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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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평양이 들끊었다. 40만 시민이 밤새 자지 않고 이야기를 벌리였다. 강병철이와 원시범이도 밤새 자지 못하고 앉았다일어났다 하였다. 또 밖에 나가도 보고 들어앉아 래일 있게 될 력사적사변에 대해 론의도 하였다.

그들만 이렇게 밤을 샌것이 아니라 온 평양거리가 하루밤을 완전히 잃어버린채 새날을 맞은것이다.

력사책에 기록된것을 보면 기원 427년 고구려가 여기에 도읍을 정하기 훨씬전에 평양에 성을 쌓고 산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사가들의 추측을 훨씬 뛰여넘어 한 나라의 법을 단 몇줄로 적어두기에 충분했던 고조선의 초창기,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여기에 사람들이 살고있었다는것을 확인할수 있다. 지금 성밖 양각도쪽으로 치우친 강기슭에 오막살이가 3채 있었다고 한다. 3집의 부처와 아이 5이 오늘 40만으로 헤아리는 대평양의 조상들이였던것이다.

연연 수천년 그들이 대를 이어 내려오는동안 무슨 일인들 없었겠는가. 거듭되는 전란도 땅의 융기와 함몰도 있었고 역병과 홍수도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것을 다 합쳐도 오늘 이밤처럼 사람들을 격동시키는 사변으로는 되지 못하였을것이다.

날이 훤해지자 거리와 마을에서 사람들이 터져나왔다. 날이 밝기전부터 군중들이 길을 메웠다. 중화쪽에서 들어오는 길, 남포쪽에서 오는 길, 증산, 한천쪽, 신의주, 숙천쪽, 개천, 양덕쪽, 강동과 승호리쪽, 상원과 신계쪽 길이란 길은 온통 사람으로 꽉 찼다.

군중들은 농짝밑에 깊이 넣어두었던 새 옷들을 갈아입고 북, 장고, 꽹과리, 피리를 울려대며 남녀로소가 어울려 춤을 춘다.

《삘리리 쾡창, 삘리리 쾡창!》

어떤데서는 《아리랑》을 부르는가 하면 또 어떤데서는 《닐리리야》를 부른다. 어쨌든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환희와 기쁨을 한껏 내뿜으려고 한다. 팔을 휘두르고 땅이 꺼지게 발을 구른다. 군중들은 웃으며 설레이며 춤을 추며 평양으로 평양으로 몰려오고있다.

강병철이도 그속에 끼여 모란봉고개를 넘어갔다. 풍문에 의하면 오전 10시부터라고 하는데 날이 훤해지자부터 사람들이 공설운동장으로 밀리고있었다. 원시범은 강병철의 혁띠를 붙잡고 따라갔다. 날이 밝자 벌써 운동장은 차넘치고 을밀대와 최승대의 언덕에, 루각들 지붕꼭대기에, 소나무가지에 올라갔다. 강병철은 자기의 완강한 체력을 믿고 무작정 주석단쪽으로 뚫고들어갔다. 주석단은 최승대쪽을 배경으로 판자로 둘러쳤고 앞에는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조국개선을 열렬히 환영한다.》라고 흰 광목에 붉은 물감으로 써붙였다. 이밖에도 수많은 구호가 나붙었고 여기저기 전주대우에 확성기를 달아매였다.

《이게 누구냐, 남의 발등을 밟는게.》

《왜들 이렇게 밀치오.》

《여보, 들어갈데 없소.》

광장은 끓어번지였다. 어데도 발들여놓을 자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주석단쪽으로 자꾸 밀리였다.

최승대언덕에는 로동자들이 한벌 덮이였다. 그들은 붉은기를 들고 군대들처럼 정렬해서서 합창을 하고있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군중들의 소음에 의해 노래소리는 자주 중단된다. 그러다가 모든 음향을 짓누르며 온 광장을 흔들어놓는다.

강병철은 발을 돋우고 노래소리 울리는쪽을 넘석하니 바라보고있다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강병철과 원시범의 돌진은 계속되였다. 그들의 목표는 주석단에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가려볼 그런 정도 접근하자는것이였는데 아직도 그런 거리까지는 까마득하였다. 아무리 틈을 노려보아야 들어설만한 짬이 없었다. 하는수 없이 다른 사람이 한것처럼 땅에 주저앉아야 하였다. 앉아서 한참 있노라니까 전후좌우에서 별의별 소식이 다 날아들었다. 바로 오늘이 일요일이다보니 예수쟁이들이 례배보는 날인데 자꾸만 종을 치건만 1명도 모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어데선가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가 나기도 하였다. 또 누군가는 이제 김일성장군님이 비행기로 도착하신다고 하였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뜨고 땅으로는 20만의 군대가 군악을 울리며 도착하는데 미림에서 여기까지 자동차로 오시게 될거라고 하였다. 그러니 아직 비행기소리도 군악대소리도 들리지 않는것으로 보아 오전에는 틀렸다고 하였다. 이야기가 종잡을수 없이 아무렇게나 번져나가다가 또 우연히 두패로 갈라져서 옥신각신하게 되였다. 한쪽은 김장군이 공산당이라는 사람과 다른 한쪽은 리왕가를 추대하려는 민족주의자라고 하였다. 얼마간 그러고있는데 고노골쪽에 앉았던 군중이 와야 하고 일어났다. 그 파도는 삽시에 온 장내를 휩쓸며 설렁거렸다.

어느덧 낮 12시가 지나서 1시 가까이 되였다.

드디여 정각 1시, 마이크에서 덜커덕덜커덕 널마루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환호성이 터졌다.

김일성장군님이 나오셨다.》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

실로 이것은 수십만의 환호성이라기보다 하나의 큰 폭발이였다. 사람들이 팔을 흔들고 발돋움을 한채 콩당콩당 뛰였다. 운동장안에서, 비탈진 모란봉언덕에서, 지붕꼭대기에서, 나무가지에서 환성을 질렀다.

강병철은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다. 해일을 일으킨것 같은 인파속에서 앞은 물론이고 좌우도 볼수 없었다. 오직 그의 시야에는 손바닥만한 푸른 하늘이 그것도 커졌다작아졌다 하면서 얼른거릴뿐이였다. 환호성은 2분, 3분, 5분, 10분··· 그냥 계속되였다. 강병철은 무작정 원시범을 땅에 꿇어앉히고 그의 어깨우에 올라탔다. 그제서야 겨우 그는 주석단을 바라볼수가 있었다. 한 7∼8명 앞줄에 서고 그뒤에도 그만한 인원이 서있는데 앞줄 맨 중심에 제낀 옷에 넥타이를 매신분이 손을 들어 답례하고계시였다.

《오! 저분이 김일성장군이시구나!》

《뵈는가?》

발밑에서 원시범이 소리쳤다.

《뵌다!》하는 순간 왈카닥 상체가 앞으로 기울면서 누군가의 머리를 덮쳐안고 내리굴었다. 원시범이 뿌리친것이다. 이번에는 원시범이 강병철의 덜미를 짓밟고 올라섰다. 무턱대고 몸을 솟구려 하였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강병철이 잠시도 진정 못하고 몸을 들먹거리고있었기때문이다. 복잡한 그 짬사리에서도 강병철의 머리는 예리하면서도 정확하게 돌아갔다. 불과 0. 2나 0. 3초 되나마나한 사이에 시선이 미친 주석단의 맨 중심에 선 그분, 제낀옷을 입고 손을 쳐들었던 그분을 어데선가 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뇌리를 때리고 번개처럼 한가닥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본정거리 2층집에서 만났던 그 정치위원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자 그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덤비기 시작하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어나려고 하였지만 전혀 몸을 일으켜세울수가 없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의 눈앞에는 정치위원의 얼굴표상과 방금 볼수 있었던 김장군의 초상이 겹놓아지면서 그 두사이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것을 확신할수 있게 되였다. 그는 용을 쓰면서 무작정 사람들 가다리짬으로 뚫고나갔다. 원시범이 어떻게 곤두박질을 하였는지 누구의 다리갱이가 어떻게 휘여졌는지 알바가 아니였다. 그는 두더지가 땅을 헤집고나가듯이 그렇게 맹렬하게 앞으로 앞으로 기여나갔다. 이젠 몇십m 나갔다고 생각될무렵 그는 사람들의 다리새를 비집고 솟구쳐올랐다.

그때 확성기에서 《친애하는 동포여러분!》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온 장내를 흔들며 또다시 환호의 폭발이 일어났다.

김일성장군 만세!》

《우리 장군님 만세!》

수만사람의 감격과 환희가 하나의 큰 덩어리를 이루어 처음에는 광장복판에서 빙글빙글 소용돌다가 그것이 최승대의 높은 봉우리에 부딪쳐 몇쪼각으로 갈라져 하나는 고노골쪽으로 또 하나는 북새골쪽으로 또 하나는 서성리쪽으로 내리꼰지다가 마침내 거기에서 다시 터져오른 환성에 의해 재차 허공으로 끝없이 튕겨올랐다.

이때 강병철은 확성기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가 본정 2층집에 앉아 진지하게 들려주시던 그 음성과 완전히 일치하다는것을 의식하였다.

연설은 계속되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동포들과 이렇게 만나게 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우리는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고 여러분과 만날 오늘을 위하여 오래동안 일제침략자들과 싸워왔습니다. 지난날 36년동안 우리 민족을 압박하고 착취하던 간악한 일본제국주의는 패망하고 기나긴 세월 삼천리 조국땅우에 드리웠던 검은 구름은 가시여졌으며 우리 민족이 그처럼 애타게 고대하던 해방의 날은 오고야말았습니다.》

도가니속에서 쇠물이 끓어번지듯하던 장내가 홀연 정숙해졌다.

김일성동지의 웅글고 부드러우면서도 마디마디 탄력이 느껴지는 음성은 세상만물을 압도해버리듯이 도도하게 공간을 흘렀다. 장내에 있는 사람은 더 말할것도 없고 이 땅에 있는 세상만물이 모두 귀를 기울이는듯 하였다. 세상에는 금언명언으로 엮어진 연설이나 성명이나 담화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이렇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운명을 걸고있었거나 거기에서 어떤 진로를 찾아보려고 한것은 일찌기 그 전례가 없었다. 해방된 조선은 어데로 가는가? 해방된 이 조선을 이끌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해방된 조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을 바라는가! 이 한 민족에게 있어서 근본적이면서 또 피할수 없는 운명의 물음에 대한 해답이 지금 이 마당에서 펼쳐지고있는것이다. 하기에 여기 모인 사람들모두는 기뻐만 한것이 아니라 그만 못지 않게 그 무엇을 갈망하였으며 기대하고있었던것이다.

강병철이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아까처럼 한번만 더 체면부지의 행동을 취한다면 어렵지 않게 일정한 거리까지 접근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김일성장군님께서 펼쳐주시는 그 운명의 판도를 굽어보면서 가슴을 들먹이고있을뿐이였다. 그는 이 마당에서 환호를 올리고 또 때로는 숨을 죽이고 듣고있는 그들과 더불어 한때 애매모호하였던 모든 문제들이 어렵지 않게 풀리게 되리라고 확신하고있었다. 연설은 계속되면서 군중이 갈망하고 기다렸던 그 감정의 물결을 타고 하늘높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천만길 락차를 이루어 내리떨어지기도 하면서 영예의 대안으로 이끌고가는것이였다.

강병철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장군님을 우러러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연탁을 두손으로 꽉 붙잡고 바다처럼 설레이는 군중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손을 높이 들어 푸른 하늘에 큰 원을 그리기도 하고 또 힘있게 내리긋기도 하시면서 열정과 정서로 달구어낸 힘있고 류창한 음조로 연설을 계속하시였다.

《동포여러분!》하고 얼마간 낮은 목소리로 계속하시다가 문득 고개를 높이 들어 장내를 둘러보시였다. 《우리 조선민족이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힘을 합칠 때는 왔습니다. 각계각층 인민들은 누구나 다 애국적열정을 발휘하여 새 조선건설에 떨쳐나서야 합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며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때 강병철은 가슴을 움켜잡으며 속으로 힘있게 부르짖었다. 《그렇다!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그의 가슴속에서는 이 한마디 말씀이 끝없이 소용돌면서 거듭거듭 흉벽을 두드리는것이였다. 힘있는 사람은 힘,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그렇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는 마치 미궁을 헤매다가 한줄기 빛발을 붙잡은것처럼 앞이 탁 트이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발돋움을 하고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이런 흥분이 그다음도 몇번 더 거듭되였다. 그로서는 이렇게 진심으로 그리고 이렇게 감격해서 자기 감정을 쏟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나서자라 30여년동안 이러저러한 세파에 부대끼면서 별의별 경우를 다 체험하였다. 물론 빈한한 사람이 맛볼수 있는 그런 의식주를 둘러싼 고통은 없었다 하더라도 정신생활에서의 난파는 수없이 체험하였다.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만주땅 려순으로 다음은 일본, 이렇게 전전하면서 그가 보고 느낀것은 무엇이였던가. 현대인 특히 지성인은 먹는것만으로는 살아갈수 없다는 그것이였다. 이것은 동양삼국을 모두 편답하였고 그 과정에 각종 류형의 인간을 모두 상대하였으며 네개의 외국어에 능통한 도움으로 별의별 경우를 다 읽은 결과에 얻은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사실 위의 충족보다 정신적충족이 없이는 살아갈 보람도 없고 그럴 의욕도 생기지 않았었다. 그래서 인간은 각종 문화를 창조하고 예술을 내세우며 지어 신앙을 빚어내는것일수 있다.

강병철은 그 복잡한 가운데서도 절대로 혼미한것에 빠지지 않고 자기중심의 사고에 몰두하고있었다. 그뿐만아니라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다 강병철이처럼 그렇게 자기자신으로부터 출발해서 일반적인것에 합류하여 그의 련속반응이 대하와 같은 흐름을 만들었을수 있을것이다.

모임이 끝난 다음에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 들끓었다. 고노골쪽으로 사람들이 쏠리였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장군님께서 친척되시는분들을 만나신다고 하였다. 부모님이나 동생은 모두 만주땅에서 잃으시고 만경대에 계시던 조부모님과 삼촌을 만나신다고 하였다. 그것이 얼마나 사실과 부합되는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말만 들어도 눈물겨운 이야기였다. 스무해만이라고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변하기를 두번 거듭한것이니 가히 그 감격을 짐작할만한것이다. 인정에 몰린 강병철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눈물이 글썽해서 이윽토록 서있다가 사위를 살펴보았다. 원시범을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는 군중들속에 끼여 칠성문쪽으로 올라갔다. 경상골에 들어설 때까지 종시 원시범을 만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