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5

 

5

 

《우선 잠자리부터 구하고보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따라오던 리만석이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그러나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박원식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한참만에야 박원식은 담배를 붙여물고 쓰겁게 한마디 내뱉었다.

《기분이 나빠서. 원 조선땅인지 미국땅인지 갈래판을 모르겠거든.》

그때 그들앞으로 총을 멘 미국병사 3명이 입에 무엇을 넣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지나갔다. 룡산쪽으로 통한다는 대통로로는 푸른 연기를 풀풀 내불면서 땅크 3대가 기여가고있다.

《여보 만석동무, 기왕 여기까지 온바에는 경성역이라는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좀 하고갑시다.》

《그게 좋겠습니다. 이름이 그래도 서울인데 돈 내고 잘데야 없겠습니까.》

그들은 천천히 걸어서 대합실로 들어갔다. 사람우에 사람이 덮씌우다싶이 되였다. 남녀로소 각양한 사람이 각양한 모양으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구 꿈지럭거리기도 한다. 혼잡정도는 한달전쯤의 평양역과 비슷하였다. 그중 볼만한것은 벽에 나붙은 광고들이였다. 어떤것은 《광고》이고 어떤것은 《알림》이고 어떤것은 《공시》이고 또 어떤것은 몇마디 내용뿐인것도 있다. 박원식은 발을 골라 디뎌가며 하나씩 읽어나갔다. 무슨 회가 발족했는데 본소는 어데다, 무슨 강연회가 있는데 강사는 누구다, 무슨 려관이 새로 나왔는데 숙박비는 얼마다, 이러루한 등속인데 내용이 같은것은 하나도 없고 종이장의 규격이 각이하고 글을 쓴 색도 붉은것, 검은것, 푸른것 등으로 가지각색이다.

한참이나 그렇게 나가는데 한군데에 특별히 사람이 많이 모여 웅성거리는곳이 있었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과연 그럴만하게 큰 광고문이 하나 나붙었다. 붉은색으로 쓴 글자 하나가 옹근 책장 하나만큼씩이나 컸다.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 서울개선을 열렬히 환영한다.

김일성장군 환영준비위원회 위원장 홍명희

 

다음은 《단군》하고 몇년 몇월 날자가 있었던것 같은데 그밑은 떨어져나갔다.

《하아!》

박원식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한반쯤 벌리였다. 보고 또 보았지만 역시 틀림없었다. 잠시동안에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였다. 기쁘고 환희로운 감정이 온몸에 젖어든것이다. 그는 좀체로 그자리를 뜰수 없어 시간가는줄 모르고 서있었다. 모여선 사람들 각기 제나름으로 한마디씩 한다.

《며칠전에 평양에 오셨다고 방송에 나왔다면서요.》

《그럴리가 있소. 뜬소문이지. 장군님께서 개선하시면 먼저 서울에 오실건 틀림없지요. 저기에 9월 28일이라고 날자가 있었다는군요.》

《그러니 더 의문이 아니요. 날자가 1달 가까이나 지났는데.》

《어쨌거나 불일간 서울에 개선하실것은 틀림없어요.》

각이한 사람들의 종잡을수 없는 말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거리로 나왔다.

《참말 대단하군요. 대단해요. 여기 와보니까 장군님에 대해서 더 잘 알겠습니다. 과시 3천만 온 민족이 떠받드는분이지요.》

리만석이 뒤에 따라오며 연방 감탄을 한다.

그들은 숙소를 정하기 위해 전차길을 건너 세브란스병원쪽으로 들어갔다.

세브란스병원을 지나고나니 길 량쪽에 간판이 촘촘히 잇대붙었는데 그것은 모두 려관 또는 려인숙들이였다. 벼락치듯 간판들을 내붙이였다. 양철이나 널쪽으로 만든것도 있었지만 갈노전에 뼁끼칠을 해서 붙인것은 몇배로 더 많았다. 《신의주려관》, 《함흥려관》, 《철원려관》등 북조선의 이름난 지명이 련달아 나왔다.

정신없이 간판을 쳐다보며 나가던 리만석이 《알만합니다. 알만해요.》하고 자기 해석을 내놓았다. 북조선지명을 적당히 따온 이 려관들은 모두 북에서 오는 손님을 자기한테로 끌자는 수작이 명백하다고 하였다.

박원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사물계에 민감한 리만석에게 감탄을 표시하고나서 중절모를 벗어 훌쩍훌쩍 부치였다. 부지런히 걸었더니 땀이 난다.

《여기 사리원려관>이 어떻습니까?》

박원식이 두릿두릿 사위를 살피고있는 리만석에게 물었다.

《나도 그쯤 생각을 하면서도 좀더 그럴사한데가 없겠는가 해서 살피는중입니다.》

그들은 《사리원려관》앞으로 다가갔다. 주인을 찾자 안방에서 몸이 비대한 중년녀인이 뚱기적거리며 나왔다. 중절모차림을 한 박원식을 쳐다보더니 녀인은 《신사나리는 안방 고급에 들구 이쪽사람은 사랑방 목침칸에 드시오.》하며 따라들어오라고 한다.

《우리는 한방에 들어야겠습니다. 동행이니까요.》

박원식의 점잖은 목소리에 반발이나 하듯이 녀인은 《글쎄 북에서는 공산주의라니까 주인과 머슴을 한이불에 재울지 모르나 여기는 다르지요. 그대신 꼭같이 고급을 물어야 합니다. 하루밤에 1원씩》하며 돈만 내면 만사는 해결이라는 기색을 보인다.

박원식은 방안에 들어가 트렁크를 선반에 얹고 옷을 벗어 건다음 우선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러는사이에 리만석은 어덴가 갔다오더니 좋은수가 있다고 하며 기뻐하였다.

《박선생! 요 앞에 천막촌이 있는데 저걸 보고 38따라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38°선을 넘어가고 넘어오는 사람이 드는덴데 거기에 줄을 늘이면 양춘만을 쉽게 찾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것 참 잘됐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따라지라는건 무슨 말입니까.》

《그걸 모릅니까. 하긴 우리와 다르니까. 모이쪼에서, 아하 모이쪼가 또 뭔지 모르겠지요. 하여간 투전놀음인데 3자하고 8자를 합치면 11이 되는데 그것은 열을 떼갈기고 1끗이란말입니다. 그러니 1끗은 최하 즉 맨 하바닥이란 뜻입니다. 그저 그러루한거지요. 여하간 오가잡탕이 모인데서두 잘 골라잡으면 혹시 갑오가 나올수도 있습니다.》

박원식은 신기하게 듣고있다가 껄껄 웃었다. 최하층생활에서는 모르는것이 없는 리만석이 부러울 정도이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여 사랑채에 있는 그 목침칸에서 장길이상을 펴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박원식이와 리만석은 고급방에 들었기때문에 제자리에서 소반을 각각 받게 되였다.

상을 물리고 그들은 《38따라지》로 찾아갔다. 참말 놀라운 광경이였다. 사람들이 자고 먹고 하다뿐이지 이것은 집도 아니고 천막도 아니며 어느 리재민의 가설거처라고나 할수 있었다.

판자, 노전, 풍천 닥치는대로 주어다가 둘레를 막고 하늘은 함석장, 합판, 석유초롱 따갠것으로 엉성하게 가려놓았다. 그속에서 연기를 피우고 악다구니질을 하고 흐지부지하고 가끔 노래도 나온다.

박원식은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평안도사람들이 어데 들어있는가 알아보았다. 평안도도 여러가지였다. 안주, 남포, 숙천, 개천이 있는가 하면 승호, 강동도 있었다. 그의 속심은 강선과 잇닿은데를 찾고싶었지만 그런 방향으로 화살이 그어지지 않았다. 양춘만을 찾기 위해서는 이미 리만석이와 토론해서 몇개의 지점이 찍혀있기는 하였다. 양춘만의 6촌이 있다는 명동 50번지와 종로에 있다는 소학교시절의 그의 은사네 집이였다. 하지만 박원식은 유격대시기 척후에 나가보아도 언제나 예견하지 않았던 뜻밖의 사건이 항상 문제로 되여있어서 꼭 그 2개 대상에만 국한할수가 없었다.

그는 제낀옷에 넥타이를 멘채로 여기저기 기웃기웃 들여다보면서 《여긴 어데요?》하고 묻기도 하고 《여기 강서사람이 없소?》하고 나드는 거적을 들어보기도 하였다. 둘이 서로 갈라져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매사에 성실한 박원식은 밤이 깊어서야 려관으로 돌아왔다. 리만석은 진작 단념한것인지 자리도 펴지 않은채 웃목에 활개를 펴고 코를 드릉드릉 골고있다. 웃방에서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나면서 무엇인가 철썩철썩 메치는 소리가 났다. 자리에 누워서 귀를 기울이니 도박을 놀고있었다.

《삼칠장 짓구 오땅이라?》 그 소리에 뒤이어 《오늘밤에 철원량반 그 무슨 땅이 그렇게 잦아.》하자 또 누군가 《뽑을 때 련달아 뽑아야지. 자! 이번에는 내가 박을 쥐겠소. 5원을 대겠소.》하였다. 이런 투로 종잡을수 없는 대화가 오간다.

《5원이라! 원산 손님치군 손탁이 너무 엷구려.》

《엷구 두껍고 가릴거 있소. 갑오만 뽑구려.》

《자! 여기 모잇쪼.》

《난 그만.》

《자! 알알팔짓구 삼오 여덟끗! 제꺽제꺽 펴시오.》

《어이구! 투전이 사람 죽인다. 하루종일 머렝이야.》

《자! 쌍 이에 륙 짓구 알팔 갑오라! 흐흐흐.》

이런 식으로 웃기도 하고 가슴이 꺼지게 한숨도 쉬고 또 싱갱질도 하였다.

박원식은 새벽 3시가 다 되여 깜박 졸고 다시 일어났다. 그때는 벌써 리만석이 일어나 사이문을 열어놓고 투전군의 등뒤에서 구경을 하고있었다.

아침을 일찍 채근해 먹고 박원식은 명동6번지와 종로 3정목을 찾아떠났다.

서울거리는 상상외로 복잡하였다. 명동거리 6번지에 양한규라는 명확한 주소성명을 가지였는데도 옹근 5시간 걸려서야 겨우 찾아낼수 있었다. 박원식은 신사풍의 차림새가 몸에 붙지 않은데다가 열댓번 길을 물어서 찾아오고나니 지칠대로 지쳤다. 《이건 밀림에서 헤매는것보다 더 한심한걸.》하고 혼자소리를 하면서 거치장스러운 중절모를 벗어 활활 부채질을 하였다.

주인을 찾으니 허리가 굽은 령감이 널대문을 빗서 열고 내다본다.

《누구를 찾으시오?》

《저, 이 집이 양한규댁이 맞는지요?》

그러자 먼저 대문이 닫기고 빗장지르는 소리가 난후에 《그 집은 작년에 부산으로 갔소.》하는 소리가 겨우 널판자틈으로 새나왔다.

박원식은 종로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떨떨한 주소를 가지고 양춘만을 찾는다는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것을 확신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종로 3정목 소학교뒤골목 한성약국집을 찾아갔다. 두툼한 근시경을 끼고 머리가 훌렁 벗어진 50대의 오선생은 추위가 나기전부터 감기에 걸려서 쿨럭쿨럭 기침을 하였다. 양춘만을 찾아왔다고하자 오선생은 《평양에서요?》하고 놀라움을 보이는것이였다. 세파에 찌든 오선생은 옷차림새나 말투에서는 별것이 없었지만 로동자풍의 체취에서 대뜸 양춘만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짐작한 모양이였다.

《글쎄 나도 모르지요. 한달전에 양춘만군의 친구를 길가에서 만났는데 짬을 봐서 이제 나를 한번 찾아오겠다고 하더랍니다. 평양에서 왔다면 혹시 강선제강소에서 왔는가요?》

《예! 제강소에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오선생의 얼굴에는 그늘이 휙 지나간다.

《매우 실례의 말씀입니다만 우리는 오선생님에게도 할 말이 있는데 잠간 방을 빌수 없겠습니까?》

《네? 저한테요?》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흠칫 놀라는것이였다. 몇초동안 생각하더니 마루쪽을 가리키면서 올라가자고 하였다.

박원식과 리만석이 웃목에 앉고 오선생은 누웠던 자리를 밀어제끼고 아래목에 앉았다. 박원식은 유격대에서 하던 군중공작방법을 쓰기로 하였다.

《오선생님! 이 동무는 강선제강소 강철용해공이고 저는 평양철도국에서 일을 봅니다.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강철이 없어서 기관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탄광에서 탄을 캐내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항상 깊이 사색하고있는듯한 오선생의 눈이 듬직하고 완강해보이는 두 청년을 눈여겨보고있다. 한생 중학교 대수교원을 하면서 생계를 보태기 위해 안해에게 약국을 차리게 한 빈곤한 지식인의 관찰은 예리하였다.

《동무라구요? 하긴 북에서는 호상 동무로 통한다지요. 공산당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미풍미덕이구요. 한데 미력한 저에게 무슨 연고로 도움을 청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저는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한뉘 산수를 가르치고있을뿐인데요.》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도 아시겠지만 지금 평양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개선하셔서 정치를 펴고계십니다. 지난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연설을 하셨는데 우리 조선은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박원식은 연설내용을 거침없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한참동안이나 귀를 기울이고 듣고있던 오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하였다.

《옳습니다. 우리도 여기서 신문을 보았습니다. 장군님께서 이제 서울로 오신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강철을 만들고 기관차를 달리게 하자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하고 박원식은 한걸음 나앉으며 목소리를 높이였다. 《그런데 강철을 만들어야 할 기술자인 양춘만은 여기 와서 돌아다니니 한심한 일이 아닙니까.》

《과시 옳은 말이요. 그러나 내 모르긴 해도 양춘만군이 절대로 허송세월은 하지 않을것이요. 정작 그 사람의 립장이 되고보면 강철을 꼭 강선에서만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을테니까.》

그때 여직 침묵하고있던 리만석이 끼여들었다.

《오선생! 양춘만은 강선에 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거기에 처자도 있고 몇달전까지 강철을 만들던 친구들이 다 있습니다. 기다립니다.》

《그렇기는 한데요.》하고 오선생은 약간 의아한 빛을 띠고 두 청년을 다시 번갈아보고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공산당에서는 인테리를 잡아다가 강제로동을 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놀라서 달아났겠지요.》

《오선생님, 그건 오해입니다.》하고 박원식이 재빨리 부정하였다.

《불 안땐 굴뚝에 연기날가 하는 식으로 그래도 얼마간···》

《옳습니다. 연기가 났다면 불을 땠을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땐것이 아니라 일제나 친일파 민족반역자놈들의 악선전입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개선연설에서 민주주의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나도 그걸 읽었습니다. 참말 김일성장군님은 하늘이 낸 위인이요. 그것이 우리 3천만 겨레의 뜻인줄 압니다.》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는 소리가 났다. 박원식은 후에 다시 만나게 될수 있을것이라는 인사를 남기고 마당에 나섰다.

《혹시 양춘만선생이 여기 오거나 그의 행처를 알게 되면 저희들 이야기를 꼭 전해주십시오. 우리는 세브란스병원 뒤골목 사리원려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