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2

 

제 7 장

2

 

마안산에서 맨먼저 사령부일행을 맞이한것은 텅 빈 낡은 절간이였다.

기와골에 해묵은 풀대들이 키높이 돋아있고 기둥들과 처마와 두공들을 장식했던 단청무늬들이 벗겨져 얼럭덜럭한데다 칠이 남아있다는것도 퇴색하여 볼품이 없이 되였다. 문짝들은 하나도 없고 안에는 부처도 없었다. 배가 훌쭉한 커다란 쥐 한마리가 제단우에서 바삐 뛰여내려 마루방구석을 한바퀴나 맴돌아치다가 삭아빠진 널마루구멍으로 사라져버렸다.

한 부엌아궁에는 바람에 쓸어든 눈이 오래전에 불타다 남은 나무토막과 재를 덮고있었는데 그 눈우에 크지 않은 짚신자국이 찍혀져있었다. 그와 꼭같은 신자국은 마당안에도 있었고 뒤뜰에도 있었다. 누구인지 이 절간으로 왔다가 다시 돌아간 자국이였다.

행군중에 잠간 설핀 눈이 내린 때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틀전에 찍혀진 신자국이였다. 인민혁명군대원들은 흔히 지하족을 신군 한다. 그러면 짚신은 어떤 사람의것인지? 자국의 크기로 보아 발이 아주 작은 사람이거나 녀자일듯 했다. 혹시 이곳에 있을수 있는 제2련대소속의 후방병원이나 재봉대에 있는 어느 녀대원이 무슨 일로 이 절간에 다녀간것은 아닌지!

장군님께서는 강세호에게 몇명의 경위대원을 데리고 신자국이 난 방향으로 나가 사람을 찾아보라고 이르시였다. 리북철에게는 나머지 대원들을 데리고 숙영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주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는 두 전령병과 함께 절간 뒤봉우리로 올라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전망을 살피시기에 알맞춤한 자리를 찾으시여 거기에서 쌍안경으로 멀고 가까운 산발들과 골짜기들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잎이 무성한 검푸른 상록수들과 가지들이 앙상한 회색빛 활엽수들이 엇섞인 혼성림속에 희끗희끗한 눈이 덮여있는 사위는 짙은 적막속에 잠겨있었다. 횡포했던 겨울이 이 고장의 모든 생명을 압살해버리기라도 한듯 날아다니는 날짐승의 깃소리조차 없고 짐승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쪽으로 멀리 기울어진 태양의 설피고 뿌유스름한 빛이 비껴있는 드넓은 숲우에는 단 한줄기의 가는 연기도 떠오르는것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다만 한군데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시였다. 양지쪽의 한 등성이에 아직 남아있는 흰눈우에서 분명 흙묻은 신자국이라고 짐작되시는 몇개의 반점들을 쌍안경으로 보신것이다. 그 신자국이 그 방향으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간 강세호네의 신자국인지 다른 사람의것인지는 멀리서 분간하실수 없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아직도 무릎을 치게 깊이 쌓여있는 눈을 헤치시며 다시 절간쪽으로 내려오시였다. 저절로 부러진 나무삭정이들을 보시는족족 주어안으시고 내려오신 그이께서는 두손에 잔뜩 흙발림을 하고 절간 부엌아궁을 손질하고있는 리북철에게 물으시였다.

《강세호동무네가 돌아오지 않았소?》

《네.》

하고 리북철이가 대답을 올리고났을 때 저쪽 숲속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거렸다. 잠시후 그 숲속에서 숨차게 달려오는 강세호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람을 찾았거나 무슨 급한 정황이 생겼음을 짐작하신 장군님께서는 안고계시던 삭정이단을 던지시고 강세호에게로 마주 가시였다.

온 얼굴에서 김을 날리며 엎어질듯이 달려오던 강세호는 장군님께 보고를 드리려고 멈춰섰지만 숨이 차서 입만 벌리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그의 얼굴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찾아냈습니까?》

기대에 차신 장군님의 물으심이였다.

강세호는 보고에 앞서 자기가 오던쪽을 손으로 가리켜드렸다.

《남실동무를···만났습니다.》

그의 눈길을 따라 나무들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쪽에 눈길을 보내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강세호를 의아스럽게 돌아보시였다.

《남실이라니?》

《아동단지도원 한남실동무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그 동무를 어떻게 여기서 만났다는것입니까? 왕청에 있을 동무가 이 무송의 산중에 와있다는것입니까?》

《네. 수색해나가다가 양지쪽 등성이에서 한 처녀가 어물거리길래 가봤더니 바로 그 동무가 피투성이 된 손에 나무꼬챙이를 들고 언 땅을 뚜지며 풀뿌리를 캐고있었습니다.》

《그래 그 동무가 어디 있소?》

《저기 뒤에서 같이 갔던 동무들이 부축해오고있습니다. 제대로 걷질 못해서 제가 먼저 보고하려고···》

그가 말을 채 끝맺기전에 장군님께서는 바삐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강세호는 돌따서서 그이를 따르고 곁에 와있던 리북철이도 눈을 움켜쥐여 흙묻은 손을 씻으며 뒤따라갔다.

강세호가 걸어왔던 발자국이 나있는 숲속으로 서둘러 마중나가시던 장군님께서는 저앞에서 두 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한 처녀의 모습이 나타나자 주춤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기진하여 끌려오다싶이 겨우 걸음을 옮겨짚으며 마주걸어오던 처녀도 장군님의 모습을 알아봤는지 흠칫 몸을 떨며 멈춰서고말았다.

자기를 부축해주는 두 대원들의 손을 가볍게 물리치고 금시 앞으로 달려나오려는 처녀에게서 퍼그나 변했지만 역시 틀림없는 한남실의 모습을 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한남실동무!》하고 소리쳐부르시며 성큼 남실의 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장군님!》

그리웠던 장군님을 우러러부르며 그이를 향하여 마주 걸음을 내짚던 남실은 그만 몸을 비칠거렸다. 남실은 이 순간 강심을 먹고 겨우 자신을 지탱해오던 최후의 탕개마저 다 풀려버린듯 비칠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바삐 그에게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는 금시 쓰러지려는 그를 붙잡아주시였다.

곁에 있던 강세호가 대신 부축하려들자 그이께서는 솜외투를 벗어 눈우에 펴놓으라고 이르시고 그우에 남실을 조심스럽게 앉히신다음 그의 등뒤에 배낭을 괴여주시며 비스듬히 눕히시였다. 그러시고는 눈우에 처져내린 한남실의 손을 그의 가슴우에 끌어올리시다가 손톱눈마다 피지고 흙이 끼여있는것을 흐린 안색으로 살피시고 그의 얼굴과 차림새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한남실의 피기없는 해쓱한 뺨에는 나무가지에 긁힌 자리들이 나있었고 푸릿푸릿하게 언 입술은 부르터있었으며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배여든 눈확은 푹 꺼져들었다. 그의 차림도 말할수 없이 험상궂었다.

허울만 남은 후렁후렁한 솜저고리, 여지없이 해져 아래단이 너슬너슬한 치마, 갖가지 천으로 깁고 또 덧기워신은 버선, 여러개의 신총이 닳아떨어진 헌 짚신··· 그 짚신은 발에서 벗어지지 않게 나무껍질로 돌려감겨져있었다.

《찾을 때 무엇을 하고있더라구?》

장군님께서는 강세호를 돌아보시였다.

《나무꼬챙이로 언 땅을 헤치며 저 풀뿌리를 캐고있었습니다.》

강세호는 한남실을 부축해왔던 한 대원이 들고있는 보자기를 받아서 그이께 보여드렸다.

《이겁니다.》

뚫어진 헌 보자기구멍으로 언 흙이 묻어있는 풀뿌리 하나가 비죽이 내밀려있었다.

아무 말씀도 없이 그 풀뿌리보자기를 보신 장군님께서는 다시 남실의 얼굴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실의 눈굽에 괴여있는 눈물을 훔쳐주시였다.

장군님의 손길을 감촉한 순간 남실은 정신이 들었던지 두눈을 떴다. 맑고 푸른 하늘을 담아서인지 온 얼굴에서 전이나 다름없는 아름다움을 유일하게 간직하고있는 쌍가풀이 진 시원한 두눈이 그리웠던 장군님의 영상을 다시 우러르게 되자 금시 옹달샘같이 맑은 눈물이 홍건히 괴여올라 그렁그렁해졌다.

《장군님!》

움쭉거리는 마른 입술짬으로 낮은 흐느낌같은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이상스럽게도 가슴을 저미게 하는 목메인 부름이였다. 흐느껴우는 처녀의 량눈귀로 마구 솟구쳐올라 넘쳐나는 눈물이 장군님의 군복을 적시였다.

모두가 눈을 슴벅거렸다.

장군님께서도 눈물이 핑 감도는 눈으로 한남실을 지켜보시며 그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내가 여기 있소. 진정하고 정신을 차리오.》

《장군님···》

남실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외우더니 문득 말을 끊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다시 장군님을 한동안이나 우러러보았다.

《이젠 좀 말해보오. 왕청에 있던 동무가 어떻게 돼서 여기 마안산에 와서 풀뿌리를 캐게 됐는지?》

남실은 울음때문에 말을 더듬으며 소왕청에서 아이들과 같이 장군님을 찾아 떠나지 않을수 없었던 일과 눈덮인 밀림속을 헤매며 고생하던 일들, 그리고 마안산까지 와닿게 되던 일들을 죄다 말씀드렸다. 꿈결에도 그리던 장군님을 만나뵈옵게 된 지금 남실은 자기의 이야기가 얼마나 장군님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리는가를 미처 생각할수가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따금 목갈린 음성으로 《그래서···》 《그담에는···》 하는 짤막한 말씀으로 남실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재촉하시면서 묵묵히 들으셨지만 자신께서도 모르시는 사이에 손가까이에 있는 묵은 풀대들을 마구 잡아뜯으시였다.

《그래서···?》

《우리가 마안산에 왔을 때엔 우리 전에 다른곳에서 모여온 숱한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럼 여기 와있는게 소왕청아이들만이 아니요?》

《아닙니다. 처창즈유격근거지에서 살다가 근거지가 해산된 다음 내두산을 거쳐서 여기 와있는 아동단원들도 있구 먼 연길지방과 화룡지방에서 온 아동단원들도 있답니다···》

《그 애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소?》

《적들의 추격을 받으며 산속에서 헤매다가 통신원을 만나서 온 아이들도 있고 저희들끼리 대오를 지어다니다가 유격대원들을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아이들을 시끄럽다고 쫓아버리며 먹을것도 안주고 이 추운 겨울에 헐벗은걸 보구서두··· 전혀 돌봐주질 않아서··· 그 숱한 애들이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고생하고있었습니다···》

한남실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섧게 울었다. 마르고 튼 손가락짬으로 눈물이 새여나와 얼럭덜럭 기운 검정치마폭에 뚝뚝 떨어졌다.

《누가 아이들을 쫓는단말이요?》

이곳 마안산에 있는 민족배타주의자들이라고 말씀드리였다. 그자들은 아이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그 아동단원들이 유격활동에서 큰 《부담》으로 된다고 하면서 전혀 돌봐주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들은 아동단원들이 가까이에 있으면 적들에게 밀영이 드러날 위험성이 많다고 하면서 다른데로 가라고 하다가 의지가지할데 없는 아이들이 곁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자기네가 피해가서 깊숙한 밀림속에 따로 밀영을 짓고있으면서 아이들은 근처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했다는것이다.

아동단원들을 따돌릴 궁리만 해온 이자들은 량식조차 제대로 대주지 않았고 엄동설한에 떨고있는것을 보고도 옷 한벌 해입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자들은 심지어 나어린 아동단원들에게까지 《민생단》련루자라는 터무니없는 딱지를 붙여놓고 애들을 천대하고 멸시했다는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여느 유격대원들은 아이들을 도와줄 생각이 간절해도 《민생단》으로 몰려 죽을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에 아무도 도와주려는 엄두조차 내지들 못한다고 하였다.

《<민생단>이란건 무슨 소리요? 아직도 <민생단>에 몰리는 사람들이 있단말이요?》

《있다뿐이겠습니까? 여기 있던 제2련대에만도 백명나마 된답니다. 그사람들에게는 총알도 세알씩만 주고 전투에도 참가시키지 않는답니다.》

전혀 뜻하지 않았던 험악하고 복잡한 사태가 벌어지고있다는것을 아시게 된장군님께서는 몹시 놀라시였다.

《민생단》문제와 관련된 여파가 약간 남아있으리라는것은 예상 못하신것이 아니지만 다홍왜회의와 요영구회의가 있은지 한해가까이 지난 지금은 이미 거의 다 풀렸으리라고 생각해오신 장군님이시였다. 그런데 제2련대에만도 백여명씩이나 아직까지 《민생단》혐의를 받고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라지 않으실수 없으시였다.

《그러면 제2련대는 모두 어디 있소?》

《련대의 기본성원들은 교하쪽으로 원정을 가고 <민생단>련루자들만 여기 남아있었는데 그들도 지금은 여기 없습니다.》

교하면 여기서 남호두보다 오히려 먼곳이다. 련대의 기본성원이 그 먼곳에 가버린데다가 전투원 취급조차 못받는 백여명의 남은 성원들조차 없다는 소식에장군님께서는 마음을 버티여주며 서있던 기둥이 졸지에 뽑혀져버린것 같은 느낌이시였다.

《그 혐의자들은 어디에 갔소?》

《먹을게랑 없고 해서 못가게 막는것을 뿌리치고 전투하러들 림강쪽으로 나갔답니다.

그 <민생단>련루자들이 림강쪽으로 전투하러 떠나게 되자 그 사람들을 감시하면서 여기 남아있던 정치주임이랑은 그들이 변절해서 적을 달고올수 있을게라고들 하면서 밀영을 갑자기 또 딴데로 옮겨버렸답니다···》

《···》

어느덧 장군님께서 앉으신 자리에는 부스러지고 부러진 풀대들이 수북이 쌓였다.

엄하신 낯빛으로 묵묵히 생각에 잠기시여 어딘가 먼 하늘가를 바라보시며 무작정 풀대를 쥐여뜯으시던 장군님께서는 마침내 바스라진 풀대를 던지시고 결연히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대원들에게로 돌아서시였다.

《동무들, 숙영준비를 그만두고 길을 떠나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장군님께서는 리북철을 찾으시였다. 리북철은 몸을 바로잡으며 그이의 앞에 다가섰다.

《동무는 이제 걸음을 잘 걷는 동무들을 두사람 데리고 림강쪽으로 나가면서 <민생단>혐의자들의 행적을 찾아 그들을 본래 있었다는 련대 귀틀집으로 데려오시오.》

《알겠습니다.》

《련대장동무!》

장군님께서는 강세호를 부르시였다.

《동무는 이곳 정치주임이 숨어있는데를 찾아서 교하방면으로 원정갔다는 련대의 기본성원들이 즉시 마안산에 오도록 통신원을 보내라고 하시오. 우리 경위대동무를 보내도 좋소. 만일을 생각해서 통신원으로 보낼수 있는 두 동무를 데리고가시오. 그리고 정치주임을 데리고 나에게 오시오. 나는 아이들에게 가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나머지 성원들과 한남실을 데리시고 아동단원들이 있는곳으로 향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