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1

 

제 9 장

1

 

멀리 숲의 변두리를 따라 햇솜처럼 가볍게 떠가는 흰구름도, 저편 애솔나무 숲속에서 우짖는 산새소리도 장기령에게는 뜻이 있어보였고 다정하게 들렸다.

인기척에 놀랐던지 애솔나무 숲속에서 까투리가 《꺼겅-》 하고 요란스레 깃을 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장기령은 걸음을 멈추고 이깔나무숲 변두리로 사라져가는 까투리를 이윽토록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빈 배낭을 걸친 어깨에서 흰 백포자락이 그의 들뜬 기분처럼 펄럭이였다.

그의 뒤로는 새 군복에 발가우리한 얼굴의 신입대원 인택이가 장기령의 기분에 따라 웃기도 하고 감탄도 하면서 끌리듯 따라가고있다. 그들은 행군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작식터에 오는것이다.

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그의 소대는 무기와 탄약을 얻기 위한 전투장으로 곧 떠나게 되여있었다.

점심식사가 방금 끝난 뒤인듯 언제나 분주스럽던 작식터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고 요즘 더욱 요란스럽게 울리던 칼장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작식터를 둘러친 도리풍안에 작식대원들이 있지 않는가 하여 기웃하고 들여다보니 작식대원들은 보이지 않고 말끔히 가시고 훔치여 나무판우에 포개여놓은 소랭이들이며 군용밥통이 해빛을 받아 오늘따라 유난히도 번들거렸다.

장기령이 이깔나무 숲속에 자리잡고있는 작식대원들의 숙소를 찾아가려는데 어디선가 녀대원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왔다.

바로 도리풍뒤에 있는 잣나무밑에 녀대원들이 모여서서 허리를 그러쥐고 웃고있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장기령일행이 옆에 온것도 모르고있었다.

칼장단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여서 《번개손》이라고 불리우는 키가 작은 녀대원이 눈에 덮인 새초밭속에서 나무토막을 찾아쥐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숨을 가다듬고 몇번 눈을 깜빡거리던 그는 아찔하게 높은 잣나무의 우듬지 어방에 대고 금시 날아오를것처럼 팔을 내흔들더니 앞으로 몸을 숙이면서 나무토막을 힘껏 올리던졌다. 뱅글뱅글 돌며 훨 날아오르던 나무토막은 잣나무아지에는 미처 닿지 못한채 윙하니 소리만 내며 허공을 날았고 《번개손》은 얼결에 땅우에 무릎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남 하는건 다 우스워보이지만 정작 하자면 그렇게 힘들어요.》

잣송이 따기내기를 하는 모양이였다.

이번에는 유격근거지에 있을 때 작탄을 불무지에 넣어 왜놈 《토벌대》열놈을 단번에 잡았다고 하여 《작탄10호》라 불리우는 암팡지고 힘이 있어보이는 녀대원이 자신만만하게 허리를 낮추었다가 힘껏 펴며 나무토막을 던졌다. 나무토막은 잣나무 우듬지를 향하여 기세좋게 뜨기는 하였으나 뜻하지 않게 녀대원의 머리우로 곧추 올라가는바람에 그들은 제각기 웃고 고함을 치며 떨어지는 나무토막을 피하여 허둥지둥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제야 와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이때에야 녀대원들은 장기령과 인택을 발견하고 반가와서 소리쳤다.

《위장포를 척 쓰구 이렇게 나타나니 정말 몰라보겠어요!》

《동무들한테 오려구 위장포도 깨끗이 빨아서 걸쳤지요.》

하고 장기령이 허리를 굽석하는바람에 녀대원들이 또 웃었다.

장기령은 녀대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흔들며 인사하고나서 어깨에 걸쳤던 빈 배낭을 벗어 인택이에게 넘겨주었다.

《작식은 잘하는것 같은데 잣 따는데는 아직 1학년생들이구만, 내가 좀 도와줄가?》

떨어진 나무토막을 들고오던 《번개손》이 입술을 쑥 내밀고 눈을 힐끔하였다.

《온 참, 흰소린··· 녀대원들이라고 함부로 얕보지 말아요. 남자면 아무거나 다 잘하는줄 아는 모양이지요? 잣 따는게 그래 기관총 쏘는것하구 같은줄 아세요.》

《이거 너무 얕보지 마십시오. 좀 억울합니다.》

《얕보게 안됐어요? 사격에서나 잣 따기에서나 우리 녀대원들만큼 잘 명중시키는 남성동무들이 있기나 해요?》

《아하- 그렇다면 우리 남대원들의 명예를 위해서두 기어쿠 솜씨를 좀 뵈줘야겠군.》

장기령은 위장포를 풀어서 눈우에 차곡차곡 개여놓더니 앞으로 나서며 팔소매를 한겹 접어올리였다.

《그만두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괜히 망신만 당할라구요?》

눈치빠른 인택이가 걱정스러운듯이 한마디 했다.

장기령은 맞춤한 참나무토막을 몇개 골라다가 가려놓았다. 그리고는 이마에 손을 대고 아찔하게 솟은 잣나무우듬지를 쳐다보았다. 정수리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섯개의 잣송이가 달려있었다. 바람에 나무우듬지가 춤추듯이 하느적거리고있었다.

투실투실한 잣송이를 눈여겨보고있던 장기령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자신없다는 태도다.

《벼르지만 말구 어서 던져보라구요. 잣송이가 내려다보구 웃어요.》

《자신 없는데···》

장기령은 우정 기가 꺾인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손에서는 나무토막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바람개비처럼 돌았다.

나무토막은 맨 웃가지끝에 부딪치며 딱-하고 야무진 소리를 냈다. 그러자 마치 거기에 앉았던 한떼의 새무리가 놀라서 후닥닥 날아나기라도 하듯 커다란 잣송이들이 훌쩍 공중에 솟구쳐 올랐다가 돌멩이같이 떨어져내렸다.

그와 동시에 잣나무에 앉았던 소담한 눈이 뽀얀 안개를 일으키며 가볍게 날아내렸다. 그속으로 찬란한 해빛이 비쳐들었다. 해빛에 반짝거리는 눈가루는 가지마다에 아롱다롱한 칠색무지개를 걸어놓았다.

《저 잣!》

《야-아!》

녀대원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손벽을 쳤다. 장기령은 잣나무를 향하여 연방 나무토막을 올리던졌다.

겨울무지개에 정신이 팔렸던 녀대원들은 눈속에 묻힌 산새라도 잡는듯이 승벽내기로 땅에 떨어진 잣송이를 찾아 허둥지둥 달려갔다. 잠간사이에 잣송이는 배낭에 가득찼다.

녀대원들은 장기령을 뒤따라가면서 탄복하였다.

《정말 솜씨가 대단해요.》

《장동무 말은 다 엉터리인줄 알았더니 잣을 잘 딴다는건 진짜군요.》

《철구어머니 말을 들으니 기관총도 그렇게 잘 쏜다면서요?》

《그렇지만 장동무, 너무 우쭐대지 마세요. 잣 따기경쟁이야 이제 겨우 시작했을따름이지요. 오늘은 우리가 좀 기분들이 들떴구 서둘러댔거던요.》

장기령은 어깨를 들썩거리였다.

《사실 나는 잣보다 동무들의 웃음소리가 더 듣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없는 소리를 좀 했지요. 정말 나는 한때 동무들의 그 명랑한 웃음소리가 퍽 그리웠댔습니다.》

장기령의 마지막 음성이 뜻밖에도 갈린듯 하여, 또 그가 루명을 썼던 일을 잘 알고있는 녀대원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작식터에 돌아온 녀대원들은 장기령과 인택의 배낭에 자기들이 준비한 음식가지들을 차곡차곡 넣기 시작하였다.

불에 말린 노루고기, 가마에 넣어 노랗게 닦은 강냉이, 소금물에 절인 콩···

장기령은 자기들은 굶다싶이 하면서도 특식을 마련해준 작식대원들을 마음속으로 고맙게 생각하였다.

음식이 든 배낭을 메고 숲속의 눈길을 따라오던 장기령과 인택은 녀대원들의 병실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통나무로 무은 출입문이 빠끔히 열려져있었는데 그리로 깔깔 웃어대는 녀대원들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웃을 일이 아니야요. 웃을 일이 아니래두요. 한마디씩이라도 좋으니까 모두들 의견들을 좀 내놓자요.》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물소리처럼 맑으면서 동시에 은은히 여운을 남기는 음성, 맺힘새 있게 또렷또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응석이 섞여있는듯 한 그 부드러운 어조,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장기령은 얼굴이 홧홧해지는것을 느끼며 그리움에 찬 눈길로 그 아담한 귀틀집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한남실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장기령은 인차 아쉬운듯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한남실이가 아동단원들을 데리고있는곳은 여기서 20여리 떨어진곳인데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는 한남실이 여기에 와있을리 없다고 생각되였다.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저야 언제 아이들 옷을 말궈본적이 있어야죠? 제 생각엔 그저 춥지나 않게 든든하게만 만들면 좋겠어요. 좀 맵시가 없을진 모르겠지만···》

《맵신 무슨 맵실 보겠어요? 산속에서 누굴 보이겠다구요.》

그러자 맑으면서도 응석을 부리는듯 한 음성이 다시 울렸다.

《없는 솜씨야 갑자기 어떻게 내겠어요. 그저 한시바삐 아이들에게 새옷을 입히시려는 장군님의 뜻대로 정성을 기울이면 되지요. 재봉대손으로는 그 숱한 아이들의 옷을 다 지을수가 없으니···》

그 다음부터는 속삭이듯 조용조용하게 울리는것이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가려들을수가 없었다.

《장기령동지, 갑시다.》

장기령이 어째서 눈속에 그냥 선채로 움직이지 않는지 알지 못하는 인택은 몇번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재촉하였다.

《아 잠간만···》

장기령은 누가 자기를 잡아끌기라도 하는것처럼 목소리가 울리는 귀틀집쪽으로 한걸음 내디디면서 간절하게 말하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는데요.》

《글쎄 조금만···》

그대로 돌아가자니 아쉽고 그렇다고 오래 서있을수도 없는 일이여서 장기령이 엉거주춤하고있는데 병실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장기령은 얼결에 한걸음 옆으로 물러서며 이깔나무뒤로 몸을 숨기였다. 병실에서는 키가 큰 녀대원이 안에 대고 무슨 말을 하며 나왔고 뒤따라 몸이 호리호리한 녀대원이 출입문 가름대에 머리가 닿는것을 저어하듯 고개를 숙일사하고 나왔다.

그는 키가 큰 녀대원과 함께 몇걸음 저쪽으로 갔다. 두 녀대원은 무어라고 다정스레 속삭이며 손짓을 하다가 다같이 가볍게 웃으며 손을 잡았다. 보건대 몸이 호리호리한 녀대원은 키가 큰 녀대원을 바래러 나온것 같았다. 이윽고 키가 큰 녀대원은 숲속으로 사라졌고 몸이 호리호리한 녀대원은 점도록 지켜서있다가 마지막에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장기령은 어째서인지 한남실의 옛모습이 떠올랐다. 근거지의 아동단학교에 찾아갔다가 돌아오는길이면 한남실은 저렇게 손을 흔들며 오래오래 지켜보고있었지···

몸이 호리호리한 녀대원은 병실로 돌아오고있었다. 이번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듯 고개를 숙인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아직 시원히 아퀴를 짓지 못한 모임때문에 그런지··· 녀대원이 이쪽으로 머리를 드는 순간 장기령은 하마트면 소리를 칠번 했다. 그는 한남실이였다.

이때까지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남실만 보아오던 장기령에게는 군복을 입은 그가 딴 사람같이 보였다. 좀 색이 바래긴 하였으나 두툼한 군복은 한남실을 의젓하게 만들었고 허리를 죄여맨 띠는 한남실을 몸이 호리호리하고 깔끔한 녀성으로 보이게 하였다. 이때 무엇때문인지 먼 하늘을 쳐다보며 그 인상적인 맑은 눈에 미소를 담았다.

이깔나무우듬지에서 가볍게 깃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 산비둘기가 하늘높이 날아오르고있었다. 푸른 하늘 높이 떠서 빙 원을 그리는 산비둘기를 따라 눈길을 돌리며 웃고있는것이였다.

장기령이 인택이를 곁눈으로 살피며 망설이다가 마침내 이깔나무뒤에서 나서려 하였을 때 아쉬운 눈길로 유유히 사라지는 산비둘기를 쫓던 한남실은 병실로 들어가고말았다.

금시 한남실을 소리쳐부르며 병실로 쫓아들어갈듯 두어걸음 내딛던 장기령은 다시 자기를 다잡고 주춤 멈춰섰다.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헐벗은 마안산아동단원들을 두시고 몹시 심려하고계신다는것과 어머님의 고귀한 은정이 깃들어있는 돈으로 무송에서 천을 사왔다는 소식을 이미 전해들었었다.

한남실은 바로 그 천으로 숱한 아이들의 옷을 속히 지어야 할 급한 일때문에 이곳의 녀대원들을 찾아왔음이 분명하였다.

한시바삐 옷을 지어 아이들에게 입혀야 할 사람을 불러내여 사사로운 일로 만나기가 어쩐지 마음에 걸리여 장기령은 그만 단념을 하고말았다. 하긴 숱한 녀대원들과 멋모르는 인택이의 호기심에 찬 눈길을 받으며 마음에 두고있는 처녀를 만난다는것도 쑥스러운 일이다. 어깨에 다시 기관총을 멘 버젓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처녀앞에 나타나고싶기도 한 장기령이였다.

(차츰 만나지. 그의 주소는 명백하니까.)

장기령은 마음먹고 돌아섰다.

《보지 않던 동무군요. 누굽니까?》

인택이도 한남실을 무심히 보지는 않은것 같았다.

《응?··· 아 그 동무, 나두 몰라.》

장기령은 귀틀집쪽으로 다시한번 눈길을 보내고는 인택의 손을 잡아끌었다.

《잠간 만나보지요뭐, 아직 시간이 있는데요.》

장기령은 머리를 젓다가 문득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어서 가자구, 소대에서 기다리겠어.》

장기령은 인택에게 잠시나마 그늘진 얼굴을 보인것이 화가 나서 왁살스럽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