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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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섭이 돌아간지 얼마 안되였는데 부엌문소리가 덜컥 났다. 박원식이 들어왔다.

《아니 왜 그새 꿈쩍 안했어요.》하는 안명숙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였다.

《요 우리 필남이가 막 속상해 혼났는데. 그런데 얼굴이 왜 그 모양이예요.》

《석탄 구하러 사동탄광에 갔었소.》

그때 방안에서 《거 박원식동무가 아니요?》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박원식은 부엌에 들어섰다는것이 좀 어색하여 인차 대답을 못하는데 사이문이 쩍 열리며 김일성동지께서 내다보시였다.

《마침 잘 만났소. 그새 동무의 소식이 궁금해서 오늘밤에 역전에 있는 학교에 들렸다가 만나자던 참이요. 어서 올라오우. 안동무가 비지를 잘 끓였소. 어서.》

《제 밥은 기관구에 있습니다.》

《어서!》

이렇게 되여 박원식은 오래간만에 김일성동지와 마주앉게 되였다.

《군복만 보다가 그런 옷을 입으니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오. 한다하는 신사요.》

박원식이 제낀옷에 넥타이를 맨것을 보고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다.

《이렇게 입으니 다 풀어헤친것처럼 허전합니다.》

《다 그렇게 말하는데 언제까지나 군복만 입고 살순 없지 않소. 이렇게 하다가 필요하면 또 입으면 되니까.》

그이께서 박원식을 만나자고 하신것은 철도문제를 푸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만 못지 않게 바쁜것이 강선에 있던 양춘만을 찾아보라고 하신것이다. 박원식이 몇군데 줄을 놓아 알아보았지만 평양근방이나 고향인 룡강이나 증산근방에는 있을만 한데가 없었다. 결국 그이께서 이미 예측하신대로 38°선을 넘어 서울로 갔으리라는것이 거의 확정적이였다. 때문에 며칠전에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 하던 일을 빨리 수습하고 서울에 한번 갔다와야 하잖겠소.》하고 박원식의 의견을 물으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이런 경우에 언제나 지시나 명령을 내리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용무와 그 의의를 충분히 납득시켜 당사자가 스스로 행동방향을 결정하도록 하시는것이였다. 박원식은 이때 《서울에 갔다오자면 하루나 이틀에는 안될것 같습니다. 그래 사동에 가서 기관차연료를 얼마간 해결해놓고 떠날가 합니다.》하고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찬성하시였다. 그래 사동탄광에 가보니 막장에 물이 차고 권양기는 모터의 습기때문에 돌아가지 못하였다. 하는수 없이 박원식은 로동자들과 함께 물속에 들어가 뽐프를 뜯어올리고 권양기모터는 목탄불에 말리게 하였다. 이제 한 열흘안으로 탄을 실어내다가 알탄공장에 넣어 삐찌로 빚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겨울연료는 얼마간 해결될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동무의 눈자위가 그 모양이겠소.》

박원식은 제딴에 웃음을 터뜨리였다.

《비누로 암만 닦아도 지지 않습니다. 거기 사람들은 이걸 안경꼈다고 하는데 한 3년 탄일을 해봐야 미립이 터서 말끔히 지워낼수 있답니다. 하긴 몸에 석탄이 뱄다가 몇해동안은 그것이 계속 나온다고도 합니다.》

《알만하오. 그런데 철도국장동무는 어떻게 하고있소.》

《아직도 자기는 국장노릇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간데마다 꽥꽥 소리만 치는데 로동자들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쩍하면 <당신이 우리한테 로임을 줬소. 쌀배급을 줬소. 왜정때 십장처럼 왝왝 소래기만 치면서> 이런 식입니다.》

《바로 그래서 거기에 동무가 필요한거요. 그 동무한테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어떻게 군중과의 사업을 했는가 알려주시오. 10번, 100번, 1 000번이라도 해설하고 설복해서 군중들이 자각적으로 동원되게 해야 합니다. 어데서나 실태는 모두 그렇소. 최현동무, 김일동무, 류경수동무들이 그새 통신을 보내왔는데 실정은 모두 어슷비슷합니다. 잘 도와주시오. 그래서 한몫하는 일군으로 키웁시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현시기 우리가 겪고있는 난관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시였다.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면 승리하는것이고 여기서 주저앉으면 군중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실패하게 된다고 하시였다. 식량문제도 역시 그렇다. 현재 어데서나 식량을 무져놓고 가져가라는데가 없다. 돈도 없고 돈이 있다 해도 살데가 없는 형편이다.

일제때는 조선에 만주식량을 많이 들여왔었는데 지금 거기는 지난 8월에 있은 몇십년래 보기 드문 대홍수로 해서 대부분지방이 물에 잠겨 흉년이 들었다. 다른데서도 전후에 의례히 있게 되는 기아시기에 들어서서 아우성이다.

조선총독부에서 패망직전에 조선의 식량사정을 추산한데 의하면 전라남북도, 황해도, 충청남도 즉 이 4개 도를 제외한 9개 도는 완전히 기근지대로 될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의 난관은 처창즈를 련상케 한다, 동무네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북부산간지대 특히 탄광, 광산은 벌써 굶는 사람이 많이 나지고있다, 이제 황해도, 평안도지방에서 성출미가 나오게 된다. 정치일군들을 파견해서 농민들에게 호소했더니 얼마간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탄광, 광산에 먼저 넣기로 하였다. 철도에서는 이제 황해도에 가서 쌀을 실어와야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런 식으로 단 1명의 유격대출신 일군앞에서가 아니라 어느 큰 회의에서 정중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기 견해를 피력하듯이 그렇게 박원식을 상대로 친절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시였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동지!》

박원식은 자세를 바로하며 군대식으로 대답을 올리였다.

《그건 그렇고 어서 많이 드시오.》

이야기를 하는동안 박원식은 단정히 앉아 듣기만 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에 놓았던 일감을 집어드시였다. 《정로》창간호에 낼 사설 교정지였다. 연필을 드신 그이께서는 줄줄이 더듬어가며 오자를 바로잡기도 하시고 어떤데서는 대폭수정도 하시였다. 그다음에는 전체 조선의 청년학생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초고를 펼치시였다. 해방후 몇달동안에 청년단체가 여러개 나왔었다. 그런데 청년들의 력량이 여러갈래로 분산된채로 있다는것은 큰 정치적손실을 가져올수 있었다. 그래 청년들을 하나의 조직에 집결되도록 호소하시려는것이다.

박원식은 상머리에 다가앉으며 비지그릇을 앞으로 당겨놓았다. 두툼한 입술을 한번 감빨고나서 그는 양념보시기에 숟갈을 넣어 고추와 마늘을 다지고 기름을 떨군것을 걸썽걸썽 저어서 비지우에 쭉 발랐다. 좁쌀이 반나마 섞인 밥을 꾹꾹 눌러서 듬뿍 뜨고 그다음에 비지를 가져갔다. 박원식은 밥을 퍼내서 비지에 버무렸다. 잠간사이에 그릇을 다 비워버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우정 체면을 차리거나 사양을 하는것이 아니라 권하는 사람이 흡족하도록 하는데 습관되여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언제나 먹는데서는 식성껏 먹고 일하는 마당에서는 정열에 넘쳐 힘차게 일하는것을 좋아하시였던것이다.

박원식이 숭늉을 마시고나자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래 서울에 가면 양춘만기사를 만날수 있을것 같습니까?》

《있기만 하면 만날수 있습니다. 서울장안이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밀림속에서 부대가 지나간 흔적을 찾는것만이야 하겠습니까.》

박원식은 코날이 덩실한 얼굴을 들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헤매서는 끝이 없잖겠소. 사전에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양춘만의 처와 친척을 통해서 약간한 실마리는 쥐였습니다. 외삼촌벌되는 사람이 하나 있고 보통학교때 은사가 있다고 합니다. 양춘만은 떠나기 전에 그 오선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옳습니다. 그렇게 대상을 찍어서 찾아보는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것은 남쪽에 있는 지식인들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알아보는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들이 한데 모여있을수도 있고 그들이 통하는 줄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속에 양춘만이도 있을것입니다. 양춘만을 찾기 위해서도 그렇고 또 남조선에 있는 인테리들의 일반적동향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떠나기전에 김책동무와 토론하시오. 이전에 변호사를 한 허헌이란 사람도 김책동무가 잘 압니다. 김책동무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와 그 집에서 로비를 보태주어 우리를 찾아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어학자이고 작가인 홍명희라든가 화학자인 리영기도 이름이 있는 인테리입니다. 그런데 난관은 양춘만을 만난 다음입니다. 필경 양춘만은 <나는 당신네를 따라갈수 없소.> 이렇게 나올수 있습니다. 박원식동무! 이런 정황을 예견해야 합니다.》

《사령관동지! 십중팔구는 그렇게 될수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나기만 하면 놓쳐버릴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양춘만을 찾는것은 그를 강철을 생산하기 위한 하나의 촉매제처럼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테리를 배척하지 않을뿐만아니라 영원히 같이 갈 동행자로 보고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동행자를 위해 피치 못할 희생도 각오해야 합니다. 지금 그 가정을 보시오. 현재 그 가정은 뒤죽박죽입니다. 모두다 해방을 맞아 기쁨에 넘쳤는데 그 모양을 하면 되겠습니까. 어쨌든 만나면 저번날 우리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다 전하시오. 그것이 동무의 임무입니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제발로 걸어오게 하는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육신은 우리한테 오는데 정신은 딴데 가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알았습니다.》

언제나 사려가 깊고 침착하면서도 여유가 있던 박원식이였지만 이때만은 매우 긴장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앞을 정시하였다.

계속해서 박원식은 그동안 강선에 있는 리만석을 만나 서울에 같이 갔다올것을 의논했는데 과히 구차하지 않을 정도로 신사옷이랑 준비했다는것을 말씀올리였다.

《양복쟁이신사차림을 하겠소?》

그이께서 웃으시였다.

《봐가다가 그래볼가 합니다.》

《하긴 이전에 동무는 무송현성전투때 척후대로 들어갔던 일이 있었지. 그때 헌병대장교로 변장했던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사군으로 돼볼가 생각합니다.》

《좋도록 하시오. 다시 만날것 같지 않습니다. 잘 갔다오오. 건강에 주의하시오.》

박원식은 발을 모으고 서서 정중히 경례를 올리였다.

그이께서 밖에 나서시자 김좌현은 보자기를 싸들고 벌써부터 기다리고있었다.

그때 밖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났다. 《땅땅땅》 총소리도 내고 무엇을 왜깍재깍 부시는 소리도 났다.

안명숙이 아이들을 쫓고있다.

《꼬마동무들! 이러면 안됩니다. 꽃나무를 부러뜨리고 화분을 마스면 안되지요. 용성이, 인동이! 여기로 다 나오세요.》

5~6살짜리 사내애들이 군사놀이를 하고있었다. 적이 이 안마당으로 들이뛰자 추격전을 벌린것인데 그통에 수도가에 놓았던 화분이 넘어지고 쑥국화가지도 부러졌던것이다.

《아줌마! 권총 어떻게 했나?》

그중 키가 꺽둑한 인동이가 화분을 옮겨놓고있는 안명숙에게 손을 내대였다.

《권총?》

그제서야 생각이 나서 안명숙은 부엌에 있는 필남이에게 물었다.

《박원식동무가 얘들하구 저번날 약속했다는데 그후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

《난 몰라요. 놀이감을 깎고있을새가 어데 있을라구요.》

박원식이 마당에 나서자 안명숙에게 붙잡혔던 조무래기들이 와야 하고 달려들었다.

《아저씨 왔다!》

《아저씨 총!》

《총 주세요!》

아이들이 박원식의 량팔을 붙잡기도 하고 가방에 매달리기도 하였다.

그 광경을 대견하게 바라보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껄껄 웃으시였다.

《저 동무는 산에 있을 때도 마을에 들리기만 하면 아이들과 저렇게 인차 친해졌댔소. 그래 아동단대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었지.》

뽐프장에서 물을 푸고있던 안명숙이도 손을 멈추고 평양에 온 날부터 박동무뒤에는 아이들이 줄줄 따라다닌다고 하였다.

박원식은 전투가방에서 나무로 깎은 권총 2개를 꺼내주면서 그새 탄광에 가있어서 약속한대로 못만들었다고 사정을 하였다.

아이들은 총을 받아들고 와야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이마가 쑥 나오고 찌드럭군으로 알려진 인동이만은 딱딱 소리가 나게 몇번 쏴 보더니 《아저씨, 이런거 말구.》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인동이는 코를 훌쩍 들이긋고나서 박원식이 앞으로 총을 내대며 말하였다.

《땅땅땅땅 자꾸 나가는거 해준다구 하구선 힝.》

《그건 못해. 고무줄루는 못한다니까.》

《아니야. 해달라. 아저씨, 자꾸자꾸 나가는거 응야.》

《하! 이런 성화라구야. 이러면 되잖니.》 박원식은 고무줄이 달린 격침을 당겨놓고 방아쇠를 당기였다. 《딱!》하고 소리가 났다. 《이렇게 자꾸 하면 련발이지 뭐냐. 이것 가지구두 적을 얼마든지 잡을수 있다. 자!》

그러나 인동이는 도리머리를 저으며 투정을 계속하였다.

《땅땅땅땅 하는거, 아저씨 힝, 아저씨.》

소매자락을 잡고 대구 몸을 흔든다. 성화에 못이겨 절절매는것을 보신 김일성동지께서 몇걸음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박원식이한테서 장난감총을 받아들고 이모저모 유심히 뜯어보시였다. 참대로 만든 총신도 그럴듯 하고 격침에는 탄력이 센 고무줄을 달아 당겼다 놓으면 요란한 소리가 났다. 총가목에는 라크칠을 해서 번들거렸고 손잡이는 정교하게 격자무늬로 홈까지 파서 제법 모양이 그럴듯 하였다. 그이께서는 총을 빙글빙글 돌려보시다가 《이안에 용수철이나 태엽장치같은것을 해서 돌아가게는 할수 없을가.》하고 물으시였다.

《될수는 있겠는데 품이 좀 들것 같습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면 해줘야지.》

이렇게 되자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장군님두리로 모여들었다.

《련발총 만들어주세요. 네!》

《자! 그만하자요. 인동이! 이럼 안됩니다. 물러서라요.》

박원식은 장군님의 옷자락에 매달린 인동이를 떼놓으며 타일렀다.

《아저씨가 만들어주겠어요.》

《야! 만들어주겠대. 좋다!》

《아저씨! 나 곰!》

《난 토끼!》

《응! 다 만들어준다.》

《만세!》

《땅 땅 땅!》

인동이가 앞서고 뒤따라 5~6명의 고또래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여 골목으로 사라진다.

《좋은때로군.》 하고 그이께서는 박원식을 쳐다보시였다. 《박동무는 무기공급을 든든히 책임진셈이요. 하하하.》

그때 마당에까지 나서서 박원식을 어떻게하나 붙잡아야겠다고 기회만 노리고있던 안명숙이 고개를 갸웃해보이였다.

《좌현동무! 빨리 떠나요. 나 박동무와 뭐 좀 토론할게 있어요.》

안명숙은 부엌문짬으로 내다보고있는 필남이의 눈치를 보면서 박원식에게 자연스럽게 암시를 하였다. 그렇게 되자 익살이 심한 좌현이 박원식에게 주먹을 흔들어보이였다.

《솔직히 실토해야지 없소.》

좌현이는 장군님을 모시고 본정거리를 가로질러 류정으로 빠져나왔다. 좀 에돌기는 하지만 그 길이 덜 복잡하고 또 장군님께서 늘 시민들의 생활을 잘 료해하실수 있는데로 가자고 하시던 뜻에도 맞을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