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7

 

제 7 장

7

 

한개 련대가량의 왜놈군대행렬이 무송시내의 서문으로부터 거리중심으로 밀려들고있었다.선두에는 진흙투성이가 된 무거운 군화를 질질 끌며 오랜 행군에 지친 대렬이 무엇에 끌리듯 걸어가고있었다.

개털외투깃에 머리를 틀어박은 《토벌대》놈들은 목을 놀리기조차 고달픈듯 다만 얼음장같이 차거운 눈길을 외투깃너머로 힐끗거렸다.

대렬뒤로는 땀에 뜬 군마들이 흰 거품을 물고 둔중한 야포를 끌고가면서 그렇게 내모는 모진 운명과 맞서기라도 하듯 대가리를 내젓고있었다.

아무도 바란적이 없는 《토벌대》놈들의 출현은 이 거리에 살벌한 기운을 풍겨주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송지구진출은 일제를 극도로 당황하게 하였다. 이전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예감하고 동만과 남만 그리고 국경일대에 군대와 경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고있던 놈들은 그래도 조선인민혁명군이 무송경내에 들어서자면 적어도 한두달은 걸릴것으로 여기고 늘늘히 잡아왔던것이다. 급기야 일제는 무송지구를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는 제일선으로 선포하였다. 집안, 통화, 림강, 장백, 몽강, 휘남, 류하 등지의 각 부대에 경계태세를 갖추게 하는 한편 관동군과 경찰, 위만군가운데서 선발한 무력을 무송시내에 들이밀고있는것이였다.

어데선가 행인들을 단속하는 경찰의 다급한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시내에는 음산한 공기가 떠돌고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생활은 계속되고있었다.

길량옆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떡국집이며 지짐집이며 순대국집에서는 주인들이 부지런히 손님들을 청해들이고있었으며 촌에서 장을 보러 왔던 아낙네들과 짐군들은 지짐이며 떡을 씹으며 왜놈《토벌대》의 행렬을 별로 놀라와하는 빛도 없이 바라보았다.

흰 무명바지저고리를 입고 개털모자를 쓴 강세호는 콩기름병을 넣은 구럭을 등에 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그는 기계소리가 요란한 정미소곁에 자리를 잡고있는 자그마한 천가게에 들리였다. 광목, 토목, 비단 등 갖가지 천이 주런히 쌓여있는 매대앞에서 한동안 오락가락하였다.

몸이 뚱뚱한 가게방 안주인은 이 천, 저 천 만져보고 쓸어보며 값을 묻기만 하는 콩기름장사를 동정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강세호는 다시 자전거방을 지나서 옆에 있는 가게방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안장코에 테가 없는 안경을 건 가게방주인은 종이에 관심을 가지는 그의 동정을 살피며 그앞에 백로지, 공책이며 꽃무늬가 돋친 도배지를 연방 펼쳐보이였다. 그것은 강세호가 아동단원들을 생각하면서 공책에서 눈을 뗄줄 몰랐기때문이였다.

거리로는 《토벌대》의 군마가 발굽으로 흙에 범벅이된 눈덩이를 휘뿌리며 왁살스럽게 지나갔다. 성난 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던 가게방주인이 인차 먼지털개를 들고 점포에 떨어진 눈가루를 털며 《저놈들 꼴을 언제면 보지 않겠는지···》 하고 내뱉듯이 말하였다.

가게방앞에 모여섰던 짐군들과 행상인들이 목을 길게 빼들고 점포를 들여다보았다.

《왜놈들이 왜 저 지랄이라오?》

하고 안장코에 안경을 건 가게방주인은 사방을 경계하듯 재빨리 눈알을 굴리며 알은체를 하였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게요?》

이번에는 목에 베수건을 걸치고 빈 지게를 한쪽어깨에 건 건장한 젊은이가 가게방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 재밤중이군.》

먼지를 훌훌 털며 가게방주인은 《토벌대》놈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숱한 혁명군을 거느리시고 무송땅에 나오셨다오!》

모여섰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장군님께서 오시다니, 그게 정말이요?》

《그래 장군님께서 언제 오셨다오?》

《지금 어데 계시오?》

《자, 이렇게 밀면 어떡하오? 덤비지들 말구 차근차근 말하시우.》

누군가가 이렇게 간청하듯 말했으나 사람들은 그대로 가게방앞으로 밀려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가게방앞으로 밀려들자 가게방주인은 어지간히 당황해서 팔을 내저었다.

《모두 헤쳐가시우, 저기 경찰이···》

아닌게아니라 검은 제복에 긴 칼을 찬 키꺽다리 순사놈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쪽으로 느릿느릿 걸어왔다.

《경찰이 오면 왔지, 무서울게 있소?》

지게다리를 한손에 거머쥔 청년이 하는 말이였다.

그러자 가게방주인은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모여섰던 사람들은 하는수없이 하나 둘 헤여졌다.

강세호는 뜨거워지는 마음을 안고 될수록이면 어수룩한체 눈을 두릿두릿하며 촌사람티를 내면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맞은편 우편국앞으로 걸어갔다.

벌겋게 언 맨발에 짚신을 신은 아이 셋이 한손에는 신문을 안고 다른 한 손은 머리우로 신문을 내흔들면서 챙챙한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호외》, 《특간》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 중절모를 쓴 신사들, 젊은 청년들, 늙은이들이 신문을 사들고 긴장한 눈초리로 훑어보고있었다.

전주대밑에서 강세호는 점잖게 차린 중년의 행인이 펼쳐든 신문을 어깨너머로 넌지시 들여다보았다. 신문에는 어느새 어디에서 그렇게 빨리 알아냈는지 김일성장군님께서 무송땅에 나오셨다는 내용의 보도기사가 실렸다. 《호외》나 《특간》은 아니였다. 장군님에 대한 소식이 실렸다고 해서 신문 파는 아이들이 그렇게 웨친것이였다.

강세호는 신문을 한장 사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자기가 콩기름장사라는것을 생각하고는 그만 단념하고말았다.

《허, 이거 참 야단났군, 어떡한다?》

누군가가 뒤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며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는 소리에 강세호는 고개를 돌렸다. 턱수염을 가슴우에까지 길게 기른 로인이 그 어떤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로인은 한손에는 지팽이를 짚고 다른 한손에는 자작 삼은듯싶은 대여섯컬레의 짚신꿰미를 들고있었다. 로인은 그가 콩기름장사인줄 알자

《콩기름장사니 식자야 없을테지···》 하고 서운한 웃음을 보내였다.

강세호는 로인에게 길을 내주면서 공손하게 말하였다.

《그러니 이렇게 밑천도 못건지는 장사나 합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로인은 허리를 주먹으로 몇번 두드리더니 괴춤에서 신문을 꺼내보이는것이였다.

《신문이란걸 내 처음으로 한장 샀지오다. 장군님 소식이 실렸다고 하기에 짚신 한컬레 판 돈으로 한장 샀는데··· 눈뜬 장님이오다.》

강세호는 저도모르게 로인의 손에서 신문을 받아들었다.

그는 로인을 데리고 으슥한 골목으로 가서 신문을 펼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신문기사를 읽어주었다.

《음···》 로인은 수염이 더부룩한 입가에 미소를 담고 만족해서 중얼거렸다.

《장군님께서 나오셨다는 소식이 헛소문은 아니였군··· 음··· 그래서··· 어서 읽으시우···》

《로인님, 다 읽었습니다.》

《원, 다 읽다니, 신문에 글이 깨알같이 박혔는데 벌써 다 읽다니?》

《로인님 장군님에 대한 글은 이게 전붑니다. 그 다음의것은 모두 다른 이야기들입니다.》

《아무렴, 이야기가 그렇게 짧을수야 있나?··· 하긴 거짓말을 하는건 아니겠지?》

강세호는 한참동안 기사가 짧다고 불만스러워하는 로인에게 일본놈들의 검열이 심하기때문에 이이상은 신문에 내기 어려우리라는 점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렇다면 헐수 없는 일이구··· 안됐소만 한번만 더 읽어주시우··· 천천히··· 귀가 좀 어두워서···》

강세호는 로인이 청하는대로 신문기사를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주었다.

로인은 그 희한한 소식을 영원히 가슴속에 새겨두려는듯 되받아 중얼거리며 연송 머리를 끄덕이였다.

《고맙소. 내 생전에 우리 장군님을 만나뵙게 될는지···》

로인은 신문을 정하게 꼭꼭 접어서 저고리앞섶을 헤치고 깊숙하게 찔러넣었다.

《우리 장군님께서 오셨으니 이젠 이놈의 세상이 끝장날 때가 되였지.》

로인을 믿을수 있다고 생각한 강세호는 그에게 무송현성근처에서 꽤 부유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는 박중건이라고 하는 사람을 모르느냐고 물었다.

《박중건이라? 정미업을 가지 시작한 박중건씨말이시우?》

《가지 시작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전에는 그저 농사만 지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옳소다. 서로 원쑤지간처럼 지내는 아들 둘이 있다고 하지 않습디까?》

《두 아들사이에 의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형되는 사람이 전에 일본류학을 갔다고 합디다. 둘째 이름은 박문필인데 혹시 모르시는지?》

《아들들 이름은 모르겠소만 둘째가 사진관을 차려놓고 지내지요. 그게 아마 <금강사진관>이든가 그렇지···》

《그 <금강사진관>은 어디 있는지 모릅니까?》

로인은 손을 들어 우편국모퉁이를 가리키며 거기서 조금 올라가면 사진관이 있다고 하였다. 곁달아서 그 집주인은 마음이 좋아서 콩기름값을 후하게 줄것이라고 하였다. 마침 로인도 그쪽으로 가는길이여서 《금강사진관》을 쉽게 찾을수 있었다.

사진관은 함석지붕을 이은 목조건물이였다. 판자벽과 함석지붕은 비물에 씻기고 해빛을 받아 퇴색하였으며 창문틀에 칠한 푸른 뼁끼도 군데군데 떨어져서 나무속살이 드러났다. 사진관뒤켠으로 역시 목조로 된 2층집이 보였다.

강세호는 함석지붕밑에 걸려있는 《금강사진관》이라는 간판을 올려다보다가 간판밑에 있는 사진진렬장을 들여다보았다. 유리창안에는 여러개의 사진틀이 주런히 걸려있었다. 금강산의 구룡연과 총석정의 해돋이, 묘향산의 가을 등 조선의 절경들이였다. 강세호는 사진관주인이 조국을 무척 그리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쌍두마차 한대가 좁은 거리로 달려왔다. 사진관앞길에서 살진 한쌍의 말이 투레질을 하다가 멈춰섰다. 마차는 바퀴를 삐거덕거리며 몇번 앞뒤로 기우뚱거리였다.

말들이 목을 길게 빼들고 처량하게 울며 요동을 쓰려고 하자 늙은 마부는 솜씨있게 말들을 달래였다. 마차의 검은 풍막을 들고 수달피 외투에 역시 수달피 모자를 쓴 뚱뚱한 젊은 사람이 상반신부터 먼저 내밀고 눈우에 내려섰다. 뒤이어 풍막의 한쪽귀가 빠끔히 들리더니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진하게 화장을 한 녀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 녀자는 사나이를 쏘아보듯 내려다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당신은 이 집에 뭣때문에 자꾸 찾아오는거얘요? 대체.》

《들어가서 몸이나 좀 녹이지···》

《흥, 얼어죽는다고 하지. 그따위년이 있는 집에 내가 들어가? 거지같은것들···》

녀자는 안으로 몸을 움츠러뜨리더니 풍막을 휙 내려버렸다.

《그럼 그냥 앉아있소그려.》

남편인듯싶은 그 사나이는 외투주머니에서 가죽장갑을 꺼내여 낀 다음 얼핏 마차를 돌아보고는 몸을 뚱기적거리며 사진관 유리문을 향하여 걸어갔다.

짚신 팔러 왔던 로인이 손에 든 짚신꿰미를 어깨에 걸치며 강세호에게 넌지시 귀띔해주었다.

《저 사람이 바로 박씨의 큰아들이오다. 이 사진관주인의 형이지요. 이제 나오면 저 사람에게 물어보시오다. 그럼 나는 가겠소다. 젊은이, 또 만나게 되겠지? 나는 보름에 한번은 장엘 나온다오다··· 오늘 짚신을 다 팔지는 못했지만서두 마음은 기쁘오. 기다리던 우리 장군님 소식을 들려줘서 고맙소다.》

로인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의 구부정한 등에서는 팔지 못한 짚신 다섯컬레가 데룽거렸다.

강세호는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마차에서 내린 사나이가 주인을 찾으며 문을 두드리고있었다. 문에 끼운 커다란 유리가 불안스레 부르르 떨었다.

이윽하여 조심스레 문이 열리더니 흰 광목치마저고리를 입은 호리호리한 몸매의 젊은 녀인이 나타났다. 아마 사진관집 안주인인 모양이였다.

녀인은 사나이를 보더니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사나이가 먼저 푸접없이 물었다.

《문필이 어디 갔나?》

《예, 어데 잠간 다녀오겠다구 하셨는데···》

맑고 침착한 녀주인의 목소리였다.

《뒤숭숭한 세상에 어딜 자꾸 싸다니나? 집안에 꾹 박혀서 돈벌궁리는 하지 않구, 아직 철이 없어, 철이 없다니까. 자네두 옆에서 단단히 살펴야 하네.》

《···》

녀인은 시형벌되는 그 사나이의 얼굴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채 덤덤히 서있었다.

《인제는 제 한몸만이 아니라는걸 알아야지, 제 처두 있고 또 부모와 형이 있는데 제 하나 잘못하다가는 온 집안이 화를 입는다는걸 알아야 해. 그리구 며칠안으로 아버지 있는데로 집을 옮기라구 이르라구, 그래 문필이 없단말이지?··· 음···》

그 사나이는 거친 목소리를 우정 청높게 뽑으면서 찌프린 눈으로 사진관을 한번 휘둘러보더니 녀인에게 인사말도 없이 마차있는데로 갔다.

녀주인은 떠나는 사람에게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덤덤히 서있었다.

신사가 마차에 오르자 마차는 삐걱거리며 얼어붙은 길우로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마차는 느릿느릿 골목으로 사라졌다.

강세호는 사진관근처에 있는 자전거방에 들어가 그 사진관주인인 박문필이 의가 좋지 못한 형과 달리 사치와 부귀를 탐내지 않고 수수하고 깨끗하게 살고있다는것을 알아내고는 아까 점찍어둔 천가게에 다시 가서 20원어치의 천을 사가지고 시내를 벗어났다.

그러나 강세호는 마안산으로 오는 도중 산길에서 뜻하지 않게 반일부대병사들의 습격을 받았다.

강세호는 혼자였고 반일부대병사들은 여러명이였다. 강세호는 처음 그들이 비적인줄 알고 한두명 쏴제끼였다. 그러나 접전을 벌리는 과정에 그들이 반일부대라는것을 알고 위협사격만 하면서 자기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것을 소리쳐 알리고 물러갈것을 엄격히 타일렀다. 강세호의 능란한 사격솜씨에 처음부터 위압당한 그들은 더는 달려들지 못하고 뿔뿔이 도망쳤다. 그리하여 강세호는 등에 진 천에 총알자리 하나 남기지 않고 유유히 돌아오다가 마침 사령관동지께서 보내신 경위대원들의 마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