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1

 

제 8 장

1

 

장군님께서는 바쁜 시간을 보내시였다.

강세호가 돌아오면 천으로 시급히 아이들의 옷을 지어야 하며 그러자면 이곳 재봉대에 가시여 형편도 료해하시고 대책을 세워야 하시며 병기창과 병원에도 가보셔야 하실것이였다. 또한 《민생단》혐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한 료해사업에도 시간을 내셔야 하시였고 미구에 창건하실것을 계획하시고 이미부터 준비하여오시던 거족적인 반일민족통일전선체의 강령과 규약, 창립선언도 완성하셔야 하시였다. 어느것 하나 뒤로 미룰수 없는 그 많고 복잡하고 절박한 일들이 장군님의 끊임없는 사색과 정열적인 활동을 바라고있었다.

강세호가 무사히 도착하였을 때 장군님께서는 활동과정을 보고받으시며 수고가 많았다고 만족해하시였다. 반일부대병사들의 행위에 대하여 강세호가 말씀드렸을 때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무송지구에 널려있는 반순부대일것이라고 하시면서 일제를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반일부대와의 사업에 각별한 주목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 문제때문에 심중해지셨던 그이의 안색은 강세호가 천보자기를 펼쳐놓자 곧 부드러운 화기를 띠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천필을 펼치시여 쓸어보시고 탄탄한가 당겨도 보시고 마감에는 자신의 소매에 대보시기까지 하시더니 천퉁구리를 보자기채로 강세호앞에 밀어놓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또 수고를 좀 해줘야겠소. 동무가 이곳에 있다는 재봉대에 가서 형편도 알아보고 아이들의 옷을 만들도록 과업을 주시오. 한남실동무와 의논해서 근거지아동단원들에게 해입히던것과 같은 모양으로 짓는게 좋겠소. 재봉대형편이 어려우면 알리시오. 손이 모자라면 경위대동무들이라도 동원시킵시다. 강동무가 옷문제는 끝까지 책임지고 결속해야 하겠소. 내가 직접 재봉대에 가서 형편도 알아보고 재봉대원들을 만나보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민생단>혐의를 받은 동무들이 오기전에 그 문건보따리를 좀 헤쳐보아야 하겠소. 리북철동무가 그 동무들을 찾으면 2련대병실자리로 데려가도록 하였소. 아마 오늘래일쯤 도착할거요. 나는 2련대병실자리로 가는길에 병원을 돌아보겠소.》

장군님께서는 강세호를 재봉대에 보내신 다음 자신께서는 곧 병원을 찾아 길을 떠나시였다.

미혼진에서처럼 마안산밀영들도 10리, 또는 20리씩 거리를 두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들에 널려져있었는데 병원은 아동단원들의 귀틀집이 있는데서부터 거의 두시간 걸음이나 될 외진곳에 자리잡고있었다.

긴 한채의 귀틀집으로 되여있는 병원은 무성한 전나무숲속에 숨어있었으므로 가까이에 다가갈 때까지 눈에 잘 뜨이지 않았다.

귀틀집에서 좀 떨어진 길옆의 평평한 너럭바위우에서 다리를 부상당한 어느 환자의 걸음련습에 쓸 쌍지팽이를 만들고있던 병원책임자 김장도가 장군님께서 오시는것을 남먼저 알아보고 달려왔다.

장군님께서도 3년전 가을에 소왕청에서 얼핏 만나보셨던 김장도를 대뜸 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때 라자구전투를 계획하시면서 다른 현에서 활동하고있는 유격중대들을 소왕청마촌으로 부르셨는데 련락을 뒤늦게 받고 전투가 지난후에 도착한 중대에 바로 이 나이지숙한 대원도 끼여있었던것이다.

그전부터 침이나 약간 놓을줄 알고 동약처방 몇가지를 알고있던 김장도는 유격대의 군의로 되여 이곳 병원에서 혼자 환자들의 치료와 간호, 지어 후방사업까지 도맡다싶이 하고있다는것이다.

병원에는 제2련대의 기본성원들이 교하원정을 떠나가면서 남겨놓은 환자대원들을 중심으로 20명의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있었는데 그가운데서 이미 전투대렬로 돌아갈수 있을만치 회복된 열다섯명의 대원들은 멀리 원정 가있는 련대를 찾아 떠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겸 계속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을 위하여 식량과 후방물자를 해결해볼 작정으로 소규모의 습격전투를 하러 나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현재 병원 귀틀집에는 예닐곱명의 환자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김장도의 간단한 보고를 받으신 다음 먼저 남성대원들의 병실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녀성병실로 통하는 뒤울안쪽으로 가시다가 귀틀벽 모퉁이에 쪼그리고앉아 끄떡끄떡 졸고있는 어린 계집애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금시 잠이 들었는지 머리가 이쪽저쪽으로 군드렁거리는데 머리방아를 찧을적마다 놀라서 눈을 반쯤 떴다가는 인차 감으며 잠들어버리군 했다. 피기없는 그애의 량볼에는 채 마르지 않은 눈물방울이 붙어있었다.

그 아이를 유심히 내려다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는 눈길로 김장도를 돌아보시였다.

《이 애의 이름을 혹시 명숙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네. 명숙입니다.》

김장도 역시 장군님께서 어떻게 그애를 아시고계시는지 매우 의문스럽게 여기는 기색이였다.

리경준이와 그 가족들의 소식을 모르시여 안타까이 지내오셨던 장군님께서는 여기에서 뜻밖에 리경준의 딸을 보시자 여간 놀라지 않으시였다.

《얘가 어떻게 이 병원에 와있습니까?》

《이 얘의 어머니가 며칠전에 여기에 입원했습니다.》

《최선금동무가 여기 입원해있단말입니까?》

《네.》

《그러니 행군중에 우리가 본 가위밥이 최선금동무네가 여기까지 온 흔적이 틀림없었구만. 경준동무도 여기 있습니까? 저 애 아버지말입니다.》

《여기 없습니다. 환자와 두 아이만 여기 보내고 어디 다른데로 간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그러는데 누군가가 무슨 장아저씨란 사람하구 큰엄마하구 아버지는 딴데루 데리구 갔다는것입니다. 최선금동무한테는 묻지 못했습니다. 형편이···》

장군님께서는 김장도의 표정에서 최선금의 병세가 매우 위독하다는것을 짐작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바느질에 솜씨있기로 유명한 최선금의 딸이라고 믿지 못할만치 람루한 명숙이의 차림을 다시금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얇게 솜을 두고 지은 몹시 때가 낀 흰 무명저고리는 팔과 어깨와 소매굽 곳곳에 덧기운 자리가 있는데다 최근에 찢겼거나 해진채 깁지 못하여 안에 있는 솜이 그대로 밀려나온데도 있었다. 앙상한 무릎을 감싸고있는 치마도 역시 깁지 못한 자리가 있었고 작은 버선은 더구나 말이 아니였다.

저고리에 덧댄 천쪼박들은 거의가 사령부일행이 미혼진에서부터 마안산으로 오는 도중에 어느 한 우등불자리에서 얻어보았던 가위밥과 같은 색갈, 같은 결의 군복천쪼박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명숙이의 옷차림을 보시고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동안 얼마나 고생하였으리라는것과 지금 최선금이 자기 아이들을 돌보아줄 형편이 못된다는것을 짐작하시였다.

《사내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네, 명일이는 녀성환자대원들과 같이 잣을 따러 갔습니다. 어머니의 몸을 추세우는데는 잣죽이 좋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김장도의 대답이였다.

그러니 명숙은 자기를 혼자 남겨두고 슬그머니 가버린 오빠를 원망하며 울다가 지쳐 잠든 모양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주봉길을 돌아보시며 명숙이를 안아들여다 눕혀주라고 이르시고 녀성병실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최선금은 홀로 모포를 덮은채 아래목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무겁게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은 몹시 창백하였다.

그렇게도 잰솜씨로 바느질을 하고 그렇게도 날파람있게 재봉기를 돌리군 하던 손은 다시 움직여내지 못할듯 나른하게 밑으로 드리워져있었다. 피기없이 꺼져들어간 볼에는 이마에서 흘러내린 몇오리의 머리칼이 말려있었고 속눈섭이 차붓이 맞붙은 눈두덩에는 잠결에도 가셔지지 않는 수심이 어려있었다. 그의 보풀이 인 마른 입술은 약간 들려져있었다.

최선금의 머리맡에 앉으시여 흐린 안색으로 그를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재봉일과 바느질을 그렇게도 걸싸게 하던, 그러나 지금은 말없이 늘어진 환자의 손을 잡고 맥을 조심스레 짚어보시고는 눈길을 천정으로 보내시였다. 한마디의 신음소리도 없는 최선금의 정상이 너무도 가슴아프시고 쓰리시여 차마 바로 보시기가 어려우신것이였다.

리동백과 다른 경위대원들은 말없는 가운데 숨을 죽여가며 장군님과 최선금을 번갈아 지켜보고있었다.

최선금이 장군님께서 자기의 머리맡에 와 앉으시여 맥을 짚고 계시는것조차 모르고 누워있는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원장 김장도가 허리를 굽혀 나직하게 그의 귀전에 대고 불렀다.

《선금동무! ···사령관동지께서 오셨소. 사령관동지께서···》

장군님께서는 그냥 두라고 조용히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러나 김장도는 이번에는 최선금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건드리며 안타깝게 불렀다.

《선금동무! 선금동무!》

최선금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럴 때 어느새 깨여나서 주봉길이보다 앞서 달려들어온 명숙이가 무작정 어머니곁으로 다가서서 어푸러질듯이 매달리며 소리쳐 불렀다.

《엄마, 나 댕기ㅡ 장군님 오셨대. 댕기! 댕기매구 인사하자. 일어나.》

고요하던 최선금의 눈언저리우로 한가닥 붉은 기운이 흘렀다. 뒤이어 영원히 떨어질줄 모를것 같이 차붓이 붙어있던 속눈섭이 바르르 떨렸다. 최선금은 눈을 떴지만 그 눈은 정기없이 멍하니 귀틀집천정 서까래를 바라보고있었다.

김장도가 기뻐서 《최동무!》 하고 불렀으나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얼마후에야 그 눈동자는 한참동안 방안을 더듬다가 장군님의 모습에 미치였다.

그러자 그의 흐리멍텅하던 눈동자에 불꽃이 반짝 일어나면서 눈시울이 크게 열렸다. 일시에 그 두눈은 영채를 회복하였다.

《···!》

최선금은 장군님을 우러르며 입술을 열었으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아, 장군님!》 하고 부르는 그 들리지 않는 가슴속의 말을 알아들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최선금의 손목을 따뜻이 잡아쥐신채 은정이 담긴 눈길과 가벼운 고개짓으로 선금의 부름에 응답하시였다.

최선금은 몸을 움쭉거리며 힘없는 팔을 쳐들려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일어나고싶어한다는것을 아시고 말리시였다.

《그냥 누워있으시오. 일어나면 안됩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가슴우에 얹어주시고 다시 당부하시였다.

《일어날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최선금은 장군님께서 하시는대로 손을 맡긴채 장군님을 우러러보고 또 우러러보았다.

끝없이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던 선금의 눈길은 그이의 군복을 더듬다가 정하게 기운 자리에서 못박힌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움직일수 없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장군님의 군복에 대하여 그 누구보다 세심한 관심을 돌리군 했던 몸에 밴 지난날의 관습을 잊지 않았던것이다.

무엇때문에 최선금의 눈빛과 낯색이 불시에 달라졌는지를 헤아리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옷섶을 여미시며 말씀하시였다.

《선금동무! 일없소. 걱정마오···》

김장도는 묵묵히 무릎을 내려다보며 숨을 죽이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자리를 고쳐앉으시며 최선금의 손을 다시 모포우에 조용히 올려놓아주시였다. 그리고 인제는 떠나셔야 하겠다고 생각하시며 김장도에게 병원형편을 이것저것 물으시였다.

장군님께서 떠나시려 하신다는것을 알아차린 최선금은 이번에는 꼭 일어나려는듯 김장도에게 제발 좀 부축해달라고 눈으로 부탁하며 얼굴을 들려고 애를 썼다.

무엇인가 간절한 부탁이 있는지 아니면 떠나시는 장군님께 인사를 드리려는지 선금은 입술을 떨었다. 그러는 최선금을 만류하시려던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눈빛에서 무엇인가 가슴에 맺힌 절박한 사연이 있다는것을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장도를 돌아보시였다.

김장도는 당황한 기색이였다.

최선금의 입술사이로 《장군님··· 저는···》 하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그 다음의 말마디는 전혀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최선금의 머리맡에 상반신을 숙이시고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러시던 장군님께서는 갑자기 상반신을 일으키시며 크게 놀라시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동무가··· 동무가 그런 혐의를 받다니?》

사령관동지의 안광에 분기가 번쩍하였다.

《김장도동무, 어떻게 된 일이요? 최선금동무가 <민생단>혐의를 받다니?》

김장도는 눈길을 떨구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최선금의 손을 다시 잡으시고 엄하신 모습으로 마디마디에 힘을 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선금동무, 그럴수 없소. 아니요! 동무는 혁명가요!》

최선금은 흐느끼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밖으로 나오시였다.

(저렇게도 진실한 사람을 《민생단》으로 몰다니? 깨끗한 마음으로 혁명을 하겠다고 우리를 따르고 사령부를 찾아 그 험난한 길을 헤쳐온 사람들을··· 어떻게 이런 사람들까지 감히 《민생단》으로 몰수 있단말인가?)

밖에 나서신 장군님께서는 격하신 심정을 삭이시느라고 한동안 그대로 서계시였다.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웠던 하늘에서는 어느덧 진눈까비가 쏟아져내리고있었다.

군모를 쓰실것도 잊으신듯 뒤짐지신 손을 드신채 이깔나무숲속 저편의 먼 하늘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안광에 이슬이 고이고 그 이슬을 통하여 서리발같은 푸른빛이 내뻗쳤다.

껍찐껍찐하고 축축한 눈송이와 함께 굵다란 비방울들이 엇섞여 후둑후둑 떨어져 장군님의 머리칼과 군복과 모자를 적시였다.

진눈까비는 삽시간에 온 천지를 물탕으로 만들어버릴듯 먼 산들과 숲을 아물거리는 류다른 장막으로 가리워버리면서 점점 더 맹렬하게 퍼부어내렸다. 진눈까비에 온통 젖어드시는줄도 모르시는듯 그냥 서계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안타까이 지켜보고있던 원장 김장도는 그이의 곁에 한걸음 다가서며 조용히 아뢰였다.

《사령관동지,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아니요.》

단호하게 말씀하신 장군님께서는 경위대원들을 돌아보시였다.

《동무들, 출발준비들을 갖추시오!》

당황해진 김장도는 대뜸 눈물이 글썽해진 눈을 들어 장군님을 우러르며 떠듬떠듬 말씀을 드렸다.

《사령관동지! 진눈까비가 멎은 다음에··· 그게 멎기전에는 떠나시지··· 못하십니다. 인차 날도 저물겠는데···》

《아니요. 더는 한초도 지체할수 없소.》

장군님의 엄하신 말씀이였다.

그이께서는 김장도원장에게 완쾌된 환자들이 돌아오면 즉시 련락을 띄우라는 말만 남기시고 지체없이 병원에서 떠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