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3

 

제 7 장

3

 

장군님께서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가르시며 말잔등처럼 밋밋한 산릉선을 넘으시고 전나무, 가문비나무, 분비나무가 서있는 좁은 골짜기에 들어서시였다.

한남실을 친히 부축하시며 이곳까지 오시는동안 장군님께서는 내내 말씀이 없으시였다.

푸른 전나무가지사이로 아동단원들이 든 귀틀집 통나무벽이 들여다보이였다.

전나무밑에서 이쪽을 바라보고있던 응남이가 이깔나무사이로 얼른거리는 한남실의 모습을 먼저 알아보고는 《야, 선생님 오신다.》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어디, 어디》 하며 아이들이 응남의 곁으로 달려왔다.

응남이가 이쪽이라고 손짓을 하자 아이들은 저마끔 목을 빼들고 한남실을 찾았다. 그중 한 아이가 옳다고 손벽을 치며 귀틀집으로 달려가서 출입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안에다 대고 무엇이라고 소리치자 방안에 있던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아이들은 와ㅡ 환성을 올리며 앞을 다투어 마주 달려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의혹의 선풍이 아이들을 휘감았다.

《장군님이시다!》

어느 아이의 입에선가 이런 나직한 부르짖음이 울려나왔을 때 아이들은 일시에 그대로 얼어붙은듯이 굳어져버렸다. 여윌대로 여위여 잔득 커보이는 눈들만이 놀라움에 차서 펀들거렸다.

한순간이 지나자 한쪽 무릎살이 드러나는 꿰진 바지를 입고 맨앞에 서있던 응남이가

《장군님!》

하고 소리치며 마구 어푸러질듯 앞으로 내달려왔다.

《엎어들지겠다. 천천히! 천천히!》

장군님께서도 마음이 급해지시여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아이들을 그러안아주시려고 벌써부터 두팔을 벌리시였다.

그러나 몇걸음앞에서 응남은 웬일인지 달려오던 걸음을 갑자기 멈추고 우뚝 서버렸다. 그리고 자기를 밀치며 옆으로 삐여져나가려는, 커다란 어른의 헌 옷을 입은 다른 아이의 옷자락을 덥석 그러잡았다.

응남이에게 잡혀 멈춰선 아이는 그를 힐끗 돌아보더니 골을 낼 대신 슬며시 응남이뒤에 숨었다. 그애는 벌겋게 드러난 한 어깨를 너펄거리는 다른쪽 팔소매로 가리웠다.

다른 애들도 모두 응남의 뒤에 몰켜서며 몸을 사리였다. 깁고 또 기웠지만 더는 어쩔수 없이 찢기고 불에 타고 닳아떨어져서 몸에 걸쳤다는 명색뿐이지 기실 벌거숭이나 다름없는 행색들이였다.

비록 어린 아이들이였지만 저들의 옷이 너무나 험상궂고 람루했던 탓에 그리도 그리웠던 장군님을 만나뵙는 이 가장 기쁘고 환희로운 순간에 선뜻 그이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것이다.

그들을 향해 두팔을 벌리시고 마주다가가시던 장군님께서도 아이들이 주춤 멈춰서자 팔을 벌리신채 한동안 말없이 서계시기만 하시였다.

소왕청에 계실 때 아동단학교에 찾아가시거나 다른곳에 나가셨다가 근거지마을에 돌아오실 때면 남먼저 함박꽃같은 웃음을 담고 달려와 아동단경례를 붙일것도 잊어버리고 가슴에 안기고 옷자락에 매달리던 그 응남이와 경수들이였다. 산에산에 붉게 핀 진달래꽃같이 웃음꽃을 피우며 에워쌀 꽃봉오리들이 된서리를 맞고 처참하게 시들어버려 단 한송이의 웃음꽃도 피우지 못하는것을 보시는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저리시였다.

《어서 이리 오너라! 어서···》

아이들께로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는 그 무슨 죄라도 진것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헌 짚신을 걸친 시뻘건 맨발 발등우에 굵은 눈물방울을 떨구며 서있는 응남이의 더벅머리를 그러안으시였다.

《얼마나 고생들 했느냐? 얼굴이 다 이렇게 텄구나.》

장군님께서는 광대뼈가 엉성하게 두드러진 응남이의 터슬터슬한 볼을 쓰다듬으시며 혼자말씀처럼 외우시였다.

《이렇게 헌 홑것들을 입고 지내면서 먹지들두 못하고···》

그이께서는 솜외투 앞자락으로 어깨살이 드러나는 어른의 헌옷을 입은 아이를 감싸주시고 다른손으로 그 옆에 서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주시였다. 아이들은 모두 눈길을 떨군채 머리들을 들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손이 미치지 않으시여 미처 다 쓰다듬어주시지 못하시는 수많은 아이들을 잠시 흐린 안색으로 굽어보시였다.

《얘들아, 얼굴을 들어라. 너희들이 헐벗고있는것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흐느낌을 자아내는 한줄기 금선이 울리더니 아이들속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부모를 빼앗은 원쑤놈들을 보지 않고 살자고 천신만고하여 찾아온 여기 마안산에서 따뜻이 품어줄줄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지독한 랭대를 받으며 헐벗고 굶주리는 아이들이 이제야 비로소 자애로운 어버이의 품속에 안겼음을 문득 깨달은것이다.

《자, 어서들 집안에 들어갑시다. 아이들이 춥겠소.》

장군님께서는 우는 아이들의 잔등을 떠밀어 앞세우시며 대원들에게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은 장군님 앞에서 물러서며 길을 틔워드렸다. 그중 어려보이는 두 아이의 차거운 손을 량손에 나눠잡으시며 걸음을 옮기시던 장군님께서는 길옆의 커다란 참나무그루뒤에 외따로 떨어져 숨어 울고있는 소녀를 보시자 다시 걸음을 멈추시였다.

순녀였다. 근거지에서 잘 싸우다 희생된 부녀회장 채섬의 딸 문순녀가 틀림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뒤늦게 달려나온 탓에 가까운 자리에 설 기회를 놓쳐버리고 나무뒤에 홀로 멈춰서서 울고있는 순녀를 대하신 장군님께서는 가엾은 소녀에게로 발걸음을 돌리시였다.

《순녀야! 내가 왔다.》

손을 등뒤에 감춘채 울고있던 순녀는 장군님께서 자기앞에 다가오시자 한걸음 나서며 말없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등뒤에서 풀려나온 순녀의 한손에는 다섯송이의 종이꽃이 달린 꽃가지가 들려있었다. 한남실이한테서 언제인가 장군님을 꼭 만나게 되리라는 이야기를 명심히 들어두었던 순녀는 오늘 남실이가 풀뿌리를 캐러 나간 짬에 꽃을 만든 모양이였다.

순녀는 그 종이꽃가지를 두손에 정히 받쳐 장군님 앞으로 내밀었다. 순녀의 흐느낌을 따라 공책장으로 만들어진 동그스름한 진달래꽃잎들이 바르르 떨고있었다.

금시 순녀를 안아주시려고 팔을 벌리시려던 장군님께서는 뜻하지 않은 꽃을 보시자 잠시 그대로 서계셨다.

《나는··· 너희들이 이렇게 고생하는줄도 모르고 이제야 왔는데··· 너희들은 나한테··· 꽃다발을 주는구나···》

그이께서는 목메이시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꽃가지를 가냘픈 두손에 정히 받쳐들고 내민채 받으시라고 간청하는듯 한, 애원하는듯 한 순녀의 커다란 눈에서 이슬방울이 떨어져 그 엷은 종이꽃잎에 맺혔다가 잦아들었다.

《순녀야!》

장군님께서는 꽃가지를 든 순녀를 품에 안으시였다.

《이제야 온 나를 용서해라.》

아이들앞에서는 좀해서 눈물을 보이신적 없으신 장군님께서도 이 순간에는 그것을 막아내시지 못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군복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시였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귀틀집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싸늘한 랭기가 감돌고있는 썰렁한 집안에는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고있었다. 단 한잎의 누데기이불도 덮지 못하고 앓아누워있는 수십명의 아이들이 해질대로 해진 거적때기우에 찢어진 홑옷들을 입은채 새우등처럼 꼬부리고 여기저기 몰켜있기도 했고 널려있기도 했다.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병을 얻어 일어나앉을 기운조차 없는 아이들이였지만 그리웁고 그리웁던 장군님께서 들어서시는것을 보자 어떻게 하나 일어나보려고, 일어나서 장군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안깐힘을 쓰며 움쭉거렸다.

《누워들 있거라. 가만히들 누워있어라.》

장군님께서는 일어나려고 애쓰는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 달아오른 이마도 짚어보시였다. 그러시다가 한 아이의 머리맡에 보이는 하모니카를 손에 드시였다. 간살들이 부러지고 도금이 거의 다 벗겨지고 녹이 쓴 하모니카였다.

《소리가 나오?》

장군님께서는 한남실을 돌아보시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다 낡아서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지만 몹시들 애지중지하며 저저마다 불고싶어합니다.》

《저저마다 불고싶어한다···》

장군님께서는 남실의 말을 조용히 되뇌이시며 다시금 잠시 그 녹쓴 하모니카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다가 아이의 머리맡에 도로 놔주시였다.

무거운 침묵이 넓은 귀틀집안에 서렸다. 벽틈으로 스며들어 집안을 휘도는 바람에 길게 드리운 먼지투성이 거미줄들이 흐느적거렸다.

아무 말씀도 없이 한동안 방안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입고계시던 솜외투를 벗으시였다. 그이께서 외투를 벗으신 까닭을 헤아린 눈치빠른 주봉길은 얼른 배낭을 벗어 배낭뒤에 매달았던 달달 말린 모포를 풀었다. 거의 동시에 다른 대원들도 모두 모포를 풀었다.

장군님께서는 손수 자신의 외투를 펴시여 찬바람이 스며드는 창문가에 누워서 눈물에 젖은 입술을 감빨며 일어나려고 애쓰고있는 머리가 감실감실하고 눈이 큰 소녀에게 다가가시였다.

주봉길은 모포를 들고 장군님 곁으로 갔다.

《외투는 그만두십시오. 여기에 모포가 있습니다.》

《···》

장군님께서는 그냥 아무 말씀도 없이 외투를 덮어주시고 바람이 스며들지 않도록 들린데를 여며주시였다.

봉길의 아버지에게 털외투를 벗어주신후 한동안이나 외투 없이 한겨울을 지내시던 장군님께 겨우 장만해올린 솜외투였다.

《여기 모포가 있습니다.》

주봉길은 다시금 좀더 큰소리로 아뢰며 모포를 내려놓고 외투자락을 집었다.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의 손을 잡으시였다.

저저마다 모포를 들고나선 대원들과 전령병을 돌아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목갈린 음성으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이 아이들이 병들어 누워있고 추위에 떨고있는데 내가 백벌의 외투를 입는다고 한들 내 마음이 더워질수 있겠소?!》

그러시고는 주봉길이 들고있는 모포를 다른 아이들에게 덮어주시였다.

주봉길이도, 리동백이도, 그리고 다른 경위대원들도 모두 눈물을 떨어뜨리며 아이들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장군님을 따라 귀틀집안에 들어와있던 한남실이와 앓지 않는 아이들도 눈들을 슴벅거렸다.

그럴 때 출입문이 열리더니 강세호가 들어서고 뒤이어 목깃에 오소리털을 댄 두둠한 솜외투를 입고 새까만 곰털모자를 쓴 얼굴이 갱핏하게 생긴 사람이 문턱을 넘어 귀틀집안에 들어섰다. 그 두번째 사람이 들어서는것을 본 아이들은 일시에 약속이나 한것처럼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하였다. 아동단원들의 눈에서는 감출수 없는 두려움과 적의가 번쩍이였다.

급히 걸어온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귀덮개를 올린 털모자굽에서 김이 문문 서려오르는 강세호는 곧장 장군님 앞으로 다가가서 보고를 올렸다.

《사령관동지의 명령대로 제2련대에 통신원을 파견하고 정치주임동무를 찾아서 데려왔습니다.》

《누구를 파견했소?》

《아까 데리고갔던 사령부 경위대동무들을 보냈습니다. 그 동무들이 보다 책임적으로 임무를 수행할것 같아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수고했소.》

장군님께서는 강세호의 곁에 선 정치주임이라는 사람을 돌아보시였다.

정치주임은 갱핏한 두볼에 활등같은 여러겹의 주름살이 잡힐만치 폭이 넓은 웃음을 지으며 깍듯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사령관동지! 정치주임입니다.》

《···》

장군님께서는 아무러한 대답도 하시지 않으시였다. 악수조차 청하시지 않으시였다. 지휘성원이건 보통대원이건 처음 만나시는 사람에 대하여 이처럼 준절하게 대하신적은 한번도 없으셨던 장군님이시다.

그이께서는 엄하신 눈길로 정치주임을 뚫어지게 지켜보시였다. 억눌러오시던 분기를 더 이상 참으시지 못하시는 장군님의 안광에서는 시퍼런 번개불같은것이 번쩍 또 번쩍 연거퍼 일었다.

《당신이 정치주임이요?》

장군님께서는 정치주임을 다시한번 훑어보시였다. 정치주임의 얼굴에 그려졌던 웃음은 졸지에 사라졌다. 그의 낯빛은 백랍같이 새하얘졌다.

《좀 나갑시다.》

콱 나꾸어채시는것 같은 한마디 말씀을 던지신 장군님께서는 군복자락에서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시며 출입문쪽으로 향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