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7

 

7

 

승용차가 제강소정문에 이르자 경비실에서 목총을 든 청년 하나가 급히 달려나왔다. 그는 아래우 풀색 양복을 입었고 가죽띠로 허리를 동이였는데 왼팔에는 붉은천으로 완장을 둘렀다. 경위대원 최동무가 먼저 다가가 용무를 말하자 목총을 든 청년은 발뒤꿈치에서 딱 소리가 나게 발을 모으면서 군대식 거수경례를 하였다.

《우리는 강선제강소 자치위원회 지시로 공장을 지키고있습니다.》

청년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면서 큰소리로 보고하였다. 그렇게 되자 경비실에서는 2명의 그 나이또래 청년이 또 달려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세 청년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면서 수고한다고 고무의 말씀을 하여주시였다.

《좋소, 좋아. 대단히 마음에 듭니다. 우리 공장인데 우리가 지켜야지. 수고들 합니다.》

그이께서는 량쪽팔로 허리를 짚으시고 공장안을 빙 둘러보시였다.

《그래 지금 무엇들을 하고있습니까?》

청년들의 설명에 의하면 공장은 전부 멎어있고 직장마다 경비서는 사람들이 몇명씩 있을뿐이라고 하였다.

일행은 장군님을 모시고 우선 제선직장에 들리였다. 널다란 직장안은 휑뎅그렁 비여있었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질이 좋은 철선을 뽑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뻘겋게 녹이 쓴 쇠줄퉁구리 몇개가 널려있을뿐이다. 일본놈들은 패망하면서 어느 기대 하나 성한것이 없이 모조리 파괴했던것이다. 말로 들으실 때보다 현장에 와 목격하시니 그 정상이 더 처참하였다. 그 모든것가운데서도 가장 가슴아프신것은 침울한 표정을 하고 기대옆에 서있는 로동자들의 기분상태였다. l 000명 가깝던 종업원이 200명밖에 남지 않고 다 흩어졌다. 그가운데는 장마당에서 열쇠장사를 하던 그 로동자도 끼여있을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제선직장에서 곧 제강직장으로 옮겨가시였다. 공장의 심장부라고 할수 있는 여기에는 전기로가 2대 있는데 그것도 모두 파괴되여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이께서는 불이 꺼진 로벽을 짚어도 보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쇠장대와 곰배를 들어옮겨도 놓으시면서 한동안 말없이 걸으시였다. 불길을 내뿜던 아구리에서는 휘지근한 바람이 내불리고 얼어붙은 쇠덩이우로는 이름모를 벌레 1마리가 기여가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주먹으로 로벽을 툭툭 치시면서 《완전히 숨이 멎었군.》하고 옆에 서있는 최준걸을 쳐다보시였다.

최준걸은 머리에 썼던 캪을 벗어들고 허리를 약간 굽히면서 《그렇습니다. 현재 제가 알고있기에는 북조선의 용광로, 강철로가 모두 이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하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마치 이 사태가 자기에 의해 저질러지기나 한것처럼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이의 음성이 어떻게나 컸던지 철골로 떠받들린 천정까지 울리였다. 그것은 최준걸에게 하시는 말씀도 아니였으며 두리에 모여선 로동자들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도 아니였다. 그 음조에서는 분명히 단호하고 결정적인, 그러면서도 적의에 불타는 열도와 결의를 강하게 느낄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로동자들을 모이게 하라고 하시였다.

삽시간에 로동자들이 수십명 모여왔다. 그중에는 한 50이 가까운 중년도 있었고 열대여섯살 나보이는 소년도 있었다.

《여기 이렇게 선체로 이야기를 좀 합시다.》하고 그이께서는 쇠장대를 가로타고넘어 로동자들이 모여선 앞으로 몇걸음 다가서시였다. 《보는바와 같이 강철로는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로동계급은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일제통치에서 영원히 해방됐습니다. 우리는 해방된 조선의 로동계급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신 그이의 말씀은 거침없이 흘러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비참하게 파괴된 공장을 보고 또 그만 못지 않게 가라앉은 로동계급의 감정에 신심을 주려고 하시였지만 그렇게만 되시지 않았다. 여직까지 해방된 조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것을 죄다 이야기하고싶으시였다. 그간 군중과 접촉하실 기회가 없었고 강철로동자와 같은 산업로동자들은 더구나 만나신적이 없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마치 이웃사람들과 이야기하는것처럼 조용조용히 신창탄광 탄부의 열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시였다. 그러시고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공장을 우리 손으로 복구해서 쇠물을 뽑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일본놈들이 다시는 여기서 쇠물이 나오지 못할것으로 생각하는데 기어코 조선로동계급의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말씀을 끝내신 그이께서는 상의 단추를 끄르고나서 그중 나이어린 로동자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온 얼굴에 눈만 반짝거리는 열댓살 나보이는 소년인데 저고리소매는 손끝을 가리우고 발에는 말박만한 지하족을 신었다. 그이께서는 거북등같이 튼 손을 만져보시면서 여기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시였다.

소년은 불찌에 타서 구멍이 숭숭한 모자를 벗어들고 로에 빠져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것저것 심부름을 했다고 하였다.

《보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선로동계급의 처지입니다.》

그이께서는 소년의 손목을 끌어 슬라크무지우에 올려세우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이제부터 수고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동무들이 나라의 주인이며 공장의 주인입니다. 주인인 동무들이 빨리 쇠물을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일어설수 있습니다. 강철이 있어야 석탄도 캐고 철도가 움직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돈이 없어 로임을 줄수 없습니다. 쌀창고가 비여있어서 배급도 인차 줄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앉아서 신세타령이나 하다가 일본놈대신에 다른 자본가가 와서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를 기다리겠는가 아니면 애국심을 가지고 일어나서 강철을 구워내겠는가.》

《강철을 굽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노예가 될수 없습니다.》

구레나룻이 꺼멓고 키가 큰 중년사나이가 앞으로 성큼 나서면서 불같은 결의를 내뿜었다. 뒤이어 다른 로동자들도 주먹을 흔들며 노예로 될수 없으니 혁띠를 조르고라도 로를 복구해서 쇠물을 뽑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그들의 결의는 눈물이 날만치 고마운것이였다.

《최동무!》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옆에 섰던 최준걸을 쳐다보시였다. 《이 동무들은 해내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걸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준걸은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여태 보아온 로동자는 이렇지 않았다. 일본 북해도에서도 그렇고 만주의 장춘, 조선의 무산 철광 그리고 얼마전까지 자기가 있었던 백년광산의 로동자들 모두가 하루의 로임과 하루의 식량배급을 위해 삽이나 괭이를 들고 힘겹게 로동을 했었다. 그는 감격에 겨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채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서처럼 모두 이렇게, 전체 조선로동계급이 들고일어나면 곧 로임도 주게 될것이고 식량도 실어오며 따라서 모든것이 정상화될것이라고 하시였다.

말씀을 끝내신 그이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담으시고 맨 선참으로 결의해나선 중년로동자에게 물으시였다. 그는 금년 40세인 리만석이란 용해공이였다.

《동무는 어떻게 돼서 그렇게 좋은일에 앞장설 결심을 했습니까?》

리만석은 벗어들었던 모자를 공연히 주물럭거리다가 대답하였다.

《저는 공산당원입니다.》

《공산당원이란말이지. 그래 언제 당원이 되였습니까.》

《닷새전에 되였습니다. 박원식이라는 동지가 방조를 주어 들었습니다. 오늘저녁에 5명으로 세포를 내오게 됩니다.》

《박원식동무가? 그래 그 동무가 여기 와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평양기관구에서 기관차를 수리하는데 강철소재를 구하러 와있습니다. 지금 저 분괴직장앞에서 철무지를 뒤지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이미부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던 박원식이 날파람있게 움직이는데는 놀라시지 않을수 없었다.

일단 담화를 끝내신 그이께서는 경위대원 최동무에게 박원식이 일하는데 가보라고 하시였다. 강철직장 쇠란간을 밟으며 내리시던 그이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최준걸동무! 저 동무들 결의가 실현될것 같습니까?》

《꼭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무!》하고 그이께서는 공산당원이라는 그 중년로동자를 향해 물으시였다. 《기술자는 있습니까, 누가 싸늘하게 식은 저 로에 숨을 불어넣습니까, 주먹치기론 안될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문젭니다. 그러나 해보겠습니다.》

리만석은 발을 모으고 크게 대답하였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기술은 열성만으로 대신 못합니다.》

이렇게 되여 강철직장마당에서 다시 담화가 시작되였다.

해방전까지만 해도 이 공장에서 직공장이상, 계장이상은 전부 일본사람이 해먹었다. 특히 강철직장과 분괴직장에는 반장까지 일본사람들이 독차지했었다. 그런데 일본가서 류학한 양춘만기사 단 1명만이 강철직장 기사로 있었다. 양춘만의 구상으로 제3호전기로를 건설하던중이였는데 해방된 다음날 왜놈들을 두들겨팰 때 어느 사이에 빠졌는데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그 기사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누가 그한테 친일파라는 딱지라도 불인것이 아닙니까?》

리만석은 자세히 말씀올리였다. 어떤 사람은 양춘만이 서울로 달아났다고도 하고 룡강에서 이름난 지주인 아버지한테 가서 숨어있을것이라고 한다는것이다. 그가 도망친 리유는 로동자들이 몰아준것때문이 아니고 순전히 자기가 일제에게 복무한것이 가책이 되여 그런것이라고 하였다.

《그래 동무네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기술자가 없이도 강철을 뽑을수 있을것 같습니까?》

번연한것인데도 그이께서는 로동자들스스로가 판단을 하도록 하시려는것이다.

《우리들도 그걸 몇번 토의해보았습니다. 기술을 좀 안다는축들은 양춘만을 데려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러루한 기술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부 로동자들은 왜놈의 앞잡이노릇을 하던자들을 또 섬길 생각을 하지 말고 경험을 살려서 우리끼리 해보자고 합니다.》

《그래···》 그이께서는 약간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뒤짐을 지신채 마당을 한참이나 거닐으시던 그이께서는 리만석이 앞에서 멈추어서시더니 《양춘만기사는 독신이였습니까?》하고 물으시였다.

《가정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아이 하나가 있습니다.》

《가족들도 동시에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가족은 사원사택에 지금도 있습니다.》

《가족은 있다!》

잠간 무엇을 생각하고나신 그이께서는 고개를 드시더니 여기 로동조합이 나왔다는데 거기로 가보자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로동조합일군들과 한참동안 담화하시고나서 산기슭에 자리잡은 사원사택마을로 가시였다. 양춘만의 집은 맨 우쪽에 위치하고있었다. 리만석이 앞장에 서서 안내하였다. 집은 볼꼴이 못되였다. 유리창이 깨지고 창호지는 뜯어져 너덜거리고 마당은 비를 대본지가 오래돼서 검불이 한벌 널려있었다. 현관에는 녀자고무신이 1컬레 놓여있었는데 애오라지 그것 하나만이 이 집에 사람이 살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아주마니 있소?》

거쉰 목소리로 리만석이 몇번 부르건만 방안에서는 가뭇 대답이 없다. 하는수 없이 리만석이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당한켠에 멀찍이 서시여 박원식이와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로동복을 입은 박원식은 그후 사업을 보고하노라고 신바람이 났다. 닷새동안에 기관차부속을 깎을수 있는 소재를 1자동차분 구했다고 하였다. 그것이면 기관차 2~3대는 문제없이 수리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도 중요하지만 공장안에 세포를 내올수 있게 한것이 더 큰일이라고 치하하시였다.

그때 리만석의 목소리와 함께 녀인의 울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염열의 독기를 잃어버리고 벌써 매우 온화해진 가을의 저녁해빛이 주택거리를 덮었는데 난데없는 처절한 녀인의 울음소리가 불길하게 물결쳐나갔다. 비통하게 울리는 녀인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섬찍해지신 그이께서는 급히 마당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리만석은 미닫이문을 쩍 열어제끼더니 밖을 내다보라고 손짓을 하면서 방바닥에 드러누운 녀인을 들어일쿠려고 하였다.

《손님들이 찾아와서 말을 좀 묻자는데 이러문 되겠소, 아주머니.》

그러거나말거나 머리를 풀어헤친 녀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너살 나보이는 사내애를 부둥켜안는다. 그러고나서 녀인은 몸부림을 치면서 무어라고 설분을 터뜨리고있다.

《아주머니, 불을 지르긴 누가 지른다고 그러우. 또 죽이긴 누가 죽여요. 누가 그럽데까. 공산당이 사람죽인다고. 정 그러면 이건 참 야단입니다.》 리만석이 하는 말로 미루어보아 녀인이 무엇때문에 그렇게 악에 받쳐있는지 알수 있었다. 《아주머니, 다른 사람이 아니구 평양에서 손님이 오셨수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요! 참.》 리만석은 자기가 모시고 온분이 장군님이신줄은 모르고 그저 《평양에서 오신 손님》이라고 표현하였다.

《글쎄 나도 모른다는데 왜 자꾸 못살게 굴어요. 왜 자꾸!》

《하! 이런 딱한 일봤나. 그래두 안해되는 사람이 제 남편 어데갔는지 행방이야 모르겠소.》

《몰라요, 몰라요.》

《정 이러면 재미없어요. 까놓고 말하면 양춘만이가 노상 죄가 없는게 아니란말입니다. 왜놈의 정사원이지 일본 <천황>의 상장까지 받았지.》

《그러니 어서 맘대로 하라고 하지 않소.》

악에 받친 녀인이 입술을 씹는 소리가 들린다.

끝내 설복해낼수 없다고 본 리만석은 쓴입을 쩝쩝 다시면서 마루밑으로 내려선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엌쪽 마루에 걸터앉으시며 난처한 기색을 보이고있는 리만석에게 물으시였다.

《내 보기엔 며칠동안 밥도 해자신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됐습니까?》

《먹으며 말며 한것 같습니다. 너무 맥이 없어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아이는 배앓이를 해서 숨이 할싹할싹합니다.》

그이께서는 부엌으로 들어가시였다. 쌀독도 열어보고 가시물그릇도 살펴보시였다.

부엌에서 나오신 그이께서는 열려진 방문을 통해서 양춘만의 생활일단을 어렵지 않게 간별해보실수 있었다. 웃방에는 일어와 영어 등으로 된 기술서적이 한쪽 벽 절반을 채우고있고 왼쪽 뙤창이 있는곳에는 자그마한 액틀에 밀레의 《만종》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몬나 리자》가 붙어있었다. 액틀밑에는 유리를 넣은 책장이 하나 놓여있는데 거기에는 각종 철강재의 시료편들이 들어있었다. 방바닥에는 여기저기 책들이 널리였다. 미루어보건대 이 방의 정경은 양춘만기사의 정신적초상일수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저녁해가 비쳐든 널마루에 걸터앉으시여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 책이나 집어드시였다. 두툼한 일문판인데 표지에는 《제철의 유래》라고 씌여있었다. 필자의 이름을 보니 영국의 학자가 입문서적으로 집필한것이였다. 책에는 고대 인간이 처음 련철을 얻게 된 경위가 적혀있었다. 다음에 손에 잡힌것은 세계문학선집인데 록색장정을 하고 금박을 누른 《일리아드》였다. 그이께서는 영문판서적을 또 집어드시였다. 《열풍로》였다. 어딘가 사창장마당에서 가져왔던 그 책들과 류사하게 느껴지시였다. 책주가 속가위에 적은 수표가 비슷하기때문이였다. 그러고보니 서가와 책의 비례가 맞지 않았다. 엄청나게 책이 모자랐다.

《리만석동무! 여기 있던 책들을 누가 실어간것이 아닙니까?》

아래방에서 서성거리고있던 리만석이 대답을 올리였다.

《중화에 있다는 삼촌네가 달구지에 실어갔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고야 책이지 책은 해 뭘하느냐고 하면서 책을 팔아 아이한테 약을 사먹여야겠다고 했답니다.》

《그렇단말이지···》

김일성동지께서는 혼자말씀처럼 뇌이시며 머리를 천천히 끄덕이시였다.

아래방에는 이집 녀인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끅끅 숨을 몰아쉬고있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말로 깨우치고 납득시키기는 어려운것이다. 그이께서는 가슴에 손을 짚으신채로 마당가로 나서면서 말씀하시였다.

《공장이 파괴되고 먹을것이 없는것보다 이것은 몇배 더 가슴아픈 일입니다. 사람을 잃어버리다니 우리는 그래도 사람이 있기만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다시 일어설수 있으리라고 믿고있었습니다. 흩어져간 로동자들은 돌아오라고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 이 양춘만은 사정이 다릅니다. 제손으로 제 무덤을 파고있습니다. 그래서 더 통분합니다. 만석동무, 동무는 양춘만기사를 찾아와야 하겠습니다. 어데든 따라가 찾아오시오. 동무는 공산당원의 첫 사업으로 그것을 맡아야겠습니다. 양춘만이 없으면 공장이 못돌아가고 강철이 못나와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양춘만을 버리지 않는다는것을 꼭 알게 해야 합니다. 공산당이 일본회사에 복무한 기사이기때문에 없애치울것이라고 한것은 일본놈의 악선전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게 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 집의 정상을 보시오. 눈을 뜨고 볼수 없습니다. 만석동무,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준걸에게 다른 의견이 더 없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최준걸은 이미부터 안경을 벗어들고 자기가 서있는 땅을 근엄하게 내려다보고있을뿐이였다. 그이의 말씀은 귀로 듣는다기보다 자기가 딛고선 대지가 울려 온몸에 파동쳐오는것으로 느껴지였다.

그이께서는 토방으로 올라가 창백해진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시였다. 손이 화끈하였다.

《열이 있구만.》

그이께서는 녀인의 어깨를 흔드시였다.

《아주머니, 걱정할건 없습니다. 아이가 열이 많은데 우선 약을 사다먹여야 할것 같습니다.》

이 한마디의 말씀이 녀인의 귀와 가슴을 쿵 하고 울려놓았다. 여태까지 마당에서 두런두런 울려오는 말소리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들을수 없었고 또 새겨들으려고도 하지 않고있었다. 뭐라뭐라 하다가 방에 뛰여들어와 포승을 지우고 어디론가 실어가버릴거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앓는 아이걱정을 하다니?! 한껏 공포에 질려있던 녀인의 눈에 의혹과 불안의 빛이 떠돌았다. 무엇인가 새로운것을 찾아내려는듯 녀인은 손님들의 기색을 하나하나 집요하게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가슴은 다시 싸늘하게 식어들기 시작하였다. 자기와 아이를 두고 떠나면서 남편이 남겨놓은 마지막부탁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되새겨졌기때문이다. 《이제 여기는 공산주의판이 될거요. 공산주의는 우리같은 기술자들을 다 청산해버린다고 하오. 알겠소? 그러나 어떻게 하든지 죽지말고 살아있소. 내 데리러 오겠소. 꼭 데리러 오겠소.》 녀인은 남편의 이 맡을 티끌만한 의심도 없이 내심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녀학교를 다닐 때 훈육시간에 공산주의는 재산도 공동소유이며 처도 아이들도 다 공동소유로 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지금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고있다. 인정도 있는것 같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본심이 아닐것이다.

녀인은 소스라쳐 일어나앉으며 아이곁에 앉아계시는분을 쳐다보았다. 처량한 그의 두눈에서는 애절한 마음의 호소가 풍겨나오는듯싶었다.

(우리를 살려주세요,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아! 당신네들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군요.)

촉촉히 젖은 긴 살눈섭밑에서 애처롭게 깜박이는 선량한 녀인의 시선은 사람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허비였다. 그러나 당장 어떻게 하는수가 없었다. 그래 그이께서는 말로써라도 위안을 남기고싶어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시다가 떠나기로 하시였다.

《일제의 악선전은 사람을 저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리만석동무!》하고 그이께서는 마당에 내려서시여 녀인이 누운 방안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시였다. 《저 어린애 병이 중합니다. 급히 의사를 데려다가 보여야 할것 같습니다.》

리만석은 한걸음 나서서 주의깊이 듣고는 있었지만 석연한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네! 그런데 의사가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장에 있던 의사는 원산에 있는 자기 고향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룡강이나 강서읍에 의사가 없습니까?》

《이전에는 공의가 하나씩 있기는 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곧 가보겠습니다.》

《꼭 의사의 치료를 받도록 하시오. 열이 높고 기력이 진했습니다. 그럼 수고해주시오.》

장군님을 모시고 차에 앉은 사람들은 누구도 말이 없었다. 리만석이와 몇명의 열성로동자들 그리고 기관차 3대분의 수리자재를 얻었다면서 좋아하던 박원식이 한길까지 따라나와 바래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운전수옆 앞좌석에 앉으시여 줄곧 창밖을 내다보고계시였다. 아침에 오실 때처럼 낯익은 정경이 다시 펼쳐졌다.

순화강이다. 흐르는듯마는듯 잔잔한 물줄기는 다정하게 만경대를 그러안고있다. 빨간 잠자리가 그리도 많아 맨발로 방천을 내달으시던 그 언덕에는 생당쑥이 길이 넘게 자라 흐느적인다. 석양을 받기 시작한 잔디판은 곱게 빗어넘긴 노랑머리같다. 산기슭에 듬성듬성 덩굴이 져있는 활엽수들은 온 여름내 입고있던 푸른 옷을 벗어던지고 붉기도 하고 혹은 누렇기도 한 색옷으로 단장하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불 때면 백양나무잎이 새떼 날아오르듯 허공에 떴다가는 달달달 소리를 내며 길바닥을 굴러가고있다. 차가 굽이를 돌게 되자 그것들은 단번에 뒤로 밀려갔다가 다시 서서히 다가오군 한다. 그럴때면 현실과 명상간에 한계가 없어지면서 생각이 더 깊은데로 잦아든다.

(양춘만이는 이제 어떻게 될것인가.)하고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그는 지금 스스로 자기를 일제의 운명과 한자리에 놓고있다. 숨기는 왜 숨는가. 만약 죄가 있다면 그대로 있으면서 로동자들이 안기는 벌을 받아안아야 할것이 아닌가. 로동자들은 그가 죄를 진것만큼 처벌했을것이다. 하긴 그로서는 그렇게 할만한 담이 없었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어디에 가있을것인가? 십중팔구는 서울로 달아났을것이다. 우선은 피신했다가 기회를 보아 자기행로를 선택하자는 속심일것이다. 어쨌든 그도 다른 인테리들과 마찬가지로 어데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있는것이 분명하다. 전날에 만났던 강병철이와 위치가 다를뿐이지 처지는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그들자체도 그를 돌려세우기 어렵다고 보는데 우리가 과연 그를 돌려세워낼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스스로 자신을 우리와 적대관계에 놓고있다. 바로 이것이 식민지인테리의 가긍한 처지인것이다. 그를 버려두면 결국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죄》때문에 한생 기를 펴지 못하고 살다말것이다.

순간 김일성동지의 눈앞에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고있는 녀인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피기없는 아이를 가슴에 꽉 그러안았는데 그 팔은 걷잡을수 없이 와들와들 떨리였고 공포에 질려 파릿해진 눈은 분명히 동정을 바라고있었다. 녀인은 지금도 슬픔에 잠겨 울고있을것이다.

승용차는 다시 남리등판이 바라보이는 한길어름에 나섰다. 양춘만일가때문에 착잡하고 처절한 감정에 사로잡혀계시였지만 20년전에 떠난 고향마을어구가 저쯤 바라보이게 되자 그이께서는 홀연 다른 생각에 잠기시였다. 앞에 보이는 순화강을 건너 등성이를 하나 넘으면 나서자라신 고향집이 있다. 그이께서는 싸리로 엮었던 사립문안에 들어서는 장면을 상상해보시였다. 허리굽은 할머님께서 버선발로 달려나오신다. 첫마디로 《왜 이제야 왔느냐.》하실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 어머니는 어따 두고 왜 혼자 왔느냐?》고 물으실것이다. 《할머니, 용서해주십시오. 늦어졌습니다. 내 나라 이 땅에 갖가지 사연이 하도 많아 인차 여기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올리게 될것이다.

차창턱을 잡으신 손이 땀에 질적해졌지만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창밖을 내다보고계시였다. 이제는 칠골이다. 어머님의 얼굴이 차창이 하나가득 확대되여 나타났다. 소사하 토기점골에서 마지막으로 뵙던 그 얼굴이다. 남만으로 떠나던 6월의 그날 문설주를 잡으시고 《왜 빙빙 감돌고만 있느냐, 어서 떠나거라. 집걱정을 하면 큰일을 못한다》하시던 그 모습이다. 추억이 이렇게도 생동하게 되살아날줄은 몰랐다.

보통강이 가로질린 길어름에 이르자 그이께서는 방금전에 잠들고있는 아이의 머리를 짚어보던 생각이 나셨다. 그 녀인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리만석은 의사를 데리러 떠났을가? 읍에 의사가 있기나 하겠는가?

《차를 세우시오!》

그이께서 최동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시며 말씀하시였다.

《차를 돌려서 이제 그 집으로 다시 갔다오시오.》

《알았습니다. 저는 다른 차를 리용하겠습니다.》

《아이와 아주머니를 태우고 평양으로 급히 들어오시오. 그냥 버려두면 아이가 살아날수 없소.》

최동무는 군용차를 돌려세워가지고 강선으로 급히 달렸다. 양춘만의 집에 도착한 그는 다짜고짜로 방안에 들어가 녀인을 들어일쿠려 하였다.

《아이를 살려야겠습니다. 빨리 갑시다.》

《군대어른! 우릴 제발 건드리지 말아주어요.》

《아주머니, 왜 자꾸 그렇게 삐뚤게만 생각합니까!》

최동무는 화가 나서 고함을 치다싶이 웨치였다.

《일어나시오, 빨리.》

아이를 빼앗아 포대기에 싸기 시작하자 녀인은 자리를 뜨고 일어났다.

최동무는 아이를 안고 녀인을 떠밀어 차에 앉히였다.

차가 떠나게 되자 녀인은 아이를 가슴에 와락 그러안으며 울음을 터치였다.

자동차는 살같이 평양을 향해 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