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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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은 한동안 비료공장에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였다. 우선 급한것은 대형 압축기들을 복구하는것이며 그다음에는 전해직장을 정비하는것이였다. 합성탕크들을 보수해야 하였는데 그것은 작업규모가 크고 야외에서 한다는것뿐이지 기술적으로 복잡한것은 별로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애로는 장진수력발전소에서 받게 된 전기가 하루에도 몇번씩 오다마다하는것이였다. 그것때문에 사람을 띄우기도 하고 직접 자기가 배전계통에 찾아가기도 하였다. 이렇게 밤낮 뛰고있는데 린접공장에서는 또 거기대로 많은 난문제들이 제기되군 하였다. 원시범이는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화학공장의 전기계통도 보아달라고 하였다. 그가운데도 제일 딱한것은 신창탄광의 박창술의 제기였다. 먼저번 찾아온것을 한달가량 기다려보라고 사정해서 돌려보냈는데 그후에도 연방 사람을 보내왔다. 며칠전에는 쪽지편지를 보내왔는데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똑똑히 대답하라 나는 장군님께 올라가서 청을 드리겠다고 썼다. 하는수 없이 강병철은 한 스무날만 더 기다려달라고 회답을 써보내고 평양에 전화를 했더니 최준걸은 로를 개조해 정머리에 끼울 특수합금강을 만들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강병철은 비료공장의 압축기고정자의 권선작업을 끝내고 절연물을 양생하는 기간 전적으로 합금로복구에 달라붙기로 하였다. 제련소에 넘어가니 공장장 리연수는 평양에 회의때문에 올라갔고 파견원 곽동화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체하지 말고 곧 로복구에 착수하자고 하면서 19명으로 되는 작업조를 무어주었다.

강병철은 갈아입을 작업복도 변변한것이 없어서 제낀옷깃을 일궈세우고 그우에 수건으로 목을 동이고 로안을 들락날락하였다.

이날도 강병철은 로축조작업을 계속하고있었다.

《임동무! 저 규격이 작은거 몇장 올려보내오.》

발판우에 올라서서 벙어리장갑을 낀 손을 아래로 내밀었다.

《젠장 어느거말이요? 2호? 3호?》

곱슬머리가 모자밑으로 삐여져나온 임형춘이 올려다보며 맞갖잖게 소리쳤다. 그는 이 공장에 채용되였다가 3달만에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다가 전달에야 돌아왔다. 때문에 작은것 큰것 하지 않고도 각종 벽돌규격을 호수로 부를만한 수준에 있었다. 그렇지만 26살 나이에 비해 너무 지나치게 세파에 부대끼다 보니 제꺽하면 주먹과 이마로 송사하는 버릇이 있었다. 강병철은 될수 있는껏 그와 부드럽게 관계를 가지면서 어떻게 하든지 로를 이달안으로 복구할 예정에 모든것을 복종시켜나갔다. 그는 몰탈을 와락와락 이겨서 벽돌웃머리에 떠얹어들고 머리를 한껏 젖히며 빈 구멍에 틀어막았다. 몰탈이 쏟아지면서 얼굴과 입에 그리고 목으로 해서 가슴으로 선뜩선뜩한 물이 흐른다. 퉤퉤 자꾸 내뱉어도 입안에는 온통 모래가 씹힌다. 벙어리장갑안에는 손가락들이 피에 걸어붙어 아픈지 아린지 감각도 모르겠다. 로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재장입때 손상을 많이 보게 되는 아구리쪽과 그에 잇달린 가장 곡선이 급한 대만부분이다. 그는 지금 그 대만부분을 꼼꼼히 쌓아올리느라고 애를 먹고있다. 이전에 그는 설계도면과 대비해가면서 축조작업을 감시한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손을 대고 쌓아본적은 없었던것이다. 설계와 시공간의 차이가 있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있을줄은 미처 몰랐다. 언제나 보수는 신설보다 더 기능이 요구되고 작업공정이 구차스러운 법이다. 뚫어진 공간을 메꿔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겨우 붙었는가 하면 차츰 땜때기한 부분이 젖혀져내리다가는 왈칵 무너져 며칠동안 공들인것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안경알에 세멘트와 먼지가 뽀얗게 덮인것을 그대로 걸고 밤에 낮을 이어 내화벽돌과 씨름을 한다. 작업공정도 어려웠지만 우선 규격벽돌이 없어서 목욕탕이나 휴계실부엌을 들춰모아들인것으로 사개를 맞추자니 그 고충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하지만 강병철은 실망하지 않았고 그 조건을 타발하지 않았다. 이제 이 로에서 특수강이 나오게만 되면 그 모든것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는것이다.

《임동무! 세멘을 한삽 올려보내오.》

대답이 없다.

《임동무 어데 갔어?》

재차 불러서야 최한덕아바이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임동무 어데 갔어요. 일하다 말구.》

《내가 대신하면 안될가?》

《안될건 없지만 더디지요. 호수에 따라 벽돌을 섬겨야 하니까.》

그렇게 되자 최한덕아바이는 어데론가 씽 달려가더니 임형춘의 덜미를 잡아 끌어왔다. 임형춘은 로안에 들어서면서 우에다 대고 걸찍한 욕설부터 퍼부었다.

《어! 강기사나리, 당신이 아직 왜정때처럼 여기는게 아뇨. 누굴 오라가라하면서.》 아무 반응이 없자 되려 그는 왈칵 화를 내였다. 《당장 내려오라. 뼈대를 문질러놓고말겠다. 왜놈의 졸개같은자식, 제가 뭐게다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해.》

《이자식 다시한번 말해봐. 누가 무슨 졸개.》 뒤에 지켜섰던 최한덕아바이가 임형춘의 덜미를 잡아휘둘렀다. 《이 술망나니같은자식, 죽어봐라. 강기사는 특수강때문에 지금 몸을 부서뜨리고있다. 보자보자하니까!》

임형춘이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버지벌 되는 좌상한테 손찌검은 못하고 허리를 안아 허궁 들어 물이 반나마 차있는 도람통안에 던져넣었다.

《아이구 허리야!》

소동이 벌어졌다. 스무명 가까운 작업조성원이 다 모여들어 왁작 고아대였다. 임형춘의 악담을 그대로 믿게 된 몇몇 젊은축들은 강기사의 버릇을 떼놓아야겠다고 떠들었다.

《지금이 어느때게 왜정때 감독행세를 하자고들어?》

《강을 못만들면 못만들었지 친일분자한테 구박을 받을순 없단말이다.》

《다꾸왕 먹고 자란 왜놈의 발바리야, 썩 사라져라.》

청년들은 당장 무슨 변을 낼것처럼 주먹을 흔들며 고아대였다. 그러나 또 그만 못지 않게 완강하게 저항하고있는것은 나이먹은측과 몇명의 젊은이들이였다.

《그래 강병철이 어쨌다는거냐. 우리 나라 금속을 만들어 건국을 하자는데 뭐가 나빠. 너자식들은 왜놈의 금속을 만들지 않았니. 같구같지. 중요한건 지금 어떻게 하는가 하는거다. 강기사한테 손을 댔단봐라. 쇠장대루 가슴팍에 구멍을 뚫어놓겠다.》

《야, 이 불한당같은자식들아. 너네 하는 수작이 뭐냐. 밤낮 술이나 퍼먹구 모이쪼해서 건국이 돼? 밥통같은새끼들, 썩 물러가지 못하겠니.》

강병철은 넋없이 달려가서 최한덕아바이를 일으켜세우고 바지가랭이의 물을 짜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껏 조폭해져서 어쩔줄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누가 누구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있는지 그는 분간해낼만한 여유를 못가졌다. 오직 로동자들의 불화가 자기를 둘러싸고 일어났다는것과 바로 이 현상이 로복구사업에 큰 장애로 되고있다는것만을 통감하였다. 옷을 쥐여짜는동안 약간 기가 죽어졌던 최한덕아바이는 강병철을 떠박지르며 군중들앞으로 씽 달려나가더니 볼트대가리처럼 뭉툭한 손가락으로 임형춘이와 그밖의 네명의 청년들을 하나하나 찍어가며 소래기를 쳤다.

《당장 너희들 없어져라. 너희 술망나니패거리때메 로쌓는데 지장있다. 다 가라!》

그통에 다시 기세가 오른 로장패들은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연방 고함들을 질렀다. 기세에 몰리게 된 임형춘이패들은 《가라면 가자! 우리없이 얼마나 잘하나 두고보자.》하면서 우실우실 휴계실쪽으로 내려간다. 이때 강병철이 그들앞으로 달려가 팔을 벌리고 막아섰다.

《못간다. 갈라면 같이 가자!》

술망나니라고 지명된 5명의 청년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강병철은 장승처럼 서있는데 량쪽으로 벌린 두팔이 와들와들 떨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안경알밑굽에서 이슬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동무들! 갈라면 나를 때려없애치우고 가시오. 그렇게 하기전엔 못가.》 그의 목소리도 떨리였다. 울음섞인 그 말마디들은 목안을 사정없이 지지면서 불길처럼 내뿜었다. 《동무들, 용서해주오. 나는 인차 물러나겠소. 그러나 내 손으로 조선의 강을 다문 한차지라도 만들어보게 해주오. 부탁이요.》

《뭣들 이러고있소.》 강병철의 등뒤 나들문쪽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울리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란장판인가. 썩 제자리에들 돌아가지 못하겠소.》

이곳 파견원 곽동화였다. 아래우 보위색양복에 캪을 눌러쓴 30대의 그 사나이가 쇠란간에 올라서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강병철이와 마주섰던 청년들과 함께 웅기중기 모여섰던 작업반원들이 각기 자기 위치로 흩어졌다. 곽동화보다 한걸음 뒤에 웬 사나이 하나가 또 나타났다.

강병철은 와들와들 떨리는 다리를 옮겨짚으며 로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강선생! 잠간 나 좀 만납시다.》 곽동화뒤에 어깨가 쩍 벌어진 장대한 사나이가 손짓을 하고있다. 한눈에 로동자풍이라는것이 알리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손을 내밀어 인사를 청한다.

《난 여기 공장장이요. 리연수라고 하오. 평양에 회의에 갔었소. 강선생의 말을 들었소. 우리 공장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한다는데 감사하오.》

강병철은 휴계실에 안내되여들어가 공장장이 내놓는 《하도》를 피워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동안 혼자서 수고했노라고 인사를 하더니 밑도끝도없이 《도대체 강선생은 어느 줄이요?》하고 문득 물었다.

강병철이 《어느 줄이라뇨?》하고 놀랍게 입속으로 외우자 공장장은 인차 설명을 붙였다.

《내가 들으니까 서울에서 뻗는 줄도 있고 평양에서 뻗는 줄도 있다고 하오. 평양줄도 하나가 아닌데 공산당줄도 있고 민주당줄도 있으며 또 딴 줄도 있다는거요.》

공장장은 절구통처럼 굵은 다리를 포개였는데 번들번들 윤이 나는 장화목을 철썩철썩 두드리면서 여유있게 이쪽의 심리를 엿보고있다. 강병철은 담배를 몇모금 더 빨아 꽁초를 무쇠재털이에 끈 다음 맞은켠을 쳐다보았다. 상대자의 형체는 알겠는데 얼굴인상을 가릴수 없어서 안경을 벗어 목에 감았던 타올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였다. 몇초 여유를 얻어서 잔뜩 신경을 긴장시킨후에 첫 대답을 하였다.

《나는 어느 줄에도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급히 필요한 금속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아! 그렇소. 그럴수도 있지. 평양에서는 누구를 만나지 못했는가요? 우리 서로 솔직하게 가슴을 열고 함께 일합시다.》

변죽을 울리는투가 벌써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강병철이로서는 그 어느 하나 숨기거나 꺼려할것이 없었으므로 적당한 계기에 자기를 낱낱이 드러내놓을 결심을 하였다.

《평양에서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최준걸이라고 했던것 같습니다. 성대출신인데 백년광산에 있다가 현재는 5도행정사업을 통괄하는데서 일을 본다는것 같습니다.》

《아! 그렇소. 그럼 오기섭동지를 만난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본궁에 온 화학기사한테서 한번 만났다는 말은 들은적이 있습니다.》

이때 리연수는 며칠전에 만난 오기섭을 얼핏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알겠소. 그만하면 알만하오.》

역시 공장장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장화를 툭툭 치면서 근시안경을 낀 강병철을 유심히 쳐다본다. 계속해서 고향이 어데고 아는 사람은 북에 누구인가 등 별로 중요한것 같지 않은것을 가지고 한동안 시간을 끌다가 그러면 현장을 같이 돌아보자고 하였다. 로복구도 알아보고 그밖의 전반적기술상태도 물었다. 그 과정에 강병철은 공장장 리연수는 흥남비료공장 전기직장에서 전공로동을 하다가 《태평양로조사건》에 걸려 서대문에 있었고 9월에 고향인 신흥에 가서 얼마간 몸을 추세우고 공장장으로 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달안으로 시험을 해볼수 있겠는가요?》

공장장은 정색해서 강병철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엉겁결에 강병철은 이렇게 대답해버렸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는 랭랭한 기운이 감돌면서 그 무엇에 의해 압착을 당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과연 이런 사람한테서 내가 어떤 호의를 바랄수 있을가. 설사 호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를 리해해줄만 한 아량이 있을것인가?)

《꼭 성공하도록 하시오. 로와 함께 강병철을 시험하겠소.》

순간 강병철은 흠칫 몸을 떨었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싸늘한 기운이 번져가면서 의식이 몽롱해지기까지 하였다.

하루동안 뒤숭숭한가운데 날이 저물었다. 전등은 켰지만 전압이 낮아서 수수떡 달아맨것 같았다. 희미한 불빛속으로 강병철이 느릿느릿 로를 돌아보고있다. 방금전에 쿡 찔리운 그 상처로 여직까지 온몸에 소용돌고있던 열정이 죄다 빠져나간듯하였다. 다리가 떨리고 땅이 기울떡거리였다.

그런대로 로축조가 끝났다. 이제 양생기간을 거치는동안 전기배선을 정리하고 실험을 해보아야 하였다.

휴계실로 돌아온 그는 수도에서 손을 씻고 화독에 올려놓은 군대밥통뚜껑을 열어보았다. 보글보글 물이 잦으며 매캐한 냄새가 풍기였다. 몇분 더 있으면 밥이라는것이 될것이였다. 밖에 나가 옷의 먼지를 턴 다음 모자를 벗고 머리를 흔들었다. 모래와 먼지가 와스스 흩어진다. 그는 고철무지짬에 밀어넣었던 단지를 들어다 뚜껑을 열었다. 시큼하게 김치가 익었다. 화독에서 밥통을 내려 김치단지와 나란히 놓고 저가락을 들었다. 먼저 김치를 떠넣고 김이 무엿무엿 나는 밥을 한저가락 떴다. 메주 뜬내가 코를 찌르더니 다음순간 배안의것이 일시에 목구멍으로 치밀어올라왔다. 김치국을 쭉 들이켰다. 그래서야 구토를 겨우 이겨내였다. 대두박, 그것도 퍼렇게 곰팽이가 낀것을 삶으니 이모양이다. 굶주린 사람은 이런것도 달게 먹을수 있다는데 왜 넘어가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산가의 위주머니는 다르게라도 생겨먹었단말인가. 자기자신이 야속하였다. 먹어야 기운을 내고 기운을 내야 로에 불을 넣어볼것이 아닌가 또 한번 얼려보려고 했지만 역시 막무가내로 위는 대두박을 받아주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또 김치로 한끼 때기로 하였다. 우적우적 김치만 씹었다. 식후에 담배를 태우고나니 머리가 핑 돌면서 사지가 매시시해진다. 게다가 화독에 던져넣은 고열탄이 시뻘겋게 피여오르면서 엉성하게 판자로 벽을 붙인 휴계실안을 화끈화끈 달게 하였다. 강병철은 비스듬히 벽에 기대여 책을 뒤적이였다. 야하다시절에 구한 《철》인데 인류와 함께 철의 력사가 재미있게 서술된것이였다. 그는 이것을 벌써 여러번 읽었다. 영국의 필자가 통속적으로 서술하였는데 기술면에서는 참고할것이 별로 없었지만 태고적인간이 우연히 철을 얻게 된 때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었기때문에 철의 세계에 잠겨드는데는 매우 좋은 책이였다. 또 하나 유익한것은 수면제 없이는 하루도 무사히 넘길수 없었던 그가 이 책을 뒤지면서부터 얼마간 잠을 잘수 있었다.

그때 밖에서 왝왝 웨치면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였다. 거쉰 목소리가 나는것을 보면 한쪽은 최한덕이 분명한데 상대가 누구인지 알수 없었다. 귀를 강구니 그것은 공장장 리연수가 최한덕을 몰아주는것이 완연하였다.

《최령감, 그렇게 하면 장차 공장을 어데로 끌고가게 되는지 알기나 하고 그러우. 강병철은 왜놈들한테 붙어먹던 기사란말이요.》

《그래 공장장은 강기사를 왜 그렇게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오. 난 거기에 밸이 꼴려 그런단말이요. 지금 그 사람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당신이 알기나 하오?》

《그게 무슨 상관이요. 나쁜놈들은 열성이 있는척하면서 속으로 호박씨를 깐다는걸 모르오? 그러니 령감은 우리 지시대로 강가의 뒤를 밟으란말이요.》

《난 그따위짓을 할수 없다고 하잖소.》

《령감, 그래 공장장의 말을···》

그다음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들을수 없더니 최한덕이 꽥하고 고함을 쳤다.

《난 내가 본것외 말할수 없소. 내 보기에는 당신네가···》

계속 중얼중얼하는데 알아들을수 없었다. 자리에 누운채 강병철은 숨이 막히고 온몸이 바스라지는것 같아 옴짝할수 없었다.

한참후에 철판문이 삐익 열리더니 기침소리가 났다. 최한덕이 들어서며 《왜 아직 안자고있나, 밤에는 좀 쉬여야지 몸이 견디겠나.》하고 책을 빼앗는다.

《아바이는 왜 쉬지 않습니까.》

흥분을 눌러내지 못한 강병철은 코멘 소리를 내였다.

《기사가 감기에 걸린거나 아닌가?》

《아니요. 전 감기를 모릅니다.》

주글주글한 최한덕의 얼굴이 성인처럼 고상하게 쳐다보이였다. 자기 편역을 들어준다고 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고결하고 참된것이 온몸에서 풍겨왔다.

강병철은 최한덕의 손을 움켜잡고 무턱대고 고개를 숙이였다.

《아바이 감사합니다, 정말.》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아닌밤중에 홍두깨처럼.》

《왜 그런지 내 맘이 자꾸 그렇게 되는군요.》

최한덕은 책을 밥통이 놓인 선반에 훌쩍 던지더니 벽에 붙은 스위치를 끄면서 《푹 자라구.》하고 나가버린다.

강병철은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밖에서 쇠붙이 다루는 소리가 나더니 잠잠해진다. 최한덕이 길가에 널린 파철을 치우는것 같았다. 잠들수 없다고 생각하니 손가락의 통세를 참아낼수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불을 켜고 헝겊으로 처맨 손을 헤쳐보았다. 벽돌장에 갈퀴운 손이 피고름에 엉켜붙었다. 빨간약을 대강 찍어바르고 다시 싸매고 자리에 또 누웠다.

(이렇게 하면서까지 내가 바라는것은 과연 무엇인가?)하고 그는 문득 자문하였다. 천금의 재산인가? 그것이 아니다. 그러면 온 세계가 들썽할만한 명예인가? 그것이라고도 할수 없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인간이란 목적이 있고 리해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리성을 가진 동물이 아닌가. 그렇다. 목적이 있다. 자유? 그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것이 없다. 오직 순수하게 가식과 굴욕이 없이 살고싶다는 단순한 이 하나의 요구뿐이다.) 여직까지 언제 한번 순수하게 살아보지 못했다. 철이 들어서 이날까지 그는 언제나 두개의 자아를 보며 살았다. 하나는 순종이요 하나는 반항이다. 권력은 순종을 요구하였으며 반항은 희생을 요구하였다. 천평에 올려놓인 이 두개의 인생은 언제나 수평점에 있었고 혹시 그렇지 않다가도 곧 그 점으로 돌아오려고 움직이였다. 어느것이 어느것을 잡아먹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맹수의 싸움이 계속되였다. 왜놈에게 순종하자 이것이 운명이니까 하고 머리를 숙이면 그만한 비례로 반항의식이 생겨나는것이다. 실로 이것은 피투성이싸움이였다. 불과 얼음이 한육체에 공존하는것이다. 그러나 해방은 이 두개를 동시에 완전히 취소해버리고말았다. 이제는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완전히 전기와 철의 세계에 자신을 묻으면 된다. 이제와보면 진작부터 이런것을 그가 바랐던것이다. 육신이 찢기고 뼈를 부서뜨려도 상관할것이 없다.

그런데 과연 이 소망이 이루어질수 있을가? 며칠전부터 싹트기 시작한 자그마한 의문이 이제는 차츰 커져서 이겨낼수 없는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리연수에 대한 일종의 공포가 생기였다. 리연수는 처음 만나는 날 거침없이 《잘하시오. 로와 함께 당신을 시험하게 되오.》라고 했던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는 벌써부터 딴눈으로 보고있다는것이 완연하지 않는가.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치였다.

강병철은 안깐힘을 쓰면서 자리에서 돌아누워 잠을 청하였다. 어차피 로의 시험은 있게 될것이며 그것으로 해서 강병철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것을 사람들앞에 공개하게 될것이다. 그러면 그에 따라 쓸사람으로 혹은 못쓸놈으로 판정을 받게 될것이다. 문제가 신중한것만큼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가. 그 안전장치란 사전에 시험을 해가면서 정식시험에 들어가는것이다. 그 일은 누구도 보지 않는데서 진행해야 한다. 강병철은 변전대에 올라가 전기를 투입하고 얼마간 시간을 기다렸다가 차츰차츰 전압을 올려보기로 하였다. 신호등에 불이 켜지자 계기를 보니 전류, 전압 등등이 모두 정상이다. 로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는 재빨리 밑으로 내려와 첨가제를 던져넣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삽질을 하였다. 한차지의 용해는 어렵지 않게 진행할수 있었다. 그는 기중기에 올라가 바가지를 끌어다대였다. 기중기에서 내려와 출강구를 뚫었다. 쇠물이 흘렀다. 선홍색이 아니고 시꺼먼 쇠물이였다. 좀 수상스러웠지만 첫 쇠물이니 색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것이다. 어쨌든 성공인것은 틀림없다. 《성공이다!》하고 고함치려 하였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팔을 들어 흔들었다. 그 순간 그는 뜻밖에도 천길만길 어둠속으로 떨어져내려가는 혼미한 기분에 사로잡혀 《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눈을 번쩍 떴지만 어데가 어덴지 알수 없었다.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여보게. 놀랬나? 나야 나.》 최한덕아바이가 앞에 막아섰다. 《어떻게나 바람이 센지 자는줄 알면서두 문소리를 냈네.》

《아! 그렇군요.》

강병철은 얼굴을 싸쥐고 한숨을 후 내쉬였다. 그는 로보수하는데를 한바퀴 돌고야 다시 휴계실로 돌아왔다.

《여보게, 이걸 자셔보게. 변변치 않지만 이거보다는 나을거야.》 최한덕아바이는 군대밥통을 들여다보면서 보자기에 쌌던 남비를 내놓았다. 《대두박을 갈아서 시래기를 넣고 비지를 끓였지.》 그러다가 실성한 사람처럼 제정신이 아닌 강병철을 보더니 《강기사! 꿈을 꾼게 아닌가?》하고 물었다.

《옳습니다. 꿈을 꿨습니다.》

악몽에서 깨여난 후련한 기분이 그를 얼마간 들뜨게 하였다.

《무슨 꿈을 꾸었나?》

《무슨 꿈인가구요?》

강병철은 서글픈 웃음을 웃고나서 《천길 지옥에 갔다왔습니다.》하고 실토를 하였다.

《에익, 사람두 그걸 왜 진작 말하지 않나. 꿈과 생시는 딱 반대야. 로의 성공은 떼놓은 당상이네. 그러니 어서 이걸 들게.》

진정으로 기뻐해주었다.

강병철은 기지개를 켜면서 미친 사람처럼 입을 쩍 벌리고 웃다가 최한덕아바이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고맙습니다. 아바이, 차후야 어떻든···》

그런후에 그는 눈물이 글썽해져서 비지남비를 당겨놓고 술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