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1

 

제 8 장

1

 

사흘만에 처음으로 떠나게 된 평양행 렬차는 비교적 순조롭게 달리고있었다. 양춘만은 렬차의 맨 마지막 방통 중간쯤의 창가에 앉았다.

몰골은 매우 초췌하였지만 그래도 기분은 비교적 평온하였다. 때문에 그는 비좁게 들어선 손님들속에서 로파 하나를 자기옆에 끌어다앉히고 그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데서 떠나서 어데로 가는가, 무엇하러 가는가고 하면서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속심에서는 로파와 대화를 하는것이 아니라 자기자신과 자문자답하고있었다. 평산역에서 한 5리 북쪽으로 가다가 쑥대가 우거진 언덕에서 뛰여내린 그는 외딴 마을에 들어가 사흘동안 숨어있으면서 줄곧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어떻게 하겠는가고 자신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도 명백했던 자기의 갈길에 대해서 인차 설명해낼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박원식에게 끌려가지 않고 제발로 제가 가고싶은 길을 갈수 있다는것만도 천만다행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할것인가, 서울로 되돌아갈것인가.

그것은 지금까지의것을 다시 반복하는것으로 될것이다. 그렇다면 안해와 아이는 어떻게 할것인가. 그리고 또 이렇게 방황하다가 박원식이 또 나타나 앞에 문득 막아서면 그때는 어떻게 할것인가. 이것을 풀기 위해 그는 여러개의 《방정식》을 만들어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라고 본것이 은밀히 강선에 들어가서 안해와 아이의 행처를 알아보고 그 정황에 따라 행동하는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였다.

그는 차창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자기가 알고있는 양춘만이와는 판판 다른 초라하고 겁에 질린 사나이가 음울하게 마주보고있었다. 사흘동안 묵은 집에서 그는 제낀깃옷과 와이샤쯔를 벗어버렸다. 그대신 주인한테서 허름한 덧저고리를 얻어입었다. 말로는 신세갚음이라고 하였지만 실은 인테리의 체취가 역겨웠고 또 그렇게 하는것이 박원식을 속이는데도 도움이 될수 있었다. 그는 꺼슬꺼슬해진 턱을 썩썩 문지르면서 히죽이 웃었다. 너무나 달라지고 기가 꺾인 자신에 대한 체념이고 야유였다. 그러자 뒤이어 동작이 민첩하고 름름하게 생긴 박원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말은 많지 않았지만 일단 그 완강해보이는 턱을 놀리기 시작하면 벽을 문이라고 냅다 미는 성격이였다. 《가지 말라! 돌아서라!》 등뒤에서 처절하게 웨치던 박원식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였다. 양춘만은 미간을 좁히면서 눈을 내리감았다. 그럴수록 그날밤의 광경이 더욱더 생동하게 떠올랐다. 분명히 그때 박원식은 밭가운데를 질러오면서 손짓을 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피타는 목소리로 불렀다. 《돌아서라! 우리와 같이 가자. 우리와 같이 가자.》 양춘만은 눈을 감은채 도리질을 몇번 하고나서 눈을 떴다. 차창에는 역시 앞서 보았던 초라한 사나이가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고있다. 기차는 내리막이라도 만났는지 궤도의 이음새를 세차게 울리면서 달리고있었다. 《다다닥 다다닥》하는 소리가 마치 《같이 가자, 같이 가자》하는양싶었다.

《같이 가자, 같이 가자!》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소리가 뇌리에 파고든다.

차칸은 차츰 더 혼잡을 이루었다. 사리원이 가까와올수록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급격히 많아지고 말썽도 그만큼 불었다. 사람들이 왁작 떠들어대였다. 렬차는 한걸음씩 평양을 향해 점차 접근해가고있다. 그럴수록 양춘만의 가슴속에서는 두개의 상반되는 감정이 피투성이싸움을 벌린다. 하나는 평양이나 강선이 종당에는 자신을 파멸에로 이끌어가게 되리라는 극단한 비관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환상적인 요행수였다. 그러나 그 전자에는 민기환이가 목을 달아맨다든가 인질이 어떻다든가 하는 믿지 않을수 없는 가혹한것이 놓여있어서 아무리 요행수를 바란다고 하여도 소용이 없을것이였다. 민기환의 말이 꾸며낸 거짓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의 천분의 1만을 인정한다고 해도 당장 피가 끓어오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공장을 폭파시켜버릴테다.)

양춘만은 벌써부터 땀이 질퍽해진 주먹을 부르쥐고 명상에 잠겨있었다. 예방기를 해체한채 전기를 투입함으로써 변압기가 폭파되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 해도 아들 일웅이를 되찾아낼 방도가 막연한것이다.

(몰인정한자들, 야만들! 자식을 인질로 잡아두고 애비에게 강철을 만들게 한다?)

양춘만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사상과 리념이 다르기때문에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하는것을 만들어낼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어떻게 그렇게 대할수 있는가. 설혹 그것이 죄인의 자식이라고 해도말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박원식은 강철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인테리자체를 낡은 사상의 구속에서 해방하겠다고 한다.

민기환이네가 말한것처럼 일웅이가 인질로 잡혀있다면 현대 야만들에게 결사적으로 항거할것이며 그마당에서 목을 졸리우거나 사지가 찢긴대도 무방하다. 그렇지 않고 만약 강선어방에 숨이 붙어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뽑아내서 서울로 되돌아갈것이다. 또 그것마저 불가능하면 내 손으로 내것들의 목숨을 끊고 자결할것이다.

양춘만은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아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승강대있는데로 나갔다. 렬차는 방금 사리원을 지나 황주벌을 달리고있었다. 그는 달아오른 얼굴을 바람결에 내대고 이제부터 걸어야 할 로정을 하나하나 톺아보았다. 먼저 강선에 가지 말고 중화에 있는 삼촌네 집에 들려 안해와 아이의 행처를 알아볼것이다. 그렇게 하는것이 직발 강선에 들어서는것보다 불의의 정황에 부닥치는 일이 적을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안해와 아이를 만나야 하며 그다음에는 그 어데든 안전한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설혹 그 길이 이역만리라도 좋고 한몸이 부서져도 관계할바가 아니다. 그 과정에 어느 모퉁이를 지키고있던 박원식이나 리만석을 만날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무서워 억지로 대반원을 그으면서까지 운명을 피하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다만 포로로 되거나 강압에 못이겨 움직이는 그런 비굴한 행동을 용납할수 없을뿐이다.

양춘만은 고개를 푹 숙이고 중화역에서 내렸다. 자그마한 역사 하나에 철길과 평행으로 뻗어나간 신작로 한끝에 초라한 농가 몇채가 모여있을뿐인 한적한 역이였는데도 지금은 사람이 많았다. 내리는 사람도 많았고 또 타는 사람도 그만 못지 않았다. 후렁후렁한 바지저고리는 벌겋게 진흙물이 들었고 채양이 주글주글한 퇴색한 중절모는 그의 눈덕까지 가리워졌다. 다만 새것대로 있는것은 등산용 배낭뿐인데 그것은 이때 무엇이나 다 돌변하기마련인 시대풍조로 보면 그닥 어색한것은 아니였다. 주색에 빠져 가산을 다 털리고 겨우 밥술이나 먹을 정도의 과수업자인 삼촌네 집은 역에서 등성이를 하나 넘으면 되였다. 마당에 들어서자 사과움을 손질하고있던 삼촌이 대뜸 알아보고 뒤를 흘깃흘깃 살피면서 조카를 사랑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떻게 됐니?》

키가 자그마한 삼촌 수환이는 배낭을 받아놓으며 당황해한다.

《어떻게 될거나 있어요. 그저 그렇지요.》

묻는것도 막연하였지만 대답이 또한 허황한데 그 음색들은 하나같이 처량하게 울리였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담배를 태운 다음 양춘만은 랭수를 한사발 마시고나서 물었다.

《강선소식을 좀 모르나요? 삼촌.》

《모르긴 왜 몰라, 그러니 넌 서울서 지금 오는길인가보구나.》

《그래요. 서울서 떠났어요.》

양춘만은 빠끔히 열린 방문을 우쩍 당겨 문고리를 걸고나서 나직이 물었다.

《숨이나 붙어있던가요. 일웅이랑.》

음울하게 번뜩이는 양춘만의 시선에 질려 수환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숨이야 붙어있지. 그런데 난 듣고도 알지 못할 소리를 해서 얼떨떨해졌다.》

《어떻게 됐길래요?》

《글쎄 이야기를 들어봐라. 벌써 한 보름 됐겠는가 한데 문득 아이에미가 나타나지 않았겠니.》

《그래요? 일웅이 에미가 여기를 왔댔어요? 그래 아이가 살아있었나요.》

《아이를 업고 왔더라니까.》

《숨만 할딱할딱하는걸 보고 떠났는데 하늘이 도왔구만요.》

《하늘덕이면 좋기나 하게. 공산당덕이라고 하잖겠니. 아이에미가 하는 말이 공산당에서 높은 사람들이 데려다가 고쳐주었다고 하더라.》

《공산당에서요?》 그는 이때 인질로 잡아갔다는것을 상기하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꿈같은 소리를 하고있수다. 그래 정신이 똑똑해요? 머리가 돌지 않구서야 어떻게 그런 소릴 할수 있어요.》

《내 얘길 더 들어봐라. 아이에미가 왔다간후 사흘만에 주소성명도 말하지 않고 얼굴이 시꺼먼 한 50세가량 난 사나이가 나타났는데 자기는 뭐 서울서 민선생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양춘만이가 혹시 여기 들리거든 말하시오 하지 않겠니. 강선에 있는 양춘만의 아들을 공산당에서 잡아갔다가 내놓았는데 그것은 양춘만을 붙잡기 위한 술책이니까 그렇게 알고있으라고 하더라. 그 사람은 이제 네가 혹시 여기 들릴수도 있으니 그렇게 알려주라고 하더라. 네가 여기 온걸 보니 서울서 왔다는 그 사람 말이 옮기는 옳은것 같다.》

《두고보자. 이 간악한 악귀같은 공산당.》

그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불이 꺼진 대통만 뻐끔뻐끔 빨고있는 삼촌을 한참이나 지켜보고있던 양춘만은 서울에 있는 민기환이로부터 자기가 앉아있는 이 중화땅까지 쭉 일직선으로 그어진 련관을 생각하면서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삼촌, 내가 직발 강선에 가지 않고 여기 들린게 참 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이사람》 수환이는 문턱에 대고 대통의 재를 털면서 두툼한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후에는 어찌됐든지간에 좌우간 다 죽었던 아이를 살려줬으면야 그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거야 없잖나.》

《나쁠것이 없다구요?》

《죽었대두 할수 없는 노릇인데 죽어가는걸 살려냈으니 좋은거지 뭔가. 래일은 어찌되든 오늘은 살고봐야 하는것이 인생이야.》

《아! 정신을 차릴수 없군!》

양춘만은 머리를 싸쥐면서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언뜻 나타났던 박원식의 얼굴, 민기환의 얼굴들이 금시 지워지고말았다.

양춘만은 하루밤 자고 그이튿날 다시 차를 타고 평양역에 내렸다. 곧추 질러가면 반나절이면 되였지만 우정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래야 그동안의 변화를 알수도 있을것이고 길목을 지키는따위의 수에 걸리지 않을것이였다.

그는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남포행 대도로로 걸어가고있었다. 몇달사이에 많이 달라졌다. 우선 눈에 띄는것은 사처에 나붙은 붉은물감으로 쓴 구호들이였다. 광고판에는 더 말할것도 없고 담장벽에 전보대에 대문짝에 각양각색의 필체가 나붙었다.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 만세!》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로부터 조선해방 만세!》

《모든 힘을 민주조선 건설을 위하여!》

이밖에도 《공산당주장》이요 《녀성해방 만세》요 하는 등 갖가지 구호가 나붙어있었다.

조촌 대평을 지나자 차츰 더 마음이 조급해났다. 이제 1키로 되나마나한 사이를 둔 저쪽에서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있을것인가. 공산주의자들의 조폭한 《대접》일수도 있고 땅에 딩굴며 통곡해야 할 비운일수도 있다. 이밖에 어떤 요행수? 그것은 상상도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너그럽기 그지없다. 쌍까풀진 눈을 가지고 언제나 조심스럽기만 하던 개성고녀출신 문학소녀였던 안해가 《왜 왔어요?》하고 악에 받쳐 묻는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하고 눕지 않으면 자지 않겠다고 밤낮 칭얼대고 세발자전거를 벌써부터 부러워하던 일웅이가 팔을 벌리고 달려온다. 아니 그럴수 없다. 걸음마다 눈에 밟히는 안해와 아들의 얼굴을 한사코 피하면서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모양으로 그는 강선으로 강선으로 가고있었다.

어느새 해는 지고 어두워졌다. 양춘만은 주택거리어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오른쪽은 집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공장으로 통하는 길이다. 별치 않은 갈림길이지만 거기에 어떤 운명의 계선이 그어진것처럼 이쪽저쪽을 몇번 넘겨짚다가 대동강가로 내려서서 공장에 먼저 들리기로 하였다. 이른봄부터 갈새가 요란스럽게 울어대던 강기슭이 나졌다. 낚시대를 들고 자주 거닐던 곳이다. 그는 배낭을 진채로 강철로가 바라보이는 강언덕에 올라서서 발돋움을 하였다. 어디서도 야간작업을 하는 기미는 볼수 없었다. 그러나 강철로있는데만은 불이 환하게 켜져있는것으로 보아 노상 숨을 죽이지는 않은것 같다. 귀를 기울이였지만 기중기소리도 변압기에 부하가 걸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짐작컨대 동결된 로를 까내고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숨을 죽인 로를 그대로 놔둔채 경비를 서고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구실을 낼만한것은 얼마든지 있다. 기회가 좋으면 안해와 아이를 데리고 남으로 내뺄것이며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면 머리를 숙이고 기여들어 강철로를 복구하자고 하면 된다. 저쪽에서 반대가 없다면 한동안 성실하게 일하는척하다가 또다시 기회를 보아 정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면 된다.)

그의 가슴에는 어느덧 평온이 깃들면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으며 민기환이가 이러저러한 경우를 타산해서 제2안, 제3안하는 식으로 앞날의 행동방식을 설명해주던것이 옳다고 생각되였다. 양춘만은 다시 걸음을 돌려 오던 길을 되짚어 사택거리로 나갔다. 일본인사택마을의 린접한 둔덕에 널바자를 두른 바로 그 집에는 불이 켜져있지 않았다. 이제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휘딱 책장을 번져놓는것처럼 한 인간의 운명의 갈피가 펼쳐질것이다. 아니 빈집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포친정에라도 갔단말인가. 그것도 바랄만한것이 못되였다. 그렇다면? 양춘만이 이마에 땀을 돋히면서 운명의 점을 치고있을 때 벌써 그의 손은 부엌문고리를 잡아당기고있었다. 덜컥하고 문이 열리는것과 동시에 컴컴한 부엌에서는 더운 공기가 확 내불리였다.

이것은 좋은 징조다.

《여보! 있소.》

온몸을 쥐여짜는듯한 목소리였다. 순간 방안에서는 분명히 인적기가 느껴지는데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여보! 미숙이!》

재차 불러서야 방싯한 새문짬으로 신음소리비슷한 안해의 《누구요?》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안해 미숙이는 벌써부터 온 정신을 바짝 긴장시켜 발자국소리를 추적하고있었다. 처음에는 어떤 나쁜놈이 아닌가 짐작되였다. 얼마전에는 동네녀인이 찾아와서 아주 가버린 남편을 기다리지 말고 무던한 홀애비품에 안기라고 밤새 졸라댄 일도 있었고 또 그다음에는 술이 거나한 중년이 나타나 고름끈을 뜯어헤치며 달려드는것을 후날 정신이 똑똑해서 말미를 짓자고 얼려보낸적도 있었다. 고르롭지 못한 발걸음, 조심스러운 문소리, 갈린듯한, 그러면서도 상냥한 음성 그것은 남편의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얼핏 대답이 나가지 않는것은 그 남편이 안고오는 그 무엇인가가 두려워서였다. 미숙은 사이문을 열어잡고 《당신이예요?》하고 물었다.

《음 나요. 살아있긴 있었구만.》

《불을 켤가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소.》

양춘만은 어깨박죽을 파고들어간 배낭끈을 겨우 벗겨서 부엌마루에 짐을 밀어놓은 다음 구두를 벗었다. 안해는 흩어진 옷자락을 수습하면서 가마목에서 세수물을 뜨려고 한다. 양춘만은 안해의 팔을 움켜잡고 마루에 앉힌 다음 여태 가슴에 서리서리 엉키였던 의문주머니부터 터치였다.

《그래, 어떻게 살아남았소?》

안해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으면서 옷을 벗고 세수를 하라고 하였다. 생판 딴사람처럼 달라졌다. 원래 처녀시절부터 다정다감해서 별치 않은 일에도 흥분하기 잘했고 문학을 좋아했던 덕분으로 자기체험을 감탄할만치 잘 형상해내던 안해였다.

《어떻게 하든지 내가 찾으러 올 때까지 살아있으라.》

담보없는 무모한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정처없이 떠났던 남편앞에서 그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이 식었는가. 아니면 너무 억이 차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는것인가. 어쨌든 현실에 별일없이 살아있다는것만으로도 양춘만은 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였다. 방안에 올라간 그는 아래목에 널린 잠자리를 허둥지둥 짚어가면서 손더듬을 하였다. 《억?》 그는 비명에 가까운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아들 일웅이가 없는것이다. 재차 팔을 휘저어보았지만 역시 잡히지 않았다.

《일웅이 어쨌나?》

《일웅이요?》

안해가 부엌에서 올려다본다.

《그래 내다묻었나? 아니면 평양에 인질로 또 잡혀갔나?》

탕탕 내쏘는 말마디마다 하도 끔찍스럽고 놀라와 안해는 어안이 벙벙해 서있다.

《인질이라는건 뭐예요?》

양춘만이에게는 안해의 심상치 않은 반문이 너무나 응당한것을 몰라서 묻느냐고 하는 소리로 들리였다.

《에익 끝내!》

방바닥에 널린 이불을 휘둘러 메치며 털썩 주저앉는다. 행여나했던 그의 기대는 완전히 허무한것으로 되여버렸다. 열이 39°나 되고 숨이 할딱거리는것을 보았는데 끝내 그길로 직발 저세상으로 가고말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인질로 잡혔다는 민기환의 말이 옳단말인가. 그러면 중화의 삼촌이 하던 말은 또 어떻게 된것인가, 생각할수록 머리가 휘휘 돌았다.

그는 혹시나 해서 허둥지둥 살피면서 웃방으로 통하는 사이문을 쩍 열어제끼였다. 거기에도 일웅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도 알뜰하게 꾸려놓았던 서재는 란장판이 되였다. 서가는 텅 비였고 방바닥에는 책들이 널리였다.

《여보! 여기 책을 다 어쨌소!》

매서운 눈길이 안해를 내쏘고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모두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대하던 안해는 문지방을 잡고서서 어쩔바를 몰라한다. 까닭없이 펄펄 뛰는 남편의 미친듯한 기상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새가 없었다.

《여기 있던 책이 어떤것인지 당신이 모르지 않겠지, 내 한생 모으고모은거요. 그래 남편이 없다고 그것을 다 내던졌단말이요.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 어느놈이 다 털어갔소? 공산당이지. 에이 무지한것들···》

드디여 놀라움이 고까움과 반발심으로 뒤집혀진 안해는 화가 나서 팩 내쏘았다.

《당신은 정말 실성했군요. 왜 애매한 공산당한테 욕을 해요.》

《아니 네가 공산당을 두둔해.》

《중화에 있는 삼촌네가 와서 달구지에 실어다가 평양장에 가서 파지로 팔았어요.》

《뭣이?》

양춘만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야만이다. 야만! 아이구, 파지로 팔아?》

양춘만은 머리를 붙잡고 모지름을 쓰면서 저주를 퍼붓고있다.

미숙은 부엌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니 찰딱찰딱 신을 끌면서 옆집으로 달려간다. 귀를 바짝 도사리고있는데 이윽해서 《일웅아! 아버지》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양춘만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환각이 온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화닥닥 일어나며 방문을 열어제끼였다. 토방밑에는 에미의 등에 업힌 아들애가 눈을 비비며 멍청히 올려다 보고있다.

《일웅아!》

맨발로 마당에 내려서며 등에 업힌 아이를 훌쩍 들어올리였다.

《살았구나, 살았어!》

이것은 참말 기상천외한 일이다. 죽은줄 알았던 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나타난것이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아이를 부둥켜안고 빙글빙글 돌다가 방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어데 우리 일웅이 옳은가 보자!》

안해는 전등을 켰다. 백광밑에 나타난 아들은 흠뻑 몸이 실해졌다. 팔목이 포동포동하고 얼굴은 희멀쑥하다. 그는 볼을 만져보고 입을 맞추고 가슴을 헤쳐보았다. 아이는 아버지가 불시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을 감정에 나타내기도전에 우선 몸이 간지러워 깔깔 웃기부터 하였다. 그럴수록 양춘만은 아이를 방바닥에 딩굴려놓기도 하고 허궁 들었다 이불우에 떨구기도 하였다. 안해는 눈물이 글썽해서 남편이 노는양을 말없이 지켜보고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뒤에야 리치를 캐게 되였던 양춘만은 왜 아이를 감춰두고 사람의 간장을 말리웠는가고 하였다. 사실은 그런것이 아니라 옆집할아버지가 매일밤 무서운 옛말을 해주어서 재미나게 듣다가는 그자리에 쓰러져 자군 했다는것이다.

《아! 난 그런걸 모르구 이 가슴에서 뚝 하고 심장이 멎는 소리가 나더란말이요!》

양춘만은 가슴을 툭툭 치면서 그제서야 긴 한숨을 내쉬였다. 얼마간 아이와 놀고있는데 저녁상이 올라와서 양춘만은 자기가 한술 떠먹고 아이에게 한술 떠넣고하는 식으로 장난을 섞어가며 먹고있다가 문득 옆에 앉은 안해를 쳐다보았다. 쌍까풀지고 사색적인 눈, 아직도 젊음을 잃지 않은 오동통한 볼, 그런것을 마치 처음 보기라도 하는것처럼 유심히 쳐다보면서 또 말을 건늬였다.

《그래 어떻게 살아남았소, 응? 실로 기적이구 불가사의한 일이요. 이 공산주의가 살판치는 마당에서도 숨을 내쉴 틈바구니가 있었단말이지. 난 내가 떠나던 날 밤에 무지막지한 무리들이 당신을 친일파의 녀편네라고 전주대에 달아맬줄 알았소.》

《차츰 내 이야기를 하지요. 그럼 알수 있을거야요. 하긴 불가사의가 아닌것도 아니예요. 그래 당신은 어떻게 할 작정으로 이렇게 나타나셨어요?》

《어떻게 할거 있소. 당장 이제 떠나야 해. 놈들은 술책을 써서 나를 붙잡자고 하오.》

《그렇게 하면 안돼요. 당신은 왜 자꾸 아까부터···》

《무슨 소리요. 공산당에서는 덫을 놓고 기다리고있소.》

《그럴수 없어요. 절대루 그렇지 않아요.》

양춘만은 숭늉그릇을 덜컥 놓으며 팽팽해진 눈길로 안해를 쏘아보았다. 안해는 그새 너무나 변해버려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어? 이건 뭐요.》

벽에 걸린 사진액틀에 시선이 가닿았다.

《모르세요? 김일성장군님초상이야요.》

김일성장군의 사진을?》

《말 조심하세요.》

《말을 조심하라? 이 방에야 우리밖에 없잖소. 그러니 당신은 벌써···》

《왜 우리밖에 없어요. 일웅이가 있잖나요. 갸한테 물어보세요.》

《일웅이가?》

《얘야, 이분이 누구시지?》

미숙이가 부드럽게 아들애에게 묻는다. 그러자 엄마아빠가 노는 양을 재미있게 쳐다보고있던 일웅이가 성큼 일어나 두손을 펴들고 《김일성장군님 고맙습니다.》고 절을 한다.

《아니 뭐?》

양춘만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눌러앉히더니 그길로 안해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래 어느새 네가 공산당물을 그렇게 받아마셨니? 왜 이애가 이 모양이 됐느냐말이다. 똑똑히 말해라.》

안해는 놀라지도 않았고 남편의 조폭한 언행에 대해서 분격하지도 않았다. 그래 그저 조용히 남편의 손을 내리우면서 차츰 말을 들어보라고 하였다. 차라리 이때 안해가 고함을 쳐서 반항을 하고 어떤 말로 자기를 타당화하기에 급급했다면 이렇게 순순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을수도 있었다. 너무나 급격한 극적변화가 그를 얼마간 얼떨떨하게 만든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