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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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나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갑자기 밖에서 문기척소리가 났다. 김책이 급히 나가보았다.

얼마후 그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되돌아들어오더니 김일성동지께 무엇인가 나직이 말씀올리였다.

《신창탄광로동자가 틀림없습니까?》

그이께서 따져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오늘아침부터 와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장군님을 만나뵙겠다는것입니다. 그것이 정 불가능하면 정치위원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두분중 누구든 만날 때까지 열흘이고 한달이고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만면에 웃음을 띠우신채 잠간 무엇을 생각하는듯하던 그이께서는 《신창탄광 로동자대표를 만납시다.》하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나이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모두 어슷비슷한 3명의 청년로동자들을 앞세우고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자! 어서들 앉으시오. 먼길에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뜻밖에 친절히 맞아주는데 어리둥절해진 로동자들은 의자에 앉지 못하고 창문가에 서서 주춤거리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사람씩 팔목을 끌어다가 차례로 의자에 앉게 하시였다. 하는수 없이 의자에 앉게 된 3명의 로동자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방안을 두릿두릿 살피였다. 흔히 볼수 있는 마루방에 책상 하나가 놓이고 검소한 쪽걸상 몇개가 눈에 뜨일뿐이다. 류다른것이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문앞까지 마중나와 손을 잡아끌어주신 부드럽고 인정미가 넘쳐흐르는 환한 얼굴, 활기에 넘친 몸가짐 그리고 추호도 위엄을 느끼게 하거나 마음을 긴장시키는데가 없는 안온하면서도 명확한 말씨, 이분이 바로 땅을 주름잡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느신다던 그 김장군님이 아니실가. 일단 이렇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자 걷잡을수 없이 이분이 장군님이시다! 라는 생각에로 심장이 움직이였다. 하여 방금전에 정치위원을 만나게 된다는 김책의 안내같은것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였다.

한편 김일성동지께서도 규모가 큰 기업소라고 알고계시던 신창탄광에서 온 로동자대표가 20전후로 보이는 청년들이며 소박하고 어진 눈을 가진 천진한 사람들임에 놀라시지 않을수 없었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던 가운데청년이 일어났다.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키가 크고 앞가슴이 쩍 벌어진 구리빛얼굴의 청년이다.

《우린 방금 인사를 하지 않았소.》

김일성동지께서는 팔을 잡아 자리에 도로 앉히시였다. 하지만 눈섭이 진하고 관골이 두드러져 록록치 않게 보이는 청년은 고집스럽게 일어서서 깊숙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였다.

《저는 채탄공 박창술이라고 합니다. 이 동무들도 저와 같이 일합니다.》

이렇게 되자 그이께서도 얼마간 정색해져서 한옆에 앉은 김책을 소개하시고나서 《그래 탄광에서들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모두 무사히들 있습니까?》하고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시였다.

박창술이 또 《네!》하며 벌떡 일어나 대답하려는것을 그이께서 붙잡아앉히시면서 《동무는 마치 일본군대식이요. 동작이···》하고 웃으시였다.

박창술은 얼굴이 벌겋게 되며 《아닌게아니라 왜놈군대에 끌려가 생 혼이 났습니다.》하고 뒤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어느덧 박창술 등은 어려움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치 구면의 친지와 오래간만에 회포를 나누기라도 하듯이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펼쳐나가게 되였다. 우선 탄광의 현실정에 대한 문제부터 화제에 올랐다.

《외람되게 이렇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찾아온 목적은 우리 신창탄광을 책임질 사람을 하나 보내달라고 청을 드리자는것입니다. 해방이 되였다고 모두 춤을 추는데 식량이 떨어졌고 <간조>줄 돈도 없습니다. 굴에는 물이 찼습니다. 여기저기 다녀보았는데 누구도 어떻게 하면 된다는 지시를 못합니다.》

그이께서는 《그렇소?》 하고 긴장해진 얼굴로 달빛이 은은하게 흐르고있는 창문가를 쳐다보시면서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이미 짐작하실수 있었고 또 그 짐작이 큰 편차없이 들어맞은것이다.

《담배를 피시오.》

담배갑을 박창술이 앞으로 밀어놓으시며 자신께서도 불을 다시였다.

밤은 퍼그나 깊어졌다. 이따금씩 멀리 지나가는 전차의 고르로운 음향이 아스레하니 들려올뿐 거리는 고요한 정적속에 묻혀있다.

그이께서는 며칠전에 평양철도국에 나가 기술자 한명구를 설복하던 그때 정황을 상기하시였다. 한명구는 인테리여서 사정이 달랐다. 한데 이 순박한 로동자들한테 어떻게 오늘의 내외정세와 조국이 처한 불가피한 정황을 납득시키며 그것으로 해서 창조적열정이 끓어번지게 할수 있을것인가. 난처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이께서 잠간 생각에 잠겨계실 때 담배를 피우고있던 박창술이 재털이에 불을 끄고나서 상의앞섶을 헤치며 허리춤에서 무엇을 찾기 시작하였다. 얼마간 부시럭부시럭하더니 허리띠에 매였던 끈을 풀어 끼뼘 한기장이나 되고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금고열쇠를 하나 내드는것이였다. 열쇠를 두손으로 받쳐든 박창술은 그것을 장군님 앞으로 내밀면서 정중히 말씀을 올리였다.

《이것은 우리 탄광 금고쇠대입니다. 그 금고에 로동자들에게 주는 <간조>돈도 있었고 돈표도 있었습니다. 왜놈들한테서 우리가 뺏아냈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실로 이것은 뜻밖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분명히 끝이 떨고있는 열쇠를 볼수 있었고 그것을 받쳐든 마디가 굵고 거밋거밋한 젊은 탄부의 억센 손도 같이 떨고있는것을 보실수 있었다.

《그래 이것을 어떻게 하라는것입니까?》

《이 쇠대를 간직할 우리 탄광의 주인을 보내주십시오. 주인이 이 쇠대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제서야 김일성동지께서는 로동자대표가 내민 열쇠의 사연을 짐작하실수 있었다. 열쇠는 차츰 그이께서 계시는쪽으로 접근해 갔다. 앞으로 한치한치 다가오고있는것을 보고계시던 그이께서는 성큼 자리를 뜨시고 몇걸음 나서면서 박창술의 손을 덥석 움켜잡으시였다. 그리고는 으스러지게 손을 꽉 그러쥐시였다. 이때 섬광처럼 빛을 뿜는 그이의 시선은 탄부의 젖은 눈을 응시하고있었다. 그이의 넓은 어깨는 힘차게 오르내리였다.

《박창술동무! 이것은 내가 가질것이 아니라 동무가 가져야 합니다. 다름아닌 바로 동무가 탄광의 주인이요.》

《저는 주인이 아니라 로동잡니다. 임금을 받고 품을 파는 삯군이지요.》

《아니요. 동무가 바로 주인이요!》

방안을 쩡 울린 웅글고 확신에 넘친 목소리에 압도되여 일시에 모든 움직임들이 정지되는듯하였다. 처음부터 창문쪽에 서서 방안분위기를 줄곧 지키고있던 김책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천근무게로 지지눌리운 방안공기를 흔들며 그이의 음성이 또다시 울리였다.

《박창술동무, 동무의 신세는 달라졌습니다. 일제의 노예로 멍에를 끌던 과거 로동계급이 아니라 동무는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일제에게서 빼앗은 그 열쇠를 누구에게도 넘겨주어서는 안됩니다. 탄광의 주인인 로동계급이 틀어쥐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가 가진단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주인이 가져야 한다고 동무자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주인인 동무가 가져야 합니다.》

순간 박창술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동무가 바로 주인이요!》

이 평범한 그이의 한마디 말씀이 탄부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어놓은것이다. 해방이라는 참뜻이 이때에 비로소 끓어오르는 격정을 안고 심장으로 육박해왔다. 한순간에 그는 자기 처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끼였다. 그는 허리를 비틀며 모지름을 쓰다가 끝내 흑 하고 소리를 내여 흐느끼였다. 박창술의 눈굽에 기름처럼 찐득한것이 솟아오르더니 주르르 볼을 타고 흐르면서 마주잡은 김일성동지의 손등에 떨어졌다. 그것은 불찌처럼 뜨겁기도 하고 또한 연알처럼 그렇게 무게를 느끼시게 하는 눈물이였다. 가만 놔두시면 끝없이 그러고있을것 같았다.

《자! 그만하고 열쇠를 허리에 매시오. 든든히 매시오.》하고 그이께서는 열쇠를 혁띠에 걸어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금고는 지금 아무것도 없이 텅 비였을거요. 이제 우리가 벌어서 넣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로동계급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을 해야 합니다. 식량이 그중 곤난하겠는데 우리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해결하겠습니다. 탄부들한테 전하시오. 우리들이 있는한 로동계급이 굶는 일이 이제부터는 절대로 없을것이라고말이요.》

이때 박창술은 비장한 결심이 어린 그이의 얼굴을 볼수 있었고 탁자우에 놓였던 주먹이 여러번 흔들리는것을 목격할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계속해서 탄광을 운영할 구체적인 문제들까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오래동안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이제는 동무들이 물을것이라든가 제기할것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하시였다.

《이제는 앞이 내다보입니다. 그런데 애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탄광에 착암기에 쓰는 정대가 없습니다. 정대가 있어야 굴을 뚫고 석탄을 캘수 있습니다. 왜놈들이 쓰다남은 꽁다리밖에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평양철도국 한명구가 제기한것을 상기하시면서 《역시 강철이 요구된단말이지. 그래 기술자들은 있소?》하고 물으시였다.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간은 이전에 하던 눈짐작으로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차차 기술을 배우겠습니다. 그런데 기술자만 있으면 제철소나 제강소같은데서는 정대를 만들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소. 만들수 있을거요. 그런데 탄광이면서 석탄을 못캐는 동무네나 그곳 로동자들이나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려관에서 기술자를 한사람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아는것이 정말 많습니다. 하루밤 의논해보니 좀 노력하면 될수 있다고 합니다.》

《될수 있다? 어느 려관에 있었소? 역전근방이 아니요?》

《네! 역전 평양매일신문사뒤 대동강려관 2층에 들었습니다. 집이 경상도 대구라고 하는데 얼마전에 서울서 볼일이 있어 왔다가 이제 돌아갈 소리를 했습니다.》

《서울로 간다고 했겠소. 김책동무! 이 동무가 지금 동무가 찾아낸 그 사람을 말하는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인것 같습니다.》

김책은 매우 공교롭다고 생각하면서 명확히 대답하였다.

동켠하늘이 휘붐히 트이기 시작하였다. 김책이 새날이 밝았는데 그만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좀더 이야기해야겠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나라를 세울데 대해서도 말씀하시고 며칠후에 공산당이 창건된다는데 대해서도 진지하게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야기를 하면할수록 힘이 생기고 앞이 트이는것을 느끼시였다. 이런 계급, 이런 인민이면 못해낼 일이 없을것 같으시였다. 곡산공장이나 평천병기공장 같은데서는 기술자없이는 한걸음도 나갈수 없다고 했는데 이들은 그래도 자체로 해보겠노라고 한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결의와 기개가 천금같이 귀중하고 듣는 사람에게 큰 고무로 되는것이다.

《동무는 내려가서 탄광주인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사람을 파견하겠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제기되면 아무때고 찾아오시오. 또 전화를 해도 좋고 편지를 써도 좋습니다. 동무는 건국사업을 떠메고나가는 역군이 돼야 하겠습니다.》

《저는 다른건 다하겠는데 건국사업은 못하겠습니다.》

《그건 어째서.》

《그런걸 하자면 연설을 잘해야 하는데 저는 연설을 할줄 모릅니다.》

《석탄은 캘줄 알지 않소.》

《그건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나라를 세우는 건국사업이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야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하하하···》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창술의 순박한 얼굴을 보고 크게 웃으시였다. 그통에 장밤을 새워가는동안 한번도 말이 없던 김책이도 크게 웃었다.

창문에 아침해가 비쳐들게 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조반이나 같이하자고 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열쇠가 있는가 잘 보오.》

《여기 있습니다. 그걸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식사를 끝내신 장군님께서는 현관밖까지 3청년을 바래우시면서 김책에게 박창술을 료해해보고 지배인을 시키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한길에 나온 박창술이들은 어깨가 빠져달아날만치 활개를 저으며 창광산쪽으로 올라갔다. 느티나무가 서있는 산마루에 이르니 평양의 번화거리가 한눈에 안겨왔다. 세청년은 약속이나 한듯이 발을 돋우어 바야흐로 아침해가 솟고있는 동녘하늘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청동색인 박창술은 해빛을 향해 한참동안이나 묵묵히 서있다가 허리에서 열쇠를 벗겨내서 그것을 머리우에 흔들어대였다. 억실억실한 그의 눈은 불덩이처럼 이글거렸고 억센 턱은 희열이 흘러넘친 그의 입모습을 받들어내지 못해 축 처져내리였다. 이 순간 박창술은 눈부신 태양의 광휘속에 밤새껏 눈에 익혀둔 그이의 영상을 겹놓아보는것이였다. 언제나 예지와 자애에 빛나는 눈, 인정미 넘쳐흐르는 입가의 미소 그리고 마디마디 가슴속 밑바닥까지 텅텅 울려주는 웅글은 음성, 안기고싶고 한껏 응석을 부리고싶은 넓은 가슴, 그 모든 표상을 눈앞에 그려보던 박창술은 천만갈래 마음의 금선이 단꺼번에 떨면서 행복과 영예의 음향을 울리는것을 감각하였다. (그렇다. 그분은 분명 장군님이시다. 장군님이 아니시고야 어찌 그처럼 큰 뜻을 한꺼번에 안겨주실수 있겠는가!)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아! 우리의 장군님! 김일성장군님!》하고 두팔을 쩍 벌렸다가 와락 가슴에 부둥켜안았다. 실성한 사람처럼 몸둘바를 몰라하는 세청년은 서로 닫고 뒤쫓고 하다가 마침내 융단을 펴놓은것 같은 잔디판우에 벌렁 나자빠졌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몸부림치면서 잔디판을 북북 뜯기도 하고 딩굴기도 하였다. 때마침 한가닥 초가을바람이 휘익 스치면서 사시나무가지를 흔들어 여러장의 잎을 뜯어다가 그들의 머리우에 휘뿌려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