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1

 

제 3 장

1

 

강병철은 경상골에 찾아가기 위해 려관을 나섰다. 류정거리를 빠져나온 그는 강기슭을 따라 곧추 올라갔다. 활개를 급히 저으며 부지런히 걷건만 어덴지 모르게 맥빠진 걸음이였다.

그는 평양역전에 있는 대동강려관에 한주일째 묵었다. 당장 떠나기로 차비했던 트렁크를 다시 헤쳐가지고 하루하루 날자를 꼽아가며 밥을 사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무슨 꼭 볼일이 있는것도 아닌데 자연히 그렇게 되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신으로서는 명백했던것 같던 앞날에 대한 문제를 조선인민혁명군 정치위원이라고 하시는분이 방향타를 훌쩍 돌려놓으신것이다. 그렇지만 그 방향타는 자기 반동력에 의해서 얼마간 되돌아와서 중간쯤에 멎어버렸다. 그건 그렇다 치고 기왕 이렇게 된바에는 신창탄광 박창술이처럼 대담하게 행동해볼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기는 그와 처지가 달라서 장군님을 직접 뵈올수 있는 길이 열릴것 같지 않아 망설이고있는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것은 원시범의 애매모호한 립장이다. 끝장을 보고야말겠다던 혼인문제는 한달전이나 지금이나 일보의 전진도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있는 형편이다. 한집에서 한달씩이나 같이 살고있는것을 보면 그들의 혼인문제는 이미 기정사실이라고 볼수 있는데 이건 딱 형식상 문제로 해서 아직 미혼의 처녀총각으로 되여있는셈이다. 남에서 같이 떠날 때 둘이 동시에 걸머진 안동권의 서울초청문제는 그쯤해두어도 의무를 리행한것으로 될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용무를 보고 함께 돌아가자던 약속이 튀게 되였다. 그렇다고 해서 원시범을 떨궈두고 혼자 갈수도 없었다. 혼자 못가는 리유로서는 친구간의 의리에 걸리는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로자가 떨어진것이다. 떠나올 때 한 20일간 예견한 려비도 빳빳했는데 이제는 한달이 거진되였다. 돌아가는 려비는 자기가 백추화의 집에서 변통하겠다던 원시범은 아직 그런것을 생각할념도 못내고있다.

강병철은 옥류소쪽으로 내처 걸어올라갔다. 경상골 막바지 고색 창연한 기와집을 찾아 터벌터벌 걸었다. 때마침 원시범은 샤쯔바람으로 마루에 앉아있었고 백추화는 해질녘 모란봉산책이라도 나갈 차비인지 진회색 세루투피스로 몸단장을 가볍게 하고 마당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안방에서는 자기 존재의 위엄을 시위하듯이 애햄애햄 군기침을 하며 이집 상전인 백씨가 자기또래 손님과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강병철이 열려진 미닫이 사이로 인사를 하자 나비넥타이에 조끼를 받쳐입은 백씨는 왜 요새는 꿈쩍하지 않았는가고, 젊은이들이 출입이 없고보면 집안은 시들은 방초나 다를바 없다고 엄살을 부리였다.

《한데 여보게들.》하고 백씨는 금반지를 낀 손으로 문설주를 붙잡고 원시범과 강병철이 나란히 앉아있는 마루쪽을 내다보면서 말을 꺼내였다. 《이 송형이 나더러, 그래 내가 송선생을 소개해야지. 저 서성리에서 모란제지공장을 운영하는 유력한분이네. 이 선생이 글쎄 나더러 어느 당에 들겠는가 묻질 않겠나. 그래 내가 장사를 잘하게 해주는 당이 어느 당인지 그 당에 들겠다고 하니까 그런 당은 세상에 없다면서 앙천대소하네. 난 통 그런 물계는 모르니까 젊은이들이 판단을 좀 해보게.》

이래놓고는 제딴에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했음인지 껄껄 웃었다. 강병철은 원시범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턱을 들어보이였다. 말상대가 되여주라는것이다. 강병철의 판단에 의하면 이 집의 모든것, 가장집물, 생활양식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방식 모두가 두 극단의 결합체였다. 그것은 서로 용융과정이 없는 기계적인 결합같은것이라고 할수 있는데 례컨대 안방에는 쌍학무늬에 붕어쇠가 걸린 백통뒤주가 놓였는가 하면 저쪽 사랑방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자리잡고있다. 부엌 한쪽에서 끼니때마다 놋화로에서 곱돌장사귀가 끓는가 하면 이쪽 전기곤로에서는 커피를 끓이고있다. 백씨는 집에서는 명주바지저고리를 입다가도 외출할 때 보면 맥고모나 헬메트에 스데키를 짚는다. 빅타레코드에서는 남도륙자배기가 울리고 추화는 모짜르트를 즐긴다. 그중에서도 백씨의 사고방식이 걸작이다. 다른 사람들, 특히는 신양촌교회당에 출입하는 기독교신자들속에서는 독실한 신자로 되여있다. 그는 신약성서를 거의 통독하였으며 지어 신학전문가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것마저 알고있었다. 그는 알고만 있을뿐아니라 그 교리를 능숙하게 활용할줄도 알았다. 추화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 강한 정조관념에 의해 교양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늘 마태복음 5장을 외워주었다는것이다. 《나는 말한다. 누구든지 정욕을 가지고 녀자를 보는자는 마음속으로는 벌써 간음을 한것이다.》 그리고 게으름을 막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7장 《구하라 그러면 줄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눈에 뜨일것이다.》를 입버릇처럼 외웠다고 한다. 그러나 백씨는 일단 상업거래 즉 금전거래에 있어서는 그 어느 유물론자만 못지 않게 현실적이였다. 그의 입에서는 《하느님은 마음은 주어도 돈은 주지 않아.》하고 단호한 론단이 내려지군 하였다. 돈이 천당이고 돈이 《에덴》동산이지 그외는 모두 지옥이거나 거짓이라고 하였다.

백씨는 계속 말하였다.

《듣자니까 며칠전에 공산당이 선포되였다는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10월 10일 날자루 나왔답니다.》

원시범이 기름한 얼굴에 정색한 기운을 담고 확신성있게 대답하였다.

《공산당이 득세를 하면 우리같은 상업가는 서성리로 가야지.》 서성리에 화장터가 있다는것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렇게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 알아보니까 친일파, 민족반역자만 치고 모두 단합한다고 합니다.》

《난 저 사람의 저것이 늘 맘에 없거던.》하고 백씨는 포동포동 살이 오른 손으로 상아물부리에 담배를 끼우며 낯을 찡그리였다.

《약자에게는 병이 침노하고 불평분자에게는 공산주의가 침투한다는 말이 있는데 저 사람은 가만 보면 무슨 불만이 많고 또 공산당에 대해서 좋게만 보고있단말이야. 하긴 뭐 요새 지식인치고 공산주의를 동경안하는 사람이 없지만말이지···》하고 백씨는 저편에 앉아있는 몸이 체소한 늙은이를 바라보며 계속하였다. 《자! 송선생, 마저 한잔 따시오. 페일언하고 난 송선생이 드는 당에 들겠수다. 친구따라 강남도 간다는데 민주당이면 어떻고 공화당이면 어떻소. 공산당만 아니면야 다 같은판이지.》

결국 이렇게 되여 젊은이들의 속을 뽑아보려고 하다가 되려 자기의 속을 뽑히우고말았다. 백씨가 원시범을 사위로 결정짓지 못한것은 그가 공산주의바람을 탄 사람이 아닌가고 의심하기때문이다.

강병철은 원시범을 따라 모란봉으로 올라갔다. 한걸음 뒤져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치 날씬하고 아름다운 백추화가 따라섰다. 강병철은 어느 하나도 명백한것이 없는 알쑹달쑹한 속에서 무엇인가 명백한 대답을 찾고있는 원시범이 가련해보이였다.

《요새 령감에겐 그럴만한 사연이 있네.》

하고 원시범은 오히려 백씨의 립장을 두둔해나섰다.

요새 백씨는 양덕에 있는 벌목장에 가보고 까무러칠만큼 놀랐다. 수천립방의 동발목이 온데간데 없다. 로동자들이 가져다 아궁에 넣었다고도 하고 어데다 팔아먹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해방》이라는 들뜬 기분은 그것이 일단 백씨의 장부책에 나타나자마자 적자표시로 기록되였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위감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경솔히 대할수 없었다. 일이 안될 때는 마시는 물도 목에 걸린다는식으로 천만사람이 모두 좋은 일로 되고있는 사위맞이도 무슨 불행으로 번지게 될지 몰라 쩔쩔매는것이다.

사위로 되겠다는 자본가의 자식 원시범은 공산당을 동경하고있다. 남에서 북에 왔다는자체도 그렇지만 그의 최근 언동은 확실히 붉은것에 접근해가고있었다. 그것을 안 백씨고보면 심사가 편안할리가 없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추화양이 쏟고있는 애정 하나뿐이네. 그것마저 끊기면 역시 나도 서성리로 갈밖에···》

원시범은 단풍에 묻혀 허허공간에 한가롭게 떠있는 칠성문루각을 쳐다보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내친걸음으로 그들은 을밀대를 향해 올라갔다.

얼마간 처량한 감정에 잠겼던 원시범이 급기야 기분을 돌려 활기있게 다시 말을 떼였다.

《여! 강군! 나도 그새 적극적인 대외진출이 있었네. 여기 평남도에 김광진이라는 경제학자가 있네. 내가 교또대학을 나왔다고 하니까 그가 하는 말이 리영기를 아는가고 하겠지. 그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잘 아는 사이고 나로 말하면 과학자로 인정하는 첫 대상이라고 했네. 그랬더니 호상 화학이 전문이니까 그럴수도 있을것이라고 인정을 하데. 그건 그렇고 그 김광진의 주선으로 공산당본부의 요직에 있는 오기섭이란 사람을 만났네.》

《그래? 그래서 무엇을 론했나.》

강병철은 안경을 번뜩이면서 크게 관심을 나타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약간 실망했네.》

《실망? 그건 정말 뜻밖이군 그래. 자네야 공산당에 적응될수 있는 그런 립장이 아닌가.》

《말 말게. 자네가 만나뵈웠다는 그분과는 체질상 완전히 달라.》

이런 식으로 전제해놓고 원시범은 오기섭과의 담화장면을 생동하게 재현하였다. 그는 김광진의 안내로 어느 한 려관의 귀빈실같은데서 오기섭을 만나게 되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김광진은 8. 15후 인차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상공부문을 담당해서 사업하게 되였다. 하루는 경상골에 있는 목재상 백씨가 찾아와 교또대학 공과졸업생을 하나 만나보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그래 만나보았는데 개성이 똑똑하고 쓸만하다고 보아 오기섭에게 추천한적이 있었다. 오기섭은 과학자, 기술자들의 동향도 알아볼겸 직접 만나보겠다고 하였다. 한편 원시범이측에서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백씨의 권고도 있고 또 공산단계통의 표정도 알아보고싶어 그에 응했던것이다.

오기섭의 몸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체취가 진하게 풍기였다.

《교또에서 고학을 했는가요?》

오기섭은 첫 마디를 떼였다.

《아니요. 집에서 보내오는 학비로 구차하지 않을 정도로 살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자산계급출신이지요.》

오기섭은 수염이 텁수룩하니 자란 조개턱을 쳐들고 또 물었다.

《서울서 여기로 오게 된 리유는 무엇입니까?》

《직업을 찾기 위해서지요.》

《남에서도 실직할 정도는 아니겠는데.》

《역시 북에 나의 전공인 화학이 있으니까요.》

《인테리들이 가장 꺼려하는 정치에 대한 관여는 어떻게 보는가요?》.

《아직 나는 공산주의를 신봉할만치는 못됐지요. 처지도 그렇고 내 리념도 그렇고, 그렇지만 화학도 역시 다른 과학과 함께 정치권밖에 있을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현대는 정치에서 공백지대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어차피 이제 어느것이든 선택해야겠으니까 우선 우리 공산주의자와 손을 잡아볼 생각은 없는가요?》

원시범은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담화가 아니라 심문과 같은것이기때문이다. 자존심이 건들리우고있다고 생각되자 홀연 그는 이름할수 없는 모욕감과 반발이 일어났다.

《우리 친구 강병철이라는 괴짜가 있는데 그런 질문에는 그 친구가 명철한 대답을 하군 합니다. 뭐라고 하는가 하면 나는 권력을 부정한다. 오직 지성을 존중한다는 약속이 있으면 그대신 어떤 권력도 다 받아들일수 있다 이렇게 대답하지요.》

오기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등나무덩굴처럼 비틀리고 꼬인 인테리인 원시범의 본심이 잘 드러났고 그것을 휘여잡기가 여간치 않을것이라고 보았다.

《명백히 말해줄수 있는데 지식층에 의해서 좌우되는 그런 정당이나 사회운동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그것은 구락부나 같은거요.》

《그렇습니까. 그건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알아야 할것은 위를 채우지 않고는 인간이 살아갈수 없다는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감정의 불꽃이 일어났다. 오기섭은 부르죠아인테리의 덕을 보지 않고도 혁명을 수행할수 있으니 우리 프로레타리아를 동정안해줘도 좋다고 비꼬았고 또 그에 대응하여 원시범은 히틀러가 망한 까닭을 밝히면서 그가 과학자들을 적대시하여 모두 학살하고 추방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독일의 학자들이 미국으로 도망쳐 원자탄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여보, 인테리선생! 그건 엄청난 착각이요. 독일은 원자탄이전에 패망했소. 이건 엄연한 사실이요.》

모욕적인 말을 듣게 되자 원시범은 가슴이 터질 지경으로 분격이 차올랐지만 상대방의 체신을 고려해서 꾹 참으면서 심히 우회적인 방법으로 대답하였다.

《단떼의 신곡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옥으로 통하는 문간에 이렇게 크게 써붙였더라는겁니다. 여기에 들어오는자는 누구나 일체의 자률성을 버려야 한다. 알만합니까. 설마 그런 식은 아니겠지요?》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는 언어로써는 리해 못할것이 없었지만 뜻으로써는 완전히 이방인과 마주앉은것과 같았다.

원시범이 여기까지 말하였을 때 강병철은 대경실색하였다.

《그럴수가 없네, 절대로 그럴수가 없네. 사실이 그렇다면 자네는 공산당요직에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난것이 아니라 생판 딴데 가서 왕청같은 사람을 만난것이 틀림없네.》

이에 대해서 어떻게 강병철을 납득시켜야 할지 몰랐다. 차라리 그렇게 어떤 착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았다. 원시범은 어간에 나선 김광진에 대해서 원망하였다. 그러나 김광진은 또 저대로 공산당에서는 지금 인재문제에 대한 난관을 풀기 위해 원대한 뜻을 가지고 첫발을 떼였다고 하면서 이러저러한 례를 들었다. 첫째 공산당에서는 해외해내를 가리지 않고 그리고 어느 당이나 파벌을 가리지 않고 오늘 조국건설을 위해 나서는 사람은 누구나 손잡고 일한다는 폭이 넓고 아량있는 로선을 택하였다는것, 그중에는 지식인에 대한것이 포함되여있는데 출신과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아량있게 대한다고 하였다. 둘째는 새 인재양성인데 정치, 군사 방면의 인재양성과 함께 과학과 기술 인재를 키우기 위해 모든것을 아끼지 않으리라는것이다. 김광진자신도 평양에 처음으로 공업전문학교를 내오는데 준비성원으로 되였다고 하였다.

이윽하여 화제를 돌려 원시범은 서울방송을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9월 2일 미즈리함상에서 진행된 항복서조인식이 굉장했다누만. 일본의 비행기, 함선 등에서 떼낸 히노마루를 식장배경에 수천개 진렬했대. 그리구 10월 10일 아놀드는 성명에서 북위 38° 이남지역에는 오직 미군정이 있을뿐이라고 했다는거네.》

원시범은 특종 소식이라는투로 내놓았지만 강병철은 전혀 그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이거나저거나 다 권력이야기군. 그래 여보게, 그건 그렇다치고 내 말을 좀 들어보게.》하고 강병철은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가 그날 자네네 집에서 술을 마시고있었지. 나는 그때 알딸딸해있었잖았나, 그런데 문득 김일성장군님께서 서울에 개선하신다는 소문이 날아왔거든.》

《그게 벌써 한 보름되였나?》

《그렇네 그래서 우리는 서울역으로 달려갔더란말일세.》

《그래서.》

《그래서 발들여놓을 자리가 없이 역전광장과 거리에 군중이 모여있었지.》

《그때 김일성장군 환영준비위원회 위원장이 홍명희선생이라고 했지.》

《옳아, 어학자이고 림꺽정작가인 홍명희! 그런데 오늘에 와서 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에 와계신다는것을 확고히 믿게 되였네. 그 근거는 거리에 김일성장군 만세라고 쓴 구호가 많이 나붙어있는것을 보아 그렇게 말할수 있네.》

벗나무와 느티나무, 아카시아, 산대추와 잡관목이 엇섞인 금수산봉우리들은 푸른 띠를 두른듯한 소나무숲과 잘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활짝 열린 사동 미림벌은 바야흐로 물들기 시작한 저녁노을을 타고 신기루로 떠오르는듯 하였다. 강병철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말하였다.

《나는 김일성장군님을 대단한 위엄이 풍기는 군사가로 보는것이 아니라 순결하고 뜨거운 심장을 지닌 위대한 인간으로 짐작하네.》

언제나 뚝뚝하고 안경만 번뜩이던 강병철이답지 않은, 서정이 함뿍 담긴 토로에 원시범은 놀랐다.

《자네 꼭 루네쌍스시대 인간같군 그래.》

《왜 그런가, 나는 김일성부대의 정치위원이라는분을 만나뵙고 단연 그걸 느끼였네. 누군가가 말했지. 그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싶거든 그의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알아보면 된다고말이지. 참말 훌륭했네. 한마디로 말해서 매혹적이였네. 무엇이 그런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네. 총체적인상이 그랬으니까. 그렇다면 환상이거나 관념이라고 하겠지. 그래도 좋네. 모든것이 명백하고 투철하고 솔직하고 또 우리와도 동격이네. 승리자연하는것을 추호도 찾아볼수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우정 꾸미는 겸손도 전혀 없었네.》

《알만하이. 자네는 그때부터 이미 그 어느 길엔가 들어선것이네. 유물론자들이 말하는것처럼 의식은 실재에 뒤떨어져있을뿐이지.》

《아니 천만에, 그분은 공산주의자라고 서슴없이 공개하더군. 그때 나는 오싹하고 머리칼이 곤두서더란말일세.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난 안온한 기분에 잠길수 있었다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건가. 결론은 서울인가 평양인가 자네 론리대로 한다면 인간앞에는 언제나 두 길뿐이라니까.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문제는 그렇게 제기되겠지?》

《그건 아직 미정이네.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봐야 알겠어. 자본가의 자식, 일본제국의 제품이며 그에 복무한 강병철이 공산주의자와 손을 잡는다는것이 과연 어울리는 행동인지, 여하튼 모든것우에 조선강철을 올려놓는다면 난 찬성이니까.》

《문제를 늘 그렇게 각박하게 세우지 않는것이 좋아. 성공의 봉우리로 통한 길도 천갈래만갈래고 실패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고 또 제3의 길도 그만큼 있으니까.》

그때 시종 침묵을 지키고있던 백추화가 앵두알같은 입술사이로 한마디 흘리였다.

《이번에는 두분이 각기 제나름의 정당을 하나씩 만드시는거나 아니예요?》

그통에 모두 즐겁게 웃었다. 함부로 흘리는것 같은 처녀의 롱담속에 은근한 야유가 섞이였다. 그렇게 되자 강병철은 두손을 모아대고 회교도들처럼 머리우로 높이 들어올렸다.

《부탁입니다. 세레나데도 좋고 부르스도 무방합니다. 우리 두사람을 한덩어리로 녹여붙일것이면 무엇이나 좋습니다. 한마디만.》

《호호호 그래요.》

백추화는 어렵지 않게 소청을 받아들이였다. 그는 이전에 피아노반주가 없이 들놀이식 노래를 한번도 불러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만은 례외로 되였던지 주저없이 카르멘의 아리아 서두를 떼였다.

이때였다. 사동쪽 하늘에서 무엇이 번쩍하더니 비행기 한대가 나타났다. 쌍엽기는 요란한 폭음을 울리면서 공간에 뜬 모든 음향을 압도해버리고 순식간에 대동강을 가로질러 평양역쪽으로 건너가더니 급히 기수를 숙이며 꽁무니에서 무엇을 내뿜었다. 저녁노을을 받아 그것은 은가루를 뿌린것처럼 빛났다. 전차길을 따라가면서 본정, 남문정, 종로, 창전 그다음에는 모란봉 그런 순서로 비행기는 날았다. 서평양에서 돌고 다시 선교쪽으로 건너갔다.

《삐라다!》

세사람은 일시에 환성을 질렀다. 그 무엇인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큰 사변이 생긴것만은 틀림없었다. 큰 사변이란 무엇이겠는가. 제나름으로 환상을 날리였다. 새 전쟁의 폭발인가? 아니면 고구려공화국이라도 선포되는가? 쏘미량군의 동시철거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구와 달의 충돌인가. 그들은 두손을 허공에 뻗치고 허둥지둥 달려내려갔다. 경상골에 채 들어서기전에 머리우에 떠도는것을 원시범이 먼저 하나 붙잡았다.

김일성장군 평양에 개선!》

어떻게나 요란하게 고함을 쳤던지 강병철의 심장이 뚝 멎는듯 하였다.

김일성장군 개선》

크지 않은 종이 한장에 특호활자 몇개로 찍힌 짧은 한마디 소식이 이토록 큰 충격을 일으키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강병철은 눈물이 글썽해서 그것을 가슴에 가져다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