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2

 

제 9 장

2

 

다른 소대들에 이어 리경준이네 소대도 무기와 탄알을 빼앗아 내기 위한 소규모전투를 하러 밀영을 떠나갔다.

리경준은 소대에 몇자루 안되는 온전한 총가운데서 그중 괜찮다는 총을 가지고있은만큼 응당 전투대렬에 끼이게 될줄 알고 착실히 준비를 갖춰왔었다.

그러나 소대장은 소대에서 리경준이 한사람만을 밀영에 남으라고 하면서 해도 좋고 안해도 그만인 긴치않은 일을 과업이라고 맡기였다. 귀틀집 뒤울안에 쌓아놓은 장작단들을 옆으로 서너m쯤 자리를 옮겨쌓으라는것과 귀틀집 주변정리를 하라는 과업이였다.

무엇때문에 장작단들을 옮겨쌓을 필요가 있는지 리경준은 리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귀틀집주변도 깨끗하게 정리되고 잘 손질이 되여있었다.

리경준은 그것이 순전히 자기에게 맡길 일감이 없어서 일부러 만들어낸 일거리라는것을 느낄수록 이상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나만 전투에 참가시키지 않고 이따위 쓸데없는 일거리를 만들어내여 밀영에 남겨두는가?)

그는 그 까닭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고 여러모로 생각해보았지만 그럴상싶은 까닭이 머리속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한시간도 못되는 짧은 사이에 장작가리를 옮겨쌓았다. 그리고 이미 정리도 청소도 잘되여있는 귀틀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손을 더 붙일만 한 일거리를 스스로 만들어가지고 눈도 치고 언땅을 파헤쳐 도랑도 만들어놓았다.

그런 일로 무료히 시간을 보내며 한창 땀을 흘리기 시작했을 때 사령부전령병 주봉길이 찾아와서 사령관동지께서 찾으신다고 알려주었다.

겨우내 흙먼지에 더럽혀진 질척한 눈을 움켜쥐여 손을 씻은 리경준은 주봉길을 따라가면서 비로소 소대장이 자기를 밀영에 떨구어놓은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라 사령부의 지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 리경준은 퍼그나 궁금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휘부귀틀집으로 넘어가는 오솔길옆에 있는 숲속의 공지에서 강세호련대장과 말씀을 나누고계시였다.

공지에는 볕이 쨋쨋하게 비쳐들고 바람이 막혀서 따뜻하고 아늑했다. 분비나무숲의 알싸한 잎내와 들크무레하고 구수한 썩은 락엽냄새 그리고 슴슴한 눈녹는 냄새가 여기서는 진하게 풍겼다.

《리경준동무가 오는군.》

사령관동지께서는 리경준쪽으로 마주 걸어오시여 그의 손을 반갑게 잡아주시였다.

여러날만에 뵈옵는것도 아닌데 뜨겁게 손을 잡아주시는 사령관동지의 다정한 손길을 접하면서 리경준은 그이께서 매우 중요한 과업을 주시기 위하여 찾으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전투대렬을 따라가지 못해서 좀 섭섭하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강세호쪽으로 눈길을 돌리시며 웃음 절반으로 물으시였다.

강세호는 늘 면도질이 잘되여있는 아래턱을 버릇처럼 만지면서 리경준에게 뜻있는 눈웃음을 보내였다.

자기의 심정을 환히 알아주시는 사령관동지께 무슨 말씀을 드렸으면 좋을지 리경준은 짐작이 가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강세호가 역시 웃음절반 섞인 음성으로 말하였다.

《지금은 섭섭해하는 기색이 아닙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그럴수 있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이시며 리경준을 마주보시였다.

《사실은 동무에게 전투보다 더 중요한 단독임무를 맡기기 위해서 내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리경준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주시는 임무를 받게 되는 자신을 두고 생각에 잠긴 나머지 이때에는 차렷자세를 취해야 한다는것도 잊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경준에게 주시려는 새로운 중요한 임무를 공식적으로 주시기보다는 무슨 개인적인 부탁을 하시듯 주시고싶으셨던지 리경준의 팔을 다정히 잡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경준동무도 요즘 학습을 통해서 알고있겠지만 우리는 지금 새로운 부대들을 편성하고 그 힘을 하루빨리 키워야 할뿐아니라 전 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을 광범한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묶어세워야 할 절박한 사정에 처해있습니다. 이 두가지 일이 경중을 론할 여지 없이 한결같이 중요하다는것과 또 얼마나 절박한가 하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남호두회의에서 결정한대로 새로운 부대들을 편성하는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물론 그 사업도 겨우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새로운 부대들을 조직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있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는 혁명동지들입니다. 부족한것은 사람이고 역시 귀중한것도 사람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느덧 리경준과 함께 공지를 천천히 거니시며 부대들의 현재 형편과 앞으로 그가 진행할 사업과 관련한 말씀을 들려주시였다.

《새 부대들을 편성하려 해도 숱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부대를 편성하는것과 함께 조국광복회를 한시바삐 창건해야 하겠기때문에 단 한명의 대원도 금싸래기처럼 귀한 때지만 그 일을 위해 투쟁속에서 단련된 유격대원들을 돌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미혼진에서 단 열다섯명을 데리고 떠나야 했을 때에도 바로 이 사업때문에 동만각지에 공작원들을 보냈습니다.···》

조국광복회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정형에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리경준은 아직까지 막연하게만 생각해오던 거족적인 조직체가 눈앞에 바야흐로 펼쳐지는것을 뚜렷하게 의식하였다.

《앞으로 조국광복회가 내세울 강령도 기본적으로 마련되였고 다른 준비사업도 계획대로 추진되여가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준비만 있으면 조국광복회를 창건할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런 준비와 함께 장차 조국광복회의 하부조직으로 될 각지의 반일회, 반일청년회, 반제동맹 등 통일전선단체들에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등 각계각층 애국적인민들을 더욱 광범히 망라시켜 그 대표들을 창립회의에 준비있게 참가시키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이 병행되여야 합니다. 창립회의에는 전체 조선인민을 대표할수 있는 각계각층 인민의 대표자들을 다 참가시켜야 합니다.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광복회를 내온다는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민혁명군대표들만 모여앉아서 조국광복회창립을 선포할수도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지금의 형편에서 가능한대로 각계각층 인민들을 대표할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하고 찾아내여 창립회의에 참석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리경준은 왕청유격근거지에 있을 때에도 지하공작임무를 받고 반유격구에 파견되여 활동한적이 있었다. 매우 조심스럽고 위험한 그런 혁명임무를 수행하는데서 경험이 없었던 그때에는 사실 꽤 그런 공작을 제대로 해낼수 있을가 하는 은근한 위구심과 불안속에서 임무를 접하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위구심과 불안감이 전혀 없었을뿐아니라 오히려 그 임무를 틀림없이 수행할수 있다는 자신심이 생기는것이 자기로서도 놀라왔다.

얼마전까지 못믿을 사람으로 몰려왔던 자기에게 가장 믿는 사람, 언제 어느 시각에 어떤 엄혹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곳에 내보내도 배신하지 않을 사람, 설혹 적에게 붙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혁명적지조를 지킬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는 그런 중대한 임무와 가장 두터운 믿음을, 그것도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주신다는것을 생각할 때 그는 눈에 눈물이 핑 고이는것이였다.

이때 그에게는 영영 잊으려고 마음먹었던 지난날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왕청에서 종파분자들이 자기와 안해와 아이들을 밀치다싶이 하며 《민생단》이라고 내쫓던 일들이 떠올랐고 뒤이어 병약한 안해와 아이들, 그리고 억울함을 못이겨 줄곧 한숨짓는 장철구와 장기령이를 데리고 설한풍 휘몰아치는 밀림을 헤치고 또 헤쳐오던 나날의 일들이 회상되였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있는 지휘부 귀틀집에 찾아들었을 때 자기들의 기막힌 사연을 랭담하게 듣고나서 총을 빼앗고 죄인 다루듯 하던 정치주임의 매정스럽던 얼굴도 떠올랐다. 그것은 과히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불과 며칠전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장군님께서는 자기를 친히 몸가까이 부르시여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믿음을 안겨주시는것이다.

《동무는 무송에 들어가서 무송지구에 장차 조국광복회하부조직으로 전환될수 있는 반일청년회, 반일회, 반제동맹 등 통일전선적단체들을 꾸려놓아야 합니다. 무송지구에 유력한 혁명조직을 꾸리는것은 당분간 이 지구에서 군사정치활동을 하게 될 우리 인민혁명군의 활동을 보장하는데도 아주 절실하고 긴박한 과업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계속하시였다.

《무송시내에 가면 <금강사진관>이 있을것입니다. 그 사진관 주인의 이름이 박문필입니다. 동무는 그를 찾아가시오. 그는 학생시절에 나와 같이 한학교에서 공부도 하였고 후에는 혁명투쟁에도 참가했습니다. 일전에 강세호동무가 천을 구하러 무송에 갔을 때 알아보니 그는 지금도 량심적으로 살고있다고 합니다. 자산계급의 출신이지만 량심적인 인테리청년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가 혁명적인 지조를 지키고있으리라고 믿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박문필의 형되는 사람이 무송에 있는데 그의 사상경향이 나쁜것만큼 잘 알아보고 활동할데 대하여 세세히 일러주시였다.

그리고 장군님께서는 박문필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주겠으니 그걸 가지고 가면 발을 붙이기가 한결 쉬울것이라고 하시면서 강세호더러 무송시내 지형과 《금강사진관》위치도 잘 알려주라고 당부하시였다.

공지를 벗어나신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강세호와 리경준은 자기 생각에 골몰하면서 장군님의 시선을 따라 무심결에 밀영병원이 자리잡고있는 맞은편 잣나무숲너머에 눈길을 보내였다.

자애에 넘치신 장군님의 음성이 울리였다.

《일이 바쁘다나니 그동안 리경준동무랑 최선금동무랑 한자리에 앉아 지내온 이야기도 변변히 나누지 못했구만. 경준동무, 떠나기전에 시간을 내서 아이들한테 한번 다녀오는것이 좋겠습니다. 최선금동무도 건강이 퍽 나아졌다고 합니다만 찾아가서 병세도 알아보고 우리의 안부도 전해주시오. 명일이랑 명숙이랑 무척 기다릴것입니다. 조국광복회창립회의에는 꼭 돌아와서 참가해야 하겠습니다.···》

강세호는 늘 인정미가 흐르는 눈에 만족한 웃음을 담고 벌써 리경준의 손을 잡아 이끌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