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7

 

7

 

김일성동지께서 집무실에 올라가신후 좌현이는 급히 합숙으로 달려왔다. 결혼식장으로 짐작했던 넓다란 식당칸에는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부엌에 있는 안동무에게 물었더니 그런 말이 아침에 있긴 있었는데 딱히 어떻다는 말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곡절이 있을것이였다. 날자를 물렸던가 아니면 어느 식당이나 료리집에 차리게 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것도저것도 좌현이로서는 수긍이 가지 않았다. 날자로 말하면 사령관동지께 보고까지 된것이고 또 장소를 고려한다해도 그것은 전혀 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합숙 찬거리도 그날그날 대는 형편인데 료리집을 차지할수는 없는것이다. 약간 기미가 이상한것은 안동무와 필남이가 국수를 누르는것인데 그것도 무슨 근거로 될수는 없고 태반이 모두 국수를 좋아하기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인것이다. 좌현이는 만경대에서 가져온 보자기를 자기방에 가져다놓고 리발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그럭저럭하다가 저녁때가 되여 합숙으로 돌아오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래웃방에 지휘성원들과 경위대원들이 하나 가득 모이였다.

한쪽구석에서 자리를 찾는데 거기에 앉았던 김책이 《좌현동무, 빨리 가서 사령관동지를 모셔오우.》하고 지시하였다.

아무 생각도 할새 없었던 좌현이는 장군님 집무실로 달려갔다. 일본에서 학도병으로 끌려나갔다가 탈주해서 최근에야 돌아왔다는 어느 한 젊은 작가와 만나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래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자리를 뜨시였다.

《동무들이 다 모였소?》

《예! 저녁은 국수를 눌렀습니다.》

《박원식이 결혼식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오?》

《전혀 그런 기미는 없고 모두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김책동무가 있소?》

《예, 있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방안에 들어서시자 김책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께 자리를 권하더니 선자리에서 《박원식동무 어데 갔나?》하고 찾았다. 박원식은 대답이 없는데 옆의 동무들이 여기 와있다고 팔을 당겨 아래방으로 내리끌었다. 《이쪽으로 들어서라.》하고 김책은 박원식을 자기옆에 세우더니 《안동무!》하고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거 처녀를 올려보내오. 아니, 데리고 같이 올라오오.》

어떻게 된 일인지 방안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쭉 흘렀고 김책이 지시하는대로 사람들이 움직이였다. 박원식이와 필남이를 나란히 세우더니 김책은 가뜩이나 긴 목을 좀더 뽑아올리고 말을 떼는것이였다.

《별것이 없습니다. 나는 오늘 우리 전우인 박원식동무와 한필남동무가 결혼을 한다는것을 동무들앞에 선포합니다. 때가 때니만치 아무것도 차린것이 없습니다. 해방이 됐지만 먹을것, 입을것이 넉넉지 못해서 이제부터 유격대풍습대로 국수를 한그릇씩 같이 나누자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렇게 한 김책은 약간 어색해져서인지 방안을 둘러보고 량옆을 살피였다.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무감정한데 모두 질린듯 하였다. 그러나 김책의 가슴속에서는 용암같은것이 소용돌고있었다.

《그러나! 신랑신부는 정말 행복하오!》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숨이 꺽 막히였다.

《여기에는 상다리가 휘도록 차린 음식도 없고 청실홍실 드리운 비단옷도 없고 술도 없소. 아무것도 없소. 그러나 박원식동무, 고개를 들고 이 방안에 누구들이 와있는가 둘러보오. 백두산에서 사선을 같이 넘던 전우들이 가득 와있소. 그리고 사령관동지를 이 자리에 모시였소.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이것이면 됐지 무엇이 더 요구되겠는가. 동무들! 이 자리에는 우리만 왔다고 볼수 없소. 해방된 조국을 못보고 먼저간 전우들도 와있소. 그 가운데는 장가도 못가고 처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종시 그는 끝을 맺지 못한채 목이 메여 끅끅하더니 마침내 컬럭컬럭 기침을 터뜨리였다. 천식기가 있어서 숨을 제대로 톺지 못해 한동안 몸을 비틀다가 겨우 허리를 폈다. 그는 다시 정색해져서 방안을 둘러보는데 눈물속에 잠긴 그 시선은 번개불처럼 섬광을 내쏘았다.

《동무들!》하고 그는 한호흡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계속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김일성동지를 따라 천만리를 걸어 오늘 여기에 와닿았소. 그러나 우리는 김일성동지를 따라 또 그만한 길을 가야 하오. 박원식동무, 알겠지. 그것을 알았다면 둘이 손을 잡으라. 백년가약하는 날 혁명의 지조 변함이 없다는 표시다.》

처녀 총각이 금시 신랑 신부로 되는 뜻있는 례식은 이것이 전부였다. 김책은 바지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더니 한잔의 술을 가득 부어 둘이 마시게 한후 다 앉아 국수를 먹자고 하였다. 이런 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방안사람들은 잘 알고있었다. 박수가 터지고 노래가 시작되였다.

 

왔고나 왔고나 혁명이 왔고나

혁명의 기세는 전세계를 덮었다

 

노래는 그칠새가 없었다. 그들은 평양 한복판, 그것도 크지 않은 방안에 앉아있으면서도 여기를 그대로 이깔나무 우거진 숲속 밀영지로 알고있는듯 하였다. 끝없이 펼쳐진 밀림 어느때나 그칠줄 모르는 바람소리, 가도가도 끝없이 뻗은 길 아닌 길, 거기에서 담을 키웠고 거기에서 투지를 닦고 생활의 의의를 체득한 그들은 전우에게 차례진 이 기쁨이 얼마나 큰 값을 가지고있는가를 누구나 잘 알고있었다. 하기에 그들은 박수를 쳐도 노래를 불러도 춤을 추어도 모두다 진심이였으며 참된 감정의 정수로 만들어내는것들이였다.

한창 흥이 났을 때 누군가가 《사령관동지 독창을 들읍시다.》하였다.

《옳소!》 환성이 터져올랐다.

김일성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신랑신부가 있는쪽으로 자리를 옮기시였다. 신랑신부가 일어나 그이께서 부어주시는 잔을 받았다. 몸이 좋고 얼굴이 검실검실한 억센 사나이와 왼가리마를 따서 곱게 빗어넘긴 머리에 항상 새별처럼 빛나고있는 눈을 가진 처녀, 이들을 잠시 보고계시는 사이에 그이께서는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시였다. 김책이 목이 메여 말한것처럼 해방된 이날을 보지 못하고 또 아릿다운 처녀를 안해로 맞는 오늘과 같은 기쁨을 보지 못한 전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로 그들의 기쁨도 한데 담아안고 지금 박원식이 서있는것이다.

《행복하라구 박원식이!》

사령관동지의 다정한 시선이 온몸에 미쳐지고있다고 느낀 순간 박원식은 술을 단숨에 쭉 마시였다.

그때 좌현이가 만경대에서 가져온 보꾸레미를 들고 옆에 다가왔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거기에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하신듯 자못 흡족한 얼굴로 방안을 쭉 둘러보더니 노래를 시작하시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것은 너무나 뜻밖이였다. 방안 사람전부가 그이께서 좋아하시는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가 아니면 《광막한 백두밀림의 밤에》가 나올줄 알았던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닥 높지 않으면서도 정서가 함뿍 어린 선률이 물뿌린듯 고요해진 방안에 천천히 흘렀다. 잔잔한 노래소리는 억세고 거칠게만 보이던 사나이들의 가슴속을 헤치고 각기 제나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고향! 고향!》

하고 모두 한마디씩 외워보는것이였다. 그렇게 불러만 보아도 정답고 기쁨이 솟아오르는것이 내 나라, 내 고향이건만 그들의 태반은 아직 그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있는것이다.

노래가 끝난후에도 잠시 침묵했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벽을 치며 재청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동무가 도와주겠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양보한다고 하고는 자리에 앉으시였다. 여적 한번도 노래를 불러본적이 없다는 김책이였는데 성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바람 첫마디를 떼였다.

《우리는 누리에 붙는 불이요》

이것은 노래라기보다 통채로 가사를 줄줄 내리읽는것이다. 고개는 열어제낀 창밖을 내다보고있었으며 두손은 건사할데가 없어서 앞으로 돌려잡기도 하고 뒤로 가져가기도 하였는데 그 동작이 매우 우습강스러웠다. 그러나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서 누구도 웃지를 못했다. 듣는 사람이야 어쨌든 관계치 않고 2절이 나오고 또 3절이 나왔다. 자칭 음치라고 흉보던 사람에게서 어떻게 토하나 틀리지 않는 가사가 술술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끝내 젊은축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났다. 그러거나말거나 그는 장대같은 기세로 마지막 종결토까지 정확히 번지더니 제편에서 먼저 박수를 치는것이였다. 그때에야 숨막히게 참았던 웃음보가 폭발하였다. 천정이 들썩할만치 웃어제끼는데 김책은 마치 딴 사람이 웃긴것을 구경하는것처럼 같이 웃었다. 그것이 또 우스워 와하 웃어대였다. 그러다가 문득 김책이 《어? 어!》하고 반벙어리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틈을 헤집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건 또 무슨 희극인가 해서 모두 그뒤를 쳐다보는데 안마당으로 만경대할머님이 들어오시는것이였다. 이것은 참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아래우 흰옷을 입고 귀잡이를 해서 흰 머리수건을 쓰신 할머님께서 김책의 부축을 받아 현관쪽으로 들어서시였다.

《만경대할머님이 오셨다!》

온 방안이 왁작 끓어번지며 밖으로 달려나가기도 하고 창문으로 내다보기도 하였다. 김책은 방안에 들어와 신랑신부가 앉은 바로 옆에 할머님을 모신 다음 좌중에 대고 크게 알리였다.

《동무들, 내 말을 들으시오.》 김책은 방안을 둘러보며 계속하였다. 《만경대할머님께서 결혼식을 축하하려고 오셨습니다. 오늘 저녁켠에 장군님을 통해서 알게 되셨답니다. 장군님을 떠나보내신 후에도 마음이 걸려 속을 태우시다가 마침 여기 오는 차가 있어 앉아오셨습니다. 다른 사람같으면 그렇지 않겠는데 에미애비 다 없는것이 잔치를 한다는데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친한 동무들이야 많겠지만 에미나 할미야 누가 대신할수 있겠나 해서 찾아오셨답니다.》

김책이 무엇이라고 하든 관계없이 할머님께서는 박원식의 얼굴을 두손으로 쓸어만지기 시작하시였다.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진한 눈섭과 관자노리를 더듬더니 그다음에는 볼과 턱을 싸쥐였다. 할머님께서는 다시 민틋한 목줄기와 어깨를 붙잡더니 차츰 아래로 내려와 팔을 당겨 자신의 가슴에 안으시였다.

《섭섭해 말아라. 나를 고향의 어머니나 할머닌셈 쳐라 응!》

다음에는 신부의 얼굴을 또 그런 식으로 어루만져주신다. 이렇게 되자 박원식은 처음부터 혀를 깨물며 참아왔던 감격을 끝내 터치고야말았다.

《할머니!》

목메인 그의 목소리가 단번에 온 방안사람들의 가슴을 후려갈기면서 신부를 울려놓았다. 옆에 서있던 신부의 아버지, 어머니가 할머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그 짬에 좌현이는 만경대에서 가져온 보꾸레미를 할머님 가슴에 안겨드리였다. 그것을 본 할머님께서는 이것이 왜 아직 여기에 있느냐고 하시면서 간단히 몇마디 말씀을 하더니 신부에게 넘겨주시였다.

《좋지는 못하다. 그러나 내 손끝에서 생겨난것이니 그리 알고 아무거나 해입어라. 어찌겠니, 이런것밖에 없는걸.》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올랐다. 팽팽히 켕기였던 감격적인 장면이 훌떡 번져져서 춤판으로 변하고말았다. 젊은축들이 마당에 나가서 발을 구르며 윽윽 소리를 질렀다. 팔과 허리를 꼬아올리기도 하고 발을 들었다놓으며 허공에 뛰여오르기도 하였다.

 

인민주권을 세우자 붉은 주권을 세우자

 

박수장단에 맞추어 합창이 터졌다. 다같이 손을 잡고 돌아가기도 하고 일제히 팔을 들어 흔들기도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춤판에 끼이시였다. 신통히도 일제를 소탕한 전승의 거리에서나 고난을 뚫고 밀영에 찾아온 전우들을 환영하던 때에 보던 그런 장면이며 그런 기분이였다. 그이께서는 박원식의 팔을 잡아돌리면서 《좋다!》하고 흥을 돋구시였다. 만경대할머님께서도 젊은 시절의 기분이 되살아나 어깨를 추어올리고 팔을 흔들며 웃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