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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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환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예정했던대로 일이 척척 진척되여가는것이다. 기분이 상쾌할 때면 늘 그런것처럼 피둥피둥하고 멀쑥한 목을 뒤로 젖히고 로이터안경을 거쳐 먼데를 바라보면서 제법 무릎에다 손가락장단까지 치고있었다. 황금정에 있는 고급려관 맨 서쪽 으슥한 칸에 자리잡은 그는 벌써 며칠째 방안에 들어박혀 관계자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이고있었다. 서울에 있을 때면 종로 번화가의 이름있는 려관 고급방에 들어 이따금씩 룡산에 있는 철도공장에 나갔다오군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울과 달리 여기 평양에서는 괜히 밖으로 드나들다가 정체가 탄로날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벌써 석달어간에 서울과 평양을 네탕이나 오갔던것이다.

《흥! 조만식목사도 조련치는 않은걸···》하고 그는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방금 평남도 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이란 와드드한 직명을 가진 조만식을 복도에서 바래고 들어왔던것이다. 민기환이 학생시절에 정주오산중학에 입학하니 조만식이 그곳 교장직에 있었다. 계보를 따지면 깍듯이 스승으로 모셔야 할 대상이지만 때가 때니만치 그리고 관계가 관계니만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그였다. 조만식은 민기환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남포에서 올라온 상공인대표를 여기에 숙박시키고 그를 방문한다는 구실을 대서 찾아왔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자리에서 조만식은 《민군!》했다가 《아니 민선생!》하고 고쳐 부르고나서 동방례의지국인 조선은 장성한 자식한테도 하대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을 달고 그간 서울소식을 듣자고 청하였다. 민기환은 될수록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정치계, 실업계, 종교계의 동향을 자세히 설명하고나서 《그쪽에서는》하는 식으로 미군의 모 계통을 분명히 념두에 두고 은어를 쓰면서 조만식에게 요구하는것을 전달하였다.

한마디로 집약하면 알맹이는 공산당세력을 압도하는것인데 목적을 달성하는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단호한 권고였다.

이러한 전제밑에 그 내용이 여러갈래로 뻗어있었다. 민기환이 직접 담당한것은 북조선에 있는 이름있는 인테리들을 남조선으로 끌어가는것이였다. 그의 첫째 대상은 경성제국대학 교수 안동권이였다.

민기환이 안동권을 직접 만나본데 의하면 매우 도고하고 내성적이여서 속심을 잘 알수 없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서울로 가겠다는것을 보면 지향이 확고하여 별일없는것으로 보이였다. 서울에 가기만 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옴짝 못하게 묶어놓을 자신이 있었다. 다음에는 강선의 양춘만인데 그는 나이가 젊다보니 행동반경이 크고 종잡을수 없는점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끌고나가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면 여기에 박아둘수도 있는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한명구는 없애치워야 할 대상이라것이 명백하다. 공산당편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있고 철도에 자리잡고있기때문에 영향력이 크다. 때문에 이번에 몇명 내세워 기회를 만들어 없애치우자는것이다.

한명구를 없애치우는 방법은 군중의 불만을 리용하는것이 제일 좋다. 현재 철도에서는 로임도 식량도 제대로 주지 못해 일부 로동자들이 직장에 나오지 않고있으며 불만을 터뜨리고있다. 이 기름가마에 성냥가치를 던지기만 하면 불이 확 달릴것이다. 그러면 한명구는 하는수 없이 제풀에 물러나게 된다. 그렇게만 되면 공산당에 대한 비난도 크게 퍼뜨릴수 있다. 공산당에서는 인테리를 리용하다가 수틀리면 제꺽 떼치운다고 여론을 돌리면 꿩먹고알먹는식으로 되는것이다. 때문에 철도에다가 판을 크게 벌려야 한다.

이밖에도 흥남에 가있는 강병철이와 원시범이 있고 원산에도 한두 대상이 있는데 그도 놓치지 말고 제때에 공작을 들이대야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현재 중요대상은 한명구를 꺾는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아직 평양시내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숨어있는 과학자들, 작가, 예술인들도 공산당을 반대해서 일어나게 하는것이다.

《이것이 곧 공산당을 누르는 방도의 하나올시다.》하고 민기환의 설명이 끝나자 《알만하오.》하고 조만식은 떨리는 손으로 토목조끼주머니에 내리드리운 회중시계줄을 만지면서 《하지만 나로서야 방법이 있나요. 민선생이 다 처리해야지. 그런데 하나 귀띔할것은 공산당에서는 지식인들을 세차게 끌어당기고있소. 알만해요. 난 오늘 저녁 해락관연회에 나가야 하니까.》하였다.

《공산당에서 당긴다면 김책이나 오기섭이지요? 최준걸이같은건 우리가 한수 쓰기만 하면 자기네가 밀쳐버릴 대상이구.》

《그쯤 알구 선처하시오.》

민기환은 장대한 몸에 우정 무게를 싣기 위해 상체를 제끼면서 《이제 다 잘되겠지요.》하고 더이상 묻거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조만식이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다음은 서선전기회사체육단 《집게다리》를 만날 차례였다. 《집게다리》는 축구팀 주장으로서 완력에서는 그 누구도 당해낼수 없는 장사이면서 맹목성에 있어서도 그는 야수적인 특이성을 가지고있었다. 마치 태엽장치를 한 인형처럼 무분별하였다. 그를 요행 철도공장에 박아넣을수 있었으니 이제는 결심을 가지고 내밀면 될것이였다.

민기환은 가슴속에 새겨둔 몇개의 안에 하나씩 점을 찍어가며 따져보았다.

《집게다리》를 리용해서 한명구를 없애든지 옴짝 못하게 눌러야 하였다. 현재까지는 예정대로 순탄하게 사건이 번져가고있다. 철도공장에서 쌀소동을 일으켜 그 화가 한명구에게 그리고 그것을 거쳐서 공산당에 쏠리게 한것은 참말 천재적인 발견이라고 할수 있었다. 역시 미국인의 머리는 우리보다 머리 한기장만큼 크다는 말이 옳다. 《그쪽에서》는 쌀을 내라고 소동을 일으키는것은 마치 로씨야 프로레타리아가 동궁을 향해 몰려가면서 웨치던 구호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렇다 한들 상관이 무엇인가. 공산당을 골탕먹이는데 공산당의 방법도 필요하다면 써야 한다.

민기환은 옆방에 가서 수하인물 문가를 불러왔다. 키가 작고 오돌차게 생겼는데 민기환이 꼭지만 떼면 즉석에서 두수 세수 안을 써놓는 모사이다. 민기환은 무엇을 하든 세밀한 타산을 앞세우면서 동시에 자기 위신과 권위를 고려하였다. 미군정장관을 대상하는 그 격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고 보는것이다. 조만식은 인물이 크니까 직접 상대하지만 이제부터의 인물은 모두 문가가 대상하기로 하였다.

문기척소리도 없이 《집게다리》가 나타났다. 6척장신이 찌글써하고 문안에 들어선다. 그는 해방전에 류정에 있는 서선전기회사축구팀 주장이였는데 요새는 철도공장 목공반에서 일하고있었다.

《앉으라!》

문가는 명령조였다. 진작부터 옴짝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어쩔 작정인가? 집게.》

흑안경을 낀 문가가 밭은 목을 뽑으면서 위풍을 보이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노려본다.

《거사는 이제부터지요.》

《그렇기는 한데 그걸 어떻게 성취하자는가말이다.》

입을 싸쥐면서 민기환은 고개를 돌리였다. 묘주냄새가 물컥물컥 풍겨서 코를 들수 없는것이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견디기 바쁘거던요.》

《심정은 알만해. 국장실 습격까지는 비슷하게 되였는데 이제 해락관연회에서 모두 삶은 호박처럼 되지 않을가?》

문가는 계속 곱지 않은 말로 위엄을 뽑고있다.

《웬걸요. 지금 눈이 똑바로 박힌 조선사람치고 공산당 좋다는게 있는줄 아시오. 공산당을 쳐라하면 모두 들고일어날 판입죠.》

《경적필패란 말이 있어. 그래 집게. 이제 해락관에서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민기환은 상아물부리를 입귀에 거느즉이 걸어놓고 우정 지켜보고만 있다.

《어떻게 할기 있는가요. 먹을것은 실컷 먹고 제 볼장을 보는거지요. 한 50명 우리 패를 끌고갔다가 케를 보아 공산당에 대한 불만을 터치고 그다음에는 공산당본부에 몰려갑니다. 그래서는 쌀을 내라고 웨치지요. 나는 그런 정도밖에 모릅니다.》

《괜찮아. 그런데 그렇게 슬슬 번져지겠는지 그건 알수 없잖나.》

문가는 역시 용이주도하게 타진한다.

《리치야 뻔하지요. 슬슬 몰고나가다가 중앙선을 넘어서면 냅다달려 백선까지 들어가면 됩니다. 그후에는 어느놈의 발에 맞던지 십중팔구는 꼴문에 들어가기마련입니다.》

《하하하.》

문가는 앙상한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너무 배포가 유한것이 마음에 걸려 좀 긴장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사》를 시합에 비기는 그것이 좋지 않았던것이다.

《여! 집게, 상대가 다름아닌 공산당이라는걸 알아야 돼. 공산당은 세계 6분의 1에 정권을 세우고 이제는 2분의 1을 차지할 심보란말야.》

《어쨌거나 길고짧은건 시합을 해봐야 압니다.》

《공산당 맨꼭대기에는 김일성장군님이 계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거짓말입니다.》 《집게다리》는 취기가 차츰 더 번져 뻘겋게 된 얼굴을 흔들며 단호히 부정하였다. 《김일성장군은 나와 같은 평안도 태생입니다. 우리 평안도내기는 공산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절대루! 개선연설을 보시오. 공산주의하자는 말이 티끌만치나 있는가. 내 말이 안믿어지나요?》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찌겠는가?》

문가는 민기환에게서 공산주의자가 틀림없다는 말을 들었기때문에 확신을 가지고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하고 《집게다리》는 순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난 퇴장입니다. 부정선수니까요.》

《뭣이 어째?》

문가는 표독한 눈으로 쏘아보면서 겨드랑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손이 나오기만 하면 가슴에 구멍을 내는것이 나온다는것을 《집게다리》는 잘 알고있었다.

《알겠수다, 알겠어요.》 《집게다리》는 정신이 번쩍 들어 문가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어찌는가 보느라고 한 소리인데 량해하라요.》

문가는 눈 한번 깜박 안하고 몇분동안 퍼렇게 이문것 같은 《집게다리》의 얼굴을 쳐다보고있다가 천천히 손을 뽑았다.

《똑똑》 문기척소리가 났다. 그때까지도 곁에서 팔짱을 끼고앉아 부하들이 노는꼴만 말없이 지켜보고있던 민기환은 긴장한 빛을 띠우고 문쪽에 시선을 돌렸다.

《누구야?》하고 문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접니다.》하는 귀익은 목소리가 들리였다. 그는 다시 아래목에 급히 가앉으며 《문선이냐?》하고 묻자 문밖에서 《그렇습니다.》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철도정복에 독구리샤쯔를 받쳐입은 방문선이 들어섰다. 스물댓되나마나한 패기만만한 청년이다.

《앉으라.》

청년은 선생앞에 선 학생처럼 고분고분하였다. 무릎을 꿇고 정좌해 앉더니 량손을 각각 무릎우에 올려놓고 고개를 든다.

《네가 오늘 거사에서 뭣을 해야 하는지 아는가?》

문가는 우정 눈섭을 맞갖잖게 치켜올리면서 씹어뱉듯이 한마디 던지였다.

《알고있습니다.》

《뭘 아는가? 안다는게 뭔가말이다.》

창문밖을 내다보면서 다궂는다. 얼혼이 나간 방문선은 목을 차츰 움츠리면서 힐끔힐끔 눈치를 보고있다가 겨우 대답을 하였다.

《해락관에서 술을 먹다가 소동이 벌어지게 되면 공산당우두머리를 쏘는것입니다. 거기 나타난 우두머리면 아무나 상관없지요?》

《그렇다. 미상불 김용범이가 틀림없을거다. 그게 아니면 오기섭이나 김책일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놓치지 말아야 할건 박원식이다. 강선이요 서울이요 또 어데요 하면서 우리 앞길을 간데마다 막아서는놈이 그놈이야. 그놈만 제끼면 한명구는 뿌리가 끊긴 나무와 같다. 집게, 알겠는가. 어데다 꼴을 넣어야 하겠는지.》

《똑똑히 알았습니다.》

《됐다!》

민기환은 더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집게다리》가 우정 중을 뜨기 위해 그랬는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실수를 한것인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매우 위태위태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 그는 방문선에게 속에 없는 소리를 하게 되였다.

《네가 혹시 공산당을 쏘라는 그걸로 이 민기환이라도 쏠 생각을 하고있는거 안야?》

《네?!》

방문선은 흠칫 놀라면서 좌우를 두릿두릿 살피였다. 말을 해놓고도 민기환은 곧 후회하였다. 그래 재빨리 기분을 돌리였다.

《그건 롱말이구.》

《아무리 롱이라도 그런 말이야 어떻게 합니까?》

목이 조여드는것 같은 느낌이 있었던지 방문선은 독구리샤쯔목깃을 잡아당겨놓고 고개를 외로 돌리며 말하였다.

《이번에 성공하면 나 미국에 공부시키러 보낸다던거 약속 지켜야 합니다.》

《그래 난 일구이언 없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