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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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은 오래간만에 머리를 감고 비누세수를 하였으며 깐깐하게 의복차림을 하였다. 이제 서울까지의 로정에서 몇번이나 죽탕이 될는지 알수 없지만 그래도 당장은 제 본색차림을 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삯을 주었더니 와이샤쯔 목깃이 눈부시게 희여졌고 바지주름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거울앞에서 찌크를 발라 머리를 재우고 향수를 뿌린 다음 작년에 야하다에서 산 물방울무늬의 곤색넥타이를 매였다. 이제 트렁크를 들고나서서 원시범을 만나 《난 간다. 잘 있으라.》하고 거뜬히 발걸음을 돌리면 될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어덴가 딱히 짚어댈수 없는 미흡한것때문에 몹시 망설이고있었다. 시간은 벌써 중낮이 지났다. 우선 그를 이렇게 바재이게 한것은 원시범이 잘가라 할것 같지 않은 위구였다.

(이제 내가 서울로 간다치자)하고 그는 한걸음 내떠 추리해보았다. 거기는 또 거기대로 예측할수 없는 운명의 오솔길이 나질것이다. 여태 모든것이 그러했으니까 거기서도 또 몇바르가 될지 알수 없는 생활파고를 필사적으로 헤염쳐넘어야 한다.

강병철은 상의를 다시 벗어 벽장에 걸고 다다미우에 번듯이 누워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명상에 잠기였다. 생각할수록 천평의 바늘은 쉴새없이 북과 남사이에서 한들거리고있다.

그런데 박창술은 어제아침에 떠난후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면 간다고 할것이고 또 결과가 어떻게 됐다고 기별이라도 있음직한데 통 소식이 없다. 하긴 아직도 길거리를 무작정 헤매고있을지도 모른다.

삐걱삐걱 마루 밟는소리가 나더니 문기척소리가 난다. 《누구요?》하고 강병철은 누운채로 고개를 들었다.

《이 방이 강병철선생이 계신 방이 옳습니까?》

《네!》

하고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신통히도 박원식이와 비슷한 푸른 옷의 군대가 앞에 서있다. 놀라움과 함께 이름할수 없는 기쁨이 앞서서 반갑게 맞이하는데 저편에서는 자기네 정치위원동지께서 면회를 청한다고 하였다.

《아! 그래요. 저는 강병철이라고 하는데 이름을 혹시 혼돈한것이 아닙니까?》

《일본서 건너와 대구에 있다가 온 야금전문가 강병철씨가 틀림없겠지요.》

《네. 네! 그렇습니다.》

강병철은 쾌히 대답하고나서 그러면 어데로 가면 만나뵈올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군대의 뒤를 따라 대동강쪽이 내다보이는 본정으로 올라갔다.

자그마한 정원이 있고 2층으로 되였는데 지은지 오래지 않은 일본식 건물이였다. 2층층계를 오르는데 젊은분이 마주나오시였다.

《강병철선생입니까.》

《네! 제가 강병철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려관으로 갈가 하다가 조용히 의논할만한 장소를 택하다보니 이렇게 되였습니다. 량해하십시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같은 사람을 찾아주신것만해도 감사합니다.》

강병철은 허리를 굽혀 경례를 하였다.

그분은 키가 후리후리하고 목소리가 우렁우렁하였으며 얼굴에는 인자한 웃음이 함뿍 어려있었다. 때문에 옷이 군복이다뿐이지 군인다운 엄격성이나 어떤 격식같은것은 전혀 느낄수 없었다.

다다미방에는 키낮은 탁자가 놓이고 량옆에 눈부시게 흰 방석이 놓여있었다. 자개를 박은 옻칠쟁반에는 차잔이 놓여있었는데 려관에 안내하러 왔던 젊은 군인이 차를 부어 권하였다.

그이께서는 담배를 피우라고 하면서 담배와 성냥을 앞으로 밀어내놓으시였다. 그러는 순간순간에강병철은 전혀 예상할수 없었던 상대편의 표상과 인품을 가늠해보려고 하였다. 군대, 그러니까 김일성장군님부대의 높은 간부이심에 틀림없을것이였다.

강병철의 머리에는 한순간에 여러갈래의 의문이 떠올랐다. 김일성장군님의 군대와 강병철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그 무엇으로써도 도저히 련결시켜낼수 없었다. 사상과 리념에 있어서나 기술면에 있어서 또는 개인적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것에서도 류사한 점은 찾아볼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존대해야 할 손님의 인사치레에만 급급하면서 정신을 극도로 긴장시키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에 놓인 차잔을 한옆으로 밀어놓으시며 나직이 말머리를 떼시였다.

《강철문제를 좀 의논하자고 이렇게 수고를 끼치게 되였습니다.》

《네? 강철문제라구요?》

그것은 정말 뜻밖이였다.

《그렇습니다.》

《군사적목적에 필요되는 강철이라면 그것은 높은 질적지표를 예견해야 할것입니다. 더구나 저는 조선에서의 강철은 생소합니다.》

그는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분의 예지에 빛나는 시선이라든가 구구한 전제가 없이 직발 용무에로 끌어들이시는 과감성같은데 질려 자기를 무턱대고 낮추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드는것이 없었다.

《군사적목적이 아니라 우선 탄광, 광산에서 쓰는 정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철도에서 기관차나 화차를 수리하는 강철이 필요합니다. 빠를수록 좋고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성급하게 대답을 기다리시지 않고 해빛이 눈부시게 비쳐들고있는 유리창을 쳐다보시였다. 창문에는 알룩알룩한 말벌 한마리가 웅웅 소리를 내며 날아돌다가 유리에 부딪쳐 미끄러져 내리였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요구가 리해됩니까?》

잠간 시간이 흐른뒤에 그이께서는 상의단추를 하나 테놓으시면서 물으시였다.

강병철은 공연히 여러갈래의 의문에 질려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면서 자기 심정을 터놓았다.

《저는 강철을 위해 여직 살았고 또 한생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첫 걸음부터 똑같은 점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매우 기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첫 인상이 좋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까다로울것 같던 상대편에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개방하는것을 보고 마음을 놓게 되시였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자리에서 우리가 조선의 강철을 론의하는것은 일종의 환상입니다. 왜 그런가고 물으시겠지요? 그 리유는 이렇습니다. 현재 조선의 공업실태는 너무나 참혹합니다. 너무나 많이 혹사당했고 파괴되였습니다. 제가 목격했거나 들어 알고있는데 의하면 조선의 기간공업은 전적으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강병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계속하였다.

《지금 북에서나 남에서나 현재로서는 먹고 입고 불때는것을 중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서울도 그렇고 또 여기 평양도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철이라고 표현하는것은 조선의 공업을 말하는것이며 따라서 과학과 기술을 가진 인간의 지성을 말합니다. 지성을 존중한다는 말은 3천리 어데가나 한마디도 들을수 없고 다만 왕권이다, 공산주의다, 공화제다 하는 정치제도에 대한 주장들뿐입니다. 제가 보건대는 지금 이 땅에는 정치가 너무 많아 넘쳐나는데 지성인을 위한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상 기존정치는 복잡한것같으면서도 뻔드름하지 않습니까. 한데 맑스주의자들은 지성인에 대해서 이것은 사회간층인데 항상 통치계급에게 복무하게 되여있으며 동요계층이라고 합니다. 요컨대 이 각양한 정치의 속심에는 공통된 점이 있는데 이것이 현재 강철을 론의하는것이 하나의 환상이라는 론거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강병철은 문득 하던 말을 중단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이상 론리가 벗어져나갔고 자신의 기분을 너무 로골적으로 그리고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는 위구가 생기였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참을성있게 일단 들어보기로 하시였다.

방안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을 때 그이께서는 《내가 보기에는 이자 그뒤의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것 같습니다.》하고 저편의 표정을 살피시였다.

강병철은 다시한번 상상외의 반응에 부닥치게 되여 의아쩍은 시선으로 그이를 쳐다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병철을 마주보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강철에 앞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중시합니다. 다시말해서 기술을 가진 인간을 말입니다. 우리한테는 강철에 얽매인 기술자가 아니라 강철을 자기 손에 장악한 기술자가 필요한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강병철은 담배를 손에 들기는 하였지만 불은 달지 않고 성냥갑만 방바닥에 굴리고있다.

《리해가 가지 않는다면 잠간 설명을 해야겠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의혹에 잠긴 강병철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얼마전까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왔습니다. 그때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조선인민이 가지고있는 불타는 적개심과 반항심 그리고 끝없는 희생정신으로 적을 치고 이기는것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장기간의 무장투쟁을 전개하게 되였고 마침내는 승리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인민의 무한한 창조적열정과 비상히 높은 재능을 요구합니다. 그래야 강철을 만들고 석탄도 캐고 식량을 생산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정치도 없고 독립도 없으며 우리 민족의 장래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인차 어느 강대국에 다시 먹히우고맙니다. 또 지금 당장 우리 인민을 굶주림에서 구원할수도 없습니다. 자, 보시오. 사정이 이런데 우리가 조선의 지식인을 무시할수 있겠습니까? 해방이 좋다고 하지만 사흘만 굶고나면 그 기쁨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말것입니다.》

강병철은 고도로 신경을 긴장시키고 앉아있었다. 어느 하나도 반박할것이 없었고 수긍되지 않는것이 없었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바에는 여직까지 그의 가슴에 옹이로 맺혔던 몇가지 문제를 가지고 론의해보고싶었다.

그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을 떼였다.

《참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남북3천리 어데가도 지성을 귀중히 한다는 말을 들어볼수 없고 먹을것 입을것을 걱정하는데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가슴에 사무치게 감격스러운 말을 들어봅니다. 마치 어둔 밤에 한점의 불꽃을 보는것과 같습니다. 그러나···》하고 그는 괴로운 낯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절반 비관절반이 엇섞여있어서 한마디로 표정을 가늠할수 없었다. 《그러나··· 재삼 말씀드립니다만 조선에서 강철은 현재 불가능합니다.》

《그건 어째서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긴장해지시면서 상대편의 감정변화를 지키고계시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제는 군사와 다릅니다. 명령해서 되지 않습니다. 물론 설비를 장치하고 로력을 배치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에 들어가서는 명령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현재 기술이 너무 무시돼있습니다.》

이때 강병철은 시장에서 기술도서를 파지로 팔고있던 장면을 상기하였다. 그렇게 되자 가슴이 조여들면서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의 탓이기보다 일제의 우민화정책에 의한것입니다. 때문에 강선생과 같은 기술자들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힘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강철은 철광산 막장에서 시작돼서 분괴기의 압착틀을 빠져나올 때까지 기술의 바다를 헤염쳐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지금 형편을 본다면 경제도 0이고 기술도 거의나 0입니다. 저도 기술자로 자처해왔지만 시체처럼 식어든 공장을 소생시킬 힘이 없으며 그럴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왜정때는 일본놈때문에 그렇다치고 해방이 된 오늘에야 우리가 왜 허리를 펴고 일어서지 못하겠습니까.》

감정이 이 방향으로 나가다가는 원시범의 앞에서처럼 곧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을 쏟는데로 나갈것 같아 그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알만합니다. 그러나 선생이 가령 이런것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며칠전에 우리 동무들이 사창장마당에 나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어느 한 녀인이 파지를 팔고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야금학과 관련한 기술도서들이였습니다. 떡장사, 지짐장사들이 5전이나 10전을 내고 책을 하나씩 들어가고있었습니다. 그때 어느한 젊은이가 나타나 그렇게 팔지 말고 집에 되가져다 잘 보관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에 잘 응하지 않게 되자 안경을 꼈다는 그 젊은이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주면서 이제 내 나라가 생기면 이것이 금덩이처럼 귀중한것이니 잘 간수해두길 바란다고 애원하더랍니다. 보시오. 이것은 웃지 못할 하나의 일화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것은 암흑의 대지에 떨어진 하나의 불꽃입니다. 이런 애국자가 한둘이 아니겠는데 왜 우리가 그 암흑을 태우고 일어서지 못하겠습니까. 우리 인민은 일어섭니다. 지금 전체 인민이 제 나라를 세우겠다고 활화산처럼 열기를 내뿜고있습니다. 며칠전에 우리가 철도에 나가보았는데 기차손님들이 달라붙어 전복된 기관차를 들어일구고있었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강선생도 이제 시작만하면 사창장마당에 나타났던 그런 불꽃이 사방에서 날아들것입니다. 강선생! 이래도 안되겠습니까?》

정열에 불타고계시는 그이의 얼굴을 지켜보고있던 강병철은 가슴이 울렁거려 몸을 진정할수 없었다. 별치 않은 일로 생각되였던 일이 그토록 값높이 인정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수건으로 입을 싸쥐고 돌아앉은 그는 저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였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모로 보나 비범한분앞에서 흥분을 앞세우거나 또는 그런것으로 해서 경망해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잠시후 그는 마음을 진정하고 말하였다.

《그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 기술자이긴 하지만 자본가의 자식입니다. 이를테면 공산당에서 꺼려하는 프로레타리아독재대상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약간 놀라시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시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강선생은 그 사람을 어떻게 되여 알고있습니까?》

강병철은 그만 당황한 표정을 짓고 머뭇거리였다. 자기라고 말씀드리자니 어색한 일이고 그저 아는 사람이라고 하자니 근거를 캐실것만 같고 해서 공연히 안절부절 못하고있다.

그의 이상한 거동을 낱낱이 여겨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아니, 그게 강선생이였단말입니까?》하고 대뜸 물으시였다.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그만 실언을 한것 같습니다.》

이윽토록 감심어린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새겨보시던 그이께서는 천천히 눈길을 돌리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래도 지금까지 그 안경낀 고마운 젊은이를 마음속으로 늘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선생은 그 젊은이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대체 공산당에서 독재대상으로 취급한다는 말은 어디서 들은 소립니까.》

《그거야 공산당선언에 그렇게 씌여있고 또 로씨야에서 실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강선생, 우리는 지금 조선혁명을 론하는중이지 로씨야를 론하지 않습니다. 거기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기 위한것이였고 우리는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돼서 새 나라를 세우자고 하는중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우리는 자본가의 자식뿐아니라 자본가자체도 건국사업에 나서라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로동계급혼자서 나라를 세우고 독판치자는것이 아니라 전체 인민이 참가해서 나라를 세워 전체 인민이 번영하고 잘살게 하자는것입니다. 우리는 이미전부터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 이외에 무엇이 또 요구되며 무엇을 더 해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면 기왕 말이 난김에 한가지 더 묻겠습니다. 이거 자꾸 따지는것 같아 매우 안됐습니다만 량해해주기 바랍니다. 저는 까박을 붙이고 언치를 잡자는것이 아니라 실지 알고싶어서 그럽니다. 부탁입니다. 진실을 말씀해주십시오.》 강병철은 올방자를 틀고앉았던 자세를 풀어 무릎을 한데 모으고 단정히 앉았다.

《어서 말씀하시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짓고 손을 들어 권하시였다.

《듣자니까 공산주의자들은 인테리를 일정한 기간 써먹다가 자기네 난관이 해제되면 모두 청산해버린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은 매우 중요한것입니다. 인테리들에게 가장 사활적인 근본문제가 꺼리낌없이 제기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테리를 써먹다가 청산한다, 그것은 일제의 악선전입니다. 반공분자들은 인테리를 자기편에 끌기 위해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꾸며내는것입니다. 혁명직후 로씨야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리끼라는 이름있는 작가가 레닌을 만난 기회에 지금 볼쉐비크들은 인테리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게 다루고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후 레닌은 에쎄르당원에게 저격을 당해 치명상을 받고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레닌은 병문안을 온 고리끼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혹하게 다룬다던 그들이 나를 이렇게 관대하게 다루었소 하고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레닌은 범죄자를 극형에 처할데 대한 법무일군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기사선생, 알만합니까. 가혹한것, 배신적인것 모두는 우리 편에서가 아니라 상대편에서 생겨났습니다. 기사선생! 우리가 인간의 지성을 존중히 하며 그들과 더불어 우리 조국을 명실공히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만들자는데 무슨 의문이 생깁니까. 이외에 도대체 무엇이 또 있어야 하며 무엇이 더 요구됩니까?》

아직도 그 무슨 이름할수 없는 심리적중압때문에 모대기고있는 강병철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시였다. 그런 기미를 강병철이도 느꼈던지 방금전과는 달리 몹시 갈린 목소리로 서둘러서 말을 떼였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강병철은 고개를 두세번 숙여보이고나서 계속하였다. 《지성을 존중하는 제도면 저는 어느것이나 무관계합니다. 부유하고 향락할수 있는 제도, 그것을 저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것이 저에게 필요한것이라면 저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있습니다. 대구에 있는 우리 집에는 큰 철공소를 차려놓고있고 땅도 또한 구차하지 않을 정도로 가지고있습니다. 명예나 공명 그것도 필요없습니다. 나는 대학을 나왔고 전기기사이며 또 야금기사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우리 집 재력을 합치면 명예를 얼마든지 얻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라는것은 언제나 권력의 부산물입니다. 명예를 위한 지성일 때 그것은 벌써 지성에 대한 배신이며 협잡입니다. 공산주의, 그것도 필요없습니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제가 로씨야로 가면 될것입니다. 자본주의, 그것은 제가 이에서 신물이 나게 체험한것입니다. 때문에 제가 바라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정신적보금자리입니다. 다리로 서는것이 아니라 머리로 선다는 현대인은 빵만으로는 살지 못합니다. 제 말을 리해해주십시오.》

《알만합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심으로 기쁨을 표시하시였다. 여태 지향을 알수 없이 외로 돌고 바로 돌고 하던 강병철이 끝내 자기 속심을 드러내게 된것이다.

미소를 띄신 그이께서는 온건한 음조로 그러나 명확하게 력점을 찍어 물으시였다. 《기사선생은 지금 자기의 정신적지탱점을 찾고 있는것이지요. 나라는 인간이 무엇에 의탁해 살겠는가 그것이지요?》

이때 강병철은 예리한것으로 가슴을 찔리는것 같이 흠칠하였다.

그는 자기를 지탱할수 있는 그 무엇을 찾고있었으며 그것으로 해서 한생 모대기고있었다고 할수 있었다. 깃을 들일데가 없었던 넋은 정처없이 방황하였으며 국경도 량심의 계선도 함부로 넘나들면서 방황하였던것이다. 강병철을 이윽히 지켜보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구태여 그들이 아파하는데를 다쳐 더이상 대답을 요구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한가지 물읍시다.》하고 그이께서 다시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에 강철전문가가 또 어데 있습니까? 하긴 강철만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라면 그 누구든 다 필요합니다.》

강병철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는데 약간 침울했던 눈이 금시 밝아지였다.

《강철전문가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른것은 잘 모릅니다. 저는 동업자의 눈으로 보고있으니까요. 조선에 강철공장이 몇개 있지만 모두다 일본기술자에 의해 운영되였습니다. 그러나 강선제강소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강선제강소에는 특출한 머리를 가진 양춘만이라는 룡강사람이 있었습니다. 양춘만에 의해서 전기로 2기가 돌아가고있었고 앞으로 대대적으로 늘일 계획을 했던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알아본데 의하면 해방이 되자 행처를 감추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데로 갔을것 같습니까?》

《그 사람을 찾아서···》 그는 손으로 턱을 만지더니 안경속의 눈을 쪼프리면서 가까스로 뒤를 이어대였다. 《혹시 그를 데려다가 다시 강철을 만들게 하자는 생각이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역시 방황하고있지나 않을가 해서 그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춘만은 결코 방황하지 않을것입니다. 또 설사 그를 만났다 해도 이쪽으로 끌지 못합니다.》

《그건 어째서 그렇습니까?》

너무나 뜻밖이여서 다그쳐 물으시였다. 그러나 오히려 강병철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침착하게 자기 음조대로 설명을 하였다.

《양춘만은 일본인들이 전적으로 믿고 의탁할만한 모든것을 다 가지고있습니다. 그가 아직 학교에 있을 때 뛰여난 두뇌를 가졌다는것이 알려졌습니다. 일본인들이 점을 찍어놓고 면비교육을 시켰습니다. 어느해인가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동경에 와서 자기가 체계를 완성한 특수상대성원리에 대한 강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끝내고나서 질의응답시간이 되였을 때 20살도 되지 않은 양춘만이 일어나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전개한 특수상대성원리를 일반상대성원리의 다른 차원에서의 전개··· 아니 이거 미안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가로 달아나서···》

《어서 다 말씀하십시오. 자꾸 듣는 과정에 혹시 리해하게 될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손을 흔드시며 자유롭게 말해줄것을 요구하시였다. 그러나 강병철은 추호도 지식을 자랑하는것과 같은 느낌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강의에 참가했던 태반 사람들이 아직 문제의 본질을 어렴풋이 리해했거나말았거나 한때에 즉석에서 적중하고 요긴한 질문을 한것때문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후에 돌아간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또한 조선청년이라는 점에서 더 반향이 컸다고 합니다. 양춘만은 강선에 와서 2년만에 전기로를 세우고 천황의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방황할것 같지도 않고 또 그 사람이 조선의 강철을 위해 복무하려면···》

강병철은 서두르지 말고 심사숙고해야 할것이 아닌가고 말하려는듯 하였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알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결코 방임할수는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말씀하시였다. 강병철은 좀 뻥해졌다. 너무나도 뜻밖의 말씀이였다. 그속에서 표면화되지 않는 진심과 솔직성을 느낄수 있었다.

강병철은 시간이 갈수록 담이 커지고 무한정 무엇이든 론의하고싶었다. 앞에 앉아계시는분의 실제적인 사회적위치에 대해서부터 무척 알고싶었다. 정치위원이라면 간단한 직분이 아니라는것이 명백한데 그것만으로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존엄과 힘을 가지고계시는것이다. 산악처럼 막아서는 굳건하고 호협한 기상이 풍기면서도 어느 한 귀퉁이에서라도 상대방을 위압하려는 허세같은것은 찾아볼수가 없다. 우정 겸손성과 소박성을 나타내려고 꾸미는것도 없고 더구나 이쪽을 부러 괴여올리는것 같은 가식은 꼬물도 찾아볼수 없다. 모든것이 솔직하고 명백하며 또한 투철하였다. 어느덧 텅 빈것 같던 강병철의 가슴속에 그 무슨 하나의 점과 같은것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가슴을 꽉 채울만치 커지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우리는 인간의 지성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또 《강철에 앞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중시합니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더욱 가슴을 울리였다.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앞으로 만날 기회가 또 있을것입니다. 오늘 나는 조선의 강철을 위해서 모든것을 아끼지 않겠다는 한 조선인테리의 결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안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시간을 많이 뺏아서··· 이제 구체적인것을 토의하기 위해 누구를 보내든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깊은 사색에 잠기였던 강병철은 총망중에 인사를 차리고 현관으로 나왔다.

그는 악수를 청하시는 김일성동지의 손을 잡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매우 죄송합니다만 어느 기회에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도록 힘써주실수 없으시겠는지요. 특별한 용건은 없습니다만 오늘 론의한것 같은 그런걸 두고 다시 말씀을 드려보고싶은 심정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때나 찾아오십시오.》

이때도 그이의 얼굴에는 신심이 차있는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흐뭇한 웃음이 어려있었다.

《도와주십시오.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