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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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이야기를 시작하고보니 끝이 없었다. 양춘만은 이마의 땀을 연방 훔쳐가며 8. 15를 맞아 대동강갈숲에 몸을 숨긴 그때로부터 박원식의 분묘앞에 엎드려 울던 그때까지를 조리있게 설명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를 만나뵙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였다.

양춘만은 약간 게면쩍은 낯을 지었다가 그것을 인차 지워버리더니 어느 정도 당돌하면서도 도고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기왕 말이 난김에 나자신에 대해서 똑똑히 말해두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가지고있는 의문이 완전히 풀릴것 같습니다. 나 양춘만이로 말하면 아버지가 지주인데다가 남달리 일제에게 충실히 복무했습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나자신을 위한것이고 기술을 가진 내가 할 마땅한 행위로 보았던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알고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내가 나자신을 잘 알고있기때문에 해방이 되자 나는 강선에서 이 서울로 도망쳐왔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또 나자신이 공산주의와 융합될수 없다, 이렇게 단정하고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공산치하에 끌려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했던것입니다. 처자까지 버리고말입니다.

그런데 박원식이라는 사람이 문득 나타나 북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목숨이 아까워 그를 따라섰던것입니다. 그때 내가 북으로 가기를 거절하면 군대출신이라고 자기를 서슴없이 밝힌 그가 단방에 내 머리에 권총을 들이댈것으로 짐작했던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끌려가다가 기차에서 뛰여내려 도망쳤던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손길이 미친 내 가정사정을 알게 되고 또 내가 직접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눈을 뜨게 되였습니다. 진실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 진실에 의해 나의 신념이 생겼고 튼튼히 굳어졌습니다.

이만하겠습니다. 내가 체험한것을 말하자면 며칠을 두고 말해도 다 말할수 없습니다. 요는 뭐냐 하면 여러분들도 장군님을 한번 만나보라는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장군님께서 정사를 펴시는 북조선땅을 한번 밟아보시오. 그러면 다 알게 될것입니다.》

처음에는 몇마디로 속심을 다 털어놓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시작하니 그렇게 되지 않고 흥분이 앞섰다. 그래 그는 끝을 잘 맺지도 못하고말았다.

《장군님을 만나보십시오. 꼭 만나보십시오. 나는 이 이상 권고할것이 없습니다. 사상과 인품이 위대하고 숭고할뿐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최대의 매력을 지니신분입니다.》

방안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하나를 말하면 열, 스물을 헤아릴수 있는 그들이였기에 양춘만의 과정이자 곧 자기들의 행로로 될수 있다고 보기때문에 어느 말 한마디, 어느 세부 하나도 무심히 들어넘기지 못하였다. 건넌방 벽시계는 벌써 밤 2시를 알리였다.

원시범이 래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듣자고 해서야 모두 흩어지게 되였다.

양춘만은 원시범에게 량해를 구하고 박문이와 김원학을 불러세웠다.

《잠간 좀 실례하겠습니다. 저와 같이 온 사람이 선생님들을 조용히 만나고싶다는데 그에 응하실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쾌히 승낙하였다. 양춘만은 밖으로 나가 얼마간 있다가 키가 크고 점잖게 생긴 중년사나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소개를 하였다.

《이분은 이제 평양에 나오게 되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창립준비위원회에서 일을 보는 리용한선생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박문이 놀라움을 보이면서 손을 움켜잡으며 자기 소개를 하였다. 《저는 력사학을 전공하는 박문이올시다. 수고스럽게 오셨습니다. 신문에 난것을 보고 이미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장군님의 존함으로 불리는 대학선생을 이렇게 직접 대면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서울에서는 대학교사에 미국군대가 들었는데 북에서는 없던 대학을 새로 내온다니 대조가 명백합니다.》

뒤이어 김원학이와 원시범이 인사를 하였다. 좌석은 정중하였다. 얼마간 인사말을 더 나눈 후에 리용한은 들고온 가방을 열고 눈부시게 흰 종이봉투를 하나 꺼내였다. 그 봉투안에는 그보다 작은 봉투가 또 들어있었다. 여러장의 봉투가운데서 이름을 골라잡더니 먼저 박문앞으로 내밀었다. 두손으로 정중히 받쳐 내든 봉투를 박문이 받아 속지를 꺼내들었다. 속지에는 활달한 필체로 몇줄 적혀있었다. 박문은 읽어내려갔다.

 

《위촉장, 박문선생귀하,

귀하에게 평양에 창립되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을 위촉함.》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그는 큰소리로 웨치였다.

《아!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서명하시였군요!》 봉투와 속지를 겹쳐든 박문의 손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눈을 내리감으면서 위촉장을 가슴에다 꽉 눌러대였다.

《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장군님께서 친히 불러주십니까. 장군님!》 감격에 목이 매여 끅끅 숨을 몰아쉬며 옆에서도 알아들을수 없는 혼자소리로 뭐라고 부르짖고있다.

뒤이어 김원학이도 같은 위촉장을 받아들었다. 김원학은 박문이 보다 나이도 젊었고 성미가 급한축이였다. 그는 위촉장을 받아쥐고 두번세번 거듭 읽고나서 묵묵히 지켜보고있는 리용한을 와락 그러안으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장군님 품에 빨리 안길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리용한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임무입니다.》하고 눈물이 글썽해서 대답하였다.

처음부터 줄곧 양춘만이와 금시 나타난 리용한의 움직임을 지켜보고있던 원시범은 갑자기 머리를 푹 떨구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첫번째는 아니다 하더래도 두번째이거나 아니면 세번째쯤은 자기에게도 위촉장이 차례질것으로 믿고있었다. 그러나 약간 동안을 두었다가 《절커덕!》 소리가 나게 리용한은 가방을 접어 돌려놓는다. 기대를 가지고 그쪽의 손길을 뒤따르고있던 원시범은 가슴이 섬찍해났다. 물론 그는 북으로 가고싶은 마음으로 위촉장을 기다린것은 아니였다. 아직은 그쪽으로 인생의 발길을 다시 돌릴 결심은 서있지 않았다. 그러나 인젠 설사 북으로 가고싶어도 그렇게 할만한 자격마저 잃어버린 인간으로 되였다는 절망감이 온 넋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부상당한 상처의 아픔이 되살아나면서 온몸을 쑤시였다. 그는 붕대를 동인 팔을 부둥키면서 신음소리를 내였다.

리용한은 실례했노라고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원시범은 대문밖까지 따라나가 바래주면서 마지막순간에나마 자기에 대한 어떤 조언이 있을가 기대하였다. 그러나 리용한은 이쪽 마음을 전혀 아는것 같지 않게 무심히 떠나가버렸다. 원시범은 눈에 시뻘겋게 피가 져서 양춘만의 팔을 잡고 방안에 되돌아들어왔다. 박문이와 김원학은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단둘이 마주앉았다.

《양춘만씨! 나는 어쩌랍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말입니다?》

원시범은 양춘만의 팔을 흔들며 부르짖고있다.

《어떨것이 있습니까. 본궁화학에서 당신을 기다리고있는데.》

《기다리고있다?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아니, 그럴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 일을 너무나 단순하게 보고있는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그러면 나보다 더 복잡한가요? 아니면 지금 청진제강소 기사장으로 가있는 강병철이보다 더 복잡한가요? 친일한것으로 말하면 조선의 지식인중에서 내가 첫자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배반한것으로 말해도 최대의 죄악을 범했구요. 내가 자세히 말했지만 나때문에 항일투사 박원식동지가 희생되였어요. 뒤늦게나마 잘못을 깨닫고 무덤을 안고 울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한생 씻을수 없는 후회를 남기였습니다. 원씨, 당신도 더 큰 후회를 남기지 않겠거든 나와 함께 갑시다. 이번주 금요일 저녁차로 경성역에서 떠나겠습니다.》

양춘만이도 떠나갔다. 원시범은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날이 샐 때까지 방안과 마당에서 서성거리였다.

어느덧 닷새가 지나 양춘만이 떠나간다는 시각이 왔다.

원시범은 택시에 앉아 경성역으로 가고있었다.

승용차는 번화한 거리를 빠져서 경쾌하게 달리고있다. 원시범은 망막에 비쳐오는 모든것이 자극으로 되여 눈을 감고앉았다.

(나와 강병철은 어떻게 되여 이렇게 먼거리에 놓이게 되였는가?)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작년 이맘때에는 이 거리를 같이 걸었었다. 38°선을 함께 넘었다. 평양역에서 떠나는 북행렬차에 같이 올랐다. 그런데 무슨 차이가 이토록 합치기 어려운 각도와 거리를 만들어놓았는가? 양춘만이 말한것처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같이가자. 그렇다. 같이 갈수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어디에 깃들인단말인가. 어디에··· 어디에··· 무엇을 붙잡고 무엇에 지탱해서···

《다 왔습니다. 손님!》

택시가 멎었는데도 잠자코있는 손님을 운전수는 깨우는것이다. 대합실에 들어가니 박문이와 김원학이 그밖의 한 10여명의 학자들, 기술자들이 나와있었다. 그들은 모두 먼길차비들을 하였다. 수수한 작업복에 가방을 들기도 하고 배낭을 메기도 하였다. 어데도 양춘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부터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줄곧 사위를 살피였다. 확성기에서 북행렬차개찰이 시작된다고 알리였다. 기차손님들이 개찰구로 쏠리였다. 10여명 일행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각각 흩어져나갔다.

그때 양춘만이 나들문쪽에서 뛰여왔다.

《나는 혹시나 해서 집에 들렸댔습니다.》하고 첫마디를 뗀 양춘만은 얼결에 《안가겠는가요?》하고 물으려다 말았다. 그앞에 서있는 원시범은 와이샤쯔바람이였고 손에 든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길차비가 아니였다. 길떠날 사람이라면 백추화를 데리고 왔을텐데 홀몸으로 나온것이다. 양춘만은 서둘러서 개찰구로 빠지는 줄에 들어섰다. 그런후에 그는 처량한 눈길로 멍청히 서있는 원시범을 쳐다보고있었다. 말로는 데려가주었으면 하는 은근한 눈치를 보이고있었지만 실지행동에서는 반대라는것이 알리였다. 비교해보면 양춘만 자기자신이 어둠이 내려덮인 캄캄한 평산벌을 내닫던 때와 비슷한 처지라고 볼수 있었다. 아직도 더 뼈아픈 심리적모대김을 겪어야 하고 쓰라린 고초를 맛보아야 할 사람이다.

원시범은 이 순간 불이 이는 마음을 누르며 쓸쓸한 눈길로 동료들을 바라보고있었다.

(이렇게 다들 떠나버리면 이 험지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간단말인가!)

생각할수록 가슴이 막막하였다.

그래도 이남땅에 와서 말동무라도 되여주던 사람들이란 이들뿐이였다. 이제 이들마저 훌쩍 떠나버리면 누구와 더불어 울적한 심정을 나누며 간단치 않은 인생의 앞날을 함께 론할것인가. 단 몇달 체험한바이지만 남조선세상이란 인젠 불을 보듯 뻔하다. 바다물을 다 마셔야 바다물이 짜다는것을 알겠는가. 이제 이놈의 땅에선 일제시대의 현대판이 부활되여 일본놈 대신 햄스 같은자들에게 굽신거리며 사는 굴종과 치욕의 길밖에 차례질것이 없을것이다. 그런데 그 굴욕마저 인젠 외롭게 홀로 남은 연약한 몸으로 지탱해야 한단말인가. 북에도 정신적으로 의탁할데가 없다면 과연 이곳에는 그러한 지탱점이 어데 있단말인가! 남북조선의 넓으나넓은 땅에 이 자그마한 인테리의 넋이 깃들일 한쪼박의 보금자리조차 없단말인가. 북에도 못붙고 이남에도 못붙고 인젠 동료들과도 헤여져 고독하게 살아야 하니 왜 유독 나만이 이런 눈물겨운 운명의 희롱을 당해야 하며 유독 나만이 세상의 이런 쓰디쓴 배척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야. 이렇게는 못살아. 이제라도 같이 가자고 해본다? 아마 나만 결심하고 같이 가자고 말하면 양춘만이도 선뜻 동의해나설것이다. 그가 받은 임무가 그런것이 아닌가. 까짓거 강병철이도 최준걸이도 그리고 저 양춘만이도 다시 생각하고 택한 길인데 나라고 그렇게 못한단 법이야 없지 않는가···

《빽!》

기적소리가 울리자 홈은 갑자기 부산스럽게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호각소리, 고함소리, 울음소리··· 양춘만이도 차에 오르려고 한다.

원시범의 가슴은 널뛰듯 한다. 이 순간을 놓치면 모든것이 끝장이다. 그는 와락 달려들어 양춘만의 손목을 끌어당기였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하랍니까? 이렇게 다 데리고 가면 미군이 살판치는 남조선땅에서 어떻게 혼자 살랍니까!》

설음에 겨워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한다. 그는 양춘만의 손목을 놓칠가봐 으스러지게 거머쥐고 흔들었다. 이제 이 손목마저 놓치는 날에는 영영 모든것과 헤여져 천길나락으로 굴러떨어질것 같았다.

《양춘만씨, 나도 데려다주시오. 나도!》

양춘만은 측은하고 동정이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마음만은 알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육신은 끌고가지 못하겠습니다. 당신한테는 자기 몸을 옮겨놓을만한 의지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의지는 김일성장군님을 믿고 따르는 신념에서 생기는것이지요. 나도 한때 그것이 없었기때문에 육신은 끌려가면서도 마음만은 되돌아서서 배신과 치욕의 길로 줄달음쳤던것입니다. 늦어져도 좋으니 꼭 그 의지를 찾아가지고 우리에게로 다시 오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양춘만은 사람들틈에 끼워 객차칸으로 올라갔다.

기적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덜커덕 하고 차바퀴 드티는 소리가 나는가 했는데 어느새 렬차의 꼬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말았다.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아 플래트홈의 기둥을 붙잡고 모지름을 쓰던 원시범은 아스레하게 들리던 기적소리가 저 멀리 공간에 잦아드는것과 함께 자기 의식도 차차 그속에 묻히고만다는것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 그는 맥없이 딱딱한 콩크리트바닥에 털썩 쓰러지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