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환상문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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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두텁고 천정이 높으며 창문에 창가림이 무겁게 드리운 크레믈리의 널직한 회담장을 두개의 무리등이 밝게 비치고있었다. 기자들이 조쏘 두나라에서 진행되는 정부회담의 력사적순간을 보도하기 위하여 사진기의 샤타를 연방 눌러댔다.

회담장은 친선의 분위기에 휩싸여 흥성거리고있었다.

쏘련정부대표단성원들인 말렌꼬브, 흐루쑈브, 몰로또브, 불가닌, 미꼬얀 등과 인사를 나누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유있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회담탁가운데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회담이 시작되기에 앞서 모스크바의 날씨와 기자들의 수고에 대하여 몇마디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왼 가리마를 탄 엷은 머리칼을 매끈하게 빗어넘기고 눈섭꼬리가 류달리 급하게 휘여든 말렌꼬브와 코안경을 걸고 앞에 놓인 무슨 문건인가 들여다보던 몰로또브, 국방상의 직무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것 같은 숱많은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있는 불가닌 등 쏘련측 성원들은 물론 우리 대표단성원들도 모두 즐겁게 웃었다. 새로 쏘련공산당제1비서의 중책을 진 흐루쑈브도 웃몸을 흔들며 누구보다 큰소리로 웃었다. 분위기는 한결 흥그러워졌다.

기자들이 물러가고 장내가 한결 정숙해지자 말렌꼬브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쏘조 두나라 정부들사이의 의의깊은 회담을 시작하면서 조선전쟁을 승리로 결속하고 맨 처음으로 자기 나라를 방문하고있는 존경하는 김일성동지와 정부대표단 전체성원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말하였다.

《존경하는 김일성동지와 뜻깊은 상봉을 하게 된 이 기회에 쏘련공산당과 정부와 인민을 대표하여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 리승만반역도당을 반대하는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이룩한데 대하여 경의를 표시하며 동시에 조선인민이 달성한 승리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말렌꼬브는 회담탁에 두손을 얹어놓고 맞은편에 앉으신 김일성동지를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인사의 말부터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쏘련정부가 우리 나라의 평화적건설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물심량면으로 우리 인민을 지지성원하여주었으며 조선에서의 정전의 실현을 위하여 적극 노력한데 대하여 그리고 전후에는 파괴된 우리 나라 인민경제의 복구건설을 돕기 위하여 우리에게 원조를 주기로 한데 대하여 사의를 표시하시였다.

이어 회담은 기본문제토의에로 넘어갔다.

말렌꼬브는 쏘련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최근에 진행된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토의된 문제들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통보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렌꼬브의 통보를 주의깊이 청취하시였다. 그러시면서도 말렌꼬브옆에 앉은 흐루쑈브에게 자주 주의를 돌리시였다. 흐루쑈브는 말렌꼬브가 발언을 시작하자 정숙한 자세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이시면서 우리 나라 정부대표단 성원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군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숙한 자세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마치 앉은 자리가 불편이라도 한것처럼 웃몸을 회담탁에 약간 기울이기도 하고 좌우로 자주 움직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그는 고개를 한옆으로 돌리더니 옆에 앉은 불가닌에게 무슨 말인가 하고는 웃었다.

수령님께서는 흐루쑈브가 큰 나라의 당수반치고는 가볍고 신중치 못한데가 있지 않는가 생각되기도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말렌꼬브가 통보하는 쏘련당전원회의에서 토의했다는 농업문제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쏘련당제1비서를 새로 선출한 그 전원회의가 농업문제를 제기하고 토의하였다는 사실을 중시하지 않을수 없었다. 확실히 그 전원회의는 안건을 사전에 공개하고 토의를 진행하는, 당규약상 요구에 따라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진행해온 전원회의들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류다른데가 있었다.

새로 선출된 당제1비서에게는 농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야심적인 계획이라도 있는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지금까지 중공업을 강행적으로 발전시켜온 쏘련당에서 그 어떤 정책변화라도 가져오는것이 아닌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말렌꼬브의 통보에 귀를 기울이시였으나 통보내용은 매우 실무적이고 공식적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 두고보기로 하고 회담에서 우리 나라 정세를 통보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정전협정체결과 관련하여 새로운 정세가 조성되였습니다. 당면하여 우리앞에 나선 과업은 이제 얼마 안있어 열리게 될 정치회의에서 우리 나라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달성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이제 소집하게 될 정치회의의 기본목적은 미군과 그 추종국가군대들을 남조선에서 완전히 철거시키고 조선문제를 조선사람자체의 손으로 해결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에 조성된 새로운 정세를 통보하시면서 적들이 아무리 책동하여도 우리 인민의 정당한 요구는 반드시 실현되리라는것과 여기에서 쏘련인민들을 비롯한 전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강력한 지지와 성원이 있으리라는것을 확신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쏘련정부대표단성원들은 그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였다.

《조선로동당은 국제로동운동의 한 성원으로서 전쟁을 통하여 사회주의진영을 강화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조선로동당이 세계평화를 수호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리라는것을 믿습니다.》

흐루쑈브가 처음으로 발언하였다. 그는 손세를 써가며 힘찬 어조로 사회주의진영의 형성과 그 역할에 대하여 몇가지 더 언급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흐루쑈브가 새삼스럽게 사회주의진영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데 대하여 주의를 돌리시였으나 그에 대하여 구태여 해명하려고는 하지 않으시였다.

회담은 다음문제토의로 넘어갔다. 그것은 쏘련정부가 우리 나라에 제공하기로 결정한 무상원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리용할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우리는 우리 당 제6차대회에서 전후 우리 나라 인민경제복구발전의 기본방향을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복구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데 두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전제하시고 우리 당이 제시한 경제건설의 이 기본로선에 따라 쏘련의 원조를 나라의 경제적토대를 튼튼히 쌓는데 도움이 될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리용하려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복구발전시킨단 말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흐루쑈브가 대머리를 번쩍 추켜들며 질문을 하였다. 우리 대표단 성원들은 말할것도 없고 쏘련측 성원들도 일시에 흐루쑈브를 돌아보았다. 서투른 고수가 화음이 잘 조화되여 울리던 노래의 중간에 갑자기 북소리를 울린것처럼 그가 던진 한마디 질문은 호상리해와 친선의 분위기속에서 진행되던 회담의 흐름에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을 남기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희뿌연 눈섭과 몽롱한 안개발이 낀것 같은 흐루쑈브의 표정을 살피면서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것이라고 방금전에 하신 말씀을 다시 반복하시였다.

《우리가 알건대 조선은 지금 재더미가 되였고 인민생활도 몹시 령락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복구발전시킬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조선당이 내놓은 그 로선에 의견이 있습니다.》

흐루쑈브가 볼부은 어조로 말하였다.

그것은 뜻밖이였다. 지금까지 형제당들사이에는 로선상문제를 둘러싸고 크게 의견상이가 있어본적이 없었고 더구나 그것을 회담석상에서 이렇듯 조야하고 서투르게 로출시킨 전례도 없었다.

회담장에는 침묵이 깃들었다. 우리측은 물론 쏘련측에서도 외교관례에서 벗어난 흐루쑈브의 언행에 어리둥절해진듯 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흐루쑈브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 나라의 위력을 강화할데 대한 우리 당의 로선을 반대하는것이 그가 최근에 쏘미사이의 평화적공존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있는것과 일맥상통하는것이 있지 않는가고 생각하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런 내색은 하지 않으시고 여유있게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쏘련사람들속에는 대충 아는것이 전혀 모르는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 나라 실정을 잘 모르면 그런 의혹이 갈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다시 크게 웃으시였다. 그것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하던 회담의 분위기를 따뜻이 녹여주는 해빛같은 웃음이였다. 쏘련측에서도 웃었다.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너무도 상상밖의 정황에 가슴을 조이고있던 남일은 문득 몰로또브가 자기앞에 펼쳐놓은 그 어떤 문건에서 고개를 쳐들고 경탄어린 눈길로 수령님을 바라보는것을 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아량있는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시고 우리 나라 경제가 혹심하게 파괴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중공업의 밑천이 남아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중공업을 발전시킨다는것도 순수 중공업을 위한 중공업이 아니라 인민생활향상과 관련되는 중공업부문부터 먼저 복구발전시키려 한다고 설명하시였다.

말렌꼬브와 몰로또브, 불가닌은 김일성동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다 리해가 된다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런데 이때 이제껏 한마디 말도 없이 자못 긴장한 자세로 꼿꼿이 앉아있던 쏘련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인 싸부로브가 대화에 끼여들었다.

《제가 말씀드리려 하는것은 순수 기술적문제인데 조선당에서 공작기계생산기지를 하나 새로 조성하려 한다는데 이걸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하는것입니다. 귀국의 기계공업토대가 매우 미약하다는것을 고려하면 차라리 우리 나라나 체스코슬로벤스코와 같은 나라들에서 공작기계를 받아다 쓰는것이 낫다고 보아집니다. 계획을 보는 사람으로서 실무적으로 제기되여 말씀드리는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문제지요.》

《그것이 어찌하여 단순한 기술적문제이겠습니까? 그것은 매우 심각한 원칙적문제입니다. 설사 우리가 채굴공업을 발전시켜 광물을 팔아 살아간다 해도 광물캐는 채취기계가 있어야 하고 또 기계란 쓰다나면 고장도 나고 마모도 됩니다. 그런 경우 일일이 형제나라들에 손을 내밀수야 없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에는 아버지의 주머니에 있는 돈도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통속적으로 말씀하시자 이번에도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싸부로브도 게면쩍은듯 얼굴을 붉히며 비죽이 웃고는 더 말을 하지 못하였다. 흐루쑈브는 역시 장내의 분위기에 휩싸여 웃으려고 하였으나 어쩐지 그 웃음이 잘 되지 않아 얼굴을 찡그리기만 하였다.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웃음을 자아내는 통속적인 조선속담속에 사회주의나라들사이의 호상관계규범과 같은 매우 원칙적이며 심각한 문제를 예리하게 제기하시였다는것을 대뜸 간파하였다.

한동안 안절부절 못하고있던 그는 밑도 끝도 없는 엉뚱한 문제를 불쑥 제기하였다.

《지금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모두 전력주파수를 50싸이클로 쓰고있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에서만은 계속 60싸이클로 쓰려고 하는지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흐루쑈브의 축 늘어진 두볼이 푸들푸들 떨리였다. 그가 몹시 흥분하고있다는것이 알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흐루쑈브의 표정을 바라보시였다. 비로소 그의 얼굴을 뿌옇게 감싸고있던 안개 같은것이 말끔이 가셔지고 내심깊이 감추고있던 음흉한 기도들이 그 얼굴에 여실히 내비쳐진것 같았다. 회담도중에 흐루쑈브가 조선로동당은 국제로동운동의 한 성원이라느니, 사회주의진영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였다느니 하면서 사회주의진영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린것이 과연 리유없이 하는 소리였겠는가, 사회주의진영의 존재를 부단히 강조하면서 우리 나라를 독자성과 자주성을 잃은 사회주의진영의 한개 부속물로 만들려는것이나 아닌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순간 쏘련정부대표단의 다른 한 성원인 우리 나라 주재 쏘련대사 쑤즈달레브에게도 주의를 돌리고계시였다. 그는 우리 나라 정부대표단이 평양을 출발하기 며칠전에 김일성동지께 신임장을 봉정한 신임대사였다.

그이께서는 신임대사와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선임대사인 라주바예브가 전쟁 전기간 우리 나라 최고사령부가까이에 있으면서 가지가지 고생과 시련을 다 겪었고 기쁨도 슬픔도 우리와 함께 나눈 전우라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신임대사도 전쟁시기와 못지 않는 간고한 복구전투가 벌어지는 시기에 우리 나라에 주재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앞으로 수고가 많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쑤즈달레브는 조선의 복구건설을 힘껏 돕겠다고, 무엇보다도 쏘련이 약속한 원조가 제때에 효과적으로 제공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바치겠노라고 대답하였다.

머리를 높이 추고 도수높은 안경을 낀 그는 옷차림도 겹섭 제낀옷에 큼직큼직한 점이 박힌 넥타이를 맨 구식차림이여서 사람이 무척 소박하고 성실해보였다. 그런 쑤즈달레브가 지금은 매우 심각한 표정을 하고 회담탁에 마주앉아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회담 전기간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한번도 웃지 않으며 시종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고 긴장해서 앉아있는것을 보시였다. 그는 새로 선출된 자기네 당제1비서의 언행에 놀라는것 같았고 더구나 흐루쑈브와 조선당사이에 심각한 의견상이가 있다는것을 감촉하고 아연해진것 같았다.

그이께서는 앞으로 우리 나라에 나와서 사업하게 될 그에게 똑똑한 인식을 주기 위해서도 흐루쑈브의 당치 않는 질문에 명백한 대답을 주셔야 했다.

《방금 전력주파수문제가 화제에 올랐는데 우리 나라의 전력주파수가 60싸이클인것은 사실입니다. 전동기들만 보아도 거의다 60싸이클로 쓰고있습니다. 그런 전동기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전동기들을 다 줴버리고 전력공급체계를 뜯어고치겠습니까? 쏘련이 우리에게 주는 원조는 고맙긴 하지만 다 한도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조선로동당은 조선혁명의 리익에 맞게 자주적으로 정책을 세우고 관철해나간다는것을 강조하고싶습니다.》

그이께서는 쏘련정부대표단성원 한사람 한사람을 근엄한 눈길로 바라보며 다소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흐루쑈브는 커다란 대머리를 떨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말렌꼬브가 김일성동지께서 내놓으신 문제들을 가능한 범위내에서 모두 실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면서 해당 부문에 넘겨 제기된 문제들을 더 검토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만나서 회담을 하자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 동의하시였다. 1차회담은 이것으로 끝났다.

크레믈리층계를 내려가시는 그이의 발걸음은 저으기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