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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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근 2시간동안에 걸친 김책과 박원식의 보고를 들으시면서도 그이께서는 단 한마디의 의견도 말씀하지 않으시였다. 보고가 끝난후에도 몇분간 침묵하고계시다가 물으시였다.

《그래 김책동무는 어떻게 수습하면 좋겠다는 의견입니까?》

김책은 이미 준비하고있었기때문에 지체없이 말씀드릴수 있었다.

《저의 의견은 철도공장이거나 아니면 기관구에 나쁜놈이 잠복해 로동자들을 추동하고있다고 보아지기때문에 잡아내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만나본 7명의 로동자들은 한결같이 <공산당에서 있는 쌀을 안주는가, 없어서 못주는거지.>라고 말했습니다.》

《박원식동문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이께서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박원식을 쳐다보시면서 《총을 빼내들지 않은것은 참말 잘했소.》하고 칭찬하려다가 그만두고 대답을 기다리시였다.

《저도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놈들은 깊숙이 숨어있기때문에 그걸 적발해낸다는것은 대단히 힘들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려되는점은 지금 로동자들의 원한이 한결같이 철도국장 한명구에게 쏠려있습니다. 일제때 여기서 기사로 있었고 지금도 역시 웃자리에 앉아 로동자들을 못살게 만든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 국장을.》

《아무래도 그냥두기는 곤난할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명구를 제껴놓는다면 그만한 사람도 들여앉힐수 없다는 사정입니다. 한명구는 꼭 왜정때 십장이나 감독처럼 사람들을 대하고있습니다. 열성은 대단한데 신망이 없습니다.》

《그 동무자신은 얼마전까지 국장사업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있습니까?》

《처음에는 계속 못하겠다고 뻗대였습니다. 그러나 개선연설하는데 참가한후에는 자기를 찾아오셨던분이 장군님이시였다는것을 알고 신임에 보답해야 인간의 도리라고 하면서 더욱 열성을 내고있습니다. 그가 로동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하는것도 일이 잘되도록 해야겠다는 주관적욕망에 의한것입니다.》

《그렇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인테리답지 않게 성격이 완강하고 개방적이였던 한명구를 상기하시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였다. 더구나 웃음을 자아낸것은 언젠가 일본에 가서 신문배달을 하던 흉내를 내였는데 2층집 창문으로 신문이 날아들어가게 하는 동작을 직접 해보일만치 비위가 대판이였던것이다. 그런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왜정때 감독처럼 행동하거나 악당들 네댓명을 혼자서 제낄만한 담이 있다는것도 리해되시였다.

그러나 이때 김일성동지께서는 다른 경우도 생각하고계시였다.

며칠전에 오기섭이 찾아들어왔었다. 그는 거침없이 중요한 용건이라고 하면서 제기하였는데 평양철도국장 한명구를 현직에서 해임시켜야겠다고 하였다. 결국 그길외 철도를 수습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 여느때없이 오기섭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였다.

《저 역시 우리들이 철도를 중시할데 대하여 세운 방침에 따라 심사숙고하게 되였습니다. 특히 김일성동지께서 최근에 철도에 좋지 못한 기운이 떠돌고있다고 경고하시였기때문에 제딴으로 깊이 연구해보았습니다.》

오기섭은 담배불을 끄고 이쪽을 정시하면서 정중히 말하였다.

《문제는 좋지 못한 기운을 발산시키고있는 근원이 한명구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제시기 기사기때문에 로동자들의 반일감정으로 해서 증오를 받는데다가 한명구자신이 일제시기 감독보다 더 가혹하게 로동자들을 다루고있습니다. 더이상 지속시키면 큰일이 번질수 있으며 더구나 로동자들의 불만이 모두 우리 당에 쏠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명구를 떼자는데 결론에 미치게 되였습니까?》

《그렇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쪽손으로 이마를 짚으시더니 잠간 사색에 잠기시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그이께서는 《오기섭동무!》하고 부르시였다.

오기섭이 물잔으로 가져가던 손을 멈추고 쳐다보자 그이께서는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동무의 의견을 참고로 합시다. 한명구를 떼서 해결될수 있다면 아무때고 그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럴만한 리유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김책동무의 제기에 의하면 철도에 반혁명분자들이 잠입해서 쏠라닥거리는것 같다고 합니다. 나는 근본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우선 김책동무의 제기를 먼저 풀어보고 그다음에 오기섭동무의 의견을 검토하도록 합시다. 어떻습니까?》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오기섭은 축 처진 기분으로 그렇다면 반대없다고 하였다. 이때 그의 가슴에는 《나는 반대합니다. 먼저 한명구를 떼고 그다음에 반혁명분자들도 들어냅시다.》하는 오기섭의 속심이 강하게 울려왔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확신에 찬 어조로 다시 강조하시였다.

《오기섭동무! 우리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맙시다. 잡귀신들이 떠든다고 해서 그것을 얼리기 위해 혁명동지를 제물로 바칠수야 없잖습니까. 설사 그 방법외 다른 길이 없다 해도 그렇게는 못합니다. 오늘은 한명구를 내라고 하지만 래일은 오기섭이나 김책을 내라고 하며 그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을 내라고 할것입니다.》

잠간동안 사색에 잠기시였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이와 박원식을 번갈아 쳐다보시면서 《한명구동무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줍시다.》하고 분위기를 급변시킬만치 흥분되여 말씀하시였다.

전화종이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집어드시였다.

《네! 철도대표들을 해락관에 모이게 하고 연회를 차린단말입니까. 그렇게 해서는 어떻게 합니까. 한턱 잘 먹여서 가라앉힌다. 하하하. 하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그렇게 해서 쌀 달라는 요구를 해결할수 있을것 같습니까. 벌써 다 모였다구요. 그렇다면 할수 없지요.》

송수화기를 움켜잡으신채 그이께서는 한참동안이나 웃으시다가 김책이앞으로 나서면서 말씀하시였다.

《김책동무! 지금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에서는 철도에서 일으킨 소요를 화해하기 위해 해락관에서 연회를 크게 차린다고 합니다. 철도공장과 철도기관구를 중심해서 한 100여명 불러다가 한턱 잘 먹이고 위로하면 무사해질것 같다는것입니다. 저쪽 요구는 아무래도 대상이 로동자들인것만큼 공산당대표가 참가해줘야 원만해질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김책은 웬일인지 얼굴에 긴장된 빛을 띠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료해한데 의하면 지금 그 연회를 발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조만식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미묘한것은 철도에서 말썽을 부리는 몇몇 사람들은 조만식이 간판을 붙인 <백선행기념관> 출입이 잦다는 사실입니다. 조만식은 철도사건의 후처리에만 관계된것이 아니라 그 발단에도 어떤 그림자를 던지고있는것 같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 연회에는 우리가 관계할 필요가 없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숨어서 장난을 하는 암해분자들을 시급히 적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시점이 예리하고 결심이 단호한 김책은 더 론의해볼 여지가 없다는 내심을 충분히 표현하고있다.

《물론 우리는 관계하지 않습니다. 조만식이 힘있는껏 수습해보겠다니까 그것은 그것대로 두고봅시다. 그러나 우리는 사건현장인 철도공장에 나가 직접 로동자들을 만나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을 잡자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도 있잖습니까.》

《그럼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현장에 나가시겠다는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김책의 아연해지고 지어 굳어지기까지한 몸가짐은 말로보다 더 강한 반대표시를 하고있었다.

《왜, 반대입니까?》

그이께서는 눈섭을 치켜올리며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시였다. 김책은 언제나 그이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거나 의견이 없다고 했었지 이렇게 놀라움을 보일 정도의 딴 의견을 가진적은 여적 한번도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사건자체는 크다고 볼수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응당 중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것, 그것이 어느 하나의 공장이나 기업소가 아니라 철도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혁명의 근거지로 되여야 할 평양에서 더구나 로동계급이 일으켰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결정적으로 그리고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력설하시였다.

창밖에서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꽃잎같은 눈송이가 유리창에 붙었다가는 미끄러져내리군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시름도 없는것처럼 첫눈이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계셨고 김책은 그옆에 나란히 서서 어떻게 하면 철도공장에 나가보시겠다는 결심을 돌려세워볼가 생각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창문을 약간 틔워놓자 문짬으로 한껏 랭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훅 들이불었다. 창가림이 흔들리면서 옷자락을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그이께서는 손을 내뻗쳐 눈송이를 받아보시였다.

꽃잎같이 하얀 눈송이가 손끝을 산뜩산뜩하게 한다. 10여년간 항상 산에서 한해를 보내면서 맞군 하던 첫눈인데 이제는 유리창가에서 그것을 보게 되시는것이다.

순간 그이께서는 단호하게 말을 떼시였다.

《지금 철도형편은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우리가 자연발생적인 어떤 현상으로 볼수 있다면 몰라도 그들 뒤에서 무엇이 조종하고있다고 본다면 앞으로 엄중한 후과를 가져올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두고보면 알겠지만 해락관에서는 화해를 하게 되는것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더 큰 불집을 일으킬수도 있습니다. 박원식동무에게 오늘밤에 철도공장로동자들을 한데 모이게 하라고 하시오.》

그이의 확신에 넘친 웅글은 목소리가 방안에 물결치는것과 동시에 탁상에서 전화종이 또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집어드시였다. 유도음이 심한것으로 보아 장거리전화임에 틀림없었다.

《네! 네 그렇습니다. 아! 오기섭동무요. 흥남인민공장에 가있다. 김책동무를 통해서 로가 폭파되였다는 소식을 대충 들었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다른 손에 옮겨잡으시면서 연필로 받아적으시였다.

《이름이 강병철, 려순공대졸업, 일본 야하다제철소에서 복무.》

다음은 저쪽에서 약간 주저주저하다가 말하는데 해방이 되자 38°선을 넘어 북에 왔다는것과 장군님을 만나 장시간 담화를 한적이 있다고 한다는것이다. 또한 오기섭은 자기가 직접 만나 알아본데 의하면 강병철은 고의적으로 로를 폭파시켰다고 자백했다는것이다. 강병철은 야하다에 있을 때도 조선인로동자들을 강제로 내몰아 그와 류사한 사건을 빚어낸 일이 있어서 로동자들속에서 친일암해분자가 잠입해서 파괴행동을 했다고 몹시 분개하고있다는것이다. 오기섭은 며칠후에 좀더 자세한것을 알아가지고 보고하겠지만 이런 현상은 전적으로 김책이 함부로 사람들을 믿고 배치하는 계급적으로 심히 무경각한데서 초래되는것으로서 최준걸이와 같은 친일적인 인테리를 옆에 끼고있으면서 종당에 우리의 경제를 어데로 끌고 가자는것인지 의문스럽다고 하였다.

《철도형편은 요새 어떻습니까?》 오기섭은 지나가는 말처럼 별로 의의를 부여하지 않고 물었다. 《한마리의 종개가 강물을 흐려놓는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하긴 한마리가 아니라 간데마다 있기는 합니다만.》

그이께서는 쓴웃음을 지으시였다.

《더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러면 예정한 기일에 올라오시오. 그만합시다.》

송수화기를 놓은후에도 한참동안이나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연필끝으로 《강병철》이라고 적은데다 두번세번 거듭 밑줄을 그으시였다. 미루어보아 그이의 심정이 복잡하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나 요인은 어쨌든간에 산발적으로 일어나고있는 사건들은 모두 색채가 있고 심상치 않은것들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참동안이나 수첩장우를 내려다보고계시다가 결연히 고개를 들고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합시다. 오늘 현장에 나갑시다.》

그이께서는 오기섭이 걸어온 전화도 결코 철도사건 못지 않은 심각성을 띠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하지 않고 이미 의논하던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시금 확인하시였다.

날이 어두어지자 눈송이는 더 커졌다. 어데라없이 흰 장막을 뒤엎어놓은듯 하였다. 앞에서 좌현이 길안내를 하고 그 뒤에 김일성동지께서 서시고 맨뒤에 약간 간격을 두고 김책이 따라갔다.

김일성동지를 모신 일행은 평양역 대통로로 나가지 않고 약송정골목으로 빠져서 대동강기슭을 따라 내려갔다. 대동강철교가 저쯤 바라보이는데서 철도공장구내에 들어섰다. 평양철도공장은 본부가 서울 룡산에 있었는데 부산에서 서울, 신의주를 거쳐 만주철도와 직통된 간선중에서 여기가 중요지점으로 되여있었다. 때문에 공장규모가 컸고 종업원도 수백명이나 되였다.

김책이 주변을 예리한 눈길로 살피면서 그이를 모시고 철강재와 목재가 산만하게 널린 철도공장 야적장 앞을 지날 때였다.

눈이 내려 앞이 뽀얗게 흐려진 어둠속으로 검은 그림자가 급히 다가왔다.

《누구요?》하고 소리치자 저쪽에서 《박원식입니다.》하고 흥분된 대답이 날아왔다. 잠간사이에 다가왔는데 하나는 박원식이고 하나는 키가 큰 한명구였다.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시자 한명구가 앞으로 나서며 처절한 목소리를 내였다.

《장군님! 돌아가주십시오.》 숨이 차서 잠간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여기는 장군님께서 오실데가 못됩니다. 어서 돌아가주십시오.》

한명구는 넙적한 어깨를 흔들면서 애원하였다.

《왜 그러오. 로동자들이 모였겠지.》

김일성동지께서는 태연하게 물으시였다.

《모였습니다. 기관구에서도 오고 보선구에서도 왔습니다. 해락관에 갔던 패들도 왔습니다. 복잡합니다. 가시면 안됩니다.》

김책이나 박원식이도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듯이 아무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째 그러는지 말을 해야 알것이 아니요. 뭐가 복잡하오? 복잡하니까 우리가 빨리 가야 하잖소.》

그이께서는 시간이 가는것이 안타까우시였다.

《장군님!》

한명구는 두손을 쳐들고 부르짖었다.

《여기 사건은 제가 다 무사히 수습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 거기 가시면 안됩니다. 놈들이 소란을 피우는 리유는 간단합니다. 이 한명구가 없어지면 됩니다. 국장자리를 내놓겠습니다. 저때문에··· 부탁입니다. 돌아가주십시오.》

한명구는 며칠전부터 좋지 못한 징조를 느끼고있었다. 돌아가는 말을 들으면 서울 룡산에서 낯선 사람들이 몇명 왔는데 여기 철도사람들이 그들과 만나는것 같다고 하였다. 그무렵부터 몇몇 로동자들이 차츰 더 거칠어지고 욱욱 밀려다닌다고도 하였다. 깊은 밤 구내에서 총소리도 가끔 나는데 그 까닭을 캐낼수 없었다. 이 형편에서 이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것이다. 이런 복잡한 사연을 설명할수 없어서 한명구는 무턱대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있었다.

그럴수록 김일성동지께서는 시급히 현장에 가닿아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한명구의 어깨를 떠밀며 그이께서는 《우선 가봅시다. 우리 생각에는 별일이 없을것 같은데.》하고 한걸음 내짚으시였다.

그러자 한명구는 앞을 다시 막아서며 팔을 벌리였다.

《장군님! 위험합니다.》

한명구의 떨리는 목소리가 눈이 내리는 무거운 밤공기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렇게 되자 집합장소로 몰려가고있던 대여섯명의 로동자들이 모여왔다.

장군님께서는 단호하게 한명구의 등을 떠미시였다.

《앞서시오. 빨리 갑시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철도공장 기능공양성소 강당으로 안내되였다. 현관에 들어서는데 안에서 철도복차림을 한 청년 하나가 맞받아나오면서 《김일성장군님이 아니십니까?》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것은 민기환을 만난 방문선이였다. 김책은 재빨리 그 청년을 가로막으면서 등을 돌려대였다. 그러는사이에 그이께서는 한명구의 안내를 받아 군중들이 가득 모인 강당에 들어서시였다. 한 50명이 앉을수 있는 걸상에 100여명이 앉다보니 자리는 매우 비좁았다. 교단이 있는쪽과 군중이 앉은 뒤켠에 갓이 없는 전등알이 몇개 달려있었지만 촉광이 낮아 방안의 어둠을 다 밀어내지 못하였다. 교단에 놓인 탁자한복판에 그이께서 앉으시고 그 오른쪽에 한명구가, 왼쪽에는 박원식이 앉았다.

김책은 밖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장내에는 귀가 저릴만치 정적이 깃들고 그와 함께 싸늘한 랭기가 흘렀다. 그것은 방안사람들의 각이한 심리에 의해 빚어진것이였다. 그들은 이미 각기 제나름으로 여기 모이게 된 까닭을 해석하고있었으며 그것으로 해서 례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였던것이다. 태반 사람들은 철도국장을 찾아가 행패질을 했었고 해락관에 가서 얼근하게 술을 마시였다. 그들은 그 어떤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겨서 자기들이 피해를 보게 될것으로 알고있었기때문에 모두 공포에 질려있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별로 똑똑한 립장이 없이 이무렵에 흔히 있게마련인 군중들의 모임에 그저 한축 끼운다는 립장이였다. 개중에 몇몇 사람들만이 빛나는 시선으로 방금 들어서신 장군님쪽을 바라보고있었는데 그들은 공산당에서 누가 나온다는것만으로도 벌써 어떤 희망을 품고있는듯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 앉자 인차 방안을 둘러보시였다. 섬광을 내뿜는것 같은 시선이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다시 뒤에서부터 맨앞에까지 뚫고지나갔다. 어디에도 이곳 로동자들을 선동해서 란동에로 이끌어갈만한 음모자는 끼워있는것 같지 않았다. 뭇별처럼 널린 눈동자들을 보고계시는 사이에 어느덧 그이의 얼굴에는 신심과 기대가 어울린 미소가 피여오르기 시작하였다.

군중들속에서 《김일성장군님이시다!》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였다. 뒤이어 김일성장군이 옳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허리를 쭉 펴신다음 영채가 어린 시선으로 장내를 다시한번 둘러보시였다.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저는 그 무슨 연설을 하러 나온것도 아니고 또 쌀자루를 메고 온것도 아닙니다. 듣자니 이곳 로동자들이 수고를 많이 하고있다기에 인사를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김일성이라고 합니다.》

숨을 죽이고있던 장내에서 《김일성, 김일성》하는 소리가 울리고 맨앞줄에서 덜컥 하고 의자 드티는 소리가 나는것과 함께 《김일성장군 만세!》가 터졌다. 장내가 끓어번지였다. 만세의 환호성이 그칠줄 몰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손을 들어 답례하시였다. 이윽해서 그이께서는 자리에 앉으시여 또다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한가지 물어봅시다. 여러분들가운데서 누가 여기 앉은 이 철도국장의 방에 찾아가 걸상을 둘러메치면서 쌀을 내놓든지 자리를 내놓든지 하라고 했습니까. 우선 그것이 사실입니까?》

방안에는 잠간동안 침울한 공기가 흘렀다. 이윽해서 거치른 숨소리가 들리더니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하고 몸이 장대한 사나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것은 맨 옆줄에 앉아 방금전까지 남조선에 온 미군에 대해서 악담을 퍼붓던 《집게다리》였다.

《내 오늘 해락관에 차린 연회에 나갔다가 조만식선생한테 불손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술로 얼릴 생각 말고 쌀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몇마디 더 하고는 뒤말을 잇지 않고 두릿두릿 좌우를 살피며 눈치를 보고있다. 그가 말한 해락관연회에는 민주당 당수인 조만식이 나왔었다. 조만식은 개회를 하면서 철도에서 수고가 많다는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미처 관심을 돌릴새가 없었으니 나무라운대로 서로 참고 화해하는 의미에서 한잔씩 들자고 하였다. 한동안 화기가 애애하였는데 불시에 《집게다리》가 술이나 몇잔 얻어먹고 우리가 주저앉을줄 아는가고 만장에 대고 고함을 치는바람에 분위기가 돌변하였다. 거기에 박원식이 나타나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모두 철도공장 기능공양성소 강당에 모이라고 했던것이다.

약간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보고있던 《집게다리》는 드디여 결심을 내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명구에게 손가락질을 하였다.

《왜놈의 졸개 한명구, 당신은 국장자격이 없소. 자리를 내놓구 내려오우. 무슨 렴치에 거기 앉아있는가. 장군님, 저 한명구는 나쁜놈입니다. 처벌해주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띠시고 열을 올리고있는 《집게다리》를 쳐다보시였다. 누구든지 또 의견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자 이번에는 선반작업반에 있는 최아바이가 일어났다. 최아바이는 소년공으로 들어와 20년가까이 여기서 일하고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쌀이요, 돈이요 하는것은 국장 잘못만도 아니다. 그러나 국장이 나쁜것은 철도에 함북도 청진패를 끌어들인것인데 그의 사돈의 팔촌까지 한자리씩 시켰다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옆에 앉아 고개를 들지 못하고있는 한명구에게 그것이 사실인가고 물으시였다. 한명구는 사실이긴 한데 철도에는 너무 터세가 세서 누구도 책임적직위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기때문에 친구들을 찾아가 같이 일하자고 사정해서 그렇게 되였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기가 질려서 주저하던 사람들이 차츰 활기를 띠였다. 무장대를 시켜서 주모자와 누구누구를 체포하라고 할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서로 터놓고 의논하자고 하시는것이다.

여기저기서 앞을 다투어 일어났다. 청년들이 위주이면서 개중에는 중년 또는 로인들도 간혹 있었다. 각이한 억양과 생활세부들을 들어가며 자기들의 소요를 정당화하기도 하고 또 부지불식간에 자기들의 약점도 드러냈는데 대체로 그들의 요구는 일치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쌀을 내라》는것과 《국장을 떼라》는것이였다.

《그렇다면 한가지 물읍시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장내에 량해를 구하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러분이 말하는대로 한명구는 국장자격이 없으니 뗀다칩시다. 그러면 여기 앉은 여러분들가운데서 누가 국장이 되여야겠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말씀하시오. 당장 쌀도 주고 임금도 주고 고장난 기관차도 고치고 또 혼란된 철도의 질서를 곧 바로잡을 그런 사람을 하나 추천하시오.》

장내는 물뿌린듯 고요해졌다.

《말씀하시오.》

두세번 같은 말씀으로 독촉을 하시였지만 누구 하나 일어나 입을 열지 못하였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것은 들끓고있는 평양한복판이 아니라 그 어떤 산악으로 둘러싸인 호수안에 들어앉은것 같이 바람도 물결도 느낄수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속에는 분명히 색갈이 다른 두개의 인간심리가 서로 싸우고있었다. 하나는 자기들의 행위가 당초의 의도와는 맞지 않게 엄청난 편차를 가져왔다는 선량한 로동계급의 량심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수로든지 당면한 곤난을 더 크게 만들고 그 누구도 걷잡지 못하게 하여 나중에는 공산당의 위신을 저락시켜야겠다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에 함뿍 웃음을 담으시고 장내를 향해 다시 손을 드시였다.

《아까 해락관연회에 가서 누구한테 쌀을 내라고 제기했다던 저 청년이 한번 대답해보시오.》

그이의 손길이 차츰 《집게다리》쪽으로 접근해가자 그는 순간 고개를 푹 떨구어버렸다. 뒤미처 군중들속에서 《와하》 웃음이 터졌다.

《저자가 국장이 되면 소가 웃다가 꾸러미를 터치겠수다.》

《개천에서 룡이 올랐단 말 못들었수다.》

일단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중구난방이다.

《집게다리》는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서 몸둘바를 몰라한다. 주모자는 아니겠지만 소동을 일으키는데서 드세게 놀았던 첫 대상을 일단 이렇게 눌러놓으신 그이께서는 또다시 손길을 다른데로 옮기시였다.

《그러면 누가 좋겠습니까. 자청해서 나서도 좋습니다. 누가 쌀을 주고 로임을 주고 기관차가 달려가게 하겠는가. 저 뒤쪽에 장정들이 많은데 어떻습니까. 누가 없습니까?》

또다시 장내에는 침묵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자 보십시오.》하고 그이께서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결국 국장사업을 맡을 사람이 없잖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국장자리를 언제까지나 비우고 우리 철도를 혼란상태 그대로 두겠습니까. 철도는 우리 인체로 말하면 피줄과 같습니다. 피가 통해야 사지가 온전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리나 손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우리 당이 철도를 중시하는것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동무들! 그렇게 합시다. 우리가 기왕 한명구동무를 국장으로 추천해서 일을 시킨것만큼 그냥 두고 도와줍시다. 처음 하는 일인데 어찌 결함과 과오가 없겠습니까. 관료주의를 쓴다는데 물론 그것은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못쓰고 저 사람은 저래서 쓸모가 없다고 한다면 건국사업을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는 변함없이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서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그 길로 나가야 합니다.

한명구동무는 돈이 없어서 일본에 가 신문배달을 하여 고학을 했습니다. 국장사업을 감당하기 어렵다는것을 우리가 설복하여 시켰습니다. 우리 로동계급이 지식분자들과 손을 잡고 건국사업을 같이 하자는것은 그 어떤 일시적인 술책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테리들과 영원히 같이 가자고 합니다. 철도를 움직이자면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욕심만 가지고 할수는 없는것입니다. 이렇게 놓고보면 한명구동무를 떼자는것도 말이 안되며 그에게 쌀을 내라고 다궂는것도 무리한 일입니다. 쌀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우리도 조국을 찾기 위해 산에서 10여년간 싸우다나니 배낭밖에 메고온것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산에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씹으면서 일제와 싸웠습니다. 때로 전리품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저도 최후승리를 위해 쌀을 버리고 탄알을 배낭에 넣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무슨 쌀이 있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안타깝다는듯이 가슴을 만지시다가 단추를 하나 터놓으시고 장내를 둘러보시였다. 여기저기서 한둘씩 고개를 숙이더니 이윽해서 온 장내가 모두 머리를 숙이였다.

《그러면 쌀이 없으니까 언제까지나 우리가 굶고있어야 하겠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굶고서는 철도를 운영할수 없고 따라서 나라를 세울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쌀은 어떻게 해야 생기겠습니까. 기관차, 화차를 수리해서 쌀을 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동무들은 반대로 일은 안하면서 쌀만 내라고 소동을 일으키고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나쁜놈들의 작간에 넘어간것입니다. 철도를 운영합시다. 그래서 쌀을 구해옵시다.》

박수가 터졌다.

《옳습니다!》

장내에는 흥분된 사람들의 힘찬 호흡으로 해서 해일을 일으킨 바다처럼 설레였다.

그때 맨앞줄에서 중년사나이가 손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장군님! 제가 외람된 말씀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그는 허리춤에 끼워넣었던 한쪽팔소매를 뽑아들고 말하였다.

《나는 팔 하나가 없어서 이 철도공장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내게 팔이 왜 없는가. 이 공장에서 목수일을 하다가 차바퀴에 끼여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4월달에 해고됐습니다. 일할수 없었지요. 거리로 다니며 밥을 빌었습니다. 해방이 됐다기에 행여나 해서 팔을 하나 바친 이 공장에 찾아왔습니다. 나는 다 보고 들었습니다. 우린 나쁜 생각없이 쌀을 타러 가자고 해서 따라갔댔습니다. 가보니 그모양입니다. 이제는 잘 알았습니다. 우리는 속았습니다. 장군님! 우리 이 미련한것들을 널리 용서하시고 굶지 않게 해주십시오. 장군님! 간절한 부탁입니다.》

눈물이 글썽해서 웨치고있는 그가 몸을 흔들 때마다 속대가 없이 비여있는 팔소매가 함부로 흐느적거리였다. 무엇인가 더 긴요하고 절박한것을 말하려는것 같은데 입술과 턱이 너무 떨려 말을 만들지 못하고있다. 긍정과 부정의 명암이 차츰 뚜렷해지면서 장내 분위기가 자못 정중해지기 시작하였을 때 돌연 처절하고 솔직한 심정의 고백을 듣게 되였던것이다.

(바로 저것이 진실이다. 저것이 여기 앉은 절대다수 로동자들의 솔직한 감정이다.)

그이께서는 팔이 없는 사나이가 끝내 자기 속심을 쏟지 못한채 자리에 앉는것을 보시자 곧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군중들틈을 가르며 나가신 그이께서는 팔이 없는 옷소매를 들어올리면서 사위를 둘러보시였다.

《동무들! 이것을 보시오.》

그이의 눈굽에서는 이슬이 번쩍하였는데 그것을 장내 많은 사람들 모두가 볼수 있었다. 약간 갈린듯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려놓았다.

《이 동무의 모습이 바로 우리 조선로동계급의 모습입니다. 일제는 우리 로동자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이 동무의 말은 참으로 진심입니다. 이 동무는 나쁜놈들한테 속았다고 합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동무들과 같은 로동계급과 토지 없어 고생한 농민대중을 비롯한 조선근로자들을 위해서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고있습니다. 반동요언에 속지 마십시오. 국장을 떼치우라, 쌀을 내라 공산당을 불러내라, 일을 하지 말자, 이런 속임수를 쓰는 반동분자들을 적발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날 길은 힘을 합쳐서 철도를 복구하고 기차가 달리게 하는 길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쳐다보면서 <언제부터 쌀과 로임을 주겠다는것을 찍어서 말하라>하고 속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것 같은데 그 대답도 동무들자신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처럼 자기 목숨을 남에게 맡긴 노예가 아니라 내 나라와 나자신의 주인입니다. 어떻습니까? 내 말이 틀립니까?》

《옳습니다!》

장내가 떠나갈듯한 화답이 일어났다.

《우리는 속았다.》

《반동들을 잡아내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교단으로 올라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손을 높이 쳐드시면서 《철도로동자동무들!》하고 절절한 목소리로 다시 부르시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닥 높지는 않지만 확신에 넘친 어조로 그리고 정열로 달구어낸 불덩이같은 말마디들을 거침없이 잇대시였다.

《인류의 극악한 원쑤인 파쑈독일과 군국주의일본은 패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력량의 승리로 종결되였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약소민족들과 피착취인민들이 제국주의예속에서 해방되였으며 새 생활을 창조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 인민은 장기간에 걸친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를 짓부시고 자유를 찾았으며 민주주의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고있습니다.》

장내를 둘러보시는 그이의 눈에서는 나라와 인민과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로동자모두를 끝없이 사랑하고있다는 절절한 감정이 흘러넘치고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가 해방되였다고 하여 모든 문제가 다 쉽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새 조선 건설의 길에 들어선 우리 인민앞에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있습니다.

우리 조국은 일제의 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되였지만 북위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으로 량단되였으며 나라의 정세는 매우 복잡합니다. 반동분자들은 오늘의 복잡한 정세를 리용하여 새 조국 건설을 방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습니다.

남조선에서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비롯한 반동분자들이 미군의 비호하에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을 저애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습니다. 그들은 북조선에까지 파괴암해분자들을 침투시켜 새 건설에 일떠선 우리 인민의 투쟁을 방해하려 하고있습니다. 이것은 건국사업에 큰 장애로 되지 않을수 없습니다.》

열에 넘친 그이의 연설은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때로는 급격한 낭떠러지를 이루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굽이굽이 골짜기를 에돌아 다정하게 감돌기도 한다. 도도한 흐름을 이루어 벌판을 장쾌하게 꿰지르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를 이루어 깊고 정서적인데로 사색을 끌어가기도 한다.

《우리가 당면한 난관을 타개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우리 조국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늘의 이 곤난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큰 난관에 부닥칠수 있으며 부강한 새 민주조선을 건설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무들은 식량난을 이기지 못하고 소동을 벌리고있습니다.···

오늘 우리앞에 가로놓인 난관은 결코 한두사람의 힘으로 해결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지금 일부 철도로동자들은 식량과 로임을 잘 해결하여주지 않는다고 하여 관리국장을 철직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로동자들의 생활에 무관심하고 관료주의적으로 일하는 현상과는 강하게 투쟁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식량사정과 경제형편이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어떤 간부를 하나 철직시킨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아닙니다.···》

그이의 연설은 차츰 더 열기를 띠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는 대담하고 투철하며 신심이 넘치였다. 잠간 숨을 돌리고나서 다시 계속하였는데 이때는 자못 엄숙한 음조로 나직이 그러나 긍지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과거 우리 혁명가들은 형언할수 없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15년동안이나 일제와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그들은 적들의 무기를 빼앗아 자신을 무장하고 모든것을 자체로 해결하면서 부닥치는 난관들을 용감하게 뚫고나갔습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험산준령을 넘나들며 풍찬로숙하면서 때로는 며칠씩 굶으면서도 난관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항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싸웠습니다.··· ···항일유격대원들은 낯선 이국땅의 험악한 산중에서 적들과 싸우다 쓰러지면서도 <조선독립 만세!>, <조선혁명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으며···》 그이의 가슴은 높이 오르내리였으며 목소리는 갈리고 말마디들이 자주 끊어졌다. 《조국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쳤습니다.》

그이의 시야에는 지난날의 일들이 영화화면처럼 흘러갔다. 길림거리, 일화배척투쟁의 구호를 부르다가 적탄에 맞아 피가 콸콸 쏟아지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쓰러진 공청원, 단두대앞에서 두주먹을 높이 쳐들고 《조선혁명 만세!》를 불러 군중들을 격동시킨 무송의 지하조직원, 적들에게 두눈을 빼앗기고도 《해방된 조선이 보인다.》고 웨친 녀성유격대원···

그이께서는 뜨거운것이 눈굽을 지지고 코마루가 저려나는것을 겨우 참으시였다. 20성상 기나긴 세월 고이고 고이였던 처절한 감정이 가슴을 헤치고 걷잡을수 없이 흘러넘치는것이다.

연설을 잠간 중단하시고 그이께서는 뿌옇게 흐려졌던 눈앞이 차츰 개이기를 기다리시였다가 다시 계속하시였다.

《항일유격대원들이라고 어찌 부모처자와 함께 뜨뜻한 방에서 편안히 살면 좋은줄을 모르겠습니까. 그들은 오직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웠던것입니다.

우리는 항일유격대원의 이러한 모범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모두 곤난을 이겨내고 새 민주조선 건설에 일떠섭시다···》

연설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그중에서도 목소리가 가장 높은것은 선반공 최아바이였다.

《우리는 속았소. 반동놈을 잡아내자!》 그가 주먹을 내흔들며 목청껏 소리쳤다. 《우리도 공산당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을 따라가겠소!》

《옳소.》

군중들이 일제히 환호를 올리였다. 가운데 몰켜앉았던 청년 대여섯이 일어나 목소리를 합쳐 《김일성장군 만세!》를 불렀다. 온 장내가 목소리를 합치였다.

회의장이 떠나갈듯이 만세소리가 울리였다.

《반동을 잡아내자!》

《우리는 다시는 속지 않는다!》

《철도를 운영하자!》

여기저기서 웨쳐대였다.

연설이 끝나고 교무실로 쓰던 옆칸으로 그이께서 자리를 옮기시였을 때 벽시계가 12점을 쳤다. 강의실에서는 아직 군중들이 헤여지지 않고 떠들썩 고아대고있었다.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을 당장 적발해내야 한다고 청년들이 윽윽하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쁜놈들을 잡아내는것도 중요하지만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어떻게 하면 화차를 빨리 수리해서 철도운수를 제 궤도에 올리겠는가 그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한편 한명구에게 황해도에 가서 쌀을 빨리 끌어오도록 하라고 지시를 주시였다.

《이것을 한고뿌 드십시오.》

그이앞으로 중년로동자 하나가 양은쟁반에 물잔을 받쳐들고 허리를 굽히였다.

《장군님! 나라를 찾노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대접할것은 더운물밖에 없습니다.》

뚜껑도 없는 푸른 사기잔을 정중히 들어 장군님앞에 내놓는 중년로동자의 손은 가늘게 떨리였다. 그 알릴가말가한 흔들림은 다름아닌 그의 심장의 파동이 손끝까지 미치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시였다.

《이것으로라도 목을 추기십시오.》

눈물이 글썽해지신 그이께서는 물잔을 들어올리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시였다. 아닌게아니라 목이 마르시였다. 실낱같은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더운물을 마시는데 가슴에서는 그 무슨 덩어리같은것이 스르르 녹아내리는것을 감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밀영에서 더운 물을 마시던 그 버릇대로 잠시동안에 잔을 말끔히 비워놓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