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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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중절모에 코트를 걸친 박원식은 종로 3점목을 또 찾아갔다. 리만석은 양춘만의 친척을 찾아보기 위해 룡산쪽을 나갔다. 목이 쑥 빠지고 키가 후리후리해서 그의 행동거지는 위풍이 있어보이였다. 오선생은 전날이나 다름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박원식은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남조선인테리들이 모이는데를 뒤져볼 생각이였다. 간단히 의도를 말한다음 박원식은 오선생에게 간곡하게 청을 들였다.

《좀 도와주십시오. 정 몸이 불편하시지 않으면 같이 몇군데 다녀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어데가 어덴지 길을 모르다나니···》

천식기가 있어서 한참동안이나 기침을 하고나서 오선생은 안방에 들어가 코트와 모자를 들고나왔다.

《헛걸음인셈치고 같이 가봅시다.》

오선생의 말에 의하면 남조선의 지식인은 8할이상이 서울에 있다고 하였다. 그 지식인은 대개 2개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사회과학자들은 모두 정치운동에 가담하고있고 자연과학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런것을 전제해놓고 우선 먼저 장안빌딩이 요새 인기가 있는데 거기 가보자고 하였다. 빌딩 현관이 저쯤 바라보이는 골목에서 그들은 담배를 1대씩 피웠다. 아닌게아니라 나들문에 불이 일만치 사람출입이 잦았다. 중절모패들이 뻔질나게 드나든다. 그런가 하면 감옥에서 금시 나온것으로 짐작되는 까까머리패들도 그만큼 되였다. 오선생은 자기는 거기에 아는 사람도 없고 들어가볼 용기가 나지 않으니 들어가볼라면 당신 혼자 들어가보라고 하였다.

《여보! 당신은 누구요. 보아하니 부르죠아인테리같은데 여긴 왜 왔소?》 광실로 된 첫칸에 박원식이 들어섰을 때 문칸을 지키고있던 장발청년이 앞을 막아서며 위협조로 물었다.

《나도 좀 관계하고싶어서 찾아왔소.》

《관계? 북에서 오지 않았소?》

《북에서 왔소, 평양에서.》

《으흠, 그렇다.》

장발은 이쪽의 아래우를 훑어보더니 현관에 나가있다가 박선생의 연설이 끝난 다음에 만나자고 하였다. 문틈으로는 뽀얀 담배연기와 함께 휘지근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열기를 띤 그러나 바짝 여윈 노란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리였다.

《우리가 제구실을 똑똑히 못하니까 평양에 또하나의 공산당이 나온것이요.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하오. 우리가 원산에 있는 리주하나 함남도 배경의 오기섭에게도 사람을 보냈지만 그들은 곧 우리 로선을 따를것이요.》

박원식이 복도창가에 서있는데 장발청년이 팔을 잡아 현관쪽으로 끌어내였다.

《그러단 재미없어. 당신이 밀정일수 있단말이요. 편포짝이 되기전에 물러가오.》

장발은 어깨를 으쓱으쓱 추어올리며 쌈패냄새를 풍기더니 문간으로 되돌아가 눈을 히끗히끗 흘기며 쳐다보는것이였다.

쓴입을 다시며 되돌아나온 박원식은 오선생에게 좀 그럴듯한데가 없는가고 하였다. 오선생은 자기가 권고하고싶은곳은 그래도 경성제국대학밖에 없다고 하였다. 박원식은 그길로 전차에 앉아 물리과교사를 찾아갔다. 정문을 지키고있는 수위에게 오선생이 박아무개교수를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러자 로이터안경을 끼고 깡뚱한 코트를 걸친 사나이가 나오더니 조용히 좀 만나자고 하였다. 오선생을 앞세우고 강당을 에돌아 들어가니 좁다란 방에 조선말을 능숙하게 하는 미국군인이 앉아있었다. 중좌였다.

《당신이 누구를 찾는다구요?》

중좌는 금테안경너머로 조소하는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제발로 함정에 찾아든셈으로 되였다. 박원식은 들은둥만둥하고 염낭에서 담배를 꺼내였다. 불을 달면서 제꺽 둘러댈 생각을 하였다.

《박만기라는 교수를 찾아왔소.》

《박만기? 무엇이 전문인가요?》

중좌는 방구석에 서있는 소위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소위는 수첩을 펼치고 받아 적을 태세를 취하였다.

《고고학이지요. 벽돌장이나 질그릇을 주어모은다고 합니다.》

《당신네는 북에서 왔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북에서 왔습니다.》

《박만기를 데려가겠는가요?》

《아니요.》하고 박원식은 단호히 부정하였다. 《이 복새통에 박물관이나 무덤을 뒤지면 한몫 크게 잡을수 있다기에 북에서 우정 왔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것을 하자면 여기보다 북이 더 좋겠는데. 북이 고구려의 본거지니까.》

중좌는 소위에게 알아보라고 하자 소위는 제꺽 서류장에서 두툼한 명부를 뒤지더니 박만기라는 교수는 없다고 하였다.

《여보! 북에서 온 신사, 박만기는 유령이요. 이 대학에는 없소.》

입가에 랭소를 담고 이쪽의 동향을 살핀다.

《아! 그러면 우리는 전주로 가야겠습니다. 전주에 그의 집이 있다고 했으니까. 거기에도 없으면 일본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수도 있구요.》

중좌는 이쪽에 대해서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아 고개만 기웃거리고있다.

오선생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세상이 이렇게까지 변한줄은 정말 몰랐다고 하였다. 이쯤하면 남조선은 일제대신 미합중국판이 되고 말았으니 더이상 돌아다니지 말자고 하였다. 오선생은 기분이 나빠 그런지 또 천식기침을 터뜨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컬럭컬럭 하였다. 그러나 박원식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허헌변호사네 집까지는 자기가 안내해주겠다고 하였다. 전차를 2번이나 갈아타고 한참 걸어서 골목으로 들어가니 대문앞에 《법률상담소》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주인을 찾으니 중년녀인이 나와 허헌선생은 한 열흘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하였다.

그것으로 꼬박 하루해가 지나갔다.

다음날 박원식은 아침 일찌기 음식점에 들려 설렁탕을 한그릇 사먹고 오선생네 집에 들렸다가 그길로 경성역으로 나갔다. 대합실에 들어가 장군님 환영준비위원회의 광고문앞을 지키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여들었다는 흩어지군 하였다. 박원식은 군중들틈을 오가면서 모여선 사람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그러다가 지식이 있어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홍명희에 대하여 묻군 하였다. 한 댓명 붙잡고 물었지만 모두 홍명희라는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의 집이 어데인지 그가 지금 어떤 직분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중낮이 기울무렵 허름한 중절모를 쓰고 등나무지팽이를 짚은 로인이 하나 나타났다. 등에는 보따리를 졌고 발에는 일본군화를 신었다. 그러나 영채가 도는 눈으로 광고문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옳거니, 옳거니 과연 뜬소문은 아니였구만. 김일성장군님께서 서울에 오셔야지.》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박원식은 그 로인의 손을 붙잡고 홍명희를 잘 아는가고 물었다. 로인은 잠간 쳐다보더니 지팽이를 들어 출입문쪽을 가리키였다. 박원식은 로인의 팔을 부축하고 광장 한옆에 나가 마주앉았다.

《나는 올해 77인데 홍명희는 잘 모르고 그의 부친 홍범석과는 친한 사이였소. 금산군수로 있다가 한일합방소식을 듣고 명주수건으로 목을 매고 자결하였소.》

이렇게 시작한 로인은 묻지 않는것까지 마구 늘어놓았다. 그로서는 그렇게 하는것이 왜정 36년간 참고참았던 설분을 토해버리는것으로 되였던 모양이다. 로인은 차츰 서울이 돼가는 꼴을 보니 왜정때나 다를바 없는데 일루의 희망으로서 장군님께서 개선하신다는 소문에 기대를 걸고있다고 하였다. 그래 수원에 있는 딸네 집에 갔다올가 해서 떠난김에 광고를 확인하던중이라고 하면서 묻는 말에 대답하였다. 홍범석의 맏아들 홍명희는 괴산군 동부리에서 태여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다고 하는데 15살에 서울 중교의숙에 들어가 외국어를 공부하였다. 뛰여난 재능이 알려져 고종이 만나주었고 《리조실록》을 보는 특혜를 받았다고 했다. 3. l운동때 홍명희는 일경에 체포되여 징역을 살았다. 그후 중국이요 어데요 전전하다가 시골에 내려가서 소설 《림꺽정》을 썼는데 홍명희는 단연 조선의 《3수재》중 한사람이라고 하였다. 로인은 이런 정도밖에 모른다고 하였다.

《그 집주소는 모르십니까?》

박원식은 다그쳐물었다.

《홍명희는 촌에 나가있다고 했는데 그 아들네 집은 저 사직동에 있소. 하기야 지금 서울에 와있게다 저렇게 광고를 내붙였겠지요. 그러나 어찌 만나겠소.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없이 동분서주하는때인데.》

로인과 헤여진 박원식은 사직동을 찾아떠났다. 요행 있으면 만나는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행처라도 알수 있을것이였다. 전차를 타고 종로에 내려서 골안으로 들어갔다. 단층집이 오구구 모여앉은곳인데 널판자를 둘렀다.

박원식은 널대문앞에 서서 누구의 이름을 불러 찾을가 잠간 망설이다가 우선 《주인 계십니까?》하고 불렀다.

《거 누구요?》

마당에서 서성거리던 대머리진 환갑나이 로인이 문을 열었다.

《저 여기가 홍명희선생네 댁이 옳은지요?》

박원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그런데 어데서 오셨는가요.》

이때 박원식은 예민한 감각으로써 상대자가 홍명희일수도 있다고 단정하였다.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박원식은 환성을 지르다싶이 큰소리를 내며 인사를 하였다.

《저는 평양서 왔습니다.》

흥분된 음성과 부자연스러운 몸가짐을 보고 저쪽에서는 흠칫 놀란다.

《평양서요?》

그러는 사이에 아래방문이 열리더니 젊은 녀인이 중절모와 회색두루마기를 들고나왔다.

로인은 두루마기를 입고 모자를 올려놓더니 그제서야 《평양손님은 직발 홍명희에게 용무가 있겠습니다?》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을 꼭 만나야겠습니다.》

이렇게 허두를 뗀 박원식은 자기 소개를 대충 한 다음 양춘만을 만나야겠다는것과 겸해서 이곳 몇몇 지식인들의 안부나 알자고 한다고 말하였다.

김일성장군님부대에 계시다는것이 사실입니까?》

홍명희는 발을 모으며 정중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입니다.》

홍명희는 방금전에 손님의 용무를 무시해버리고 어데론가 떠나가려던것을 그만두고 모자를 벗어 뒤에 지켜섰던 녀인에게 들려주었다.

《서재의 문을 열어라!》

녀인은 급히 되돌아들어가더니 남쪽으로 향한 유리문을 열었다. 홍명희는 아들벌이 되고도 남는 년령차이에는 관계없이 깍듯이 존대를 한다.

《우선 먼저 문안을 드리겠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건강하신지요?》

《건강하십니다. 지금 매우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십니다만 건강은 일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매우 반갑습니다.》

홍명희는 고개를 숙여 근엄하게 경의를 표하였다. 방안은 책으로 꽉 차있고 둘이 앉고보니 사람 하나 비킬 자리도 없이 비좁았다. 이야기를 빨리 진척시켰으면 좋겠는데 저쪽에서는 손님에 대한 신분에 믿음이 덜가 그런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생각되는바가 있어 그런지 좀체로 의사표시가 없다. 번들번들한 이마와 누리끼레한 얼굴은 부석부석해보이였다. 홍차를 2잔이나 마시는동안에도 말이 없었다.

《여기 지식인들의 동향이나 안부를 알려거든 우리 아들애를 만나보는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여적 촌에 들어박혀있어서 잘 모릅니다. 말은 바른대로 조선사람으로 자연과학을 전공한것은 10손가락안에 듭니다. 그러니 거의 없는셈이지요. 방금 리영기가 어데 있는가 물었지만 나는 작년까지 일본에 있었다는것외 모릅니다. 지금 1~2달이야 전에 몇해에 맞먹는 변화가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는 저 매일신보자리를 차지하고 신문을 내고있는데 거기에 찾아가야 합니다. 집에는 오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대화를 하면서 홍명희는 30살되나마나한 청년의 모습을 기회가 있을적마다 자세히 뜯어보고있다. 막로동자처럼 거칠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범접키 어려운 위엄을 풍기기도 한다.

《젊은이,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난 참으로 기쁩니다. 장군님께서 건강하시다는 안부를 들으니 천만금보다도 더한 기쁨을 얻었고 만시름이 놓입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오직 홍명희선생이 김일성장군 환영준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그 명칭 하나를 보고 한량없는 기쁨을 가지고 찾아왔었습니다. 장군님의 전사로서 서울에 왔다가 그냥 발길을 돌릴수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그런데 이제 직발 평양으로 가시겠는가요?》

《네, 며칠 더 있다가 사람을 하나 만나고 곧 떠나겠습니다.》

홍명희는 이윽토록 말없이 박원식을 응시하다가 간절한 눈빛을 띠우며 이렇게 말하였다.

《젊은이는 나의 부탁을 하나 들어줄수 있는가요?》

《어서 말씀하십시오.》

《장군님께 안부를 전할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장군님께 말씀올려주시오. 여기 남조선 전체 동포들은 장군님께서 서울에 개선해오실 때까지 기다리고있더라고 전해주시오. 2달도 좋고 3달도 좋습니다. 아니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리겠단다고 전해주시오.》

《꼭 전하겠습니다.》

홍명희는 고개를 깊이 숙여보이였다. 그것은 박원식에게가 아니라 그를 거쳐 장군님께 드리는 인사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