이께서는 어떻게 몸가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한명구에게 의자를 권하며 앉으라고 하시였다. 《박동무는 이번에 적을 많이 잡고 부대의 진격로를 열기 위해 해주에 간것이 아닙니다. 물론 쌀을 가져오는것이 중요했습니다. 쌀이 없으면 로동자들이 굶게 되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것이 또 하나 있다는것을 그는 알고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였는가. 이제 박원식동무가 의식을 회복하면 물어봅시다. 그는 혹시 그에 대한 대답을 피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고있어야 하며 또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잠간 말씀을 중단하시고 방울방울 떨어져내리는 수혈관과 약간 해쓱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온해보이는 박원식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말씀하시였다.

《우리 혁명앞에는 건느기 어려운 하나의 큰 심연이 가로놓여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로동자와 농민들, 근로인테리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을 이끌고 혁명이라는 저 대안까지 가는 과정에 있게 되는 난관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밟고 건너올 징검돌을 피로써 빚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미 각오한것이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된단말입니다. 더구나 해방된 오늘에 이르러서까지···》

그이께서는 자리를 뜨시여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하늘은 별 하나 보이지 않게 흐려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명구나 양춘만이 같은 인테리를 혁명의 편에 굳건히 세워놓기 위해서 그는 그 길을 택한것이요.)하는 말이 가슴에서 북받쳐올라왔지만 그이께서는 그것을 지그시 누르시였다. 하지만 한명구는 자기에게 쏠린 그 모든것을 충분히 리해하였음인지 아니면 그저 자기가 가야 할 길에 대신 가서 그렇게 되였다는 단순한 해석으로 해서 그런것인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온몸이 부서지는것 같은 절통한 감정과 또 그와 함께 숭고한 그 무엇이 자기를 온통 휘감고있는것을 느끼고있었다.

방안에서는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였다. 오직 움직이는것이 있다면 김책이와 담당의사가 간간이 시선을 엇바꾸어 상태며 심장의 박동이 어떠한가를 묻고 대답하는것뿐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밖을 계속 내다보시면서 방금 우연히 그리고 문득 표현하게 된 《피로써 만들게 되는 징검돌》에 대해서 다시 상기하시였다.

30년대로부터 오늘까지, 아니 그에 앞서 20년대중엽에서부터, 그러니 연연 20여년 그동안 실로 숱한 징검돌을 놓아야 했다. 하여 이제는 우리가 와닿은 이 기슭에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확고하게 자기 진지를 지켜 서있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이 준엄한 행로에서 원예사가 하나하나의 가지와 잎과 줄거리를 다듬어나가듯이 그렇게 그 전우들을 보살피시고 또 그에 대하여 기억하고계시는것이다. 가령 차광수를 놓고보더라도 그를 처음 만났던 송화강 기슭에서 놀라운 표정을 지으시고 손을 움켜잡던 그때로부터 32년 10월 그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띄워보내던 그때까지의 그 모든것을 낱낱이 기억하고계시였다. 하여 돈화의 수림속에서 시신을 놓지 못한 특이한 영결식을 가지게 되였을 때 대렬을 향하여 《차광수는 갔소. 그앞에 우리는 그가 바라던것을 내놓을 때까지 이 슬픔을 지워서는 안됩니다. 그는 무엇을 바라고 이 땅에 하나의 돌로 굳어졌습니까. 해방된 조국, 이것을 우리는 통채로 그의 령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고 다짐하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천야만야 밑이 보이지 않는 추억과 명상의 나락을 끝없이 들여다보시면서도 방안에서 움직이는 사소한것까지 모두 감각하고계시였다.

《누가 붙잡혔다는겁니까?》.

그이께서 뒤로 돌아서며 물으시였다.

한명구가 자세를 바로가지며 방금 김책에게 귀속말로 한것을 다시 반복하였다. 장군님께서 철도공장을 다녀가신 그날부터 그곳 로동자들은 자기들을 파업에로 부추기고 쌀을 내라는 소요에로 선동한 《나쁜놈》을 붙잡는데 달라붙었다. 차츰 줄을 캐다보니 빙빙 에돌다가 결국에는 단야공으로 있던 송순호라는놈한테 화살이 쏠리였다.

로동자들은 송순호를 묶어놓고 심문을 들이대였다. 하루밤 다그었는데 오늘아침에 실토하기를 자기도 시켜서 한 노릇인데 사실은 《집게다리》가 두목이라고 하였다. 《집게다리》는 누구의 지시를 받는가 하니 룡산본공장에서 내려온 민기환이란자가 뒤에서 조종했다고 하였다.

로동자들은 떨쳐나서 《집게다리》를 찾고있었는데 며칠전에 어데 갔다온다고 하고는 행처를 감추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박원식이와 함께 《집게다리》가 차에 실려왔는데 뒤잔등으로 철알이 관통해서 이미 숨이 끊어져 사연을 알수 없게 되였다고 하였다.

한명구의 설명을 다 듣고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그런것이 있을수 있다고 보셨는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시면서 《놈들 호상간의 작간인것 같소.》하고 침대에 다가가 박원식의 맥박을 또다시 짚어보시였다.

그이의 안색은 갑자기 흐려지시였다. 언제나 밝은빛을 보이고있던 시선은 금시 꺼지기 시작한 우등불처럼 기세를 잃었고 입술에는 경련이 일었다. 맥박이 차츰 떠지는것을 감각하신것이다. 그이께서는 맥박을 짚으신채 도리머리를 저으시였다.

(아니 그럴수 없어. 박원식의 심장은 멎지 않아.)

손끝에 미쳐오는 심장의 고동을 세고 또 세시면서 자신의 느낌을 한사코 부정하시는것이였다. 그렇게 하기를 5분 또다시 5분, 그사이에 그이께서는 숨을 몇번이나 죽여가며 박원식의 생명을 한초한초 짚어나가시였다. 그러시다가 그이께서는 문득 창문가에 놓인 탁자곁으로 다가가시였다. 탁자우에는 박원식이 언제나 메고다니던 전투가방이 있고 그옆에 담배갑이며 학습장같은 소지품이 쌓였는데 그 한쪽에는 나무로 깎은 싸창과 놀이감들이 놓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싸창을 집어드시였다. 실물보다 크기가 절반이나 될가한데 신통히도 잘 만들었다. 양철로 약통실도 만들고 총신은 제법 철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태엽을 달지 못한채 따로 있었고 방아쇠도 걸지 못했다. 그이께서는 싸창을 집어드시고 이모저모 뜯어보시였다. 태엽이나 방아쇠 같은것을 제자리에 대보기도 하시였다. 아쉽게도 이것은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눈동자가 오디알같은 인동의 성화에 절절매던 박원식의 얼굴이 총가목에 언뜻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음에는 칼자국이 력력한 애기곰을 집어드시였다. 거기에도 또 박원식이 보이시였다. 그 순간 가슴을 예리한것으로 북 할퀴는것 같아 그이께서는 자리를 떠서 창가로 다가서시였다.

어느덧 날이 밝았다. 초겨울하늘이 희멀겋게 되였다가 그것이 차츰 보라빛으로 변하더니 한가닥 빛이 칼날처럼 좌우로 쭉 뻗어나가면서 려명이 짙은 하늘을 둘로 찢어놓았다. 그다음에는 그 붉은 띠같은것이 차차 폭이 넓어지더니 바로 그 한복판에서 불쑥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순간 장밤 누리를 덮고있던 어둠이 황급히 서쪽으로 퇴각하면서 금빛하늘을 활짝 펼치였다.

온 방안사람들이 침묵한채 밤을 보내고 새날을 맞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가에 서신채 전혀 움직이지 않으시였으며 김책이도 환자의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만 한명구만이 의사들을 돕기도 하고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는 환자상태에 대해서 소곤소곤 묻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박원식의 애인을 딴방에 데리고 가서 위안하기도 하고 자기때문에 그렇게 되였노라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장군님께서 시선을 보내고계시는 그 한끝에서 바야흐로 평양의 해돋이가 시작되는것을 보고 흠칫 몸을 으스러뜨리였다. 그의 온몸은 삽시간에 굳어지는듯 하였다. 그가 눈을 떼지 못하는 동녘하늘 저끝에 붉은 구름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피로써 빚은 징검돌일수도 있다는 환각이 생긴것이다. 저것을 밟고 오늘은 내가 가고 또 래일은 다른 사람이 가고 그렇게 모든 겨레가 혁명이라는 대안에 이르게 되는것이 아닐가. 저 붉은것, 저기에 박원식의 선혈이 물들어있을것이다. 수십년동안에 천으로 만으로도 셀수 없다던 그 선렬들의 심장의 색갈이 지금 저렇게 비쳐지고있을것이다. 한명구는 뜨거운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것도 감각하지 못하고 아까 걸음을 멈춘 그자리, 장군님께서 서계시는 뒤자리에 선채 움직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