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결단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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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승용차에서 내리시였다.

정준택은 그이의 곁을 떠날 시각이 되였다는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어붙은듯 발걸음이 제대로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무엇인가 그의 발목을 꽉 붙잡는것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수령님께서 그토록 침중한 안색을 지으신것을 본적이 없었다. 페허가 된 황철과 사리원시가 그리고 그 교외의 고아네 집과 령세농민들의 정상이 그이께 모진 아픔과 충격을 주었다는것을 정준택은 가슴저리게 느끼고있었다.

그는 끝내 그이의 곁을 뜨지 못하고 두어발자국 떨어져서 그이의 뒤를 따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골짜기아래로 천천히 내려가 갱도앞의 단층집무실에 들어가시였다. 정준택도 조용히 따라들어갔다. 잠시후 서기가 서류들과 문건들을 들고 들어왔다. 서기는 그 서류들과 문건들을 그이께서 필요한 시각에 찾아보시기 편리하도록 책상 한쪽에 쌓아놓고 그중에서 시간적으로 급하다고 생각되는 몇개의 문건들에 대해서는 따로 꺼내놓으며 필요한 설명을 하여드렸다. 그런 다음 그이께서 집무실을 뜨신 사이에 제기된 문제들에 대하여 간단명료하게 보고드렸다.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그저 듣고만 계시였다. 앞상을 마주앉은 정준택은 이상하게도 그이께서 서기의 말을 듣고계시기는 하지만 실상 생각은 지금 전혀 다른데 가있는듯 한 느낌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수령님, 분계연선지구를 돌아본 김일동지가 수령님을 뵈우려고 기다리고있습니다.》

서기가 말씀올렸다.

《그렇소? 빨리 들여보내시오. 가만, 내각사무국장동무를 불러주오.》

수령님께서는 돌아서 나가려는 서기에게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서기가 나간 다음에도 한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었고 서기가 급하다고 말씀드린 문건에도 주의를 돌리지 않으시였다.

정준택이 앞에 있다는것도 잊으신듯 싶었다.

잠시후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낀 김일과 그뒤에 키큰 내각사무국장이 들어왔다.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오랜 전우인 김일을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김일은 서류가방에서 문건을 꺼내여 그이께 올리며 분계연선지구의 농사형편을 간단히 말씀드리였다. 그는 지금 당중앙위원회 중요직책에 있으면서 농업부문을 담당하고있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어 내각사무국장에게 래일 진행할 내각 제17차전원회의준비정형과 그 다음에 진행할 전원회의안건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내각사무국장은 그이의 책상우에 타자문건들을 내놓으며 필요한 설명을 하여드리였다.

《지금 예견하고있는 18차전원회의안건은 다 뒤로 미루어야 하겠소. 18차전원회의에서 애국렬사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의 문제를 보아야 하겠소. 평양시와 각도 소재지에 그들을 위한 학원을 따로 내와야 하겠소. 이것은 매우 긴급한 문제입니다. 이런 방향에서 전원회의를 준비해야 하겠소. 전원회의 소집날자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내각사무국장에게 지시를 주어 내보내시고는 김일과 정준택더러 앞상에 나앉으라고 이르시였다. 그리고는 자신께서도 책상을 마주하고 앉으시였다.

《지금 나라의 형편은 매우 어렵습니다. 말그대로 온 나라가 페허가 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우의 문서더미에서 문건 하나를 뽑아들며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얼굴에 몹시 침통한 빛이 어리였다.

《전쟁피해정형을 종합한 이 자료를 보면 적들은 공화국북반부에 44만t도 훨씬 넘는 폭탄과 3,600만여리터의 나팜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로하여 8,700개소의 공장, 기업소와 60여만호의 살림집, 5,000여개의 학교, 1,000여개의 병원, 진료소, 260여개의 극장과 영화관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시설들이 파괴되였습니다.》

김일이 의분에 찬 어조로 말씀올리였다.

《분계연선일대의 농촌들을 돌아보았는데 집한채 성한것이 없고 토지, 산림, 다리, 모든것이 다 파괴되였습니다. 신해방지구 농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령락되였습니다.》

《그럴것입니다. 오늘 황철에 나갔다가 사리원쪽으로 돌아오면서 사리원교외의 한 마을에 들려보았는데 농민들의 생활형편이 말이 아니였습니다.》

《지금 세계여론은 조선전쟁처럼 그렇게 피해가 막심한 전쟁은 없었다고 말하고있습니다. 면적당 사상자수와 파괴의 규모에서 단연 세계기록이라는것입니다.》

정준택이 조용히 말씀올렸다.

《세계기록! 얼마나 통분한 일입니까. 미제의 귀축같은 만행에 의하여 우리의 중공업도 경공업도 농업도 모두 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인민생활도 령락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의분을 참기 어려운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뒤짐을 지시고 방안을 거니시였다. 벽에 걸어놓은 조선지도앞으로 다가가신 그이께서는 한동안 말없이 지도를 바라보시였다.

방안에는 숭엄한 정적이 깃들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두사람을 향해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표정은 전에없이 근엄하면서도 심각한 빛을 띠고있었다. 김일과 정준택은 복구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말씀이 계시리라는것을 예감하여 숨을 죽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이께서는 정준택에게 전혀 상상밖의 질문을 하시는것이였다.

《정준택동무, 동무는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준택은 무엇이라고 말씀올려야 할지 얼핏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머밋머밋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를 복구재건할 때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강력한 중공업을 건설하여야 하겠다고 그이께서는 한두번만 강조하지 않으시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 문제를 다시 물으시다니?

《수령님, 저희들이 수령님께서 중공업의 복구건설에 힘을 넣으라고 늘 말씀했던것을 잊지 않고있습니다. 그런데 인민생활이 너무도 령락된 지금 형편에서 방대한 자금이 드는 중공업건설에 우선적인 힘을 넣으면 어차피 인민생활부문에…》

정준택은 이렇게 말씀을 올리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이의 아픔을 덜어드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헤집어놓는다는 생각이 얼핏 그의 뇌리를 스치였던것이다.

《사실 우리 인민들은 몹시 어렵게 살고있습니다. 잘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그이께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정준택은 가슴이 옥죄여져 무슨 말씀을 드릴지 몰랐다. 과묵한 김일은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묵묵히 앉아있었다. 그이께서는 지도에 바투 다가서시여 파괴된 도시와 마을들을 더듬으시였다.

《페허가 된 거리, 령락된 인민생활, 제한된 자금… 그러니 중공업에는 더이상 힘을 넣을수 없단말인가?》

그이께서는 혼자소리로 자신에게 물으시였다. 그리고는 대답을 찾으시려는듯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시였다.

보총 10만자루가 없어 후퇴를 결심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 가을날의 아픈 추억이 되살아나시였다. 바로 여기 룡흥리골안에서 수도에 대한 적들의 집중적인 대폭격을 겪으시던 그 수난의 밤도 현실로 다가왔다.

 

1952년 7월 11일과 12일 밤, 그때 적들은 연 수백대에 이르는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수도를 잔혹하게 폭격하였다. 수천수만톤의 폭탄과 나팜탄, 휘발유통들을 마구 뿌려던졌다. 수도는 불바다가 되였다.

특히 가루개와 룡흥리일대가 참혹하였다. 가루개장마당을 끼고있는 이 일대는 주민들이 밀집되여있었고 단층목조살림들이 비좁게 들어앉아있었다. 그 집들이 온밤 무섭게 타번졌다.

그 시각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룡흥리골안의 갱도집무실에 계시였다. 산이라기보다 나지막한 언덕에 뚫어놓은 깊지 않은 갱도는 온밤 지진을 겪는것처럼 뒤흔들리였고 천정에서는 흙부스러기가 쉬임없이 떨어져내렸다. 온 평양시를 뒤덮은 화염은 룡흥리골안에도 휩쓸어들었다. 피빛같은 불빛이 갱도를 거쳐 수령님집무실에까지 스며들었다. 재티가 날리고 수만채의 살림집들이 타는 내내에 적들이 마구 휘뿌려던진 수만톤의 뜨로찔과 린, 류황, 휘발유가 타는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이께서는 폭격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집무탁에 두손을 짚고 서계시였다. 갱도가 뒤흔들리고 폭풍이 갱도에 휩쓸어들 때 그이의 안색에는 참을수 없는 고통의 그림자가 무겁게 스치군 하였다. 그이께서는 몸부림치는 이 땅을 진정시키려고나 하는듯이 두손에 꽉 힘을 주시고 집무탁을 내리누르시였다. 하늘도 땅도 무섭게 타번지는 불바다속에서 신음하며 절규하는 우리 인민의 피타는 웨침소리를 들으시는듯 그이께서는 그렇게 움직일줄 모르고 서계시였다.

《꽝! 꽝!》

《꽈르릉!》

갱도가까이 어디엔가 폭탄이 떨어진듯 또다시 강렬한 폭음이 귀청을 때렸다. 밑뿌리채 뒤흔들리고 천정과 벽에서 흙과 돌부스레기가 흘러내렸다.

그이께서 어디엔가 전화를 거시자 수화구에서는 우리의 대공화력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폭격기편대가 계속 밀려든다는 보고가 울려왔다.

《종합대학이 불타고있습니다.》

《적십자병원이 무너지고있습니다.》

《수령님, 중성리 살림집구역에 불이 당겼습니다. 온 구역이 불바다가 되였습니다.》

련속 들려오는 처절한 보고.

그이의 안색에는 또다시 참기 어려운 고통의 그림자가 스치였다. 신음하며 몸부림치는 대지의 진동이 발끝으로부터 전신으로 치달아올랐다.

마침내 그이께서는 더이상 서고만 계실수 없었다. 자리를 차고나가며 집무실문을 활짝 열어제끼였다. 폭연이 뒤섞인 연기가 얼굴에 확 끼얹어졌다.

《수령님.》

직일을 서고있던 주인홍이 그이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이께서는 주인홍의 손을 밀어버리며 빠른 걸음으로 갱도를 걸어나가시였다.

또다시 폭탄이 갱도에서 가까운 어디에 떨어졌는지 귀청이 떨어지는듯 한 폭음과 함께 폭풍이 태질하듯 갱도를 휘감았다.

《수령님.》

보초를 서던 군인들이 갱도중간에서 그이의 앞길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들도 밀어제끼고 그대로 앞으로 걸어나가시였다.

《수령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안됩니다.》

등뒤에서 군인들이 울먹거리는 애절한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그이께서는 멎어설줄 모르시고 앞으로 앞으로 나가시였다.

이제 몇걸음만 나가면 방탄벽이고 그앞은 불바다였다. 타래치는 화염과 연기가 갱도에 휩쓸어들었다.

《안됩니다. 수령님! 더는 못나가십니다!》

부관들이 이렇게 웨치며 팔과 팔을 끼고 그이의 앞에 방탄벽이 되여 서있었다. 이번에도 그이께서는 그들을 단호히 물리치시였다.

《수령님!》

주인홍이 그이의 한팔에 매달리였다.

《수령님!》

또 한 병사가 그이의 다른쪽팔에 매달리였다.

《수령님! 수령님께서 자꾸 이러시면 우리는 어찌하랍니까! 수령님!》

부관들이 흐느끼며 웨쳤다. 그들은 연거퍼 그이의 팔에 매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쏟아지고있었다. 그때에야 그이께서는 자신께서도 소리를 내며 울고있다는것을 아시였다. 모두가 부둥켜안고 오열을 터뜨렸다.

아,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에 이런 수난의 밤이 과연 언제 있었던가. 파란 많은 혈로를 헤쳐오신 그이께서 이밤처럼 가슴 찢어지는듯 한 아픔을 체험하신적이 과연 언제 있었던가.

《동무들, 불바다속에… 저 불바다속에 우리 인민이 있소. 우리 인민이…》

그이께서는 오열을 삼키며 겨우 이 몇마디를 외우시였을뿐이였다.

그이께서는 이날밤 가루개골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다 안전한 내각갱도에 모두 피신하게 하신 다음에야 다소 진정하시였다.

하지만 가루개사람들은 그밤 내각갱도의 엷은 판자로 무은 좁은 출입문 저쪽에서 김일성동지께서 자기들과 함께 대폭격을 겪고계신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이 처참한 수난의 밤에 그이께서 생각하고 체험하고 속다짐하신것이 무엇이였는가?

물론 그것을 한두가지로 다 표현할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것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우리 인민을 꺾을수 없다는것, 우리 인민은 기어이 미제를 때려부시고 적들이 손찌검은커녕 함부로 넘볼수도 없는 그런 강유력한 나라를 이 땅에 일떠세우리라는것이였다. 페허가 된 조국강산에 기계제작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공업을 창설하여야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그리하여 다시는, 다시는 이런 민족수난의 력사가 되풀이되지 말아야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도 그 밤을 되새겨보며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김일과 정준택은 심각한 사색속에 계시는 그이의 표정에서 순간도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그이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시리라는것을 예감하여 두사람은 자기들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공업, 그렇습니다. 힘에 부치지만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복구하고 발전시키는것이 중요합니다.》 그이께서 침묵을 깨뜨리시였다.

《그렇다고 하여 경공업과 농업을 차요시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중공업과 경공업, 농업의 호상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것입니다. 중공업과 경공업, 농업가운데서 어느것을 중심고리로 틀어쥐고나가겠는가? 나는 응당 중공업을 중심고리로 틀어쥐고 여기에 힘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말하여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문제에서는 조금도 변함없으며 또 있을수도 없다는것입니다.》

그이께서는 두사람이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주시려는듯 잠시 말씀을 끊고 그들에게 눈길을 주시였다.

두사람은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였다.

《다음은 경공업과 농업문제인데…》

그이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김일은 긴장하였다. 자기가 보고있는 농업부문복구와도 관련한 중요한 말씀이 계시리라는것을 예감하였던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중공업과 경공업, 농업의 호상관계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전후 경제건설에서 중공업의 선차적복구발전을 확고히 보장하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공업과 농업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김일과 정준택은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을 한자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수첩에 적었다. 그런 다음 머리를 들었다. 두사람의 얼굴에 경탄과 함께 놀라움이 가득 비껴있었다.

중공업을 선차적으로 복구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가본 일이 없는 전혀 새로운 길이였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그리고 지구상에 새로 출현한 그 어느 인민민주주의국가에서도 가보지 못한 길이였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어느하나도 양보하지 않으시고 차요시하지 않으시는 그이의 대담성과 비범성, 무한대한 애국애민의 사상이 두사람의 뇌리를 휘감았다. 아직은 그뿐이였다. 그이께서 하신 말씀의 깊은 의미를 다 리해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였다. 그이께서도 그것이 십분 리해되는듯 웃으시였다.

나라가 페허로 된 형편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자고 해도 여간 어렵지 않겠는데 경공업과 농업도 그와 동시에 발전시키자고 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복구자금이 지금 타산하고있는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들리라는 생각이 정준택의 머리속에 얼핏 떠오르는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는 어디까지나 나라의 세간살이를 책임지고있는 실무일군이였다. 그이께서 로선을 제시하시면 그는 그것을 지침으로 튼튼히 틀어쥐고 이미 작성한 복구안도 다시 검토하면서 드팀없이 집행하여야 한다. 하기에 그의 머리속에 일단 떠오른 자금문제는 쉽사리 그의 머리속에서 빠져나갈줄 몰랐다.

(막대한 그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보장한단 말인가?)

머리를 수그리고 수첩장에 만년필을 박고있는 정준택의 머리속으로 이런 걱정거리들과 의혹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묻고싶은것이 없습니까?》

그이께서 침묵을 깨뜨리며 물으시였다. 정준택은 더이상 머리를 수그리고있을수 없었다. 그는 그이께서 제시하신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로선을 받아안을 때 사로잡았던 그 감격과 경탄에 대하여 그이께 말씀드리고싶었다. 하지만 자기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고계시는 그이의 사려깊은 눈길을 느끼였을 때 자기가 해야 할 말은 그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정준택은 그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솔직한 일군이였다. 정직성과 솔직성을 떼놓으면 사실상 정준택이라고 말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이앞에서 자기의 머리속에 떠오른 그 걱정거리와 의혹에 대하여 그대로 말씀드렸다.

《나도 그 점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있는 여러 문제들가운데서 자금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서고있는것도 사실입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고 하여 중공업, 경공업, 농업을 동시에 꼭같이 발전시키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선후차가 있으며 중심고리가 있습니다. 제한된 자금도 이런 선후차와 중심고리를 고려하여 투자하여야 합니다. 례를 들어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킨다 하여도 먼저 인민생활과 련관된 부문부터 발전시킨다 그 말입니다.》

《리해됩니다. 다 리해됩니다.》

정준택이 힘 는 어조로 말씀드렸다. 그이께서 정준택을 리해시키기 위하여 하신 말씀은 짧았으나 그것은 순간에 정준택의 머리속에 집요하게 파고들던 걱정과 의혹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하지만 정준택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그이께서는 아직도 정준택에게 깊은 확신을 줄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다 주지 못하신듯 여전히 신중한 안색을 짓고계시다가 김일에게 다시 물으시였다.

《더 묻고싶은것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김일은 그이의 눈길을 침착히 받아들이며 신중한 어조로 대답을 올리였다.

그이께서는 뒤짐을 지고 다시 방안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그이의 발걸음은 전에없이 무거워진듯 싶었다. 이윽고 걸음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두사람을 번갈아보며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듯 다시 물으시였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얼마나 힘들고 간고한 길인가를 동무들은 짐작할수 있습니까?》

그이께서 정준택의 얼굴에서 눈길을 멈추시자 정준택은 서슴없이 대답을 올리였다.

《짐작할수 있습니다.》

《짐작할수 있다?》 그이께서는 생각에 잠겨 정준택의 말을 받아외우시였다. 《아니, 다 짐작 못합니다.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것은 당면한 소비를 위한 경제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이 영원히 번영할수 있는 그런 경제토대를, 그런 억센 뿌리를 페허가 된 이 강토에 깊이깊이 심어놓자는것입니다. 당면한 소비보다 래일의 번영을 위한 믿음직한 경제토대부터 튼튼히 축성해놓자는것입니다.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의 힘을 조직발동하여 이 어려운 과제를 우리 당대에 기어이 해내자는것입니다. 그 누구도 쳐다볼것이 없습니다. 정동무가 걱정하는 제한된 자금도 먹고입고 쓰고사는데 풍청풍청 쓸것이 아니라 나라의 경제토대를 다지는데 쏟아붓자는것입니다.

한마디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이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간고한 길입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인민생활은 극도로 령락되였습니다. 우리 인민은 전쟁기간 집도 잃고 피도 많이 흘렀습니다.…》

그이의 목소리는 아픔에 젖어 갈리고있었다. 김일과 정준택은 그이께 그어떤 위안의 말씀이라도 드리고싶었으나 어쩐지 그들자신이 목이 메여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시련의 언덕을 넘으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은 우리 인민입니다. 이런 우리 인민은 마땅히 꽃수레에 태워 세상의 만복을 다 누리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민에게 락을 누리게 할 대신 또다시 아니, 오히려 지난 전쟁 3년기간보다 더 장기적이고 더 간고할수 있는 그런 길에 나서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말할수 없이 괴롭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이께서는 문득 말씀을 멈추고 두사람을 처음 보기나 하는것처럼 찬찬히 바라보시였다. 두사람은 그이의 안광에서 이슬 같은것이 번쩍이는것을 보자 자신들도 눈물이 금시 쏟아질것만 같았다.

《동무들, 어디 말해보오.》 그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나직이 울리였다. 《과연 우리 인민이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어렵고 시련에 찬 길에 일떠설것 같습니까? 동무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준택은 고개를 들고 그이를 바라보았다. 자기를 마주보시는 눈길은 정준택이 지금까지 한번도 본일이 없는 그런 눈길이였다. 강철의 의지가 빛발치는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인자하고 부드러운 눈길이였고 믿음과 확신에 차있으면서도 근심과 걱정이 어려있는듯 한 눈길이였다.

정준택은 평생 그 눈길을 잊을수 없었다. 너무도 어렵고 힘이 들어 주저앉고싶은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스며들 때마다 그 눈길이 자기를 지켜보는것 같았고 그 눈길을 의식하면 무엇이라고 형용키 어려운 뜨겁고도 강렬한것이 목구멍을 꽉 메우며 새로운 힘과 용기를 가다듬게 하는것이였다.

그이께서 정준택에게 우리 인민을 두고 의미심장하게 물으신 그 순간에도 그런 뜨겁고도 강렬한 격정에 휩싸여 그이께 얼른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수령님!》

낮으나 무게있게 울리는 김일의 목소리가 정준택의 뇌리를 쳤다.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화약내 풍기는 군복을 입고 그이를 가까이에서 받들어온 김일은 로병사의 엄숙하면서도 절도있는 자세로 서서 말씀을 올리고있었다.

《수령님! 수령님께서 부르시면 인민은 일떠섭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어려운 나날에도 그랬고 광복직후와 이번 전쟁의 그 복잡다단하고도 준엄한 시절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령님께서 부르시면 인민은 또다시 일떠섭니다!》 정준택의 목소리는 저도모르게 떨리였다. 《저는 오늘 페허가 된 황철에서 로동계급의 신심에 찬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동마을의 그 어린것들이 풀죽을 먹으면서도 전혀 기가 꺾이지 않고 희망과 랑만에 넘쳐 생활을 꾸려나가는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두사람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그들이 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주의깊이 듣고계시였다.

천정이 낮은 협착한 집무실에 숭엄한 정적이 깃들었다. 이윽고 그 정적을 깨뜨리며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지도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시더니 두팔을 넓게 벌리고 지도를 꽉 짚으시였다.

정준택은 삼천리강토를 한품에 안은 그이의 안광에서 열기가 번뜩이는것을 보았다.

《이 강토를, 페허가 된 이 삼천리강토를 일신합시다. 우리 다같이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피눈물과 얼룩진 민족수난사에 영영 종지부를 찍읍시다. 오늘은 비록 어렵지만 다시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가루만 날리는 이 땅에 민족이 영원히 번영할 튼튼한 토대를 다지는 그 길을, 전인미답의 그 길을 개척해나갑시다.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기어이 개척해나갑시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일의 얼굴은 격동에 휩싸여 붉게 타는듯 하였다.

《전날에 지적한 전후복구안도 이러한 원칙에서 다시 검토하고 완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당과 내각의 중요직책에 있는 일군들에게 회람시켜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정준택에게 말씀하시였다.

《알았습니다.》

이날밤 감북산중턱의 자기 사무실로 돌아온 정준택은 룡흥리의 깊숙한 골안에서 반짝이는 하나의 불빛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 불빛은 그때까지도 김일성동지께서 숙소에 가시지 않고 여전히 집무에 여념이 없으시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오랜 혁명전우인 김일과 아직도 농촌경리의 복구발전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문득 주인홍이 그이께서 이 땅에서 포화가 멎은 그 순간부터 며칠째 되는 지금까지 눈한번 붙이지 못하시였다고 그이의 집무실을 나서는 자기에게 안타깝게 말하던것이 상기되였다. 주인홍은 가렬한 전쟁의 나날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하며 울먹울먹하였다.

(아, 수령님, 수령님.)

반짝거리며 명멸하는 그 불빛을 바라보는 정준택의 두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맺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