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5

 

5

 

《저는 여기 기사로 있는 원시범이라고 합니다.》

《오! 당신이였군그래.》 오기섭은 손을 잡아흔들며 원시범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평양서 잠간 만난적이 있었지. 거리바닥에서 탁상공론을 하는것보다 이렇게 기름내가 풍기는데서 만나니 얼마나 좋소. 하하하, 반갑소.》

오기섭은 10년가까이나 나이가 우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로동자풍으로 너나들이의 반말투가 더 친근감을 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방 한복판에 놓인 작업대에는 각종 설계도면이 한벌 널려있었다. 도면이 널린 작업대 한쪽옆에는 밥먹던 그릇을 거두지 못하고 그대로 밀어놓았다.

방안을 두릿두릿 살피고있던 오기섭은 뒤짐을 진채 밥그릇 있는데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고생하누만 기사선생! 당신네야 우리와 달라서 이렇게 현장에서 김치만 씹으면서 일을 해야 할 처지가 아닌데.》

그는 한쪽눈을 슬쩍 감으면서 능청스럽게 원시범을 쳐다보았다. 원시범이 게면쩍은 웃음을 짓는것을 보자 오기섭은 다시 《이런 생활에 익숙될수 있을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우리 프로레타리아는 굶지만 않으면 고작이라고 생각하는데말이요. 어쨌거나 감동이 되오. 참고 견딥시다. 우린 당신들을 믿소.》라고 하였다.

의자를 권했지만 거기에는 앉지 않고 오기섭은 창가로 다가가더니 《여보, 기사선생!》하고 연기가 나지 않는 카바이드굴뚝을 가리키면서 롱담을 하였다. 《당신이 여기 있는데 왜 굴뚝에서는 연기 한고치 볼수 없소? 마치 어느 절당에라도 온것 같군 그래.》

《지금 복구공사를 설계하는중입니다.》

원시범은 역시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현재 공장실태를 설명하기 위해 한쪽벽에 붙인 공장전경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오기섭은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하던 말만 계속하였다.

《방금 우리는 도당에서 이곳 흥남지구 공장실태를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토의를 하고 내려오는중이요.》

《그러면 공장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

오기섭은 손을 흔들어 원시범의 말을 중단시켰다.

《여보,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지 않소. 나갑시다.》

일행은 공장구내를 걷게 되였다. 원시범은 앞질러나가면서 생산공정을 하나하나 설명하였다.

그는 현대공업에서 화학공업이 차지하는 위치라든가 또는 여기에 어떤 설비와 공정들이 준비되여있어야 하는데 현 실태는 어떠하고 부족점은 무엇이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요령있고 간결하게 리해시키였다.

염산직장에 이르렀다. 탕크가 무너져 류산이 흩어지고 냄새가 코를 베가는것 같았다.

다음은 소다직장쪽으로 건너갔다. 오기섭은 뜻밖에도 소다생산공정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있었다. 같이 온 박동무의 귀띔에 의하면 원시범이라는 기사가 와서 다른것은 뒤로 미루고 가성소다만은 인차 생산에 들어갈수 있도록 힘을 넣고있다는것이다.

결국 그것을 통해 원시범은 자기 능력을 시위해볼 속심이 있는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소다직장의 복구상태는 아직 말이 아니였다. 탕크들을 해체해놓고 부분품이 없어 조립하지 못한채 버려두었으며 여기저기 배관들도 한심하게 이그러진채로 있었다.

《음! 그렇소.》 오기섭은 원시범의 연설을 듣고나서 침울한 낯을 지었다. 《배관이 누더기라! 왜놈들이 만신창을 만들었다. 그럼직하오. 그럴수 있겠지.》

그의 기분은 완전히 달라졌다. 억지로라도 호의를 가지고 대해보려던 최초의 의도는 자취없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쯤하면 언제 제품을 보게 되오.》

《3개월은 걸립니다. 그것도 련관된 공정들에서 특별한 사고가 없는 조건에서말입니다.》

《3개월! 그것도 조건부라.》

입에 수건을 댄채 말하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밖으로 나온 오기섭은 두팔을 쩍 벌리며 원시범을 향해 소리쳤다.

《완전히 페허요. 수라장을 방불케 하오.》

수건으로 입을 막았지만 인차 재채기가 났다. 다음은 카바이드로쪽으로 발길을 돌리였다. 한참동안이나 기침을 하고난 오기섭은 제풀에 화를 내며 그만하자고 하였다.

《이러다간 심장이 멎겠소. 동무들, 보시오. 일제란 바로 이렇소. 자본주의는 이런데서 조선로동자를 부려먹었소. 말그대로 마소와 같이, 그런후에 이 모양으로 파괴하고 도망쳤소. 처참하오. 누가 이렇게 했는가. 어느놈이! 우리는 이 실태를 가지고 로동자들을 불러일으켜야 한단말이요. 다시는 제국주의노예가 되여서는 안된다고 말이요. 바로 이렇기때문에 우리는 <공장은 로동자에게로!>라는 슬로간을 제기하는거요.》

오기섭은 눈물이 글썽해서 숨을 죽인 공장들을 이윽토록 바라보고있었다. 가슴을 움켜쥔 그는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일제에 대한 증오가 온몸에 굽이쳐흘렀던것이다.

원시범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드는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누가 이렇게 했는가!》고 웨칠 때 오기섭은 원시범을 쳐다보았는데 그 비수같은 눈길에는 《당신도 여기에 가담했소!》하는 기색이 력력했다.

《기사선생!》하고 오기섭은 약간 음울한 시선으로 원시범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언제면 이것을 다 복구해낼수 있소?》

《그건 해봐야 압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해서 완전히 정상조업을 하자면 한 3년 걸릴수 있습니다.》

《뭐요, 3년》 시선을 곤두세우면서 손을 내흔들었다. 《그건 칠성판에 오른 다음에 약을 주겠다는 소리와 같지 않소. 당신은 프로레타리아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배워야겠소. 고타강령비판에서 마르크스가 어떻게 말했는지 아오. 공산주의는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는 수요에 따라 소비하게 된다고 했소. 그러자면 공업이 고도로 발전해서 물질적부가 폭포처럼 쏟아져야 한다고 했소. 그런데 당신 말대로 하면 언제 머리를 들겠는가. 하늘을 봐야 별을 딸거 아니요.》

원시범은 대답이 없었다. 굳어진 원시범의 표정은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랭랭한것이였다. 역시 오기섭은 감각이 예민했기때문에 원시범의 그런 속심을 능히 간파할수 있었다. 평양에서 첫 대면을 했을 때 한껏 비꼬아붙였던 원시범의 대답이 얼핏 떠올랐다. 그렇게 되자 온몸에 사품치던 일제에 대한 반감이 원시범에게 쏠리게 되였다. 결국 이런자들이 흥남에서처럼 로를 폭파하는데로까지 미쳐갈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기사선생! 잘 들으시오. 우리 프로레타리아는 그렇게 완만한것을 좋아하지 않을거요. 동시에 우리 당도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것이고. 언젠가 당신이 말한대로 우리는 위를 비워두고 살아가는 방식을 아직 습득하지 못했소.》

참을성을 가지고 온화하게 하는 말이였지만 원시범에게는 대단히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원시범은 침묵을 지킬뿐 말이 없었다. 공산당본부의 요직에 있다는 오기섭의 말이고보면 그 배경에는 어떤 보루가 준비되여있겠는가를 알기 어렵지 않은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어느 줄이요?》

《네?》

원시범은 당황하였다. 기습해오는 시선에 질린것이다.

《평양에 있는 최준걸의 줄이 옳지?》

《최준걸의 줄이요?》

원시범은 얼떠름해졌다.

《모르는척하지 마오. 성대를 나온 최준걸을 당신네는 만나지 않았소. 여기 온것두 최준걸의 주선이 있은거구. 하긴 뭐 그자체야 나쁠것이 없지. 그러나 어째서 한결같이 당신네들은 우리 일을 망치려드는가말이요. 철도에 있다는 한 무엇인가 하는 사람두 쓸모가 없구 흥남에 간 강병철이는 더 한심하구. 강선의 양춘만은 오다가 도망치구. 이것들이 과연 우연한 일치겠는가. 가만 보면 원시범선생두 우리를 곱게 보지 않거든. 당신이 여기 와서 해놓은게 도대체 뭐가 있소. 난 그래두 단 한개 공정이라도 돌아가는것을 보는가 했댔소. 그런데 가슴이 찢긴단말이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 프로레타리아에게는 아직 순진성이 많소. 당신네들같은 사람들에게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요행수를 바라는것이 있거든. 그러나 일단 그것이 우롱당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면 분노한단말이요, 알겠소? 언제까지나 관용만 가지고 대하지 않아.》

고개를 떨군채 땅바닥만 들여다보고있던 원시범은 등골에서 랭수가 쭉 흐르는것을 감각하였다. 그와 함께 목구멍으로 올리뻗치는 몇마디 말이 있었다. 《정 그렇다면 그만둡시다. 우리는 먹을것이 없거나 누울 자리가 없어 직업을 구하자는것이 아니요. 결국 당신네는 우리를 친일분자의 딱지를 붙여 내몰자는거지요. 아니 내모는것이기는 한데 우리 스스로 물러가는것으로 하자는거지요.》

그러나 그는 혀를 깨물면서 참았다.

원시범이로서는 이때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험구도 견디여낼수 있었다. 그러나 《강병철은 더 한심하구.》하는 표현에 그는 커다란 충격을 일으켰던것이다. 그에게 과연 어떤 일이 생겼단말인가. 강병철은 자기 몸을 부서뜨려서라도 5대공장을 조업해보려고 뛰여다니고있지 않는가.

한편 오기섭은 맥이 빠졌다. 그쯤하면 원시범이 자기 속심을 드러내는 변명이나 반발이 있을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고보니 인간으로서는 매우 선량해보이기까지 하였다.

《원시범선생! 피차 정신을 차립시다. 가만보면 당신네는 참말 사람들은 좋은데···》

계속해서 그는 《사람들은 좋은데 그의 계급적처지와 일제에게 복무한 죄악때문에 어차피 저쪽으로 따라가기 마련이요.》라는 말이 목구멍에까지 올라왔지만 끝내 그것은 내뱉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고개를 들어 연기가 나지 않는 카바이드로굴뚝을 막연하게 쳐다볼뿐이였다.

(현실은 이렇다. 우리가 인테리를 아무리 귀히 여기고 아량있게 포섭하자고 해도 그들은 우리에게 주는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반대로 그들은 우리 발판을 쓸면서 미소를 짓고 조롱하고있다. 3년··· 그것은 우리더러 포기하라는 말이다. 강병철, 그도 역시 리연수의 말이 옳을것이다. 여기를 놓고 미루어보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