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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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동안에 길떠날 준비를 해가지고 저녁녘에 그들은 평양역으로 나왔다.

강병철은 국방색광목으로 만든 배낭에 트렁크를 넣어 등에 졌고 원시범은 크지 않은 가죽가방을 손에 들었다.

10개로 편성된 라진행 렬차는 객차칸마다 벌써 송곳끝도 들어갈짬없이 사람들이 들어섰고 층계와 련결부 그리고 방통지붕꼭대기에까지 사람이 앉았고 기관차대가리에까지 하얗게 매달렸다.

강병철은 손으로 헤집고 머리를 휘두르면서 사람들을 밀고나갔다. 그리하여 끝내 그는 객차안에 들어서고야말았다.

《이 철도는 해방이 됐는데도 왜 이모양이야!》

《아야야, 내 다리 누가 뽑아간다.》

그 혼잡속에서도 역시 강병철의 머리는 잘 돌아가는축이여서 인차 묘한데 착안을 할수 있었다. 공중에 떠있으면 될것이였다. 그래 그는 짐을 얹는 선반에 올라가기로 하였다. 그는 공설운동장에서처럼 원시범의 등판을 디디고 훌쩍 현수동작을 해서 어렵지 않게 선반에 올라갈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원시범을 올리끌었다. 그러나 원시범은 발을 헛디뎌 허양 모자로 떨어졌다. 그통에 벌써부터 극성스럽게 무엇을 먹고있던 뚱뚱한 아낙네가 《아구 나 죽는다! 내 모가지가 부러졌다!》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나 그 고함소리가 요란했던지 차칸에 그 녀편네 목소리만이 꽉 들어찼다. 아닌게아니라 누가 하나 죽는것이 아닌가 했던 모양인지 차칸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아이구, 모가지야. 나 죽는다, 나 죽는다.》

함경도내기녀편네의 아부재기가 계속되자 이번에는 그옆에서 웅글고 거쉰 목소리가 울리였다.

《고함소리 들으니끼니 아직 숨넘어갈라면 멀고멀었시다레. 고만하고 참으라구요.》

《이러다 죽지 죽는게 별겐줄 아오, 나 죽으문 뉘기 우리 박서방 노친네 돼주겠소.》

《쩌쩌쩌. 데거 보디. 죽었다는게 어드르케 말은 하나?》

《곰시 죽었는데 몇마디 말을 못할수야 없지앙이요.》

그통에 온 차칸이 떠나가게 웃음이 터졌다.

해질녘이 되여 덜커덩하고 차방통에 충격이 생기더니 마침내 라진행렬차가 자리를 드티였다.

강병철은 다리를 꼬부리고 누워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우주공간에 떠서 인간세상이 펼쳐진 지구덩어리를 한눈으로 굽어보는 기분이였다. 고생은 막심했지만 그런대로 이제는 고향땅 함경도에 가게 되였다고 기뻐하는 사람, 징병에 걸려 남양으로 가다가 배가 깨져 널판대기 하나를 붙잡고 이틀동안 물에 떠있다 살아났다는 사람, 해방덕으로 과부가 령감 얻어간다는 아낙네, 자기 형을 주의자로 몰아서 감옥에 가게 한 고원경찰서 고등계형사 양가놈을 잡아치우러 간다는 청년, 해방되는 날 보국대합숙에서 왜놈십장 2놈을 아예 편포짝을 만들었다는 결패있는 사나이, 사돈끼리 마주앉아 어느 당에 들든지 같은 당에 들어야지 사위 며느리사이가 버그러질지 모른다는 중로배 등등이 각기 제나름으로 떠들어대고있다. 어디를 보든지 사람들과 이야기거리는 싫지 않은데 뽀얗게 담배연기가 서리고 숨이 꺽꺽 막히게 고약한 냄새가 올라온다. 골치가 빠개져온다. 얼마간 있노라니까 원시범은 벌써 잠이 들었다. 강병철은 허리와 무릎이 쑤시고 숨이 막혀와서 창문쪽으르 돌아누우려고 몸을 뒤채였다. 그때 그의 한쪽구두짝이 벗어져 떨어지면서 밑에 앉았던 아까 그 함경도녀인의 정수리를 때리고 열려진 창문밖으로 날아났다.

《어, 어.》

강병철이 미안하다는 말도 할새 없이 당황해하는데 이번에는 그 아낙네가 밥곽에 떠다놓았던 물을 올리끼얹었다.

《이 옹기없는 인간들, 날 끝내 죽이고야말 차비 아잉가.》

또 한참동안 떠들썩하였다.

그러나 강병철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렬차는 순천을 지나서 양덕을 향해 달리였다.

차칸은 혼잡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렬차는 자기 궤도를 잃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있었다.

양덕역을 떠난 렬차는 천을역에 채 이르지 못한 산중에 멎어섰다. 량쪽 다 깎아지른 절벽이고 앞에도 뒤에도 굴이 있는 어간이였다. 한시간이나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내렸다가 올라와 알리였다.

《기관차가 배가 고파 못간답니다.》

《뭐? 배가 고파.》

강병철은 인차 기관차의 연료를 생각하였다. 양덕에서 보급이 없이 무턱대고 떠났단말인가.

《그래 어쩐다오?》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 모두 돈도 좋고 먹을것도 좋고 있는대로 좀씩 내라는거요.》

그때 강병철이 화가 난다는듯이 한마디 하였다.

《기관차가 돈을 먹으면 증기가 오른다는가?》

《여보 여보! 안경쟁이신사나리.》

무딘도끼로 대강 다듬어놓은것 같이 막 생긴 사나이가 로동복앞자락을 열면서 시비를 청하였다.

《당신이 뭘 안다고 입이 나불나불이야.》

그런다고 무맥하게 물러날 강병철이 아니였다.

《증기기관차는 5천카로리이상의 삐찌탄이 있으면 그만이란말이요.》

《저 신사 끌어내라. 보아하니 돈냥이나 있는 부르죠아같은데 해방맛을 보여야지.》

사나이는 군중을 향해 명령조로 나온다.

《옳당이. 저 안경쟁이 온기 있는가 봐줍세. 평양서부터 사람을 못살게 굴재이켔소. 아재 이리 옵세.》

이런 식으로 차칸이 끓게 되자 인차 어느 한 청년이 나서서 《번역》을 해주었다. 양덕고개는 임당수에서처럼 《고수레》가 있어야 무사히 넘어갈수 있다는걸 왜 모르느냐고 했다. 기관사아저씨들도 먹어야 살지 않는가. 돈이면 돈, 먹을것이면 먹을것, 그것도 없으면 아무것이라도 좋다고 하였다. 청년은 모자를 벗어들고 십시일반으로 모아다주자고 하였다. 불평으로 끓던 손님들이 저마다 돈도 던지고 먹을것도 내놓았다. 선반에 누운 강병철은 그때에야 새로 생긴 《양덕고개풍속》을 알아차리고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 훌쩍 던지였다.

《난 이것밖에 없소.》

고수레를 모으고있던 청년이 《어!》하고 놀란다.

《이거 통채로 다요? 아니면 가승이 있어야겠소?》

《다 주고 빨리 가자고 하시오.》

그것을 보고있던 함경도아낙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두를 신지 못한 발목을 툭툭 치면서 웃었다.

《안경쟁이생원. 내려옵세. 떡이나 하나씩 나누기오. 내 입이 걸어 그렇지 맘은 앙이 그렇소. 이재 보이 괘이찮은 생원이구마.》

무엇이 어떻게 되였는지 까닭을 알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렬차는 다시 떠나 동서를 가르는 분수령 천을고개를 가까스로 톺아오르더니 고원으로 향해 미끄러져내려갔다. 이렇게 가기도 하고 멎기도 하면서 강병철이 이제는 입버릇처럼 돼버린 《해방》이라는것을 하나 가득 실은 렬차는 옹근 하루만에 지쳐빠진 바퀴를 끌고 함흥역에 겨우 들어섰다.

강병철은 줄창 잠만 자고있는 원시범을 들어일구어 홈에 내리였다. 본궁이나 흥남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그사이에 무슨 일이 또 생길지 알지도 못하거니와 도소재지 구경도 하고싶었다. 홈에 내렸지만 강병철은 한쪽발의 신이 없었다. 한쪽은 구두, 한쪽은 양말발, 두루 뭉개지고 단추가 떨어져 달아나기는 했지만 본바탕은 아직 유지신사풍이 그대로 남아있는 안경쟁이가 함흥역광장을 걸어나가는것이 볼만하였다.

원시범은 신통히 일본인피난민과 같다고 놀려주면서 차라리 한쪽것을 마저 던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강병철은 그래도 한짝이 있다는것만으로도 전체의 50%는 되는셈이니까 그것이 낫다고 하다가 끝내 더 걸을수 없게 되여 한짝마저 하수도도랑에 던져넣고 솔직하게 맨발신사가 되고말았다.

그길로 그들은 장마당에 들려 만 3끼를 건너뛴끝에 설렁탕을 한그릇씩 제끼고 문수가 큰 일본군화를 사신고 뚜거덕뚜거덕 소리를 내며 흥남비료공장을 향해 걸었다.

흥남비료공장자치위원회는 강병철을 환영하였다. 평양에 있는 최준걸한테서 전화도 왔다고 하였다.

때마침 공장에서는 흥남지구인민공장을 짜고있는중이였다. 공산당 함남도당 파견원의 립회밑에 흥남지구에 있는 5대공장, 비료공장, 제련소, 화학공장, 화약공장, 기계공장들의 관리기구를 하나로 통합하는것이다. 원시범은 화학기사로서 본궁화학공장 기술사업을 전적으로 담당하였다.

강병철은 원시범을 딱 붙잡았다. 화학공장도 중요하지만 우선 발이 닿은곳에서부터 일을 착실히 시작해야 할것이 아닌가고 졸랐다. 비료공장을 필두로 5개 공장을 다같이 돌아보고 복구대책만 같이 토론해주어도 좋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여 강병철과 원시범은 다시 한짝이 되여 해방이 가져다주는 첫 작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밤낮 잇대서 현장에 나가보고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는 한편 기능공들을 모아오고 하는 가운데 날자는 급히 흘러갔다. 가능한 공정들에서는 먼저 일을 시작하고 수리보수는 그것대로 따로 공정표를 짜서 내밀기로 하였다. 닷새, 열흘, 보름,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강병철은 끈덕지게 원시범을 잡고 놓지 않으면서 기술협의를 하였다. 원시범은 원시범이대로 본궁화학공장에 빨리 가야겠다고 엄살을 하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강병철에게만 맡겨놓고 훌쩍 떠날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흥남제련소만은 강병철이 전문분야지만 그밖의 대부분은 결국 화학과 련관이 있기때문에 모른다고 할수 없어서 억지에 못이기는척하면서 강병철에게 끌려다니다가 맨 나중에야 본궁에 와닿았던것이다. 화학공장합숙에서 이틀 묵고 강병철은 짐을 싸들고 본궁역으로 나왔다.

《나는 비료를 찾아 떠나야겠네.》

아무말없이 역으로 따라나왔던 원시범이 기차가 들어오는것을 보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낯을 들었다. 거리로 보면 한정거장사이인데 타국으로라도 가는것처럼 심각해진다.

《할수 없지. 서로 길이 다르니까.》

왜 그런지 원시범은 직무나 거처가 다르다는 뜻으로가 아니라 그 어떤 합칠수 없는 운명을 말하는듯하였다. 원시범이 이 마당에서 그렇게까지 처량해지는것은 평양에서는 애인을 떨구게 되고 이제는 벗과 헤여지게 되기때문에 상심한것일수 있다.

그러나 성공을 바란다고 진심으로 축원해주었을 때 강병철이도 코마루가 찌르르해왔다.

차에서 손님들이 쏟아져내릴 때 어디선가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선생, 나예요. 내가 왔어요.》

그것은 백추화였다. 하늘에서 떨어진것처럼 그렇게 나타난것이다. 원시범은 정신없이 달려가 처녀를 부둥켜안았다.

《추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그들이 만나는것과 동시에 강병철은 차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마치 숨박곡질을 하고있는것처럼, 이런것이 결국 운명의 희롱일수 있다는 유모아를 생각할새도 없이 강병철은 평양역에서처럼 또 그런 식으로 머리를 휘저으며 사람들 틈을 뚫고 올라가 란간에 붙어섰다. 기차가 떠날 때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뒤를 돌아다보니 원시범이와 백추화가 손을 흔들며 나란히 서있었다. 그의 시야에 환상으로 확대되여 나타난 백추화는 역시 서리꽃처럼 그렇게 깨끗하며 싸늘한것이였고 원시범은 정신을 못차리고 멍청히 서있는것으로 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