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1

 

제 1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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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걸은 썰렁한 자기 방에 앉아서 통계표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안경을 끼고 시선을 집중하고있는데도 수자들은 명료하게 안겨오지 않았다. 행정10국가운데서 산업국이 중요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좁다란 국장방이 하나 있고 그다음에는 장방형 기다란 칸에 부문을 담당한 일군들이 한 20명 비좁게 들어있었다. 한쪽에서는 벽걸이전화통에 대고 《여보시오. 여보시오.》하고 고함을 지르며 장거리통화를 하고있고 또 이쪽에서는 여러명의 상공인들이 책상 하나에 둘러앉아서 허가증 수속을 하고있다. 나들문쪽으로 청년 하나가 장작을 한아름 안고 들어와 화독에 불을 일굴 차비를 하고있다. 더워서 헐헐하던것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화독에 장작을 때야 사무를 볼수 있을만큼 방안에 랭기가 스며들었다.

최준걸은 쪽걸상을 바투 당겨놓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로 수자들의 호상 련관을 따져보고있었다. 품명과 수량, 금액과 인원 등이 각자 제나름의 의의를 띠고 사슬처럼 지면우에 련달려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명사나 수자들은 모두 북조선주민의 의식주상태를 표현하고있기때문에 어느 하나도 소홀히 보아넘길것이 못되였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건지 모르겠소.》

옆방에서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런두런 울리던 목소리가 갑자기 한음계 뛰여올랐다.

《이러다간 우리 공장, 기업소들을 몽땅 조선족일본인에게 넘겨주게 될거요. 아니 뭐, 현재로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건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요. 한동무, 동무요 아니면 최준걸의 목소리요?》

순간 최준걸은 손끝이 파르르 떨리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다음에도 계속 뭐라뭐라 하는데 알아들을수 없었다. 거치른 말투와 굴곡이 심한 억양으로 보아 오기섭이 틀림없었다. 며칠에 한번씩은 나타나 분위기를 뒤흔들어놓는 오기섭이였다. 어떤 때는 국제국내정세를 풀면서 열을 올리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맑스나 엥겔스의 공산주의리론이 어떤것이며 우리 조선은 력사발전에서 어느 단계에 놓여있는가를 늘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제때 공부한 과학자, 기술자, 교육자들을 함부로 우리 대오에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는것을 자주 력설하군 하였다. 화제야 무엇이든간에 그 놀랄만한 기억력에 의해서 거침없이 인용되는 고전적명제들, 적절한 비유 그리고 류창한 언어구사로 사람들의 정신을 뗑하게 만들었다.

손기척이 있어서 고개를 드니 문가에는 경공업을 담당한 한동무가 죽지가 처져서 《최준걸동지, 부릅니다.》하였다.

《누군데?》

《누군 누구겠어요. 오씨지요.》

최준걸은 알겠노라고 하고 한동무를 돌려보낸 다음 잠간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언제 한번 좋게 만났다가 좋게 헤여진적이 없었다. 오기섭은 언제나 고자세로써 위압하였으며 일단 머리를 숙이는 기미가 보이면 숨돌릴새없이 추격해오군 하였다. 더구나 흥남에 있는 강병철사건을 두고 완전히 서로 상극이라는것이 드러났다. 《친일적요소》, 《일제잔재》 또는 《프로레타리아의 혁명대상》 등등 그런 표현만 들어도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최준걸 자기자신을 지명해서 공격하는것 같고 그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군 하였다. 그러나 최준걸은 이를 사려물고 참았다. 말그대로 일제에게 복무한 죄악에 대한 타매는 응당 감수되여야 할것으로 보기때문이다.

최준걸은 책상우에 놓였던 안경을 끼고 조심스럽게 복도를 지나 오기섭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요새 산업국사업이 어떻습니까? 앉으시오. 왜 그렇게 낯선 집에 온것처럼 그럽니까.》

오기섭은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쪽걸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최준걸의 팔을 잡아 제가 앉았던 자리에 앉히였다.

《공장이 몇개나 더 돌아가게 되였습니까?》

《그저 그렇습니다. 돌아가는것은 돌아가고 서있는것은 서고.》

최준걸은 정확한 사업실태를 요구하는것이 아니라고 보기때문에 건성으로 대답해 넘기였다.

《롱담이면 몰라라 사실이 그렇다면 그건 자연생장성이라는 난치의 병인데요. 산업은 그렇고 최동무 건강은 어떻습니까. 돌아가는 말을 들으면 전혀 식사를 못한다는데.》

《궤양이다보니 환절기에는 고통을 좀 겪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건강해야 하는데 그것 참 야단이군요. 그런데 최동무.》하고나서 오기섭은 미소를 거두었다. 《난 오늘 외교를 하지 않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자고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친일적요소가 우리 산업부문에 지나치게 류입되고있는데 그 책임이 바로 최동무에게 있다고 보게 됩니다. 철도의 한명구 문제도 그러했지만 그건 지난일로 칩시다. 그러나 강병철이 문제야 당신이 모른다고 할수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거기에 파견했고 로복구도 당신이 승인했다는거요. 그러고도 본인에게는 별일 없을것이라고 말했다면서? 로를 폭파한것은 강병철이 책임이지만 강병철을 그렇게 하도록 만든것은 동무가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을성도 한도가 있습니다. 더이상 모험을 한다는것은 혁명앞에 죄악입니다. 이제는 그만합시다.》

오기섭은 숨돌릴새없이 연방 공격을 들이대였다.

철도에 있는 한명구는 생때같은 항일유격대원 한명을 희생시켰다, 또 강선에 있다는 양춘만이도 불발탄과 같은 존재이다, 이제 만났던 한동무도 평양곡산공장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을수 있다, 이런 등등 사건을 두고 생각되는바가 없는가고 하였다.

고개를 숙인채 장시간의 설명을 듣고야 《이제는 그만합시다.》라는 오기섭의 결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 있었다.

《이것은 나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는것을 말해둡니다.》

오기섭은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처음으로 최준걸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최준걸의 눈굽에는 피빛이 어리고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였다. 그는 입술을 감씹으면서 북받치는 감정을 눌렀다. 강병철의 사건이든 그 누구의 문제든 그로서는 책임질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들을 동정하였다.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기때문에 그들을 사업에 인입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였을뿐이지 개개의 사건은 자기와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를 정당화할만한 용기가 없었다. 다만 그는 최준걸이 조선의 산업을 위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것이 유일한 기준이였고 자기 무게를 가늠하는 저울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부정된다면 이여의 론리는 완전히 공담으로 될것이였다.

오래동안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해서 오기섭이 자리를 뜨면서 《최동무! 뭐 별로 심각해질건 없습니다.》하고 옷걸개에서 캡을 벗겨들면서 뒤를 이었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그런 몸으로는 복잡다단한 산업국사업을 감당해내지 못하지요. 잘 생각해보시오. 그리구 저 한가지 참고로 말해둘것이 있습니다. 며칠후에 우리 당보에 인테리문제에 대한 론설이 하나 나가게 될겁니다. 필명은 오. 케. 에스로 했습니다. 당신네한테 참고로 될수 있습니다.》

최준걸이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화독에서 타던 장작불은 다 스러지고 방안공기는 이마전이 선뜩할만치 식어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또다시 통계표를 들여다보았다. 공장, 기업소의 실태조사표였다. 전력, 채취, 금속, 화학 그런 순으로 일제가 경영하다가 버리고 간 기업소 실태가 적혀있었다. 눈은 수자들을 더듬고있었지만 그의 뇌리에는 오기섭이 남긴 말마디들이 계속 갈마들었다. 《이제는 그만합시다》, 《나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서로 다르면서도 뜻이 잘 통하는 두개의 표현이 꼬리잡이를 하며 뱅뱅 돌아갔다. 그럴수록 눈알이 꼿꼿해진 최준걸은 한참동안이나 통계표를 계속 들여다보고있다가 책상서랍을 당기였다. 백지를 한장 내놓고 펜을 집어든 그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띠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사직서》하고 써놓고 다시 생각에 잠기였다. 그렇다. 합금로가 그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에 의해 폭파되였다는것은 나자신이 인정하는것이다. 그렇다면 오기섭이 말하는것처럼 그 책임에서 강병철이 벗어날수 없다. 하지만 강병철은 장군님에 의해서 용서를 받고 다시 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나는··· 나는 강병철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말할수 없지 않은가.

그는 자리를 떠서 복도까지 따라나갔다. 다시 오기섭을 만나 진의도를 밝힐것이며 오해가 있다면 납득시켜야 할것이였다.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이르렀을 때 오기섭이 앉은 풍차는 벌써 저쯤으로 멀어져가고있었다.

자기 방으로 되돌아온 최준걸은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갔다하였다. 창가에 다가섰다가는 출입문께로 나가고 그랬다가는 다시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였다.

(왜정때 기술자를 정도이상 내가 끌어들인다고? 천만에. 그것은 내가 끌어들인것이 아니라 공산당의 정책이다. 또 그랬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죄로 되며 그것으로 해서 최준걸이 이렇게 배척을 당해야 할 리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강병철의 사건만은 변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장군님께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자.) 최준걸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언제나 만날적마다 웃으시며 손을 잡아주시던 인자한 장군님의 영상이 삼삼히 떠올랐다. 등나무덩굴밑 장의자에서 밤을 새며 말씀하실 때 담배가 더 없는가 물으시던 그 모습도 보이였다. 최준걸은 후두두 몸을 떨었다.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천만가지 시름을 안고계시는 그이께 심려를 끼쳐드리다니. 그래서는 안된다.)

이렇게 생각이 미친 그는 이를 사려물고 의자에 다시 앉았다. 펜을 집어들어 《신병상 관계로》라고 쓴데 잇대서 《사직을 청원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래 이렇게 하는것이 옳아. 오기섭은 자기 혼자의 생각만이 아니라고 했었지.)

《최준걸동지!》 손기척도 없이 키가 꺽둑한 한동무가 들어섰다. 《오기섭동지가 뭐라고 했습니까?》

《뭐 별말이 없었소.》

《그래요. 나한테는 가슴이 섬찍섬찍한 소리를 하던데요. 그래 난 각오했습니다. 왜정때 괜치 않게 살았으면 공산치하에서야 고생을 좀 해야지요. 그래야 합해서 두등분하면 평균치라는것이 나오니까요.》

《여러말 말고 강냉이에서 배아기름을 뽑는 기술공정이나 짜시오.》

단호한 말이였지만 어째 그런지 그의 음성에는 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