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

 

제 2 장

1

 

저녁때가 되자 본정에 자리잡은 2층 숙소는 전에없이 흥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지방에 파견되였던 정치공작원들이 올라온것이다. 나들문이 쉴새없이 드르륵드르륵 울리였고 식당으로 쓰는 아래층 큰칸은 사람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말소리로 가득찼다. 작식을 맡은 안명숙은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까지 내돋힌채 부엌과 물뽐프장에서 팽이 돌듯하고있다.

국수를 누르는것이다. 조리대에서는 질컥질컥 소리가 나게 메밀가루반죽을 하고있고 한쪽에서는 신바람이 나게 칼도마를 울리며 양념을 다지고있다. 마늘내, 고추내, 설설 끓는 가마에서 풍기는 메밀내가 한데 엉켜 부엌과 방안을 꽉 채웠다. 청년들은 저마다 분틀에 올라가겠다고 야단이다. 밀영의 국수분틀도 좋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분틀타기는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날으는 기분에 못지 않다는것이다. 안명숙은 허여멀쑥하고 통개가 실한 반죽떡을 국수분통에 밀어넣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무 바빠서 인사도 받을새 없구만, 명숙동무!》

그것은 키가 껑충한 김일이였다.

《김일동지 오셨어요.》 안명숙은 밝게 웃으면서 반죽감이 잔뜩 묻은 손을 들어보인다. 《그럼 평남, 평북쪽에서는 다 오신 셈인가요.》

《웬걸, 남포에 간 김경석동무도 아직 보이지 않는데.》

《그래요.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청진의 안길동지는 오늘새벽 맨 선참 오셨는데요. 혜산에 갔던 류경수동지랑.》

《나두 이자 만났소. 그런데 이거 뭐 오래간만인데 들고올기 있더라구. 자 받소.》

자루에 든것을 가마목에 털썩 내려놓는다.

《밤이군요.》

안명숙은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말한다. 안명숙의 얼굴은 장미꽃처럼 붉었고 눈은 빛나고있다. 마냥 기쁘고 즐거웠다. 밀영에 있을 때부터 체험해 아는바이지만 이렇게 전우들이 많이 모이면 틀림없이 인차 좋은 일이 있게 되는것이다.

안명숙이 밖으로 물길러 나갔을 때 경위대원 좌현이가 나타났다.

《안동무! 이거 야단이요. 상점들에두 신통한게 없구만.》

안명숙에게 과일을 가득 넣은 구럭을 들어보인다.

《14살에 떠나셨다가 34살에 찾아가시는 고향인데, 20년이 어데요. 그런데 빈손이구만그래. 떡이라도 만들어보잖겠소? 사는것보다야 우리가 만드는게 더 뜻이 있지.》

《그래 장군님께서 만경대에 가신다는건 틀림없어요?》

《만경대쪽으로 나가보겠소 했으니까.》

《그러니까 딱히 만경대고향집으로 가신다는건 아니지 않나요.》

《그렇게야 어떻게 말씀하시겠소. 우리가 알아차려야지.》

《하긴 그렇군요.》

안명숙은 찰랑찰랑 물이 담긴 바께쯔를 들고 힝하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건너방에서는 쉴새없이 웃음소리가 울린다. 거기에는 이전에 련대장이나 련대정치위원으로 공작하던 파견원들이 들어있었다. 뒤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몸이 다부지고 유독 머리가 커보이는 류경수가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빨리 한번 모이게 해달라고 제기했소. 혹시 저 신의주의 김일동무가 아닌가?》

《원 천만에···》 맞은켠에 앉았던 김일이 불이 달린 성냥가치를 휘젓는다. 담배에 불을 붙인후에 그는 느릿느릿 까닭을 설명하였다. 《난 그런걸 제기할만한 여유도 없었단말이요. 신의주에 도착하는 그 이튿날부터 일감이 사태 밀리듯하는데 어디 정신을 차릴새나 있더라구. 매일밤 잠자리를 옮기는데두 하루건너 수류탄이 날아들고···》

《그럼 이 청진의 안길이 틀림없구만.》

류경수는 옆에 앉아 무슨 책을 뒤지고있는 안길의 팔을 건드려놓는다. 언제나 침묵이고 사색형인 안길이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다음은 또 누구요. 4~5명된다는데.》

류경수는 끝까지 알아맞춰보겠다는 기세로 좌중을 둘러본다.

《내 알아맞춰보라우?》 눈섭이 시꺼먼 최현이 빙그레 웃으면서 나무뿌리처럼 거치른 손을 앞으로 내들었다가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드린다. 《기본장본인은 여기 있소. 여기.》

그렇게 되자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또 최현이다운 기지가 나타난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김책동무한테 우는소리 한것만은 사실이요. 내려가보니 너무 아름차서 어쩔바를 모르겠드란말이요.》

안길이가 책을 덮어놓으며 이렇게 실토정을 한다. 그렇게 되자 김일이도 조정철이도 전적으로 그에 동감이며 김책을 통해 한번 모여서 경험교환도 하고 사령관동지의 말씀도 다시 받아보고싶다는 의사를 비쳤다고 하였다.

부엌에서 안명숙이 방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자, 받으세요.》

국수사발이 연방 올라왔다.

《곱배기는 안되겠어요. 한사람에게 한그릇씩입니다. 예상외로 식구가 불었어요.》

안동무는 불이 번쩍 나게 국수사리를 다루는데 그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나만은 사전에 신청이 있었으니까 문제가 다르지.》

그것은 좌현이였다. 국수라면 오금을 못쓴다는 그였다. 육수를 붓는참 한쪽으로는 련달아 들어올린다. 영업집모양으로 만든 길다란 국수상에서는 벌써 양념을 놓고 사리를 풀고 저가락질이 시작되였다.

《여! 저 미인 누구지?》

부엌에서 안동무를 돕고있는 처녀를 눈으로 가리키며 좌현이가 앞에 앉은 동무에게 묻는다.

《박원식동무의 애인이라누만.》

대답하는것은 좌현이와 같은 나이의 경위대원 양동무였다.

《아니 뭐 벌써 애인?》

《벌써라니, 여기 오자 며칠만에 제꺽 눈이 맞았다는데.》

《허허 대단한 속도요.》

국수를 먹으면서 힐끔힐끔 훔쳐본다. 희한할만큼 아름다운 처녀가 불과 몇m 앞에서 왔다갔다 하고있다. 얼굴은 달덩이처럼 환하고 브라우스를 가뜬하게 해입은 몸매는 평양처녀다운 세련미를 풍기고있었다. 머리는 이때 류행이던 외태인데 대목을 질근 동이고 밑은 부채살처럼 풀어헤쳐져 어깨의 부드러운 곡선우에서 자유롭게 헤염치고있다.

《박원식이 그 친구 짬수군인데.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며칠새에 숲속의 억센 사나이를 그렇게 옴짝 못하게 만들었다나.》

《무엇에 반했는가구? 얼굴이 장미꽃같구 마음씨 또한 형편없이 아름답대. 박원식의 실토네.》

좌현은 시기심이 로골적으로 드러난 눈길로 처녀를 쳐다보면서 긴 한숨을 내쉰다. 유격대원들은 태반이 30이 다된 로총각들이여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며칠전 철도로 떠나는 날 박원식이 양동무에게 실토한데 의하면 필남이라는 괴이한 이름을 가진 그 처녀는 해락관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동양양복점》이 있는데 그 집 딸이라고 한다. 옷을 맡기기 위해 몇번 드나들다가 어느새 눈이 맞아 언약을 맺는데까지 이르렀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