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4

 

제 7 장

4

 

몹시 격노하신 장군님께서 정치주임을 데리시고 밖으로 나가시는것을 지켜보고있던 강세호는 지체없이 뒤쫓아나갔다.

그는 장군님께서 다른 모든 잘못들에 대하여서는 너그럽게 용서하실수 있으셔도 아이들과 관련된 잘못에 대하여서는 비록 그것이 아무리 가벼운것일지라도 절대로 양보하시지 않으신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하물며 아이들을 잔혹하게 박해하며 쫓아내고 굶긴자들속에 섞여 지내온 한 지휘성원에 대해서랴!

강세호는 자신까지 송구해지는것을 느끼며 다른 경위대원들과 함께 긴장되고 엄숙한 낯빛으로 조심스럽게 뒤따라갔다.

음산한 저녁이였다.

하늘은 찌뿌드하니 흐려있고 어둑시근한 땅에서는 음울한 안개가 그물거리고있었다.

거목들이 우중충 들어찬 숲속에는 한결 짙은 어둠과 쥐죽은듯 한 정적이 깃들어있었다.

와자작··· 바자작··· 와자작··· 바자작···

무거운 발에 밟혀 바스러지는 얼음버캐소리가 잔뜩 긴장된 공기를 한층 더 팽팽히 헤워놓았다.

와자작··· 바자작··· 와자작··· 바자작

점점 더 사이뜨게, 그러나 점점 더 아츠럽게 울리던 그 소리는 불시에 그쳐버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정적은 고막에 부딪치며 잉ㅡ 하는 야릇한 소리를 길게 질렀다.

침묵, 숨가쁜 침묵이 가슴들을 꽉 지지눌렀다.

불시에 그 침묵을 깨뜨리며 숲속에 메아리치는 장군님의 준절하신 목소리가 흘리였다.

《당신도 인간이요?》

숲속을 쩌렁하게 울린 그 메아리가 사라지기도전에 다시 연거퍼 울렸다.

《당신도 공산주의자요?》

길게 끄는 메아리가 잦아들고 또다시 야릇한 소리를 내는 정적이 깃들었지만 대답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혁명한다는 사람으로서 어찌 아이들을 저 지경이 되도록 박대하는걸 보고만 있을수 있었소? 무엇이 두려워서?》

《···》

정치주임은 바스락소리도 내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저 아이들이 <민생단>에까지 들었다고 했다는데 그 아이들이 어떻게 돼서 <민생단>에 들수 있고 <민생단>을 위해서 무엇을 했겠는가 어디 좀 말해보시오.》

《···》

숲을 흔들며 머리우로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여전히 대답 없는 침묵의 공간을 메워버렸다.

장군님께서는 격노하신 심정을 억눌러가시며 안타깝게,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생각해보시오. 저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가? 그들의 부모는 모두가 일제와 싸우다 희생되였고 그들자신도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끝까지 부모의 원쑤를 갚고 혁명을 하겠다고 유격근거지가 해산된후에도 적통치구역에 내려가지 않고 이곳까지 유격대원들을 따라왔소.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잘 돌봐주기는 고사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민생단>련루자로 몬다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커다란 죄악이요?···》

점점 더 깊이 머리를 숙인채 웅크리고 서있는 정치주임은 버섯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썩은 나무등걸 같았다.

《···조금이라도 인간다운데가 있고 혁명가다운데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저렇게 참혹하게 만들진 않았을것이요. 조금이라도 혁명가다운 의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와 한길에서 손잡고 싸우다가 희생된 혁명전우들의 유자녀들을 저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을것이요. 조금이라도 혁명가다운데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저 아이들을 저렇게 무참히 짓밟아버리지 않았을것이요. 우리는 우리가 시작한 혁명을 우리 대에 다하지 못하면 저 아이들이 하게 하고 또 저 아이들 대에도 다하지 못하면 그 다음 대에까지라도 이어가며 기어이 혁명을 완성하게 해야 하지 않겠소? 우리가 조선혁명에 끝까지 충실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들자신이 잘 싸울뿐아니라 혁명의 장래가 달려있는 저 아이들을 잘 길러내야 하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혁명가로서의 우리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수 없는것이요···》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짚고계시던 량손을 내리우시며 말씀을 끊으시였다.

고개를 떨구고서서 여직껏 두손으로 벗어든 모자를 주물럭거리고있던 정치주임은 머리를 들었다. 삽시에 해쓱하게 질린 그의 갱핏한 얼굴에는 짙은 회오의 빛이 떠올랐다.

깊은 한숨을 앞세우면서 그는 얼어붙은것 같던 입을 열었다.

《잘 알겠습니다. 사령관동지!》

뜻밖에 활달한 목소리였다. 자책의 한숨뒤에 내놓은 그 말소리는 잘못을 깨우친 사람의 기쁨을 여실하게 표현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새삼스럽게 정치주임을 훑어보시였다.

《그 말이 너무 이르지 않소?》

그이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가슴이 얼어들만큼 서리발찼다.

《사랑에 대하여서는 머리로 깨닫기보다 심장으로 느껴야 하오.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것이지 머리로 하는것이 아니요.》

정치주임의 한쪽 볼편에 순간적인 경련이 일었다. 여윈 얼굴에 비하여 낯가죽이 두터운때문인지 그 경련은 곁에서 그를 지켜보고있던 강세호의 눈에 겨우 알릴락말락했다.

정치주임의 머리는 서서히 아래로 숙어졌다. 처음에는 눈만 내리깔았다가 다음에 머리를 숙인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곰털모자를 주무르지도 못하고 까딱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측은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끊으셨던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소? 동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것이 우리 공산주의혁명가들의 책임이구 의무이며 앞서간 전우들에 대한 혁명가의 의리를 지키는것임을 모르리라고 생각해서 한 이야기인줄 아오? 동무가 그걸 모를수 없소. 동무는 총명한 사람이요. 지나칠만큼 총명하오.

너무나도 응당한것을 알면서 실행하지 않은게 분하고 안타까와서 한 소리요. 살을 베보면 우리나 다름없이 뻘건 피를 가지고있을 사람들이, 가슴을 헤쳐보면 우리나 다름없는 심장을 가지고있을 사람들이 어쩌면 그럴수 있소? 어쩌면 그럴수 있나말이요?》

어느덧 처음 그를 만나신 순간처럼 다시금 격노하신 장군님의 눈에서는 푸른 불이 일었다.

《왜들 그랬는지 말해보시오. 왜 아이들이 저 지경이 되도록 돌봐주지 않았는지 어디 좀 말해보시오.》

《···》

정치주임은 그냥 머리를 떨구고 서있었다.

《대답하시오!》

그이의 목소리는 숲속을 쩌렁하게 울렸다.

정치주임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가까스로 얼굴을 쳐들었으나 입술이 떨려 말을 못했다.

한참 있다가 떠듬거리며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모두··· <민생단>련루자들이라고 해서···》

《무슨 근거로?》

《각처에서 아이들을 데리고왔던··· 그 유격대원들가운데 <민생단>련루자들이··· 있었습니다.》

《<민생단>련루자들이 데리고온 아이들이니 그 애들도 련루자다 그말이요?》

《네.》

《또 다른 근거도 있소?》

《그 아이들이 대개 <민생단>련루자로 처단된 사람들의 자식들이라고···》

《아이들자신이 그렇다고 했는가?》

《그런건 없는데 그저 그 사람들이···》

정치주임은 민족배타주의자들에 대하여 애매하게 그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확실한 근거는 없단말이지?》

《네··· 저··· 그렇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마안산에 데리고온 유격대원들가운데 <민생단>련루자가 있다는 근거는 있소?》

《예, 증거문건들이 있습니다···》

《그 문건들을 동무가 보았소?》

《보았습니다. 제가 보관하고있습니다. 제가 있는 밀영에 가면··· 있습니다.》

《그 백여명의 증거문건을 다 동무가 가지고있소?》

《네.》

장군님께서는 버석하고 얼음버캐를 밟아 바스러뜨리시며 천천히 돌아서시더니 무거운 걸음을 옮겨짚으시였다.

괴로운 심경에 잠기시여 머리를 숙이시고 무작정 걸어가시는 사령관동지를 이럴 때면 어떻게 모셔드렸으면 좋을지 알지 못하는 강세호와 경위대원들은 그저 안타까이 그이의 발자국소리에 귀기울이고있을뿐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처럼 그 자리들에 못박혀 서있었다.

동안이 뜨게 울리는 그이의 발자국소리는 숲 안쪽으로 멀어졌다가 가까와졌다. 그이께서는 아까 그 자리에 돌아오시여 멈춰서시며 낮으나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그 문건들은 앞으로 내가 직접 검토해보겠소. 어른들은 <민생단>혐의자들이라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엄연하게 증거문건들이 있다니까 문건을 본 다음에 판단하기로 합시다. 그런데 어른들이 <민생단>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따라온 아이들이 어떻게 <민생단>으로 된다는것요? 혐의자들과 같이 왔다는 사실만 가지고 애들도 혐의자로 몰수 있단말이요?》

언뜻 눈길을 들었다가 떨어뜨리는 정치주임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뒤짐을 푸시며 단호히 언명하시였다.

《아니요!》

그이께서는 두주먹을 꽉 틀어잡으시였다.

《우리 아이들을 <민생단>으로 몬것은 아이들이 귀찮으니 만들어낸 구실이요.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기 시끄럽구 싫으니 꾸며낸 작간이요. 그것은 우리 혁명에 대한 배신행위요!》

부르쥐신 오른 주먹을 흔드시며 격하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목소리는 하늘을 무너뜨리고 땅을 헤가를듯 한 노호한 우뢰소리마냥 숲속을 뒤흔들었다.

장군님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격하신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처럼 엄중한 일이 벌어질줄 모르고 먼길을 헤쳐나왔소. 그런데 우리가 여기 와서 맞다들린게 몹쓸 문제거리라는 사람들 백명에 한뭉테기의 <민생단>보따리, 돌봐주기 싫어서 내버린 저 아이들이란말이요?》

장군님께서는 이글이글 불타는듯 한 눈길로 머리들을 떨구고 분한 눈물을 흘리고있는 경위대원들을 한사람한사람씩 둘러보시였다. 강세호, 한종삼이, 두칠이, 주봉길이, 현팔이··· 마지막의 리동백에 이르기까지 다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그들모두를 부르시였다.

《동무들! 머리들을 드시오!》

그이께서는 눈을 슴벅거리는 경위대원들을 다시한번 둘러보시였다.

《눈물을 닦으시오!

우리는 한보따리의 바라지 않은 종이뭉테기밖에 받아안을것이 없지만 조선혁명은 승승장구하게 될것입니다. 조선혁명의 훼방군들은 이미 남호두에서 완전히 격파되였습니다. 그자들이 우리 혁명의 앞길에 이미부터 쳐놓았던 장애물들이 아직 더러 남아있을뿐입니다.

동무들, 마음들을 굳게 가다듬으시오. 기가 꺾이지 말고 신심을 잃지 말고 더러 남아있는 장애물들을 치워버리고 용감하게 박차면서 우리 조선혁명의 창창한 앞길을 닦아나갑시다. 조선혁명의 일대앙양의 길을 굳세게 헤쳐나갑시다!》

강세호는 머리를 높이 쳐들고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모든 대원들이 가슴을 쭉 펴고 그이를 우러르며 새로운 결심들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