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6

 

제 7 장

6

 

모래알같이 딴딴하고 차거운 싸락눈을 날리던 바람도 멎고 기세좋게 타오르던 우등불도 노그라진 밤이였다. 이맘때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들리군 한다는 산짐승의 서글픈 울음소리조차 없었다. 보초를 교대하느라고 바삐 걷는 경위대원들의 발걸음소리와 기침소리가 유난히도 똑똑하게 울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천막에 드시지 않으시였다. 아이들의 귀틀집옆에 사령부천막이 자리를 잡았으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여직 천막에 들어가보시지 않으시고 마당에 피워놓은, 불길이 가라앉은 우등불 주변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흰눈판에 전나무의 거밋거밋한 그림자가 드리운 저편 숲속에서 가벼운 도끼소리가 울리였다. 도끼소리가 부드럽게 울리는것으로 보아 속이 궁근 통나무를 쪼개서 우등불에 넣는 모양이였다. 마른 나무가지를 꺾는 소리가 난뒤에는 다시 조용해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동단원들이 잠들고있는 귀틀집쪽으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집안의 모닥불이 사그라지지 않았는지, 아이들이 모포를 차던지지나 않았는지? 응남은 분명히 베개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곤하게 잘것이였다. 그리고 순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덧기운 저고리어깨를 감추려 하는듯 손을 어깨에 올려놓고 고요히 자고있을것이였다.

아이들에게 우선 시급하게 옷을 해입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천과 솜은 어떻게 구한다? 돈은 어데서 구하고? 생각은 막막하시였다.

그러시다가 사령관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군복상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시였다. 체온이 배여 따뜻한것이 감촉되시였다. 그것은 유지에 두세겹 싸고 다시 천으로 싼 돈 20원이였다.

그 돈은 어머님께서 남기신 단 하나 귀중한 유물로 이날이때까지 군복안주머니에 고이 간직해오신것이였다. 어머님께서 편치 않으신 몸으로 삯빨래와 삯바느질을 하시여 한푼두푼 모으신, 어머님의 다함없는 사랑이 깃든 돈이였다.

하기에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간고한 혁명의 길을 헤쳐오시면서 어려운 고비를 한두번만 넘으시지 않으시였으나 그 돈만은 쓰시지 않으시고 고이 남겨두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1932년 초여름, 갓 창건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을 거느리시고 남만원정을 떠나시기에 앞서 어머님께서 계시는 소사하의 토기점골에 들리시였던 때를 회상하시였다.

···부대로 돌아가시기 전날밤에 어머님께서는 밤늦게까지 희미한 방등밑에 앉으시여 여려번 손질을 하신, 인제는 바느질을 더할 여지가 없는 군복을 또다시 손에 드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머님 곁에 누우시였다. 꼭 래일 떠나시기로 정해진 날자도 아니였으나 웬일인지 이번에도 어머님께서는 늦잡지 말고 래일은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차비를 서두르시였다. 집사정도 그렇고 더구나 어머님의 건강이 몹시 걱정되시여 하루이틀 돌보시자고 생각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머님의 높은 뜻을 헤아리시고 떠나시기로 결심하신것이였다.

밤은 깊어 마당가에서는 풀벌레가 찌륵찌르륵하고 간단없이 울었다. 형님을 따라 산에 나무하러 가서 땀을 흠뻑 흘린 철주동생은 어느덧 잠에 들었다. 종이를 바른 창문가에 어렸던 달빛도 넘어가고 방안은 한층 어둑어둑하였다. 어머님의 앉으신 그림자가 벽에 그늘을 짓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 주무시는줄로 아셨던지 아니면 어서 잠드시기를 바라시였던지 어머님께서는 기침도 삼가하시고 들었던 가위도 무릎우에 조심스레 놓으시며 바느질을 하시였다. 군복웃옷 혼솔도 더 감치시고 단추구멍도 만져보시더니 이번에는 어깨받치개를 더듬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밤따라 새삼스레 어머님께서 세월을 앞질러 늙으셨다는 애절한 생각이 드시였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눈언저리와 입가에 알릴듯말듯 스쳤던 잔주름이 인제는 어쩔수 없이 자리를 잡았으며 손톱끝이 두터워지고 손은 거칠어져서 바늘을 힘들게 잡으시였다.

가뜩이나 약하신 어깨도 한결 내려앉은것 같았으며 작년에 입으셨던 하얀 무명저고리가 커보이시였다. 그리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머님께서 인제는 여생을 좀 편안하게 지내셔야 하겠다는 생각에 가슴을 태우시였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이국땅에서 혁명을 하시는 어머님께서 어찌 편안히 쉬실것인가. 그것이 실현될수 없는 념원인줄 알고계시면서도 감당하시기 어려운 생활의 시련과 마음고생과 혁명사업으로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살아오신 어머님을 위해드리고싶으신 간절한 심정에서 하시는 생각이시였다. 가까운곳에 만경대가 있고 칠골이 있고 친척들이 있어 어머님을 걱정하여주신다면 그래도 한결 마음이 가벼우시련만 그런 위로의 말씀조차 드리실수 없는 어머님이시였다.

등잔불이 점점 어두워졌다. 어머님께서는 방등에 콩기름을 떨궈넣으시고 심지를 돋구시였다. 찌르륵하고 심지에서 불찌가 떨어지고 불빛이 한결 밝아졌다.

《어머니, 인제는 그만하고 주무시지요.》

사령관동지께서는 부탁하시듯이 말씀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시며 나직한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여직 자지 않았니? 먼길을 떠나겠는데 푹 쉬여야지.》

《어머니, 밤일을 많이 하시는데 석유등을 마련해야겠습니다. 기름불은 어두워서 안되겠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바늘뜸이 잘 보이지 않으시여 눈을 쪼프리시였다.

《우리 처지에 석유등은 해서 뭘하겠니.》

《안도시내에 석유등이 많다는데 철주를 보내십시오. 석유값이 아무리 비싸도 꼭 석유불을 켜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어머님의 건강을 위해서는 밤일은 아예 그만두시라고 말씀하셔야 옳을것이였다. 그러나 그런 당부를 받으실 어머님이 아니시였다. 그나마 석유등 부탁만이라도 들어주신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실것 같으시였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데 그까짓 등불이나 밝아서는 뭘하겠니. 세상만 밝으면 등불 없이도 살것 같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한참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여전히 어머님께서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관심하신것이였다. 언제나 혁명을 생각하시며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으시는 그 고결하신 마음은 예전과 변함이 없으시였다.

《어머니, 밝은 세상을 찾기 위해서도 어머님은 오래오래 혁명사업을 하셔야 하지요.》

어머님께서는 소리없이 웃으시며 이그러진 손톱끝으로 실밥을 꼭꼭 누르시였다.

《혁명이 순탄하겠니, 어두운 밤에 일할 때도 있고 아픈 몸으로 일할 때도 있기에 혁명을 한다고 하지 않니. 내 걱정은 말아라.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병을 앓게도 되는게구 앓다가 나을수도 있는게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 며칠동안 어머님 곁에 계시면서 어머님을 위하여 단 한가지 할수 있는 일은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여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는것뿐이라는것을 깊이 느끼시였다. 혁명외의 그 어떤 일도 어머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였다.

《그만 눈을 붙여야지 안되겠다. 인차 새벽닭이 울겠는데···》

하고 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걱정하시였다.

《어머니, 잠이 오지 않습니다.》

《원 별소릴 다 하는구나.》

어머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어머님의 얼굴에서 미소를 보게 되시니 사령관동지께서는 무등 기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다시 자리에 누우라고 독촉하지 않으시였다. 아드님과 이 한밤을 조용히 이야기하시기를 은근히 바라신것이였다. 어머님의 말씀에는 사랑이 마디마디에 배여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바느실을 놓으시고 군복을 드시더니 이리저리 펴보시였다.

《어디 한번 입어보아라. 어깨받치개도 새로 대고 아래단도 좀 내리웠다. 바느질이란건 잘하자면 끝이 없단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군복상의를 입으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어깨를 찬찬히 눌러보시고 아래단을 살펴보시더니 이번에는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는듯 등을 쓸어보시였다.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몸에 꼭 맞는다고 거듭거듭 말씀하시였다.

어머님께서도 만족하신듯 눈가에 미소를 지으시더니 이번에는 군복이 아니라 아드님의 름름한 모습을 사랑에 넘치신 눈빛으로 살피시였다.

이른새벽부터 어머님께서는 아침밥을 지으실 차비를 하시였다. 달그락거리는 그릇소리를 듣고 곤하게 자던 철주가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병약하신 어머님을 도와 아침마다 물초롱을 들고 우물가로 달려가는것이 버릇처럼 된 철주는 형님께 웃어보이며 물초롱을 들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그만두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동이를 이시고 밖을 나서시였다. 두 아드님께서 나서시여 안된다고 만류하시였으나 오늘아침만은 꼭 자신께서 가야 한다시며 우물이 그리 멀지도 않은데 쉬염쉬염 갔다오겠다고 하시였다. 이윽하여 어머님께서는 물이 절반도 채 못찬 물동이를 이고 오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자신께서 길어오신 깨끗한 샘물로 손수 아침밥을 지으시여 아드님께 차려주시고싶으셨던것이다.

배낭을 정돈하고 군복상의를 입으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안주머니에 무엇이 들어있는것 같아서 더듬어보시였다. 빠닥 하고 종이소리가 났다. 아구리를 봉한 자그마한 종이봉투가 나지였다. 그것은 분명 어머님께서 넣으신것이였다.

무엇인가고 물으시니 어머님께서는 별것 아닌데 그냥 넣어두라고 하시였다. 아시고보니 그것은 돈이였다. 그것도 20원이라는 큰돈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돈봉투를 도로 어머님 앞에 내놓으시였다.

《어머니, 이러지 마십시오. 혁명하는 사람한테야 혁명하자는 사상과 총만 있으면 다 된다고 어머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머님께서는 타이르시듯 말씀하시였다.

《사사에 쓰지 말구 혁명에 쓰라고 어머니가 주는것이다. 받아두어라.》

《어머니!》

하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머리를 숙이시였다. 집안형편과 어머님의 건강상태로서는 돈 20원이란 실로 놀라운것이였다. 그것을 한푼두푼 모으시기 위하여 어머님께서 얼마나 고생하셨겠는가! 목이 메시고 눈시울이 뜨거우시였다. 그렇지만 어머님의 높은 뜻이니 어찌하실수 없으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설겆이를 하시다가 젖은 손을 훔치시였다.

《사람이란 돈이 없어서 못사는 법은 없다. 돈이란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다. 아버지는 늘 혁명하는 사람에게는 정 급할 때 쓸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모아두었으니 그리 알고 혁명사업에 쓰거라.》

어머님의 높은 뜻을 마음속깊이 느끼시였지만 그래도 어려운 집형편과 어머님의 중한 병을 생각하시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시였고 안주머니에 보관한 돈이 더없이 무거워지셨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마음을 다잡으시고 어머님과 작별하시였다. 그것이 마지막작별이 되는것을 아셨더라면, 그렇게 인사 한마디 남기시고 떠나는것이 아니시였다. 문가에 오래도록 서계시는 어머님을 한번만이라도 더 돌아보시는것이였다···

맞은편 숲속에서 격발기를 여닫는 소리가 철컥거리였고 얼어붙은 눈판을 밟는 발걸음소리가 들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군복주머니를 더듬으시며 아동단원들을 위하여, 혁명의 후대들을 위하여 쓰는것이니 어머님께서도 아신다면 기뻐하시리라 생각하시고 이번만은 주저하지 않으시였다.

저편 산기슭너머에 눈길을 보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리로 가시려는듯 몇걸음 천천히 걸어나가시였다. 그 하늘아래에는 무송시내가 있을것이였다. 지척에서 보는 무송의 밤하늘이였다. 《새날》신문을 안으시고 어머님과 함께 들길을 걸어가시던 그날 밤이 떠오르시였다.

방학때에 돌아오면 없는 살림이지만 반찬 한가지라도 더 장만하시느라 애쓰시던 어머니, 떠나갈 때면 멀리 송화강여울목까지 따라나오시며 언제 다시 오겠는가고, 객지에서 몸조심을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어머님이시였다.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데리시고 찾아가군 하시던 아버님의 산소가 거친 저 산발너머 양지촌에 예나 다름없이 있을것이였다. 아버님의 산소를 찾아뵈온지도 인제는 오래 되시였다.

아버님께서 너무 일찍 가신다고 하였는데 어머님마저 또 그렇게 일찍 떠나시고 철주동생마저 혁명전에서 쓰러지고··· 혁명은 사령관동지께 너무도 큰 슬픔과 시련을 요구한것이였다.

우등불가에서 갑자기 꽃보라 같은 불꽃이 흩날리며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뒤를 돌아다보시였다. 강세호가 허리를 굽히고 우등불에 나무토막들을 얹어놓고있었다. 다른때 같으면 그만 돌아가 쉬라고 말씀하실것인데 사령관동지께서는 강세호가 옆에 있기를 바라신듯 그의 일손을 거들어주시였다. 이윽고 우등불이 기세를 돋구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금 꾸등꾸등 얼어드는 숲속길을 거니시였다.

강세호는 그이의 뒤를 소리없이 따랐다. 잠시 말씀없이 거니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문득 돌아서시여 강세호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시였다.

《오늘 밤에 강동무한테 어려운 임무를 하나 맡겨야 하겠소. 임무가 중하고 책임적이기때문에 꼭 강동무가 맡아야만 하겠소. 래일 아침 무송시내로 내려가오. 박문필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겠는데 그 사람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시오. 그 다음에는 아이들한테 옷을 해입힐 천을 구해오시오. 돈은 내가 마련해놓았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강세호의 손목을 이끄시여 오던 길을 되돌아 걸으시였다.

강세호는 평소에 돈은 전혀 관심이 없으시고 따로 보관하시는 일은 더욱 없으시던 사령관동지께서 그것을 이미 마련해놓으셨다는것이 이상하였다. 자기들중에는 누구한테도 돈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강세호였다.

그러나 어쨌든 헐벗은 아동단원들에게 옷을 해줄수 있고 사령관동지의 심려를 덜어드릴수 있게 된것이 천만다행이였다. 더구나 그 임무를 자기가 맡게 되였다고 생각할 때 강세호는 입대후 첫전투에 나갈 때처럼 가슴이 설레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한참후에 유지에 싼 20원을 내놓으시였다.

강세호는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유지에 두겹세겹 싼 돈 20원, 북만원정당시 촉한을 만나시여 위독해지신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로야령의 외딴 집에서 며칠간을 보낼 때 강세호는 그 돈의 래력을 알게 되였다. 내내 앓으시다가 의식을 회복하신후인 어느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손더듬으로 그 유지를 만져보시며 강세호에게 그 돈의 래력을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 안됩니다. 그 돈만은 절대로 안됩니다.》

《어서 받소. 그러지 말고 어서 받소.》

강세호는 다시 뒤로 물러서며 목갈린 소리를 하였다.

《사령관동지, 천이야 어떻게 구할수 없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님께서 남기신 그 돈만은 허물지 못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딱하신듯 그냥 서계시다가 마침내 강세호의 두팔을 잡으시고 간절히 당부하시였다.

《강동무, 나를 괴롭히지 마오. 진정으로 나를 위해준다면 이 돈을 받소. 헐벗은 아이들, 혁명의 후비들을 위해서 혁명에 쓰는 돈이니 어머님께서도 이렇게 쓰는줄 아신다면 기뻐하실거요.》

《···》

《강동무가 이 돈을 받으면 나도 잠들수 있을것 같소.》

《사령관동지···》

강세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강세호의 손에 돈 20원을 쥐여주시고 거듭거듭 손을 쓸어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