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1

 

제 1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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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걸은 차창턱에 팔굽을 올려놓고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아득히 펼쳐진 벌판이 급히 뒤로 물러가고 멀리 바라보이는 높고낮은 산들이 천천히 지평선끝에로 잦아들고있다.

봄이 한창이다. 눈부신 봄볕을 인 사람들이 논밭에 한벌 널리였다. 함흥을 떠난 렬차는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있다. 서호벌을 지나자 절승을 이룬 동해의 크고작은 물굽이들이 나졌다. 이제 단천, 길주를 지나 청진에 이르게 될것이다.

최준걸은 끝없이 정서를 끌어당기는 서경에서 눈을 떼여 앞장에 펼쳐놓은 사업수첩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수첩에는 해방이 돼서 이날까지 꼼꼼히 모아둔 조선의 산업실태에 관한 자료가 적혀있었다.

최준걸은 이번 함경북도사업을 현지지도하시는 김일성동지의 보좌성원으로 참가하게 된것을 끝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이번에 함북도의 당, 행정경제사업을 전면적으로 료해하실 예정이시였다. 그중에서도 경제사업이 큰 자리를 차지하였는데 이 도에는 무산지구의 채취공업, 청진지구의 금속공업, 화학공업 등 중공업이 집중되여있으며 수산업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함북도의 당, 정권기관 사업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것이다. 그중에서도 당면하게는 라남19사단을 격멸하는 격전장으로 되였던 청진지구의 기간공업을 추켜세우는것이 중요하였다. 때문에 최준걸은 김일성동지께서 물으시는 경우에 정확한 답변을 올려야 했기때문에 수자와 품명들 그리고 그 호상관계들을 충분히 익혀두려고 하였다.

그동안 시간이 흘렀다. 강선제강소에 갔다온것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반년이 넘었다. 작년말에 떠나서 성흥광산에 내려갔다 올라왔는데 그사이에 북조선전역을 총괄하는 정권인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나오고 그에 뒤이어 곧 력사적인 토지개혁이 단행되였다. 나라와 민족의 력사에는 이토록 위대한 변혁들이 일어났는데 최준걸 자기자신은 이 과정에 아무런 흔적도 남긴것이 없다. 다만 얼마전에 가족을 데리고 올라와서 사업실정을 료해하던중 함흥지구를 현지지도 하고계시는 김일성동지께서 부르신다는 련락을 받고 달려왔던것이다. 그는 면구스럽기도 하고 처량한 생각이 들어 이제 그이께 무엇이라고 인사말씀을 올릴가 생각하면서 차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그때 나들문쪽에서 좌현이 나타나더니 장군님께서 부르신다고 알려주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이와 함께 객차칸복도를 거닐으시면서 청진제강소에 파견한 강병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제강소복구사업이 많이 진척되였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가족을 데리러 갔던것은 소식이 있습니까?》

그이의 물음에 김책은 오늘아침에 남조선에 파견한 공작원들의 사업정형을 개괄적으로 말씀드렸을뿐 강병철이나 그밖에 개별일군들의 문제에 대해서 상세히 보고드리지 못한것을 후회하면서 매우 어색해하며 대답을 올리였다.

《예정된 날자에 도착한다고 하였습니다. 약속한 날은 어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평양에 혹시 와있을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좌현의 안내로 최준걸이 그이앞에 나타났다. 경례를 올리자 그이께서는 최준걸의 손을 잡으신채자신께서 앉으시였던 자리로 끌고가시였다. 최준걸은 김책이와 나란히 그이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 이제는 안착되였습니까?》 그이께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최준걸에게 가까이 다가앉으라고 권하시고나서 뒤를 이으시였다. 《최동무가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은지가 얼마간 되지만 좀체로 시간을 낼수 없었습니다. 가족들도 다왔습니까?》

《녜! 올라와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최준걸은 고개를 들고 다시 경의를 표시하였다.

《잘됐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마음을 푹 놓고 사업에 열중할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거리로 되여있는 동무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지금 보기에는 혈색이랑 좋습니다.》

《장군님!》 최준걸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말씀올리였다. 《무엇이라고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체문제로 해서 여러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장군님께서 심려해주셔서 병원치료도 받았고 좋은 집에도 들었습니다. 다시는 저때문에 근심하지 않도록 처신을 잘하겠습니다.》

최준걸은 이미부터 가슴에 사무쳤던 죄책에 대해서 흥분을 안고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그런데 정작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두없이 어슷비슷한 말을 반복하게 되였다. 그가 가슴에 품고있었던것은 무엇보다도먼저 강병철이 일으킨 사고와 관련한것이였고 그다음에는 장군님께서 요구하고 바라시는대로 산업을 복구하고 정비해내지 못한것이였다. 그러다보니 그가 펼치고있는 사연들이란 대체로 나라의 경제형편이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와 관련한 일군들과의 관계문제들이였다. 이윽토록 최준걸의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담배에 불을 붙이시였다.

《그런데 최동무! 암만 들어봐도 나에게 생긴 하나의 의문만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하고 그이께서는 창가림을 한옆으로 밀어놓으시였다. 차창으로 해빛이 눈부시게 비쳐들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한껏 근엄해진 최준걸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면서 뒤를 이으시였다. 《동무가 평양에서 떠나 광산으로 내려갈 때 어째서 우리를 직접 만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글쪽지라도 한장 남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나는 리해할수 없습니다.》

순간 최준걸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앞은 캄캄해지고 사지가 떨리였다. 그는 몇달동안 자기 과오와 자기 실책에 대해서 그토록 여러번 따지고 반성하고 뉘우치였지만 방금 장군님께서 의문을 표시하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것이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장군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와 정반대로 생각했었습니다. 저지른 과오도 있고 또 저에게 쏠리는 기대에 비해서 자신의 능력이 너무나 미치지 못하기때문에 저는 군말없이 내려가는것을 응당한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목이 꺽 막혀 더 이상 뒤를 이어대지 못하였다. 다만 이때 가슴속에서 소용돌고있는 그의 복잡한 심리의 한구석에 얼음장처럼 차거운것이 생겨났는데 결국 산업국의 책임적인 직책에서 물러난것이 장군님의 의사와는 아무러한 관계가 없었던것이며 지어는 그이의 의사에 배반되는것이였다는 생각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최준걸은 후두두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어깨를 높이 들었다놓으며 긴숨을 내쉬였다.

《이미 지나간 일을 두고 내가 왜 이런 구구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 그 의도를 동무가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때 너무나 지나친 긴장을 보이고있는 최준걸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결국 그것은 동무가 우리를 믿지 못하기때문에 생겨난 하나의 비정상적인 사태인것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말하게 되는가. 아마 동무는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를 지금도 기억하고있을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뒤에 손을 맞잡고 서로 힘을 합치고 서로 믿으면서 우리 같이 일합시다. 이렇게 첫 상봉의 결구가 지어졌던것을 동무는 기억하고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의 언약을 지켜서 우리는 좋은일, 궂은일 또는 기쁜일 고통스러운일 가릴것 없이 서로 나누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동무는 일이 순조롭고 좋은일이 있을 때는 서로 알리고 그것을 함께 나누자고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길로 나갔단말입니다. 이렇게 관계가 지어져서는 안됩니다.》

그이께서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시면서 최준걸을 다시 쳐다보시였다. 최준걸은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어느덧 긴장을 풀고 그이의 말씀에 심취되여있었다.

앞상 한쪽에 놓였던 물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그이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도 알겠지만 혁명이란 원래 간고하고 준엄하기마련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소수에서 시작되고 미약한것에서 출발해서 다수를 이기고 강대한것을 타승해야 하는것이 혁명이기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지적의리가 그 관계의 밑바탕에 유쾌하고 성수가 나는 일만 놓아두기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벌써 혁명이 아니며 더구나 동지적의리도 아닙니다. 보십시오. 우리의 앞길이 얼마나 험난한가. 3천리강토가 두동강이 났습니다. 계급적원쑤들은 우리의 내부에서 또 외부에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인민정권을 내오고 토지개혁을 했는데 그것은 모두 대내 대외의 원쑤와의 피어린 투쟁속에서 진행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조국을 통일해야 하고 이 땅에 인민의 락원을 건설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 피를 흘리는 국내전쟁도 있을수 있고 외래침략자와 판가리싸움을 할수도 있습니다. 자, 보시오. 사태는 이런데 누가 무어라고 했다고 해서 또 무슨 과오가 있다고 해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짬이 있는곳에 쐐기가 들어오기마련입니다. 우리가 서로 믿고 단결하자고 하는것은 그것이 어떤 치레거리인사이거나 외교적언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의리는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살아나가야 한다는 각오로 담보되여야 합니다.》

《장군님!》

눈물이 글썽해서 듣고있던 최준걸이 목메인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툭 떨구었다. 너무나도 날카롭고 준엄한 진리가 가슴속을 샅샅이 뒤져놓은것이다. 순간 눈앞이 뽀얗게 흐려지더니 하나의 환영이 앞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만주 장춘의 교외에 자리잡았던 광물연구소앞마당에서였다. 머리를 항상 빤빤히 깎고다니는 재향군인 오장 사까이라는자가 검도채로 최준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불의에 타격을 받은 최준걸은 땅바닥에 쓰러지고말았다. 사까이는 최준걸의 목을 즈려밟고 항복하라고 다그었다. 무엇때문에 항복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따라서 항복한다는것이 어떻게 하는것인지도 몰랐다. 몇시간후에야 정신을 차렸는데 마당 한쪽 하수도도랑안에 던져져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대동아전쟁의 승리의 신심이 덜한 조선지식인은 매명당 이렇게 하나하나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했다는것이다.···

최준걸은 몸을 떨었다. 환영에서 깨여나자 이마에서 땀이 쭉 흘렀다. 눈앞이 차차 개이자 장군님께서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고계신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자 금시 코마루가 저려나며 눈물이 쏟아졌다. 어째서 그런 엉뚱한 환상이 떠올랐는지 알수 없었다. 더구나 왜 그렇게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다만 그때 그는 온몸에서 마지막 한쪼각의 혐오와 어리석음마저 다 빠져나가면서 이름할수 없는 긍지와 보람이 흘러들고있다는것을 느끼였을뿐이였다.

《장군님! 뜻을 알겠습니다. 뼈속깊이 뜻을 새겨두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하지만 그 말마디들마다에는 그의 심혼이 알차게 박혀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뜻하지 않게 이야기가 정도이상 심각하게 되였다고 보시였는지 《최동무!》하고 부르시고나서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저기를 좀 보시오.》 그이께서는 차창밖을 가리키시였다. 《다른때에도 이맘때면 저렇게 논밭에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까? 오늘이 4월 21일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열흘내지 보름은 더 일찍 들일이 시작된것 같습니다. 토지를 받은 농민들이 봄을 앞당겼습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언젠가 시집을 보니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고 눈물을 머금고 시인이 웨친것이 떠오릅니다. 인젠 우리 농민들이 빼앗겼던 봄을 되찾았습니다.》

계속해서 그이께서는 청진지구를 위시한 함북도의 산업형편을 물으시였다.

최준걸은 성의껏 준비한 실정보고를 올리였다. 1시간이상 보고를 올리고나서 다시 자기자리로 돌아온 최준걸은 앞서처럼 창턱에 팔굽을 올려놓고 흘러가는 외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이때 그의 심정은 종창을 무자비하게 도려내는 대수술을 겪고난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였으며 어데선가 불러일으키는 활력에 의해 온몸이 꿈틀꿈틀 뛰는것 같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가느다란 바람결에도 함부로 흔들리던 단풍잎같은 불안과 공포가 가셔지고 안착되고 굳건한 자기자신을 볼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것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김일성장군님 한분만을 믿고 따를것이다. 오직 그분 한분만을 믿고 따를것이다. 오직 그이 한분만을! 이 각오와 의지만이 어떤 폭풍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자신이 나갈 길을 찾을수 있으며 처음 손을 맞잡고 언약한것을 지켜내게 될것이다.)

그는 이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준엄한 진리를 처음 깨달은 기쁨과 그것을 지켜내야겠다는 엄숙한 감정이 가슴에서 넘쳐흐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