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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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만은 대동강 기슭을 따라 모란봉으로 올라가고있었다. 옥류소나루터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교리쪽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얼음판우에 쭉 늘어섰다. 이곳 사람들이 전하는데 의하면 대동강은 양력설을 열흘 앞두고 얼음이 건너간다고 하였는데 추위가 늦어진다던 이 겨울에도 역시 강은 제 습관대로 한주일전에 얼어붙었던것이다. 강기슭에는 얼음구멍을 까고 김장배추를 씻는 아낙네들이 쭉 늘어섰고 멀찍이 깊은곬으로는 낚시군들이 두간두간 앉아있었다.

그는 청류벽쪽으로 가지 않고 곧추 을밀대쪽 지름길에 들어섰다. 길가에는 살맹이나무가 우거졌고 몇걸음 숲으로 들어가면 소나무가 하늘이 보이지 않게 빽빽이 들어찼다. 그렇게도 흥성거리던 모란봉이건만 추위에 쫓겨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간혹가다가 한둘 락엽이 깔린 오솔길을 걷는것이 눈에 띄였고 어데선가 껙껙 장끼 우는 소리가 나는데 신통히도 어느 심산속같은 정취를 자아내고있었다. 맑은 공기가 가슴에 스며들었고 추녀를 쳐든 을밀대가 그지없이 정다왔다. 양춘만은 검은색 외투에 중절모를 썼고 손에는 흰종이에 싼것을 하나 든채 줄곧 길바닥만 들여다보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최승대를 왼쪽에 두고 대동강쪽으로 내려서니 민틋한 잔디판이 나졌다. 잔디우에는 눈이 한벌 덮여있었다. 양춘만은 눈에 덮인 분묘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비문을 쳐다보니 《항일렬사 박원식의 묘 1915년 12월 00일생》이라고 새겨져있었다. 그는 종이에 쌌던것을 조심스럽게 펼치였다. 그안에서는 역시 종이와 색갈이 같은 두송이의 국화꽃이 나타났다. 양춘만은 두손으로 꽃송이를 정중히 받들어 올리더니 잠간 그것을 쳐다보고나서 대리석상석앞으로 다가갔다. 허리를 굽혀 상석우에 덮인 눈을 손으로 말끔히 밀어제낀 다음 그우에다 꽃을 올려놓았다. 손이 후드드 떨리였다. 그렇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꽃송이를 다시 우로 돌려놓고 뒤걸음질을 해서 물러났다. 얼마간 간격이 생겼다고 보았을 때 그는 눈우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한번 절을 하고 다시 일어나 또 허리를 굽히려다가 양춘만은 그만 중심을 잃고 앞으로 푹 꼬꾸라지고말았다. 그는 땅에 엎드린채 끅끅 숨을 갑자르며 울기 시작하였다.

《박원식선생!》 그의 목소리는 설음에 지지눌려 겨우 후두를 빠져나왔다. 《양춘만이 찾아왔습니다. 뒤늦게나마 사죄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허두를 떼자 가슴이 떡 막혀 말을 더 계속할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묘등을 여겨보려 했으나 물속에서 눈을 뜬것처럼 뿌옇게 흐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눈을 문지르고 또 쳐다보았다. 그렇게 하노라면 수첩장을 펴들고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하던 박원식의 모습이 얼마간이라도 보일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앞에는 이음새를 아직 아물구지 못한 언틀먼틀한 떼장이 싸늘한 눈을 떠이고 누워있을뿐이다. 그는 눈을 내리감았다. 그러자 팔을 부둥켜잡고 《양춘만선생이 옳습니까.》하고 너무 반가와 어쩔줄 모르던 박원식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다음에는 경성역에서 차에 올라 굳이 앉을 자리를 내서 자기를 앉히고야말던 고집스러운 그 얼굴이 또 나타났다. (아! 나는 배신자올시다.)하고 양춘만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천추에 용서받을수 없는 죄인이다. 내가 왜 진작 그를 찾아오지 못했는가. 다문 한마디라도 그가 살았을 때 진정을 털어놓았어야 하는것이다. 나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을것이다. 그 저주롭고 통분한 감정을 그대로 가진채 그는 갔을것이다.

바람이 불었다. 석양이 비낀 공간에 은가루를 뿌려놓은것처럼 현란하게 눈가루가 날리였다. 바람결에 놀란 메새 한마리가 양춘만의 머리우를 날아 맞은켠 다박솔가지우에 앉아 울깃불깃한 목을 요리조리 휘두르고있다.

그때 언뜻 양춘만은 상석 옆자리에 눈길이 갔다. 별로 도두룩하게 눈이 쌓인 감을 주었기때문이다. 손으로 눈을 헤집어보니 뜻밖에도 그속에 어린애들 놀이감이 묻혀있었다. 하나는 나무로 깎아 먹칠을 한 곰이고 다른 하나는 고무줄로 쏘게 만든 나무권총이였다. 눈을 모아서 덮어놓은것으로 보아 며칠전 눈이 온 다음에 가져다놓은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고보니 놀이감이 묻혔던 그앞으로는 끼뼘 하나 되나마나한 어린애들의 발자국이 몇쌍 뚜렷이 찍혀있었다. 양춘만은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그의 눈앞에는 흐릿한 달빛아래 팔을 내두르며 《우리와 같이 가자!》하던 평산벌장면이 그대로 펼쳐져보이였다. 야음을 흔들며 처절하게 울리던 박원식의 고함소리가 그대로 귀를 울리는것이다. 무아몽중에 빠진 양춘만은 박원식을 향해 가노라고 벌떡 일어나 잔디언덕에 뛰여올랐다.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서 더 나갈수 없게 되자 그는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지만 박원식의 웨침소리는 그냥 귀를 울리였다.

《가지 말라. 돌아서라. 우리와 같이 가자! 우리와 같이 가자!》

이윽해서 환각에서 깨여난 양춘만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렇다! 같이 가겠다. 당신들이 가는 길을 이 한목숨이 진할 때까지 따라가겠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길로 드팀없이 걸어가겠다. 그 길우에서 영광이 차례져도 좋고 또 어떤 경우에 불행에 빠져도 좋다. 그 길에서 먹어도 좋고 굶어도 좋다. 그 길에 어떤 리념이 놓여도 좋다. 공산주의라도 좋고 또 어떤 다른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이의 령도를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으로 따르겠다. 참된 인간의 보람을 안고 사는데야 무슨 타산이 필요하며 무슨 주저가 있겠는가. 박원식선생! 당신이 내뻗친 그 손을 굳게굳게 붙잡고 가겠소. 영원히 변치 않고 가겠소. 같이 가겠소. 같이 가겠소!》

그는 두팔로 땅을 짚고 앉아서 분묘쪽을 지켜보고있었다. 온 얼굴에서 땀이 흘러 턱밑으로 방울져 떨어졌다.

그때 난데없는 사나이가 하나 나타났다. 그는 양춘만이쪽을 한동안 멀거니 바라보다가 그만 외면을 해버리고 분묘앞으로 다가가고있었다. 양춘만은 정신을 가다듬고 지켜보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사나이는 상석앞에 바투 다가서서 고개를 숙여 묵상을 하였다. 그런후에 사나이는 나무꼬챙이로 분묘 오른쪽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구뎅이를 하나 파기 시작하였다. 그는 염낭에서 종이에 싼것을 꺼내더니 뭐라뭐라 하면서 하얀것을 주르르 구뎅이에 쏟아부었다.

양춘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발볌발볌 거기로 다가갔다.

사나이는 정성들여 구뎅이를 메웠다.

《박원식동지! 그때 그 쌀을 가져왔소. 해주의 쌀이요. 제밥을 해가지고와 술을 붓는것보다 이것이 날것 같아 그랬소. 량해하시오.》

사나이는 갈린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나서 뒤로 물러선다.

잠시후 그들은 나란히 최승대로 통하는 언덕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참말, 저 박원식동지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혁명투사의 전형이구요.》 사나이는 걸음을 멈추고 분묘쪽을 다시한번 돌아다보면서 말하였다. 《저는 평양철도국에 있는 한명구라고 합니다. 피차 박원식동지를 잊지 못해 찾아온것 같은데요. 난 한생 처음으로 참되고 숭고한 인간을 보았습니다. 내가 갈 길에 그가 대신 갔다가 반동들에게 희생되였습니다. 순 나때문에 그렇게 된것이지요.》

말문이 막혀 더 이어대지 못하고 헐떡거리였다. 양춘만은 온몸이 굳어진채 한명구를 지켜보고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강선제강소에 있는 양춘만이라고 합니다. 저의 사정은 선생님에게 비길바가 못됩니다. 나는 그를 배반했습니다. 고인의 가슴에는 내가 찢어놓은 상처가 그대로 있을것입니다.》

흥분을 이기지 못해 눈에 눈에 벌겋게 피가 진 그들은 새 생활에 들어선 자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펼치였다.

《그러니까 박원식선생이 지금 몇살입니까?》

《오늘이 생일이니까 만 30입니다.》

《30!!》하고 양춘만은 어깨를 들었다놓으며 긴 한숨을 쉬고나서 말하였다. 《나보다 나이는 두살 아래지만 200년은 앞선 사람입니다. 훌륭한 사람이지요. 인간이 도대체 무엇때문에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에 아직 똑똑한 대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길지 않은 한생을 괴롭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것은 명백합니다. 빈궁하게 사는것이 괴롭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굴종하며 사는것보다는 나을것입니다. 굴종, 인간이 못할것이란 굴종하는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크고 혹독한것이라 해도 후회를 남기는 일보다는 괴롭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자기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나는 박원식선생의 묘앞에서 울었습니다. 그를 슬퍼해서가 아니라 나자신의 후회가 너무 크고 가련해져서 울었습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한명구의 팔을 붙잡았다. 혼자서는 몸을 지탱해내기 어려운 모양이였다. 《아! 나는 어쩌면 좋습니까. 김일성장군님품에 안기자고 내 손을 붙잡고 끌어당기던 박원식을 나는 배반하고 도망을 쳤단말입니다. 그가 나를 부르며 같이 가자 같이 가자 하던 고함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합니다. 사람이 났다가 사람에게 덕은 주지 못할망정 원한을 끼쳤다면야 그게 무슨 인간입니까. 남의 희생우에 뿌리를 내린 인간을 인간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개짐승만도 못하지요. 인간은 인간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데 나는 그것을 배반했습니다. 이 후회를 무엇으로 씻습니까. 무엇으로! 나의 마지막 소망은 박원식선생처럼 그렇게 림종을 겪어보고싶다는것뿐입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수건으로 눈물을 닦고있는 양춘만을 쳐다보군 하였다. 가슴에서 부글부글 괴여오르는 설분을 끝없이 토로하고싶었지만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유감이였다. 쌀한줌, 곰, 권총들이 눈앞에 어른어른하여 끝내 그는 기침을 터뜨리게 되였다. 기침을 진정시키게 되자 그는 또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래 나는 강철을 만들겠습니다. 그속에 내 인생을 깡그리 녹여넣겠단말입니다. 나에겐 이 길밖에 없지요. 피차 우리는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삽시다.》

키가 껑충한 한명구는 불을 토하는것 같은 양춘만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고개만 끄덕이고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서는 저편만 못지 않게 인생이라든지 후회라든지 하는것을 놓고 토로하고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종시 그럴 틈을 얻어내지 못하였다. 다만 그는 저편에서 눈물을 보일 때는 눈물로, 자기타매를 할 때는 또 그대로 자기 가슴을 움켜잡고 몸부림치군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