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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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 집무실에 이르시였을 때 김책이 곧 따라들어왔다. 역시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하루일정을 보고하였는데 공업전문학교건설장에 나가보겠다는것이였다.

《개교일이 사흘밖에 남지 않았기때문에 다그쳐야 할것 같습니다.》

문가에 선채로 보고한 김책은 즉시 돌아나가려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다는 종로거리 안동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그런데 김책동무!》하고 그이께서는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하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좌현동무한테 들으니까 저번날밤에 안동권선생과 서로 부둥켜안고 포옹을 했다는데 그런후에 거절을 당했다면 앞뒤사개가 잘 맞지 않는것이 아닙니까.》

김책은 면도를 가지 해서 푸릿푸릿해진 턱을 썩썩 문지르며 어색하게 웃었다.

《교수선생의 성미가 어떻게나 땅고집인지 첫마디부터 아니아닌데 마지막까지 한본새로 나왔습니다. 그래 3시간동안이나 지구전을 펴고있는데 밤이 깊어지니까 지쳐서 그랬던지 그럼 내 좀 생각해보겠소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나는 무슨 변화가 있는가 해서 환성을 지르며 부둥켜안았는데 어제 다시 만나니 역시 본래대로 아니아니하고 거절했습니다. 교수선생은 자기 입으로 <성대에서는 안동권하면 소금이 필요없는 사람으로 알려져있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사람이 좀 특이한데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 며칠동안 더 물색해보다가 정 할수 없으면 물리과목만은 당분간 비워두었다가 차후에 보충할가 합니다.》

《4개과 가운데서 기초과학의 하나인 물리학을 비워둔단말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도리질을 하시면서 탁자우에 놓인 담배갑을 집으시였다. 《우리는 아직 그 교수선생에 대해서 모르는것이 있는것 같습니다. 간밤에 최준걸동무와 토론을 해보았는데 인테리는 누구나 자기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는것을 다시금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에 대해서 고려안한것이 아닙니다. 그 선생은 자기 서재를 다 털어내서 학교에 기증하면서도 아무런 요구도 없었습니다. 그 선생은 자기를 건드리지 맡아달라는것뿐입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인가 그에 대해서 모르고있습니다. 그도 인간인이상 그럴수가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담배갑으로 탁자를 울리면서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이리하여 김책은 자신이 알고있는 안동권에 대한 자료를 다시금 설명하게 되였다.

안동권교수는 올해에 환갑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하고 정열이 있어서 5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도 갔었고 미국에도 간적이 있는데 경성제국대학이 나오면서부터 교단에 섰다고 한다. 30년대 학계에서 이름있던 홍명희나 신채호 등과도 친교가 있다고 한다. 그는 명석한 두뇌에 남다른 정열과 인내성을 가진 학자이다. 대동아전쟁이 끝나갈무렵 그는 어수선한 정국을 피해서 일본에서 얻은 관절염을 핑게로 평양본집에 와있다가 8. 15를 맞았다.

《김책동무!》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를 뜨시였다. 《동무가 열한번째 가서 거절을 당했다는데 우리 함께 열두번째로 가보지 않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옷걸개에서 모자를 벗겨드시면서 문께로 나서시였다.

《제가 한번 다시 가보고 그렇게 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책은 송구해서 절절매였다. 자기 장서를 통채로 내놓을 정도의 애국적 인테리 하나를 설복해낼수 없었다는 자신의 무능도 문제지만 지금 상태로써는 장군님께서도 어떻게 해내실수 없을것 같은 땅고집, 그 완강하고 매서운 성미가 필연코 면구스러운 장면을 빚어낼것 같았다.

《우선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가봅시다. 또 열이면 열번 다 성공만 하리라고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곧 종로거리 뒤골목 장대재 중간쯤에 있는 듬직하게 자리잡은 기와집을 찾아가시였다. 말그대로 고색이 창연하였다. 합각지붕에 추녀가 성큼하게 들린 기윽자집인데 벽돌로 높이 쌓은 굴뚝에는 담장풀덩굴이 한벌 덮이였다.

김책이 초인종을 울리자 안에서 찰딱찰딱 신끄는 소리가 나더니 행주치마를 두른 중년녀인이 《누구신지요?》하면서 허리를 굽혀보이였다. 그때 물조리를 들고 화분대로 다가가던 안동권이 대문께를 넌지시 내다보았다.

《안선생! 안녕하십니까? 또 왔습니다.》

김책이 마당에 들어서자 그때에야 알아보았던지 《어서 오시유, 김선생!》하며 마주나왔다. 처음 통성하고나서부터 매번 김선생이라 부르고 온적마다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는것이다. 몇걸음 급히 맞받아나오다가 김책의 뒤를 살피더니 입을 딱 벌리며 멎어선다.

《아니!》

그는 물이 흐르는 조리를 이쪽저쪽 옮겨잡으면서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그것을 세면대우에 아무렇게 내던지고 허둥지등 대문을 향해 달려나온다.

《아니 이거 장군님께서···》

그는 급히 물묻은 손을 바지에 문대고나서 그이의 손을 움켜잡고 절을 한다.

《선생님, 너무 이러지 마십시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이 되려 미안해서 기를 펴지 못합니다.》

《아니올시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장군님앞에서 제가 소홀하면 되겠습니까.》

안동권은 잠간 실례하겠노라고 하더니 안방에 들어가 제낀옷에 넥타이까지 매고 나와 응접실로 장군님을 안내하였다. 잇닿아 향기로운 냄새가 풍기는 홍차가 들어왔다. 앞머리는 다 벗어지고 뒤에 얼마간 남은 머리칼마저 모두 희여졌다. 하지만 안동권의 눈은 고급한 지성인답게 예지에 빛나고있었다. 김책이 또 나타난것으로 보아 이미부터 끌어오던 공업전문학교문제일것이라고 넘겨짚은 그는 그동안 미안하게 되였노라고 먼저 사과부터 한다.

《아마 내 알기에도 열번은 더 여기를 찾아온것 같은데 청을 들어주지 못해 매우 미안합니다. 나는 며칠안으로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그는 희고 얄팍한 손을 맞비비면서 미소를 지어보이였는데 그 얼굴과 몸가짐에는 추호도 가식이 느껴지지 않고 진지하였다. 하지만 김책은 인사말처럼 어렵지 않게 내놓은 한마디의 그 말이 단번에 큰 장벽으로 되여 막아서는바람에 가슴이 뜨끔하고 등골에 서리가 내돋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이 서려오르는 차잔을 잠간 보고계시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였다.

《안선생님이 한생 모으고모은 서재의 책을 전문학교에 기증해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들은 크게 감동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들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올릴겸 몇가지 의논할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안동권은 두손을 내흔들며 연방 고개를 저어보이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려 제가 죄송합니다. 장군님! 나먹은 사람을 이렇게 옹색하게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책이라는거야 생겨나서부터 어느 누구의 개인독점물일수 없는거고 또 여기에 저장시켜두는것보다 돌려가며 읽는것이 좋겠기에 그렇게 한것인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그걸 가지고 자꾸 외우신다면 저는 그렇게 안한것만 못하게 여기겠습니다.》

《안선생님, 뜻은 충분히 알만합니다. 그러나 우리 전문학교 기성회성원들도 그렇고 또 학생들모두가 다 가지게 된 심정을 전달할 의무쯤이야 저희들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아! 참!》

장탄식을 하는 그의 눈굽에서 이슬같은것이 번쩍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의 우민화정책에 대해서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이렇게까지 한민족의 지성을 철저히 페쇄질식시켰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잔을 들어 목이 아니라 가슴을 추기시려는듯 련달아 몇모금 마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공장이 있지만 기술자가 없고 기관차가 있지만 기관사가 없습니다. 모두다 일본사람들이 직접 하다가 파괴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이 후과는 이제부터 몇해동안 우리 인민을 큰 재난속에 몰아넣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당에서는 결심을 품고 인재육성에 착수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족존망문제와 관련되기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술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우선 공업전문을 내오자 합니다. 그런데 학생은 있는데 교원이 없습니다.》

여기서 잠간 말씀을 끊으시였다.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사랑방 추녀끝에 달아맨 조롱에서 방울을 굴리는것 같은 새소리마저 들리였다. 사실상 이 침묵은 호상 더 많은 자기 내심들을 표현하고있는지도 몰랐다. 성냥갑을 굴리며 군손질을 하고있는 안동권은 《결국은 나더러 공업전문 교단에 서달라는것이 아닙니까?》하고 묻는듯 하였고 김책은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화가 없는 안동권을 쳐다보면서 실망한 빛을 보이고있었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채도는 시선과 항상 미소를 띠고있는 입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계시였다.

방안에 차분히 가라앉은 정적을 흔들며 《안선생!》하는 그이의 심중한 음성이 울리였다.

《멀리 에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앞서 말한 그런 민족존망의 이 계기점에서 안선생이 우리 교단에 서서 인재육성을 위한 강의를 해주실것을 바랍니다.》

천근같은 무게가 실린 그이의 음성이 서서히 방안에 잦아들고 그후에도 얼마간 시간이 흐르는데도 안동권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언제나 사색을 담고있는 빛나는 눈은 창밖을 향한채 움직이지 않았고 처음부터 정자세를 취했던 몸도 전혀 풀리지 않았다. 이윽해서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장군님!》 그의 목소리는 약간 갈려있었다. 《제가 외람된 말씀을 올리는데 대해 널리 량해해주기 바랍니다. 저는 그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고있습니다. 제가 만약 저 김선생앞에서는 할수 있는 일을 못하겠다고 하고 장군님앞에서는 못할것도 할수 있다고 대답을 올린다면 저는 인간이 아니라 천한 금수와 같은 존재로 되며 안팎이 다른 나쁜 사람으로 될것입니다. 그런즉 저는 장군님의 뜻을 충분히 리해하면서도 부득이 서울로 올라가 보아야겠습니다. 물론 거기 갔다가 그후에는 어찌 되겠는가 그에 대해서는 지금 말씀드리기 곤난하고 설혹 말씀드렸대야 그것은 빈소리로 될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의 서재를 통털어 바쳤다는 그것으로써 저의 성의는 전부라는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렇습니다.》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음조에도 변화가 없고 감정도 또한 같은 색채를 띠고있다. 명석하고 빈틈없는 론리인데다가 례의마저 충분히 갖추어져있어서 전혀 나무랄데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앞에 내대는 방패가 견고할수록 그에게는 어렵지 않게 극복할수 있는 장애가 있을뿐이라는것을 짐작하시였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여 안동권의 답변에 동의를 표시하시였다.

《안선생! 이거 대화가 지내 각박하게 되는것 같아 미안합니다만 한가지 묻겠습니다.》하고 그이께서는 담배에 불을 붙이시였다. 《안선생이 서울에 꼭 가셔야 할 리유가운데는 부인과 두 자녀가 거기 있다는것과 경성제국대학 교수 그 직분에서 정식 사퇴하지 않았다는것이라고 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안동권은 이때 입으로 가져 가던 담배를 도로 내리우며 만면에 웃음을 짓고계시는 장군님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이때 그는 무엇인가 숨겨둔것이 발각되기나 한것처럼 공연히 두려워하는 기색이였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 김선생에게 여러번 설명을 한바 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대학교수였던 저는 저대로 지켜야 할 도리와 규범이 있을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하나의 몸으로 서울에 하나 평양에 또 하나 동시에 두 직분을 가질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들중 어느것이 저에게 유리한가 그것은 제쳐놓고 두 지역, 두 학교, 두 교단에 량다리를 걸수 없다는것입니다. 저번날 누가 또 저를 찾아와 북이냐 남이냐 하고 이 안동권의 위치를 론하게 되였을 때 저로서는 명백히 해둔 대답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과학자는 남이다 북이다 하는 지리적개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문제는 그 과학이 조선민족을 위해 복무하면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립장은 그 점에서 출발하고 그 점에서 종식됩니다. 장군님! 저의 립장은 무리한것이 아니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차츰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나중에는 완연히 흥분을 나타내였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하고 그이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별치 않는것이기는 하지만 상대편에서 일단 심각한 계선에까지 끌어들이였기때문에 부득불 그에 호응해야겠다고 보시였다. 《참고로 한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박원식이라는 동무가 있는데 며칠전에 기술자를 하나 데리러 서울에 갔다왔습니다. 그 동무 말을 들으니 경성제국대학 교사에는 미국군대가 들어있더라고 했습니다. 공과계통교실에는 미군정보장교들이 가득차있답니다. 그러니 안선생이 거기 가봤대야 정식으로 사표를 받아줄만한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도리를 지켜서 한번 가보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필경 헛걸음으로 될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저희들의 생각에는 무엇보다도 부인과 자녀에 대한것이 크게 걱정됩니다. 날이 갈수록 38°선이 차츰 더 넘나들기 어려운 장벽으로 되고있는것만큼 한가족이 갈라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 우리에게 맡겨주신다면 건장한 사람을 몇명 보내서 데려오도록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선생님은 년로하시기때문에 직접 가도 현재 교통형편으로써는 목적을 이루지 못할것 같습니다.》

잠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있다가 안동권은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참말 알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헌법에는 정치적권력이 교육에 관계하지 않게 되여있습니다. 군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의 헌법은 어쨌든 서울대학교사에 미군이 들어있는것은 사실입니다.》

《아! 참 세상이 변하긴 변했군!》

안동권은 너무나 놀라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기까지 하였다. 짐작컨대 그의 놀라움에는 자신이 이미 그 이름할수 없는 공포속에 빠져들어가고있다는 느낌이 어려있었다.

《하긴 그 사람들은 우리 땅을 하나의 점령지대로 볼수 있을테니까요. 그렇게만 본다면야 무슨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재털이에 불을 끄고나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결국 저더러 꼭 전문학교 교단에 서달라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장서를 기증하는 안선생의 애국심과도 어울리게 됩니다.》

《아하!》하고 그는 탄식을 하였다. 《점점 더 저를 궁지에 끌어넣는군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자권속이 중해서 부득부득 서울에 가겠다는 그런 속된 인간이 아닙니다.》

《아니, 안선생!》하고 그이께서는 놀라움을 보이시였다. 《저희들의 성의를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되겠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처자권속이 중하지 않다면 인간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론하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산에서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며 일제와 싸운것도 부모형제와 처자를 사랑했기때문에 그렇게 할수 있었습니다. 부모처자가 일제의 기반에서 신음하는것을 참을수 없어서 조국을 광복하기 위해 한몸을 바쳤던것입니다. 안선생, 그렇지 않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등의자팔걸이에 놓인 안동권의 팔을 잡아흔들며 다정하게 물으시였다. 한동안 입술을 다물고 아무 대답이 없던 안동권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현기증을 일으켜서 그런지 그는 몇초동안 눈을 감고있다가 몸을 떨면서 말을 시작하였다.

《장군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라고 왜 처자가 귀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60평생을 바쳐온 저의 과학을 그것과 맞바꾸지는 못합니다. 과학에서 하루나 한걸음 후퇴는 민족의 앞길에 10년이나 20년 나아가서는 한세기를 뒤떨어지게 합니다. 앞서 장군님께서 인재육성에 그토록 큰 의의를 부여하신것도 저는 그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학교수인 안동권에게 썩 멀리 뒤걸음질쳐서 전문학교 교단에 서라고 하시니 제가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일수 있습니까. 직위? 아닙니다. 명예? 그것도 아닙니다. 다만 한 과학자 그대로 자기의 차원에서 후퇴하라는것을 저는 받아들일수 없는것입니다. 안동권이라는 인간은 이렇습니다. 이이상 저의 파멸을 더 권고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자! 보십시오.》 그는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샤쯔를 헤치더니 어깨와 목덜미 사이에 쭉 그어진 상처자국을 내보이였다. 《이것이 성대공과 3호강의실에서 제가 조선학생들에게 물리에도 얼이 있어야 하는것인즉 배달족의 얼을 잊지 말라고 한마디 한 그날밤 경찰서에 끌려가 인두로 지지운 자리입니다. 그때 저는 자백서를 쓰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비굴했지요. 그러나 오늘 저는 뒤걸음질을 할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옳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안동권이와 마주서시여 손을 들어 흔들며 목소리를 높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책이쪽으로 돌아서시며 《어떻습니까? 김책동무 생각에는.》하고 물으시였다. 김책은 전적으로 옳다고 대답하면서 한 과학자의 가슴에 그토록 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을줄은 미처 몰랐다는것을 온몸으로 나타내였다. 그이께서는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안선생! 우리 민족은 지난날 너무나 많이 물러섰고 너무나 많이 뒤떨어졌습니다. 첨성대를 쌓고 우주현상을 남먼저 헤아리고 거북선을 만들어 바다를 지키던 우리 민족이 아닙니까. 그런데 봉건통치자들이 태평하게 문을 닫아걸고 음풍영월이나 하다보니 어느새 뒤떨어져 일제가 기관총을 쏠 때 우리는 화승대를 들고 서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락후와 후진을 뒤집어엎자는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공업전문학교를 내오지만 계속해서 종합대학을 평양에 내오자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모체에서 적어도 50개의 대학 나아가서는 100개, 200개의 대학을 내오자고 합니다.》

《종합대학이라구요?》

침울했던 안동권은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에 필요한 모든 과학을 다 포괄할것입니다.》

《평양에말이지요.》

꿈이 아닌가 생각하며 다시 반문한다.

《그렇습니다. 여기 평양입니다.》

그이께서는 인지로 탁자우를 두번이나 내리찍으시였다.

《아!!》

힘있고 기다란 한마디 탄성은 너무나도 놀라운 변화에 대한 일종의 공포이기도 하고 또한 환희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동권은 놀라움과 기쁨만 못지 않은 하나의 큰 의문이 생기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체면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질문을 하였다.

《그것은 언제 실현됩니까?》

《먼 앞날이 아니라 당장입니다. 이제부터 준비해서 래년에는 개학을 하자고 합니다.》

《래년에요,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지요. 우리 인민은 그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안동권은 믿음절반, 의심절반의 말을 흘리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 관계없이 내처 포부에 안으신 구상을 펼치시였다.

《앞으로 우리 나라는 세계앞에서 령토의 크기나 인구의 많기나 고대유물유적을 자랑하는 나라가 아니라 학교가 많고 학생이 많으며 온 나라가 공부하는 배움의 나라라고 자랑할수 있도록 하자는것입니다. 안선생, 이것이 그래 전진이 아니란말입니까. 분명히 이것은 전진이며 대전진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안선생, 다시는 우리의 목덜미를 인두로 태우지 않기 위해 우리의 종합대학 교단에 서주십시오. 초청합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이름으로 정중히 초청합니다.》

차츰 몸이 굳어져서 화석처럼 돼버린 안동권은 부지불식간에 장군님의 마지막 말씀구절을 받아외웠다.

《초청합니다.》

피기를 잃고 얄팍해졌던 안동권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순간에 그 파문이 온몸으로 번져갔다. 눈은 빛나고 얼굴은 밝은색을 띠였으며 탁자우에 놓인 손은 알릴듯말듯하게 떨었다. 그는 이때 자기앞에 자연스럽게 앉아계시는 장군님을 경건하게 우러러보았다.

안동권은 환갑이 되는 이 나이까지 인간의 별의별 경우를 다 체험하였다. 희노애락의 절정에도 올라보았고 고초와 환락의 상상봉에도 서보았다. 그 과정에 수많은 위인을 직접 만나도 보았고 그에 대한 서적도 읽었다. 그러나 김일성장군처럼 이렇게 숭고한 사상을 가지고 사람의 넋을 흔드시는분은 처음보았다. 대학이 새로 나온다는것은 놀라운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서 안동권이 인생행로를 바꾸어야 할것까지는 못된다. 하지만 장군님께서 구상하시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온갖 정열을 다 쏟아부으시는 그 인품에는 참으로 머리가 숙어진다. 그이의 노력에 의해 틀림없이 이제 우리 민족우에 오래동안 무겁게 드리웠던 불행과 후진을 깡그리 씻어버리게 될것이다. 하여 그는 이런분의 기대를 어기게 한다든지 얼마간이라도 실망하게 한다는것은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짓이며 조선민족사에 천추에 씻을수 없는 죄로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앞서 장시간 내들었던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죄다 밀어버리고 새롭게 행로를 정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장군님, 알겠습니다.》

바작바작 타드는 입술을 추겨서 겨우 한마디 대답을 하였다.

《선생님! 저희들은 진심을 말했습니다. 생각해봐주십시오. 각박하게 당장에 어떤 대답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시간이 좀 걸려야겠다고 보신다면 저희들은 한달도 좋고 한해도 좋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가지 부탁만은 꼭 들어주셔야겠습니다.》

안동권은 빛발이 뿜겨나오는것 같은 시선으로 미소를 띤 장군님의 얼굴을 쳐다보고있다.

《우리가 교육사업에 대해서 경험을 못가지고있다는것이야 선생님이 잘 알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을 도와주십시오. 종합대학을 내오자면 어떤 학부들을 두며 거기에는 어느 정도 교원진이 꾸려져야 하는지 그리고 그안의 기구들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우리는 처음부터 배워서 시작하자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저의 진심을 뒤늦게나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일로 해서 장군님께서 다시는 저같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로부터도 1시간이나 더 담화가 계속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