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1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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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의 방에 오기섭이 찾아들어왔다. 와이샤쯔바람인 오기섭은 쪽걸상에 앉으면서 수첩에 무엇을 적고있는 김책을 향하여 말을 걸었다.

《김책동무! 한가지 물어봅시다.》

김책은 수첩을 밀어놓고 고개를 들었는데 대번에 그의 얼굴은 팽팽해졌다. 서로 알게 된지는 오래지 않지만 매번 오다가다 길가에서 마주쳤거나 어떤 모임뒤끝에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군 했었는데 이번에는 부러 찾아온것이다.

《김책동무, 다름이 아니라 공업전문학교 교원으로 종로에 있는 제국대학교수 안동권을 쓰려고 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이요?》

《사실이요, 한데···》

《사실이라?》 오기섭은 처량한 낯빛을 지으면서 잠간 창밖을 내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단말이요.》

김책은 자리를 떠서 오기섭이앞에 놓인 탁자를 향해 마주앉았다.

《그건 어째서 그런가요?》 이미 속심은 뻔드름한것인데 묻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그럼 들어보우.》하고 오기섭은 번쩍번쩍 빛을 뿌리는 마드로스파이프를 염낭에서 꺼내 불을 달고나서 말을 이었다.

《난 프로레타리아식으로 솔직하고 투철한것을 좋아하오. 그래서 속심을 말하기 위해 빙빙 에둘지 않겠소. 김책동무를 함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성진출신이라고 하길래 나는 대단히 친근하게 생각했었소. 그런데 후에 보니까 동무는 그 누군가를 분명히 념두에 두고 좌경을 따라가지 말라, 지방주의로 나가는것은 좋지 않다 등등 귀맛이 덜한 말을 함부로 퍼뜨리고있었단말이요. 이쯤해두면 동무도 짐작이 갈것이라고 생각하오.》

일단 말을 중단하고 록록치 않게 쳐다보고있는 상대편을 위압이라도 하려는듯이 오기섭은 상체를 뒤로 젖히고 담배를 뻐금뻐금 빨고있다.

김책은 빛나는 시선으로 부자연스럽게 꾸미고있는 오기섭의 몸가짐을 지켜보고있다.

《그런데, 그런데말이요.》 오기섭은 손을 앞으로 내흔들며 계속하였다. 《좌경을 범하지 않기 위해 우경으로 달아난다면 그건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난 지금 동무가 평양에 올라와서 처리해놓은 몇건의 인사문제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요. 생각해보우. 우리 당이 채택한 정치로선에는 엄연히 일제잔재를 숙청하는것이 급선무라고 지적돼있는데 거기에 배치된다는것을 모르겠는가요?》

《어서 더 계속하시오.》

잠간 동안이 생기자 김책이 재촉하였다.

《계속 설명할거나 있소? 그거면 다요.》

《그것이면 다라?》 김책은 한껏 비틀린 오기섭의 심리를 읽으면서도 참을성있게 상대편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것뿐이요? 나한테 말하자는것이···》

《그렇소. 그런데 철도의 한명구는 왜 그대로 국장자리에 두고있소? 벌써 내가 여러번 제기했다고 보는데.》

《오기섭동무, 그러면 나도 하나 묻기요. 한명구를 평양철도 국장자리에서 뗀다고 합시다. 그대신 누구를 앉히겠소. 안을 내놓으시오. 또 안동권도 그만둡시다. 그러면 그대신 누가 교단에 서겠소. 그 대답을 당신이 해야 하지 않소.》

이마귀가 벗어져올라간 김책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하지만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기섭은 제빠듬히 뒤로 젖힌 자세로 여유있게 대답을 하고있다.

《내 견해는 이렇소. 누구를 어디에 세우고 어디에 앉힌다 등을 론하기전에 우리가 일제의 앞잡이들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하는것부터 결정해야 하겠단말입니다. 우리는 정치체제에서나 경제관리에서나 문화도덕령역에서 철저히 일제잔재를 숙청해야 하잖소. 그런데 김책동무가 처리하는것을 보면 이런 원칙적문제를 알고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단말이요.

내 이야기를 좀 듣소. 공산당선언에는 이런 구절이 있소. 계급투쟁이 결전에 가까와가는 시기에는 지배계급내부, 전체 구사회내부에서의 해체과정이 극히 격렬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띠는 까닭에 지배계급의 소부분이 지배계급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혁명적계급에게 가담하게 된다.

혹시 당신이 이런 구절을 본 기억이 있어서 일제에게 복무한 안동권이나 한명구를 우리의 신성한 혁명진지에 끌어들이려고 하는것 같은데 그것은 큰 오산이요.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견해는 종주국내의 문제를 념두에 둔것이기때문에 우리와 사정이 다르단말이요. 그리고 또 김책동무도 혁명은 인정이나 선심을 가지고는 하지 못한다는것쯤은 알고있겠는데···》

오기섭은 눈을 게슴츠레하니 뜨고 거의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김책을 쳐다보고있다.

약간 동안을 두었다가 김책이 입을 열었다.

《리론은 그만하고 내가 제기한것에 대답을 하오. 한명구나 안동권이 대신 누구를 앉히자는 안이 있어야 할거 아니요.》

《리론은 그만하자! 결국 리론이 필요없단말이지. 혁명적리론이 없이는 혁명적실천이 있을수 없다는 레닌의 명제를 모르지 않겠는데.》 말투는 온화하였지만 한껏 가시가 돋힌 야유조였다. 김책은 그것을 예민하게 감촉하였다.

《오기섭동무! 동무는 이야기가 시작되기만 하면 인차 선행고전가들의 견해가 어떻소, 또는 공산당선언이 어떻소, 레닌이 어떻소 하는데 기왕 말이 났으니 어디 론의를 좀 해봅시다. 도대체 공산당선언의 어느 구절에 우리를 따라오는 인테리를 배척하라는것이 있소. 말해보시오. 누가 그랬소? 맑스요? 엥겔스요? 자본론에 있소? 고타강령비판에 있소? 빠리꼼뮨을 총화한 프랑스국내전쟁에 있소? 그것도 아니면 그래 레닌이 그랬소? 프로레타리아전쟁강령이요? 좌익소아병이요? 난 어데서도 그런것을 읽은 기억이 없소.》

여기까지 단숨에 쭉 내려엮은 김책은 숨이 차서 어깨를 들먹이였다.

뜻하지 않게 집중포화에 얻어맞은 오기섭은 눈이 퀭해졌다. 지금까지 그가 알고있었던 김책은 정열과 의지는 있었지만 지식이나 리론은 형편없이 빈곤해서 기껏해야 로씨야의 차빠예브형 군사지휘관으로나 보았었는데 지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책은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리론이라는것이 도대체 뭐겠소. 난 리론이란 경험을 일반화한것으로 보고있소. 우리에게는 어떤 경험이나 리론이 필요한가? 우리는 조선혁명을 하고있기때문에 조선혁명의 경험과 리론이 우선 필요한것이 아니겠소. 우리 혁명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을 시작하시면서부터 조선혁명에서 인테리들이 노는 역할에 대해서 투철한 방침을 제시하시였고 해방된 오늘에도 그것을 거듭 강조하고계시오. 당신이 말하는 한명구나 안동권이 우리를 따라오겠다는데 무엇때문에 그들을 우리가 배척해야 하는가말이요. 출신이 부유하기때문이요? 아니면 그들이 지식을 가지고있기때문이요? 어디 말해보우.》

오기섭은 소태를 씹은 낯을 해가지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차 그는 웃는 낯을 지으며 담배를 또 붙여문다. 리론을 가지고 론쟁하자는것은 무섭지 않은데 상대편에 겉보기와 전혀 다른점이 있기때문에 이제 어떤 방패를 내들게 되겠는지 또 어떤 검으로 내리치게 되겠는지 몰라 망설이고있는중이였다.

김책은 어성을 높이였다.

《당신 주장대로 하면 일제잔재가 없어질것만은 사실이요. 하지만 동시에 혁명도 없어진단말이요. 구경에는 혁명을 포기하자는 주장이요.》

《혁명을 포기한다? 여보! 동무는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있는지 모르지 않겠지. 중앙조직위원회 제2비서가 동무에게 지금 사업상 충고를 하고있단말이요.》 순간에 론리로부터 직권으로 바꾸어버린 그는 야릇한 감정에 잠겨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계속하였다.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이건 어제오늘 처음 느낀것이 아니라 동무가 함흥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감촉했던거요. 그래 동지호상간에 이런 말도 못한다면야 여기에 무슨 조직이 있고 동지적의리가 있소.》

오기섭은 얼굴이 뻘겋게 되여 점점 더 도고해진다.

그럴수록 김책은 더 완강해진다.

《동지호상간이라니까 듣기는 좋소. 그렇지만 함남의 그 틀이 앞으로 당사업발전에 큰 지장을 줄것 같아 미리 말해두오.》

격분한 김책은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다시 오기섭이 앞에 멈춰서서 두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놓소. 철도를 운영할 사람, 교단에 설 사람을. 당신이 훌륭하다고 보는 사람을 다 내놓으란말이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고있던 오기섭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였다.

《너무 과격하니까 말이나 해보겠소. 내 의견이 그렇다는것인데 접수안되면 좋구.》

《당신이 지금 당장에 내놓을 사람이 없지 않소. 그러니 있는 사람을 쓰자는것인데 뭐가 못마땅해서 그러오. 더 할말이 있소? 난 공업전문학교에 나가봐야겠소.》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군님께서 오기섭을 부른다고 좌현이가 알리였다.

오기섭은 요행 잘되였다는 식으로 가볍게 자리를 떠서 문밖으로 사라졌다.

벌써 밤 10시가 오래지 않았다. 담화는 무려 3시간이상이나 계속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창문을 등지고 앉으시고 그 오른쪽옆에 오기섭이 앉아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먼저 얼마전에 열리였던 정치공작원들의 모임에서 론의된 인재문제와 관련한 실태를 설명하시고 그에 따라 지식인들과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짜고들데 대해서 말씀하시였다.

《오기섭동무는 현재 우리 나라에 있는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들에 대한 조사사업을 맡아주어야 하겠습니다. 건국사업에 지식을 가지고 이바지할수 있는 대상이면 누구나 다 장악하시오.》

《일제에게 복무한 경력여하에 관계없이 말입니까?》

오기섭은 약간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이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우리는 이미 각 도당과 지방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에게 일제때 일하던 기술자, 전문가들도 모두 포섭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낡은 인테리들을 다 쟁취할뿐아니라 새 인재들도 키우려고 합니다. 인재문제는 결국 우리의 손으로 새롭게 키워내는데 의해서만 종국적으로 해결될것입니다. 그 첫 사업으로서 얼마전에 김책동무가 담당한 공업전문학교 개교준비가 현재 순조롭게 진척되고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대학도 곧 내와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이 끝나자 오기섭은 대뜸 의아한 눈길로 그이를 쳐다보며 《대학을, 북조선에 내온단 말씀입니까?》하고 놀란 소리를 하였다.

《그렇습니다. 빠를수록 좋은데 지금 형편에서는 한 1년정도 걸리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오기섭은 다시 놀라운 표정을 보이며 《1년입니까?》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너무 늦다는것입니까?》 미소를 띠시며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와 반대입니다.》 오기섭은 너그럽게 웃으시는 그이를 쳐다보며 뒤를 이었다. 《이미 알고계시겠지만 고등교육이란 보통교육을 적어도 10년이상 앞세우고 그다음에 시작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뒤를 채 맺지 않고 흐리마리해버리자 그이께서 즉시에 대답하시였다.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까지만해도 너무나 멀리 뒤떨어졌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보통교육도 하고 고등교육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장시간 론의한뒤에 얻게 된 결론이 인재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시기상조가 아닙니다. 해봅시다. 될수 있을것입니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것이 문제겠는데 그것은 우리가 찾아야 하고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