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2

 

제 8 장

2

 

마침내 림강 마이허에서 《민생단》혐의자들을 찾아낸 리북철은 같이 갔던 두 경위대원에게 소대단위로 여러곳에 나가있다는 그들을 전부 모아가지고 곧 뒤따라오라는 과업을 주고 자기는 그 소식을 사령관동지께 보고드리기 위하여 지체없이 돌따섰다. 그가 낮이고 밤이고 쉬임없이 내처 걸어 제2련대 지휘부가 있던 귀틀집에 도착한것은 사령관동지께서 병원에서 이미 그곳에 오신 뒤였다.

그가 들어섰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초불이 가물거리는 통나무책상앞에 앉으시여 이곳 정치주임이 보관하고있었던 그 《민생단》혐의자들의 문건을 보시고계시였다. 문건은 책상우에 한가득 쌓이였고 책상옆의 긴의자우에도 무둑무둑 쌓여있었다. 리북철이 림강에 갔다온 정형을 간단히 보고드리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수고하였다고 하시며 어서 푹 쉬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는 사령관동지의 안색은 리북철이도 놀라리만큼 침통하시였다. 거기에 방안의 모닥불까지 꺼지였고 나무라는것은 진눈까비에 축축히 젖은것들이였다.

리북철은 사그라진 모닥불을 돋구기 시작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만하고 쉬라고 거듭 재촉하시였으나 리북철은 대답만 드리고 그냥 눌러있었다.

끝내 불을 피워놓고서야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리북철은 출입문 어구에 이르러 문득 가슴이 저릿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불빛에 비낀 사령관동지의 커다란 영상이 벽 전체를 차지하고있는데 어쩐지 깊은 시름을 자아내고있었다. 리북철은 얼핏 고개를 돌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책상우에 팔굽을 짚으시고 손우에 이마를 얹으신채 앉아계셨다. 책상우에는 문서더미가 무둑히 쌓였지만 그이께서는 조금도 움직이시는 기색이 없으시였다. 다만 등잔불만이 가물가물 타고있었는데 이것은 어쩐지 방안에 떠도는 시름을 보태주는것 같았다.

리북철은 사령관동지께 다가가려다 말고 살며시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봉길이와 종삼이가 밖에서 기다리고있었다. 리북철은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에게는 한껏 물기를 머금고 거밋거밋하게 늘어진 나무가지며 흙물에 범벅이된 눈무지며 게다가 방금 또 내리기 시작한 진눈까비며 하는것들이 모두 울적한 기분을 자아냈다.

불을 피우느라 땀을 흘렸던 얼굴에 진눈까비가 떨어지니 선뜩선뜩해왔다. 그러나 리북철은 사령관동지께서 쉬시기전에는 쉴만 한 마음의 여유를 못가진터이라 울적한 기분을 달래며 귀틀집둘레를 돌았다.

리북철이 모닥불을 근심하여 다시 집안에 들어간것은 퍼그나 지나서였다. 과연 근심하던대로 불은 사그라지고 옹이박이 나무끄트머리들이 남아서 그물그물 타고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나무가치를 꺾어가며 세모진 꼬깔을 다시 만들었다. 사령관동지께 방해되지 않게 발소리를 죽여가며 출입문께로 나오던 리북철은 이번에도 벽 전체를 덮고있는 사령관동지의 영상을 뵙게 되자 가슴이 울렁거리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사령관동지의 자세는 먼저 모습그대로이시였다. 책상우에 팔굽을 짚으시고 이마를 고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아까나 지금이나 자그마한 움직임도 없으시였다.

다만 그이의 모습을 비치고있는 불빛에 아지랑이같은것이 가물거리고있을뿐이였다. 축축히 젖었던 사령관동지의 군복에서 피여오르는 김이였다. 그는 가슴이 옥죄여들어서 그만 밖으로 나오려고 하였다.

이때 사령관동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경위대에 담배가 있겠는데···》

사령관동지께서는 혼자소리처럼 말씀하시였다.

뜻밖의 말씀이시였다. 지금까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담배를 피우시지 않으셨을뿐아니라 그것이 몸에도 해롭고 유격대활동의 은밀성을 보장하는데도 방해가 된다고 하시면서 대원들에게도 될수록 끊으라고 권하시였다. 그러시던 사령관동지께서 담배를 찾으시는것이다.

리북철은 영문을 알수 없었으나 심려에 잠기신 그이께 다시 여쭈어볼 엄두도 나지 않아서 곧장 담배가지러 달려갔다.

리북철이 담배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팔짱을 끼시고 방안을 거닐고계셨다. 무둑무둑 쌓여있던 문서더미가 펼쳐져있는 책상우에는 기름등잔이 밝게 타오르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리북철을 보시자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시였다.

《왜 쉬라고 하였는데 아직 쉬지 않고있소?》

리북철은 의아해서 종이에 싼 담배를 주물럭거렸다.

리북철은 이런 경우를 당하기는 처음이였다. 그이의 시선이 리북철의 손에 미치였다.

《손에 쥔것이 무엇이요? 담배라구··· 이왕 가져왔으니 한대 피워봅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종이를 오려서 담배를 말으신 다음 불자리에서 불찌를 골라쥐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불찌를 담배에다 대시려다 마시고 머리를 드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안광이 밝아지시는듯 하였다.

《그렇지. 북철동무가 알고있겠구만. 바야호마을에 김아무개라는 소년이 있었지.》

《예, 있었습니다.》 하고 리북철은 활기에 차서 대답하였다.

김소년이란 사령관동지께서 친솔하신 부대가 1933년 초여름에 가야허부근에 이르렀을 때 바야호부락에서 알게 된 소년이였다. 그때 김소년은 마을녀성들의 혐의에 몰려 《민생단》끄나불이라는 더러운 루명을 쓸번 하였다. 일부 유격대원들이 기름진 음식을 먹고 속탈을 만났는데 마을녀성들은 소년이 우물에 독약을 친것을 먹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소년자신도 마을녀성들이 몰아대는바람에 그것을 시인하였다. 리북철은 사령관동지앞에 불리여온 소년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천연스레 자기가 독약을 쳤다고 하던 일이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런것을 사령관동지께서는 뜨거운 어버이사랑을 베푸시여 김소년이 결백하다는것을 해명하시였으며 그것을 마을사람들앞에서 공개하시고 그를 유격대에 받아들인다는것을 선포하시였다. 김소년과 그의 어머니는 말할것도 없고 마을사람들 모두가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풍모에 접하여 울었다.

리북철은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목청을 높여 말씀드리였다.

《그 동무는 녕안에서 활동하던 련대에서 싸웠습니다. 그 련대에서 로획한 기관총 세자루가운데서 하나는 그 동무가 빼앗은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장하오, 장해! 그 동무가 벌써 한몫 단단히 하는구만. 그때 마을녀성들만이 아니라 그자신도 독약을 쳤다고 했지.》

이러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담배와 불찌가 달린 나무꼬챙이를 책상모서리에 놓으시고나서 먼저처럼 팔짱을 끼시였다.

《그때 우리가 그들의 말을 믿고 내버려두었더라면 어떻게 될번 하였소. 그가 어떻게 혁명대오속에 서며 어떻게 왜놈들을 족칠수 있겠소? 전에 차동범동무네 1중대에 있던 허동무도 그렇지. 허동무는 북만에서 싸우다가 영웅적으로 희생되였지만 본인은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순간에도 자기가 <민생단>혐의를 받고있다는것을 몰랐소. 몇몇 미련한자들이 그에게 더러운 루명을 씌우고 전투서렬에서 떼자는것을 우리가 막았소. 막았을뿐아니라 그를 더 보람있는 전투에 참가시킴으로써 동지들속에서 자신을 검열하게 하고 또 위훈을 떨치게 하였소.

과연 누가 허동무가 영웅적인 최후를 마칠 때 그의 심장에서 터져나온 <조선혁명 만세!>의 웨침소리를 두고 <민생단>이라고 하겠소? 우리가, 조선혁명이 그걸 인정 안하오.》

사령관동지의 안광에서 섬광이 번쩍이였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은 책상우에 더미더미 쌓여있던 《진술서》요, 《조사서》요, 《증거문건》이요 하는 《민생단》문서들에 대한 엄숙한 판결이기도 하였다.

언젠가 사령관동지께서 근거지의 병기창에 들리시였을 때 한번 만나신 일이 있는 고명창이라는 동무의 자료에는 그가 유격대내에서 파괴작용을 하기 위하여 일부러 화약에 물을 쳐 불발탄을 만든것으로 되여있었다. 그와 같은 사실로서는 소왕청방어전투때 불발탄이 세개씩이나 났는데 그것이 모두 그 해독행위의 결과라는것이였다. 지난날 그는 외알배기 렵총을 메고 유격구에 들어왔고 그후 철선을 얻기 위하여 대담하게 현소재지 근처에까지 나가서 전선줄을 끊어다가 작탄을 만들었는데 그 화약이라는것이 잘못 건사하면 누기가 갈수 있다는것을 생각할 때 자료에 대한 믿음은 영 없어지고마는것이였다.

자료의 태반이 이러루한것들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에는 본인의 자백서라는것이 뒤장에 붙어있었다. 고명창의 경우에는 날자까지 밝혀가면서 1933년 10월 20일 밤 바닥초에 경계근무를 나갔다가 백가라는 밀정을 만나 과업을 받았다고 씌여있었다. 본인의 진술서를 무시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정반대의것들도 있었다. 본인들은 극력 부인하는것으로 되여있었지만 그대신 서술된 자료며 더우기는 옆사람들의 객관적진술이 틀림없는 변절자라고 락인하고있었다.

《과연 누가 혁명에 바친 최선금동무의 충성의 마음을 부정할수 있소? 누가 감히 허동무를 조선의 혁명가가 아니라고 할수 있겠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라는 사령관동지의 대답소리에 이어 진눈까비에 푹 젖은 문룡이가 들어섰다. 리북철이 지시한대로 《민생단》혐의자들을 다 모아가지고 방금 도착한 모양이였다.

《모두 왔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급히 마주오는 그에게로 다가가시며 물으시였다.

《왔습니다. 저너머 련대병실에 와있습니다. 모두 수백리길을 단숨에 왔습니다.》

《수백리길을 단숨에?!···》

책상모서리에 놓여있던 담배는 말은채로 그냥 있었고 불찌는 가물거리다가 가느다란 한줄기 연기를 남기고 스러진지 오랬다. 이미 바깥은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