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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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범은 붕대를 감은 팔을 부자연스럽게 놀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선풍기를 좀 더 머리맡가까이로 끌어다놓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한참동안 기염을 토한뒤라 온몸이 홧홧 달아올라 안절부절 못하고있다. 넓다란 마루방에는 일여덟명의 동료들이 병문안을 하기 위해 찾아왔었다. 밤이고 낮이고 방문객이 그치지 않았다. 한동안 절당처럼 비여있었던것인데 지난해 설명절을 하루 앞두고 북에 갔던 원시범이 문득 나타난후로부터 이렇게 된것이다. 원시범은 자리가 편안치 않아 다시 일어나 등의자로 옮겨앉으며 좀전부터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당신네들은 공산주의리념에 대해서 아니 당신네들이라는 노예는 저 박선생만은 제외돼있습니다.》 그는 오른쪽벽에 기대앉아 자기보다 나이들이 10년가까이 아래인 젊은이들의 노는양을 재미있게 쳐다보고있는 목이 기름한 력사학자 박문에게 량해를 구하였다. 《소인은 공산주의리념을 그 무슨 범접할수 없는 뻬스트균처럼 대해서는 안된다는거요. 왜그런가. 그것은 이른바 지식을 가졌다는 우리들이 맹목성에 빠질 위험이 있기때문이요. 그건 그렇고 내가 목격한 북조선은 당장 공산주의를 하자는것도 아니드란말이요.》

《여보 여보, 원군, 그건 론리도 아니고 서정시도 아닌 궤변이고 자가당착이요. 군은 그렇게까지 저지능이 아니였는데 어떻게 몇달어간에 그렇게 바보가 되였나. 북에서 공산주의를 하지 않는다면 그곳 공산당은 도대체 무얼 하자는건가. 설사 각자의 기호에 따라 리념을 나누어주는 구락부도 아닐것이고 더구나 희랍 아테네에 있던 쏘피스트처럼 론리의 경연을 하자는데도 아닐텐데···》

원시범의 턱밑에 바투 들어앉아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올리며 달려드는것은 생물학박사 김원학이다. 그는 와세다출신으로서 30살을 갓 넘겨 학위를 받아 학계에서 수재로 이름을 떨쳤었다.

《선생님!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명한 제씨들 그렇지 않소?···》

김원학은 방금 원시범이 년장자인 박문을 존대한것처럼 엄연히 계칭을 갈라놓고 동료들에게 동의해줄것을 요청하였다.

그렇게 되자 원시범을 중심해서 쭉 둘러앉았던 친구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마디씩의 대답으로써 김원학을 지지해나섰다. 사실 까놓고보면 올해초부터 지금까지 반년이 넘도록 이 집에 지식인들이 모여들고 왈시왈비 밤낮 론쟁을 벌리는것은 김원학의 입심좋은 론리와 그만 못지 않게 검질긴 원시범의 정열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8. 15해방이 되여 한돐이 되는 지금까지 그들모두는 할일이 없게 되였다. 그들을 찾는데도 없거니와 그들자신이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학술연구요 실험이요 취재요 답사요 하는것은 전혀 불필요하게 되였고 그렇다고 해서 신바닥에서 불이 일만치 드바삐 뛰는 정치인이나 운동자들의 본을 딸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고급한 지식인인 그들은 정신생활의 공백을 채우는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모여서 론의하느라면 자연히 앞이 트일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들의 화제가 결코 따분하지 않을뿐더러 몇달이 계속되여도 끝을 볼수 없을만치 지속성을 가지는것은 그 무엇인가를 상대로 해서 규탄저주하는 반항의식이 깔려있기때문이였다. 그중에서도 두개의 대상이 뚜렷한 선을 이루고있었는데 하나는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과 그의 나라 미합중국에 대한 비난과 저주이며 또 다른 하나는 북에 생겨났다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그에 대한 규탄이였다. 량으로 보나 농도의 세기로 보나 월등 우위에 있는것은 양키들에 대한 악담이였다. 신문이나 방송 또는 연설들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주장들은 《미군은 해방군이다.》, 《아메리카는 문명국이다.》라는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이 방안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자기가 목격하고 체험한 생동한 생활세부들과 그것을 종합추리하고 지식으로 얻어낸 견해를 가지고 걸찍하게 욕설을 퍼붓고있다. 그중에는 아놀드군정장관이나 동경에 있다는 맥아더련합군총사령관 같은 거물들도 미친개 몰아주듯 한다.

《콜롬브스의 공로가 대단하긴 한데 그대신 아메리카합중국과 같은 야만국가가 생겨날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놓았다는 점에서는 하느님앞에서 속죄해야지.》

《도대체 미군이 무슨 권리로 우리 조선을 강점하고 전패국취급을 하려드는가.》

《이런 식으로 10년만 더 끌면 조선에 혼혈종이 약차하게 생길수 있어. 신성한 조선의 피를 어지럽히려드는 야만들.》

이런 식으로 대상을 축구공굴리듯 하고있지만 오직 하나 서글픈것은 그것이 단 한걸음도 행동에 옮겨지는것은 없고 빈입만 가동시키고있는 점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들의 분노는 절정에 이르렀다.

원시범은 서울에 다시 돌아와서 한겨울동안 줄곧 방안에 붙박혀있었다.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평양에서 다시 흥남으로, 거기서 또다시 평양, 38°선 이렇게 한바퀴 도는 어간에 매우 피로를 느끼였다. 무엇보다도 정신적피로가 몸을 가눌수 없게 하였다. 환경에 쉽게 적응될수 있는 성격으로 보이였던 그였는데도 이질적인 환경과 사색때문에 지칠대로 지치였다. 그래 동료들에게 그가 말한것처럼 《동면》하기로 했던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노상 《공백》으로 있은것은 아니고 추억을 되살려 교또시절을 자주 그려보군 하였다. 그러면 곧 하바드대학이 떠오르고 노벨상시상대에 오른 자기자신을 보게 되였다. 환상으로도 나타나고 꿈에도 자주 보이였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가만있을수 없게 되였다. 지난 5월초였다. 백추화의 성화에 못이겨 새로 지은 연회색춘추복으로 갈아입고 원시범은 경성제국대학공학부청사로 시적시적 걸어나갔다. 언제나 참새새끼처럼 불안해있기마련인 백추화가 뒤따랐다. 정문을 지나 맨뒤 자그마한 방에서 햄스를 만났다.

매부리코에 등이 구불써한 아리아족 햄스는 원시범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부터 의도를 로출시킬수 없었고 또 만약의 경우를 념두에 두고 건성 몇마디 말을 나누고 돌아왔었다. 대화가운데는 북조선에 갔다왔다는것과 둘중 어느 하나에도 마음을 질정하지 않았다고 명백히 말해주었다. 며칠후에 다시 만나자고 하고 그날은 헤여졌다. 그로부터 사흘만에 까무러칠만한 사건이 생겼다. 원시범이 아직 자리에서 일지도 않았는데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리였다. 동생이 나갔다 들어오는데 박문이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하고 신문지장을 휘두르며 고아대였다. 잠옷바람으로 뛰쳐일어나 방바닥에 《동아일보》를 펼치니 제2면 상단에 《북조선에 갔다온 한 지성인 미국에 갈것을 청원, 교또대학출신 원시범의 고백》이라는 표제를 달고 원시범이 기자와 한 인터뷰가 실렸다.

《이건 거짓말이요! 난 이런 일이 없소. 날조요 날조!》

원시범은 성이 나서 펄쩍 뛰였다. 《동아일보》 사회부에 전화를 거니 《당신이 만난 모계통에서 보내온 원고를 우리는 활자로 옮겼을뿐이요.》라고 하였다.

그 길로 원시범은 햄스를 찾아갔다.

《내 이름을 기자로 고쳤을뿐 내용이야 사실 그대로가 아닌가요.》

《이 원시범이 언제 북조선은 붉은 지옥이라고 했소? 또 내가 언제 미국에 류학갈것을 청원했소? 이건 날조요, 거짓이요! 나는 신문에 공개적으로 항의하겠소!》

《원선생! 신문에 난 그대로 해서 나쁠것이 없겠는데요. 잘 생각 해보시오.》

《아니요, 다 폭로하겠소.》

그는 문을 후려닫고 나와버렸다. 골목을 하나 돌아서는데 청년 둘이 나타나더니 원시범을 둘러메치고 《동아일보》에 난 기사가 사실이라는것을 인정하는 지장을 찍으라고 하였다.

《난 죽어도 그걸 인정 못한다!》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뒤에 붙어섰던 백추화도 째지는듯한 비명을 지르며 어데론가 끌려갔다. 그가 의식을 회복해서 자동차길까지 기여나간것은 그로부터 2시간후였다.

한달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창피해서 집에 나와 누워있는데 아직 그때에 받은 심신의 어혈이 풀리지 않았다.

《북의 공산주의자들이 아무리 조폭해도 양키들만행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요.》

원시범은 자주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북조선에도 악당들이 있기야 하지. 가령 내가 본 공산당본부에 있다는 오기섭이란 위인은 한심했네. 온몸에서 류행식 맑스주의 자세가 물컥물컥 풍기였어. 인정이 없고 정서는 목석이구 그러나 그 모든것은 중요하지 않단말이요. 오직 우리는 김일성장군님만 알고있으면 되네. 김일성장군님은 사상과 리론이 위대할뿐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위대하고 특출하시네. 우리들이 알고있는 야금기술자 양춘만이라고 있잖나. 그건 친일분자지. 그런데 그의 아이를 급병에서 구원해주시였소. 그 집을 방문했다가 앓는 아이를 보고 데려다 고쳐주시였네. 그러니 지금 남북 3 000만 겨레가 그이를 령도자로 모시는거야 응당한것이네.》

이 대목에서 박문이 끼여들었다. 그는 년장자라는 체면도 있었지만 력사학자로서 언제나 자기 립장을 투철하게 밝히는 대바른점이 있었다.

《내 생각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인격이나 호상의리에 대해서는 론할 필요 없다고 보네. 왜그런가 하면 공산주의에 대한 계보를 캐면 한세기가 넘지만 어쨌든 그어간의 대표인물로야 맑스나 엥겔스를 꼽아야 한다는것은 만인주지의 사실이 아니겠나. 그런데 맑스는 어떤 사람인가. <자본론>이라는 그 희세의 대작을 써서 자기 친우인 윌헬름 월프에게 드린다고 맨 첫 장에 써넣었거든. 또 엥겔스는 어떤 사람인가. 맑스의 유고를 보충정리해서 세상에 내놓으면서 자기 명예와는 전혀 관계시키지 않았단말일세. 이런것을 미루어보건데 공산주의라는 그 리념자체는 각자 자기의 리해관계나 세계관에 의해 자유롭게 대할수 있겠지만 그들의 인간됨됨이나 의리에서는 흠잡을데가 없지 않은가 하는거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제기될수 있겠지. 원시범군이 목격했다는 오기섭이나 그와 류사한 인물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 북조선이 아니라 여기 서울에도 눈꼴사납게 노는 공산주의자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그런건 나는 이 생물학박사인 김원학선생이 대답할수 있을것이라 보네.》

《내가요? 하하하.》 김원학은 손을 내흔들며 한길이나 뛰였다 떨어진다. 《생물학은 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생물은 열과 빛과 수분이 있기만 하면 된다는것을 아시면서도. 하하하.》

《아, 저런 억지가 어데 있나. 자기 론문에 유전학은 환경에서 오는 변이를 배제하지 않으며 기형도 인정한다고 하구선.》

방안이 들썽하게 웃음이 터졌다. 그통에 어깨를 싸매고 끙끙 신음하던 원시범이도 흐드러지게 웃었다.

그때 대문쪽에서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리였다. 사랑방에서 누가 나가는것 같더니 어멈이 쪽지 한장을 들고 들어왔다. 쪽지를 받아 든 원시범이 《양춘만!》하고 소리쳤다. 그통에 모두 눈이 둥그래져서 한마디씩 하였다.

《강선제강에 있던 야금기사가 아니요?》

《그 친구가 아인슈타인을 놀래웠다면서?》

《북에서 와서 붙잡아갔다고 했는데···》

원시범이 급히 마루로 나서는데 양춘만은 벌써 마당에 들어서서 맥고모를 벗어든다.

《아! 춘만군, 죽었는가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도깨비처럼 나타났는가. 이게 정말 양춘만이 옳긴 옳은가?》

안경쟁이 김원학이 목을 그러안는다.

솜무명으로 풍더분하게 여름옷을 지어입은 양춘만은 깍듯이 인사를 차리고 자리에 앉자 방안시선은 일시에 그에게로 쏠리였다. 이미부터 알고있었던것은 김원학이뿐이였지만 원시범은 물론이고 박문이나 그밖의 학자들도 모두가 그에 대한 여론을 듣고 잘 알고있었다. 물리학자인 송상도도 그렇고 언어학자인 윤시홍도 그러하였다. 이 이야기판에 이미 양춘만이 화제로 된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강선제강소에서 친일분자를 타도할 때 용케 몸을 피했다는 이야기, 서울 친척집에 붙박혀 두문불출하고 무슨 인생설계를 짰다는 이야기, 틀림없이 미국이나 영국으로 건너가 그의 재능이 꽃피게 될것이라는 예측··· 그랬었는데 문득 북에서 험상스럽게 생긴 사나이들이 나타나 모가지에 권총을 들이대서 끌어갔다는 등등이 론의되면서 그의 뒤생활과 전후련결에 대해서는 환상과 허구가 가미되여 그럴듯한 하나의 비극적인 줄거리가 만들어져있었다. 양춘만이 상의를 벗어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해방이 된지도 벌써 한해가 되였는데 그새 어떻게들 지내고있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원시범은 얼음에 재웠던 수박접시를 밀어주면서 여기 이야기는 차츰 들을셈치고 북의 소식이나 빨리 펼쳐놓으라고 하였다.

《그래 흥남에 있는 강병철이 어떻게 되였나요. 사형했겠지요?》 원시범이 첫째 알고싶던것을 물었다. 로시험에서 실패한것을 고의적암해행동이라고 보았으니까 살아남지 못했을것은 뻔한 일이다.

《사형?》

《그렇습니다.》

《지금 청진제강소 기사장으로 일하고있습니다. 며칠전에 특수강생산에서 성공했단 말이 있었습니다.》

《기사장이요?》 원시범은 도저히 믿을수 없었다. 《기사장이라면 공장주 다음가는 자리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나도 강선에서 그러쯤되는 자리에 있습니다만.》

《허어? 그래 최준걸이라는 산업국에 있었던 안경을 낀 그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최준걸? 알만합니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나오면서 산업을 담당한것은 김책이구 그밑에서 책임적인 일을 보고있습니다.》

《광산에 목이 떨어져 내려가지 않구요?》

《그런 소린 듣지 못했습니다.》

《일제때 기술자를 다 없애치운다고 했는데 달라졌구만.》

《달라진게 없지요. 북조선에서 인테리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것은 이 양춘만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나는 며칠동안 여기서 일을 보고 다시 강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쯤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고있다는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방안사람들은 모두 아연해졌다. 여태 원시범이 말하던것과는 정 반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