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3

 

3

 

대동강을 옆에 낀 류정은 말그대로 수양버들이 실실이 늘어졌고 아득히 휘여돌아간 강뚝에는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앉았다. 아직 좀 이른감이 있기는 하지만 김장감이 벌써 선창에 한벌 깔려있었다. 무우, 배추, 장작, 독, 단지들 어쨌든간에 겨울차비를 위한 토산물들이 련이어 배에 실려오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벌써 물건값이라든가 그 물건의 출처와 수송수단 같은것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시고 또 물건을 만져보기도 하시였다. 그러다보니 강기슭에서 심상소학교자리로 들어서시게 되였을무렵에는 밤이 퍽 깊었다.

별로 말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제나 제볼장을 다 보는 좌현이는 어둑컴컴한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넌지시 말씀을 올리였다.

《사령관동지!》

하고 부르고나서 그는 잠시 망설이였다.

《뭐요?》

재촉이 있어서야 그는 겨우 첫마디를 내떼였다.

《뭐 한가지 물어볼것이 있었는데 그만두겠습니다.》

《그만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심히 들어넘기는것 같았는데 인차 걸음을 멈추시고 주저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시였다.

《이건 참 좀 어색합니다.》

좌현이는 낯이 화끈 달아나서 고개를 가로들고 입술만 씹고있다.

《하하, 이건 정말 김좌현이답지 않은데, 응. 뭐가 어색하오. 대담성은 전투에만 필요한것이 아니요.》

이렇게 롱담으로 전환되자 좌현이는 용기를 내여 입을 열게 되였다.

《우리 인민혁명군대원들가운데서 지금 사랑이요 애정이요 하는 문제가 제기되면 그걸 어떻게 봐야 하겠는지 해서 그럽니다.》

《사랑? 애정?》

그이께서도 자못 놀라며 반문하시였다. 그것은 새삼스럽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떻다는거요?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이 문제로 된적이야 없잖소.》

《그저 그렇습니다.》

《그저 그럴수야 있소. 무슨 일이 생겼기에 동무도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거겠지.》

《전 뭐 아직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이쯤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좌현이는 차라리 민망스러운데로 낱낱이 털어놓기로 하였다. 지금 당장 문제로 된것은 철도국에 파견된 박원식이라 하였다. 박원식은 벌써 한달전에 양복을 맡기러 다니다가 그 집 처녀와 눈이 맞았는데 벌써 정이 흠뻑 든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그어간에는 식당에 있는 안명숙동무가 얼마간 역할이 있는것 같다고 하였다. 안명숙의 말에 의하면 제꺽 잔치를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여도 별일 없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뭐가 어떻다는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츰 더 갈피를 잡을수 없게 되시였다. 처녀총각사이에 애정이 있다면 결혼을 하면 되는것인데 그것을 두고 물어본다든지 또 어색하다든지 하는 까닭을 도무지 리해하실수 없었다.

《며칠전에 제가 김책동지한테 약간 비쳤다가 생넋이 떨어졌습니다.》

좌현은 얼마간 대담해져서 자신있게 뒤말을 이어대였다.

《제가 김책동지! 저 철도에 나가있는 박원식동무 있잖습니까. 그 동무 장가를 보내야 할것 같습니다.하니까 장가?하고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김책동지의 시선은 저 사람이 정신이 나가지 않았는가 하고 묻는것 같았습니다. 그런대로 나는 박원식이가 처녀를 하나 봐둔게 있는데 인물도 좋고 이제는 정이 푹 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정이 푹 들었다?하고 또 반문했습니다. 나는 그때 김책동지의 눈길을 보고 아이쿠 틀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대로 무슨 대답이 나오는가 기다리는데 우선 동무부터 이 머리가 떨떨하단말이야. 지금 어느땐데 그런 말을 들고 다녀.하잖겠습니까. 단방에 얼이 빠져 나는 고개를 푹 떨구고 서있었습니다. 김책동지는 정색해서 우리가 산에서 총을 멜 때 어떻게 맹세했는가. 나라를 찾기 전에는 총을 놓을수 없고 행군을 멈출수 없다고 했지. 지금 이 땅에서 왜놈들이 달아났을뿐이지 우리가 할 일이 오죽 많은가. 그거나마 우리 3천리가 두동강이 나지 않았는가. 당을 강화해야지, 정권을 세워야지, 군대도 더 늘여야지, 인민들을 먹여살려야지, 그래서 사령관동지께서는 하루에 1시간도 류하나마나 하면서 일을 하시는데 뒤에서는 어쨌어, 사랑? 가정?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래 가만 듣고만있다가 내가 김책동지는 이미 그런것을 지내보냈으니까 무관심하지만 우리 청년들에겐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하니까 그 말은 옳소.하고 빙긋 웃었습니다. 그러더니 원식이 지금 몇살이던가?해서 30입니다.하니 30? 벌써?하고 눈이 둥그래집디다. 좌현이 넌 몇이야.해서 나도 그렇다고 하니 아이구나 모두 늦었구나. 세월이 이렇게 갔나.하고 놀라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계시던 그이께서도 나중에는 좀 심각해지시였다. 그렇지, 놀랄만큼 시간이 흘렀었지. 처음에 유격대에 입대하던 그들은 모두 20살되나마나한 애숭이였지. 한데 지금은 30이 되였다. 선자리에서 10년이라는, 그것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청춘시절이 순간에 흘러가는듯 한 느낌이 드시였다.

골목을 또 하나 돌아설 때까지 아무 말씀도 없다가 심상소학교마당에 들어서시게 되자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래 나한테 묻자는것은 도대체 무엇이였소? 사랑은 벌써 이루어졌으니 된것이고 김책동무도 그쯤하면 반대가 없는것이 아니요? 문제는 결혼식이 아니겠소. 말그대로 식은 식이니까 식을 차려야지》

《그렇습니까?》

좌현이는 어깨를 솟구며 놀라는데 그 말소리가 너무나 커서 장군님께서도 같이 놀라실 지경이였다.

《사령관동지! 그렇지만말입니다. 어쩐지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조국에 돌아와서 3개월도 되나마나해서말입니다. 그러고보면 김책동지의 말도 노상 지나치다고만 볼수 없잖습니까.》

《하긴 그렇소. 그러나 사랑을 하면 혁명성이 더 강해지고 애국심도 더 생길것이 아니요. 우리가 10여년동안 무엇에 의지해서 이날까지 견뎌왔는가. 그건 동무도 잘 알지 않소. 부모를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고 정든 사람들을 사랑했기때문이 아니요. 그래서 우리는 눈구뎅이속에서도 얼어죽지 않았고 풀뿌리로 창자를 채우고도 살아난것이 아니겠소.》

그이께서는 좌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나직이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박원식에게 가정을 가지도록 도와줍시다. 그런데 처녀는 어데 있소?》

《처녀말입니까? 아까도 부엌에서 비지를 끓이고있잖았습니까.》

《양복방처녀?》

《옳습니다.》

《그래서 그 동무가 옷을 지을 일이 있으면 나래가 돋혀서 달려가군 했었구만.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운동장 저쪽 미루나무있는데까지 울려갔다.

잠시동안 묵묵히 걷기만 하시였다. 그러다가 그이께서는 모자채양을 밀어올리고 한걸음 뒤떨어진 좌현이가 따라서기를 기다리시였다가 말씀하시였다.

《나는 오늘아침 일력장을 번지다가 문득 차광수동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였소. 오늘이 그가 희생된 날이요. 1932년이였소. 동무는 아마 차동무를 보지 못했을거요. 안경을 끼고 얼굴이 둥글둥글했는데 생김새처럼 성격이 원만하고 열정적이였소. 조선인민혁명군 첫 참모장이였던 그는 돌아오지 못한다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전혀 그런 내색이 없이 떠나갔소. 돈화에서 적들에게 체포돼서 희생되였소. 나는 그가 우리곁을 떠난 후에 두고두고 후회하는것이 하나 있소. 그것은 그한테 애인이 있었다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어데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소. 후에 알아보았는데 돈화인지 녕안인지 알수 없었소. 그래서 우리는 그후부터 누구에 대해서건 애정문제를 매우 신중하게 대하게 되였소. 그래서···》

길바닥에 널판을 무져놓아 그것을 에돌아야 했기때문에 잠간 말씀이 중단되였다. 그러나 평탄한 학교마당에 들어섰는데도 그이께서는 뒤를 이어대지 않으시였다. 말을 떼고보니 생각이 더 깊어지시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격정에 젖어든듯 하시였다.

공사장은 조용하였다. 그이께서는 여기에 자리를 정하신 그때부터 벌써 다섯차례나 찾아오시였다. 몇번은 집무실에서 곧추 나오시였고 또 몇번은 어데로 오가던길에 들리시였다. 운동장도 고르롭게 닦아놓았고 둘레에 쌓였던 담장도 다시 손질해서 외형부터 멀쑥해졌다. 현관앞에 모래무지와 널판자 쌓은것이 있었는데 그것만 들어내면 손댈것이 거의 없었다. 그이께서는 한쪽에서부터 방방을 다 돌아보시였다. 어떤 방은 천정을 다시 바른데도 있고 어떤 방은 칸을 터쳐 넓힌데도 있었다. 교실에는 칠을 금방 해서 라크내가 풍기는 책상걸상들이 놓이고 칠판도 걸렸다. 칠판마다에는 지우개도 있었고 교탁에는 지시봉과 분필도 새것이 놓여있었다. 어제 김책에게 오늘쯤 미리 나가보지 않겠는가고 했을 때 아직 멀고멀었다고 해서 그런가 했는데 그동안 몹시 서둘렀고 또 그러면서도 얼마나 깐깐히 준비했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었다. 무슨 일이나 일단 손을 대면 다시 손이 가지 않도록 만드는 김책의 솜씨가 여기에서도 잘 나타나있었다. 목공과 미장공을 몇명 도움받고는 자재와 로력은 모두 김책이 사회적동원으로 해결하였다. 앞서 개교한 로농정치학교 학생들과 시청년동맹의 지원도 받았다.

남쪽끝에서부터 칸칸을 톺아나가시는데 맨 북쪽칸에 불빛이 내비치였다. 누가 야간작업을 하는것이 아닌가고 보시는데 간데라불을 켜고 무슨 사람이 둘이 앉아 이야기를 한창 하고있었다. 방에는 무슨 책인지 한쪽에 가득 무져있고 그옆에 앉아 책을 들어 내흔들며 말을 주고받는다.

《사령관동지! 이쪽에 앉은것이 김책동집니다.》

좌현이 먼저 알아보고 목청을 누르며 알려드리였다.

《김책이?》

아닌게아니라 김책이였다. 문께로 뻗쳤던 손을 내리우고 그이께서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자고 하시였다. 김책의 말은 똑똑히 들리였지만 맞은켠에 앉은 넥타이신사의 말은 너무 가늘어 두간두간 한마디씩 겨우 알아들을수 있었다.

《글쎄 선생님이, 애국심을 가지고 이 책을 학교에 희사한것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절을 합니다. 그러나 더 좋기는 선생님이 직접 교단에 나서서 교수를 하시는것입니다. 글쎄 건강관계라고 하는데 건강이 좋을 때는 나오고 나쁠 때는 못나오고 그래도 좋습니다. 우리는 한달에 가다 단 하루라도 좋습니다. 여기 나오는 학생들은 이 책도 요구하지만 선생님이 직접 교단에 서주실것을 바랍니다.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은 이전에 모두 헐벗고 굶주린 무산자들입니다. 그들은 선생이라기보다 자기네 부모들처럼 그렇게 인정이 있고 너그러운 그런 교원을 바라고있습니다. 선생은 꼭 그렇게 하실수 있는 실력과 인품을 가지고있습니다.》

《가만 들으니까 무산자요 뭐요 하는걸 보면 저더러 정치에 가담하라는것 같은데 그건 못합니다. 명실공히 과학기술은 자기의 법칙이 있고 그 어떤 정치리념에 의해 좌우되는 학문이 아닙니다.》

빈약한 저음인데다 어느정도 갈증까지 느껴서인지 간신히 알아들을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오른쪽복도를 거쳐 뒤마당으로 나오시였다. 서로 오가는 말을 통해서 앞서 무엇이 론의되였고 뒤가 어떻게 결속되겠는지 명백하였다. 뒤울안에는 창고가 있고 온실로 꾸리려고 골조만을 세웠다. 얼마간 뒤떨어져 나온 좌현이가 담화가 지금 신통치 않게 번져간다고 걱정을 하였다.

《김책동지의 말이 나는 공산주의자라는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더러 공산주의공업학을 배워주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하니 저편에서 화를 내면서 그것이 진정입니까? 정치와 관계없는 과학을 하라고요? 내앞에서 외교하지 마시오.라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아무 응대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체육기재가 쌓인 창고안을 돌아보시였다.

《어떻소! 동무보기엔 이만하면 우리가 기술인재를 양성하는 첫 걸음을 내뗄만 하지 않소? 첫술에 배부르지야 않겠지. 그만하고 갑시다. 김책동무는 일단 시작했으니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거요. 우리가 끼여들면 더 어색해질수도 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역전거리쪽으로 돌아가자고 하시면서 마당 한켠으로 나서시였다. 그때 《왱가당》하고 쇠붙이를 메치는 소리가 났다. 흠칫 걸음을 멈추고 어둠이 짙게 깔린 앞을 내다보시였다. 또 한번 같은 소리가 반복되더니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였다. 《와! 와!》 소를 멈취세우는 소리가 나더니 《얘야 곡괭이를 실었댔니?》하는 거쉰 소리가 난후에 《내가 메고 온걸요.》하는 애된 대답소리가 울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인적기가 나는쪽으로 다가가시였다.

《여기서 무슨 작업을 합니까?》하고 물으시자 땅바닥에서 통나무를 옮겨놓고있던 사나이가 대답하였다.

《작업이라고 할만 한것이 못됩니다. 철봉대를 몇개 세워볼가해서요.》

《철봉대를요?》 그이께서는 힘에 부쳐 질질 끌리는 통나무를 맞들어 옮겨놓으시면서 다시 물으시였다. 《왜 이걸 한밤중에 합니까. 래일 밝아서 해도 늦지는 않겠는데요.》

《소문없이 제꺽 해치우자는거웨다. 남보는데서 하기가 거북해서요.》 50에 가까운 중년사나이는 웃도리를 벗어서 달구지판우에 훌쩍 던지더니 《야, 창길아. 그쯤에 구뎅이를 파거라. 난 여기서 기둥을 마를테니까.》하며 톱을 들고 돌아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좌현에게 우리들도 같이 땅을 파보지 않겠는가고 하시였다.

《하! 이거 뭐 그만두시우. 우리 부자간이 잠간이면 세울수 있는데요.》

성미가 괄괄한 사나이는 약삭바르게 생긴 아들에게 기둥그루를 깊이 파라는것과 묻을 때 돌을 처넣을터이니 돌을 주어오라고 하면서 걸싸게 톱질을 하였다. 곡괭이로 찍고 삽으로 퍼제끼고 하였다. 깔목을 놓을것을 가늠해서 길쭉한 구뎅이를 하나 다 팠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열대여섯살 난 소년과 한패가 되여 파고 좌현이는 혼자서 맞은편에 또 같은것을 팠다. 이마에 땀이 솟고 몸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덜커덕하고 잘리워 떨어진 통나무대가리를 발로 차굴리면서 사나이가 삽질을 하고계시는 김일성동지의 팔을 잡으며 말하였다.

《기성회선생님! 그만하시우다. 이래뵈두 첨 하는분들은 힘이 듭지요.》

사나이는 학교에 나타나는 손님들모두를 기성회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는 통나무를 깔고 김일성동지께서 앉으신 맞은켠에 앉아 땀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물으시였다.

《이 좋은 일을 왜 남모르게 하자고 그럽니까?》

《하긴 우리 사정을 모르시니까. 난 저 철도기관구에서 보이라를 고치는 로동자야요. 요새 소문을 들으니까 로동자자식도 공부하는 전문학교가 나온다기에 여기 기성회에 찾아갔지요. 그러니 보통학교를 다녔으면 입학할수 있다면서 이름을 적어둡디다. 그래 그 은공을 갚자구 두루 생각하다 이걸 생각해냈수다. 우리야 돈이 있어 기부를 하겠나요 물자가 있어 희사를 하겠나요. 그래 기관구어방에서 굴러다니는걸 주어다가 철봉대라두 몇개 세워주자구요. 그러니 이걸 소문낼수나 있나요.》

《하아, 그렇습니까.》

몇마디말로써 온갖 사연을 낱낱이 토로해버리는 투명한 성격이 대번에 마음을 끌었다. 그이께서는 《그렇군요.》하고 다시한번 감탄하시면서 가치담배를 권하시였다.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마라초가 제격이지요.》

그이께서는 담배가치를 한사코 쥐여주시며 좋지 못한것이지만 피워보라고 하시였다. 사나이가 어쩌는수 없이 담배를 받아쥐자 그이께서는 성냥을 드윽 그어 대주시였다. 성냥불은 순간에 어둠을 밀어제끼고 마주앉은 두리를 환하게 비치였다.

《아, 이거 불까지.》

하면서 사나이는 황급히 이쪽을 쳐다보면서 허리를 굽히였다. 그러다가 《어?》하고 몸을 움츠리면서 입에 물었던 담배가치를 움켜쥐였다.

《아니 이런!》 성냥가치는 거지반 타고있는데 사나이는 무릎을 짚고 벌떡 일어난다. 《장군님이 아니십니까!! 아니? 장군님께서···》

그는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한다.

《앉으십시오. 왜 이러십니까.》

그이께서는 성냥을 또 한가치 그으시였다. 하는수 없이 사나이는 불을 달고 한참만에야 큰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였다.

《글쎄 처음부터 목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다하면서도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지요. 저번때 모란봉에있는 공설운동장에 가서 연설을 들었습니다. 황송합니다. 저의 이름은 리윤봉이라고 합니다. 장군님께서 정사를 펴시니 나같은 로동자자식이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얘, 창길아! 얼른 이리와 인사를 올려라.》

사나이는 좌현이와 이야기를 하고있는 아들을 불러 인사를 시켰다.

《저게 글쎄, 먹지 못해 입지 못해 비들비들하던것이 이제 공부를 해내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길구짧은것은 대보아야 안다는 격으루 냅다 몰아쳐보기는 하겠는데요.》

수염이 텁수룩한 입으로 기다란 연기가 훌훌 나간다. 허름한 옷에 말투마저 투박하였으나 별빛을 받은 리윤봉의 눈은 희망에 넘쳐 푸른 광채를 뿌리고있다.

《공부를 잘할것 같습니다. 령리하고 건강합니다. 무슨 과에 지망했습니까?》

그이께서 학생애의 어깨를 쓸어주시면서 물으시였다.

《무슨 과라는게 있습니까. 아무거나 좋다고 했습지요.》

그때 학생애가 《기계과에 신청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학생의 어깨로부터 팔목에 이르기까지 쓸어만져주시면서 공부를 잘해서 새 나라의 믿음직한 역군이 되라고 고무하시였다. 리윤봉은 마냥 감격이 앞서서 뭉툭한 손가락으로 눈굽을 연방 찍어내고있었다.

《그래 기관구에서는 요새 로동자들이 무엇을 하고있습니까?》

《기관구에서말입니까, 참 말씀드리기 거북합니다. 이전에 비하면 반의 반도 못되는 로동자들이 모여서 말씨름만 하다가 헤여지지요. 배급쌀은 왜 안주는가. 간조는 누가 주는가. 그런 타령뿐입지요. 그러다가 요새는 공산당에서 한명구라는 국장을 앉혔으니 그와 해볼 판이라고 하면서 쑥덕쑥덕합니다. 그저 판이 시시합니다.》

리윤봉은 장탄식을 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철도라는 점에서 더구나 기관구라는데 관심이 쏠리여 이것저것 물으시였다. 기관차나 화차수리작업을 시작했는가, 기관차의 연료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기관사는 몇명이나 있는가고 알아보시였다.

《그런걸 생각해볼새가 없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모아놓고 자꾸 연설을 합니다. 한명구국장도 잠을 자지 못해 반쪽이 됐습니다. 눈에 피가 지고 입술이 텄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나요. 며칠전에 용케 기관차수리에 몇명 붙여놓았는데 쌀을 달래러 가자! 일을 시켰으니 배급이야 줘야 할거 아닌가.하고 누가 선코를 떼니 모두 그럼직해서 욱욱 밀려다닙니다. 보선구도 그렇구 검차구도 그렇고 다 그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그이께서는 난처한 얼굴을 짓고있는 리윤봉을 쳐다보시면서 《이제 다 질서가 잡할것입니다.》하고 안심시키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철도에 례사롭지 않은 사태가 빚어지고있다는것을 직감하시였다. 그대로 방임하면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할수 있었다.

휴식을 끝내고나서 그이께서는 다시 량쪽에 기둥을 세우고 철봉을 건너지르는 작업을 도우시였다. 기둥이 약간 안으로 우거들도록 하고 평행이 이루어지게 철봉을 놓는것이다. 그이께서는 기둥그루에 막돌을 처넣고 우에 흙으로 덮은 다음 큰 돌을 달구삼아 들었다 놓으시며 깐깐히 다지시였다. 그러시는 속에서도 한밤중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와 학교건설을 돕고있는 갸륵한 심정을 가슴이 저리게 느끼시였다. 참으로 이런 지성과 열의를 한데 모을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못해낼 일이 없을것 같으시였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전문학교도 내오고 대학도 내와야 한다. 대학도 한둘이 아니고 각종 대학을 다 내와야 하고 종합대학도 내와야 한다. 가슴이 뻐근할만치 해야 할 일이 많이 내다보인다. 하지만 이때 그이께서는 대양을 향해 닻을 올리는 항해사마냥 가슴이 벅차고 긍지와 자부심에 의해 온몸이 젖어드는것을 느끼시였다. (나가자! 그래서 저들에게 더 크고 더 넓은 길을 열어주자.)하고 생각하시였다.

다짐이 끝나자 기둥우에서 꺾쇠를 박고있던 리윤봉이 《장군님! 이제는 다 된것 같습니다.》하며 망치를 땅에 훌쩍 던지였다.

《창길아, 매달려봐라!》

리윤봉은 장군님을 쳐다보면서 아들애한테 손짓을 하였다. 창길이는 훌쩍 땅을 구르고 날아오르더니 대차동작을 멋들어지게 하였다.

《아주 훌륭합니다. 잘됐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하늘에 훌쩍 날아오른 창길이를 쳐다보시며 만면에 웃음을 지으시였다.

몇걸음 운동장복판으로 나서시였을 때 좌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저거 보십시오, 사령관동지!》

그이께서 급히 돌아서서 좌현이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시였다.

《지금은 악수를 하잖습니까. 이자 방금 서로 부둥켜안고 빙빙 돌았댔습니다. 일이 다 잘된것 같습니다.》

《번개불에 담배를 붙인다더니 꼭 그 식이요. 내 그렇게 될것으로 짐작은 했었는데 시간은 뜻밖에 너무 빨랐소. 김책동무한테는 솔직하고 투철한것 그 한가지 수가 있을뿐인데 그게 적중하게 들어맞을 때는 저렇게 되기도 하거든. 급전직하식으로말이요.》

《김책동지는 참 별난 성미입니다. 어느날 빠짐없이 여기 와서 등짐도 지고 새까맣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고는 우리한테 올 때는 목욕을 깨끗이 하고 아무것도 안한것처럼 시침을 뻑 따군 합니다.》

《그렇소.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요.》

《이 저녁밥을 어떻게 하랍니까?》

《가지고 가서 밤참으로 하기요.》

《안동무가 되게 말할것 같습니다.》

《욕을 먹읍시다. 어찌겠소. 잘못한건 사실이니까.》

그이께서는 기분이 좋으셔서 두팔을 동시에 쭉 펴 흔들며 웃으시였다.

학교를 뒤에 두고 걸으시면서 그이께서는 좌우를 살피시였다. 거리도 그렇고 정거장쪽에 려행자들이 운집돼있는것도 그렇고 모두 전날이나 별로 다름이 없었다. 좌현이는 얼마간 앞서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바싹 뒤따르기도 하면서 그이께서 가셔야 할 길을 안내하였다. 이제 그이의 로정은 명백하였다. 거리를 돌아보고 집무실에 가서는 밤새 누구를 만나시거나 아니면 글을 쓰시는것이다.

《사령관동지! 저걸 좀 보십시오.》

좌현이는 앞을 막아서며 손짓을 하였다. 철도공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가지가 우거진 느티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는데 거기에 젊은 남녀가 바투 다가서서 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 보이였다.

《그래 그게 어떻다는거요. 청춘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있는것 같은데.》

《그러기말입니다.》

《그러기말이다? 동문 정말 별데 다 관심을 가지고있소.》

《자세히 보십시오. 이쪽은 박원식이고 이쪽은 필남입니다.》

《박원식이?》 잠간사이를 두었다가 좀더 정색하신 음성으로 《그렇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요.》하시면서도 그이께서는 얼핏 그들을 익혀본 다음 온 얼굴에 웃음을 담고 재촉하시였다.

《빨리 가기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