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3

 

제 6 장

3

 

리경준일행은 앓는 사람이건 성한 사람이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할것없이 기력이 빠질대로 빠져버리고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말할 힘조차 없어진 최선금은 하루 몇마디씩 번지는 말도 힘에 겨운지 겨우 입술을 움직거렸다. 억지로 지어보이군하던 웃음도 더는 짓지 못하게 되였다.

최선금의 얼굴에는 그 어떤 의지로써도 지워버릴수 없는 슬픔이 비끼였다. 시시각각 삶을 앗아가고있는 그 무서운것이 최선금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던지기 시작한것이다.

어머니가 들것에 실리게 된 때로부터 어른들의 잔등신세를 더는 져보지 못하고 내내 걸어온 아이들도 그이상 걸을 형편이 못되였다.

교대하는 사람 없이 줄곧 들것을 들고온 리경준이와 장기령이도, 일행의 배낭을 혼자 도맡다싶이한 장철구도 자주 헛걸음을 치며 비틀거리였다.

멎어서면 다시는 일어날것 같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인적없는 산중에서 주저앉은대로 얼어죽고말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이를 악물고 걸음을 간신히 옮겨놓고있었다. 움직일수 있는 한에서는 기여서라도, 한걸음이라도 더 사령부 가까이에 가서 죽기를 바라는 그들이였다.

기어이 장군님을 만나뵈오려는 그들의 열망은 기력이 진해질수록 스러져가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졌다. 최후의 시각을 앞두고 점점 더 세차게 불타오르는 그들의 열망은 사령부의 가까이에 가서 쓰러지리라는것이였다.

그들은 왕청에서부터 시작된 긴긴 행군의 이 최후의 날이 저물어가고있는 어슬녘에도 멈춤없이 행군을 계속하였던것이다.

그 불타는 열망에 대한 보답이기나 한듯 마침내 그들앞에 유격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도끼소리가 들려왔고 그다음에는 바람을 타고 연기내가 실려왔다.

원쑤놈들만 맞다들지 않으면 누구를 만나든 구원받을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힘을 얻은 그들은 얼마 걸어가지 않아서 과연 이제까지 오는동안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였던 인민혁명군대원을 만나게 되였다.

꽁무니에 도끼를 찬 그 대원은 찍어넘겨뜨린 강대를 끌고 산비탈을 내려오다가 그들을 보자 끌던 나무를 버리고 그들에게로 바삐 달음쳐왔다. 그러다가 사람들을 가려볼만 한 거리에 이르자 멈춰서서 유심히 살펴보기만 할뿐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자기들과 같이 지내는 사람들가운데서 누군가 부상당한 사람이 있어 그를 들것에 싣고오는줄로 여겼다가 두 어린아이들까지 달린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모양이였다.

리경준이도, 장기령이도, 장철구도 그 사람의 차림새와 거동을 보고 그가 비록 총을 메지는 않았지만 인민혁명군대원이라는것을 직감하였다. 그들에게는 그 사람이 그저 단순히 인민혁명군대원인것이 아니라 사령부소속성원인것처럼 생각되였다.

금시 울어버릴것 같이 감격에 북받쳐 리경준은 안해를 실은 들것을 내려놓을념도 못하고 그 사람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유격대원이 아닙니까?》

《···》

상대방은 웬일인지 인차 대답하지도 않고 더 내려오지도 않았다. 그냥 서서 잠시 그들을 살피기만 하더니 나지막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디서 누구를 찾아오는분들입니까?》

《왕청에서부터··· 사령부를 찾아옵니다.》

《사령부요?··· 여기엔 사령부가 없는데··· 누가 이 마안산에 사령부가 있답디까?》

그는 오히려 의아해하였다. 그리고보면 그는 사령부가 이 무송땅으로 나왔다는것을 모르고있는 모양이였다.

틀림없이 경준이네보다 앞서 나왔을 사령부가 넓은 무송땅의 다른 지역에 들어서기는 했으나 아직 이곳과 련락을 맺지 못한것이라고 짐작되였다. 혹시 사령부가 어디에서 지체하면서 무송땅에 채 들어서지 못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여하튼 유격대원들이 있는데로 안내해주십시오.》

마음이 급해진 리경준은 이렇게 청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상스럽게 그냥 그 자리에 지켜선채 대답없이 얼핏 주위를 휘돌아보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 사람에게는 비록 안면은 없다 해도 혁명동지끼리 만나게 될 때 의례 있게 마련인 반가움이라든가 정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들것우에 환자가 누워있는것을 번연히 보면서도 도와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유격대원들에게로 안내해달라는 리경준의 청을 듣고서도 가까이 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들에 대한 의심때문에 그러는줄로 짐작한 리경준은 자기들도 유격대원들이라고 말하면서 안심하고 좀 가까이 와달라고 간청하다싶이 하였다.

그 사람은 다시한번 주위를 휘돌아보고나서야 비로소 몇걸음 더 내려왔다. 그러나 아주 가까운데까지는 오지 않고 또 멎어섰다. 군데군데 찢기고 해져서 솜뭉치가 비죽비죽 내민 몹시 낡은 겨울군복을 입고있었다.

누렇게 황이 들어있는 얼굴에는 아무러한 생기도 활기도 없어보였다. 젊은 사람이였지만 어쩐지 겉늙어버린듯 했는데 미안쩍어하는것 같기도 하고 반기는것 같기도 한 가냘픈 웃음을 처음 보여준 순간에조차 얼굴에 깃들인 음울한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퍽 고생들 하며 오신것 같습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환자는 심합니까?》

《빨리 손써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장기령의 대답이였다.

그 사람은 자기가 나무를 끌고 내려가던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지 마십시오. 그쪽에 커다란 귀틀집이 몇채 있는데 거기로 가면 안됩니다.》

그리고는 다른편을 가리켰다.

《이편으로 내려가십시오. 저 낮은 등성이아래로 가면 아늑하게 들어앉은 자그마한 귀틀집이 있습니다. 거기로 찾아들어가십시오. 지휘부로 쓰던 귀틀집인데 거기 가면 정치주임이란 사람이 있을겁니다. 모셔다 드렸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안되게 되여있습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역시 례절도 있고 친절하기도 한 사람이였지만 무엇때문인지 도와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도와줄 마음은 분명 갖고있는것 같은데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마음같이 하지 못하는것이였다.

와못주는 그의 안타깝고 죄송스리워하는 심정을 느낀 리경준은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고 그가 가리켜준쪽으로 돌아섰다. 그 사람은 오래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부러워하는것 같기도 하고 동정하는것 같기도 한 눈길로 일행을 바래주었다.

그가 알려준 지휘부귀틀집은 낮은 등성이아래의 청림속에 자리잡고있었다.

뙤창에 비친 불빛을 보는 순간 일행은 오래동안 객지에서 고생하며 방황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자기 집 창문에 어린 불빛을 본 사람들처럼 감개무량하였다. 이제는 제 사람들을 만났으니 굶어죽을 념려도, 얼어죽을 념려도 없을것이며 중태에 빠져있는 최선금에게도 늦은대로 손을 써볼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사령부소식도 알게 될것이며 미구에 사령관동지의 품에 안기게 될것이다.

밤길을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불빛어린 인가의 창문은 반가운 법이다. 유격대의 정치주임이랑 들어있다는 귀틀집창문의 불빛을 본 리경준일행의 가슴은 기쁨과 감격으로 설레였다.

바로 이와 같은 유격대귀틀집의 불빛을 보기 위하여 수많은 간난신고를 겪으며 먼 동만의 소왕청에서부터 북만의 돈화땅을 거쳐 장설이 덮인 천리수해속을 헤쳐온 그들이 아니였던가?

그렇다. 그것은 객지에서 돌아온 식구를 따뜻이 품어줄 고향집의 반기는 눈동자였다. 고향집이 반기는 웃음이였다.

일행은 저마다 말없이 눈들을 슴벅이며 좁은 귀틀집마당에 들어섰다.

낯선 귀틀집이기는 하나 그리웠던 식구들이 있는 제집마당에 들어서는것처럼 리경준은 잠시 서서 불빛이 어린 뙤창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서있다가 마음을 눅잦히고 출입문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일부러 신발을 털어 인기척을 내며 집안에 대고 물었다.

《들어갈만 합니까?》

《예ㅡ》

한참만에야 집안에서는 턱에 눌린듯 한 시들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리경준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후끈한 화기가 도는 귀틀집안에는 자그마한 얼굴에 턱이 뾰족하고 역시 자그마한 눈이 반들반들한 사람이 깃에 털을 댄 외투를 걸치고 혼자 있었다. 새옷처럼 깨끗한 군복차림인 그는 책상우에 세워놓은 초불아래서 난로쪽으로 돌아앉아 입귀에 문 담배연기때문에 실눈을 지어가며 손칼로 손톱을 깎고있었다. 하던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지 않는 성미인지 그는 왼손의 엄지손가락손톱을 깎느라고 머리를 들지 않았다. 산에서 만났던 유격대원과는 달리 그는 어딘지 모르게 태평스러워 보이였다.

귀틀집에는 그밖에도 몇사람이 같이 들어있는지 모포를 깔아놓은 여러개의 잠자리가 마련되여있었다.

마침내 엄지손가락끝에서 손톱을 깎아낸 그는 칼날로 손톱을 다스리면서 비로소 눈을 들어 출입문가에 서있는 리경준을 건너다보았다. 그제야 자기가 늘 보아온 사람이 아니라 낯선 사람이라는것을 알았는지 손질을 멈추고 경준의 수염투성이 얼굴과 험한 군복차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음 보는것 같은데··· 어디서 왔소?》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꽁초를 버리고 이렇게 물었다.

《여기에 정치주임동무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왔소?》

그는 의자등받이에 기댔던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정치주임동무입니까? 안녕하십니까?》

리경준은 그앞에 다가가며 두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의심쩍어서인지 약간 주저하며 마주 내미는 그의 오른손을 두손으로 반갑게 꽉 잡았다.

《왕청에서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유격대원들입니다.》

《먼곳에서 왔군요. 고생했겠습니다. 여러 사람입니까?》

리경준의 람루한 차림과 지친 얼굴에서 이미 그도 퍽 고생했으리라는것을 짐작한 모양이였다.

《어른 넷하고 아이가 둘입니다. 밖에 있습니다.》

《아이들까지? 어떻게 아이들까지 있습니까?》

《차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들과 부상당한 환자가 있어서··· 먼저 좀 들여다놓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그··· 그렇게 합시다.》

아직 파악 없는 사람들을 무리로 들여놓은것이 께름직해서인지 별로 시답지 않아하는 눈치였지만 먼길을 고생스럽게 왔다는 사람들을 그냥 차거운 한지에 세워둘수도 없어서 이렇게 대꾸했다. 그리고 문옆에 지켜서서 들것우에 누운채 들려들어오는 최선금과 장기령, 아이들과 장철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맨 나중에 비칠거리며 들어오던 명숙이가 문턱에 걸려 넘어질번 하자 그를 붙잡아세워주고는 문을 닫았다.

최선금을 들것채로 바닥에 내려놓은 리경준과 장기령은 아이들과 장철구를 도와 짐도 내려놔주고 난로곁에 데려다 불도 쪼이게 해주고나서 초불이 켜져있는 통나무책상앞으로 다가갔다.

정치주임은 의자를 손님들에게 권할것도 잊어버리고 뒤짐을 짚고서서 여전히 아무 말없이 그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살펴보며 리경준이가 보고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책상우의 초대옆에는 써레기담배가 담긴 나무곽과 함께 꽁초들과 담배재가 수북한, 나무뿌리를 파서 만든 재털이가 놓여있었다.

맡아본지 오랜 담배내가 코를 찌르자 리경준은 우선 한대 피우고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직 인사도 변변히 못한 주제에 권하지도 않는 담배부터 청하고싶지 않았기때문에 참고말았다. 그러나 앉고싶은데 대하여서는 굳이 스스로 사양하여 참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대로 그냥 서있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몸을 지탱해낼수가 없었다.

《실례입니다만 좀 앉아서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정치주임은 그제야 먼길을 걸어온 손님들에게 의자를 권하지 않았던것을 생각하고 자기의 처사에 대해 스스로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눈살을 찌프리며 말하였다.

《그렇게 하시오.》

경준은 통나무를 깎아만든 긴의자에 앉으며 장기령에게도 앉으라고 눈짓하였다. 장철구와 두 아이는 난로가의 땅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정치주임만은 여전히 선채로 있었다.

리경준은 그렇게 서있는 사람앞에 앉은채 보고하기가 매우 미안하고 지어 불손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리해해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북만원정을 떠나신 사령관동지를 찾아서 먼 돈화땅에까지 들어갔다가 사령부가 무송방향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했다.

《사령부가 여기 나왔다고 누가 그럽디까?》

정치주임은 의아해하였다.

《돈화의 밀림속에 있는 한 산전막로인에게서 들었습니다. 자기가 길안내까지 했다던데요···》

리경준은 로인이 해주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였다.

정치주임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모를 소리요. 사령부는 여기 나오지 않았을뿐아니라 나온다거나 나왔다는 련락도 우린 받지 못했는데···》

《그러면 도중에 다른데로 향했거나 좀 지체되는게 아닐가요?》

《그 늙은이의 말을 어떻게 그대로만 믿겠소?··· 그건 그렇구, 저 아이들도 처음부터 데리고 떠난 아이들이요?》

《저의 아이들입니다. 소왕청에서부터 데리고 왔습니다.》

《저 아주머니는?》

《제 처입니다. 도중에 부상당했습니다.》

정치주임은 들것우에 누운채 눈도 뜨지 못하고있는 최선금과 난로옆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있는 두 아이를 잠시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에야 자리에 앉으며 리경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돼서 굳이 이 엄동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험한 걸음을 떠났소? 일부러 사서 고생하면서말이요? 눈이 다 녹은 다음에 떠난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기막힌 일을 일시에 회상한 리경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봄이 되여 떠났더면 좋은줄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그런 까닭이 있었습니다. 담배를 피워도 좋겠습니까?》

가슴이 답답해난 리경준은 얼결에 담배를 청하였다.

《피우시오.》

정치주임은 후들거리는 손으로 담배를 말아 초불에 대고 불을 붙이는 리경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퍼그나 출출했던데다가 오래간만에 마른 가랑잎이 아니라 진짜 담배연기를 들이킨 리경준은 정신이 핑 도는것 같았다. 어지럼증을 느낀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수습하였다. 그리고는 담배불을 재털이에 꾹 눌러 꺼버렸다.

《제가 무슨 말을 하댔던가요?》

정치주임은 뾰족한 턱을 들고 반들거리는 눈을 쪼프리며 리경준을 바라보았다.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지 않을수 없었던 까닭이 있었다고 했댔소.》

《그렇습니다. 제때에 그곳에서 떠나지 않았더면 우리는 벌써 잘못됐을수도 있었을겁니다. 억울한 일입니다만 우리는 <민생단>으로 몰렸댔습니다. 그냥 있게 되면 어차피 억울한 루명을 뒤집어쓴채 혁명의 변절자로 처단당할 처지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럴바에야 무엇때문에 거기 앉아서 떳떳치 못한 죽음을 당하겠습니까?···》

웬일인지 이야기를 듣고있던 정치주임은 책상우에 올려놓고 깍지끼였던 손을 내리우며 몸을 뒤로 젖혔다. 무심중 그렇게 하여 마주앉은 리경준이며 장기령이와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멀리해버린 그의 얼굴에는 이제까지 감추워왔던 경계하는 기색이 뚜렷이 드러났다.

《어떻게 돼서 <민생단>혐의를 받게 되였는지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시오.》

그것은 청이 아니라 요구였다.

막다른 처지에서 자기네들을 구원해줄 유격대의 한 정치일군을 만난김에 여태 하소할데조차 없었던 억울함을 처음으로 그대로 털어놓기 시작했던 리경준은 그의 얼굴에 나타난 싸늘한 표정에 차츰 당황해졌다. 그러나 진상을 죄다 알게 되면 그 싸늘한것이 따뜻한 동지적인 리해로 바뀌리라는것을 믿으면서 자기네 부부와 장기령, 장철구가 각각 혐의를 받게 된 경위를 될수록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이따금 한두마디씩 캐여물으며 시종 랭담한 표정을 가시지 않고있던 정치주임은 불쑥 일어나 출입구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출입문곁에 주런이 벗어놓은 배낭에 기대세운 리경준의 총을 손에 들고 돌아서며 물었다.

《탄알이 몇발이 있소?》

《한발뿐입니다.》

《이 탄창안에 있소?》

《네.》

《다른 총은 없소?》

《그것뿐입니다.》

《잠간만 기다리오.》

그는 총임자의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탄창에서 탄알을 뽑아쥐고 다시 총을 눕혀놓았다. 그런 다음 출입문과 반대쪽에 있는 안벽구석에 가서 귀틀벽 나무옹이에 매놓은 노끈을 몇번 잡아챘다. 그 끈은 귀틀벽짬으로 해서 바깥의 어덴가와 통해있는듯 했는데 무슨 련락을 취하는데 사용하는것 같았다.

《당신네들도 <민생단>이란말이지?》

구석에서 돌아선 그는 권총을 찬 혁띠에 량손의 엄지손가락을 걸며 혼자소리처럼 말하였다. 그의 얼굴은 표표하였다.

《이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민생단>혐의를 억울하게 받았다고 말입니다.》

리해나 동정 정도가 아니라 충분한 공감에서부터 우러나온 격분을 보게 되리라 생각했던 정치주임에게서 오히려 뜻하지 않았던 랭혹한 의심을 받아안게 된 리경준은 아연해져서 그이상 다른 말을 할수 없었다.

《당신네들이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소? 누가 보증하겠소?》

정치주임은 따져 물었다. 그것은 소왕청에 있을 때 그들에게 《민생단》혐의를 들씌우던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말투였고 또 너무나도 신통히 같은 말마디들이였다.

《아니 금방 한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우리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까?》

내내 참견하지 않고 앉아있던 장기령이 결김에 내쏘았다.

《우리가 왜 무서운 고생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듣고도 믿어지지 않는단말입니까?》

뒤이어 리경준이 분기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정치주임은 여전히 랭정하고도 침착하게 높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법정에서는 본인자신의 변호를 인정하지 않소.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는것은 범죄자들의 일반적경향이요.》

《아니 그럼 우리가 범죄자란말이요? 죄인이란말이요?》

장기령은 책상을 짚으며 일어섰다. 그러다가 몸이 비칠거려 도로 주저앉고말았다.

《그건 좀더 알아봐야 하겠소.》

《만약 우리가 <민생단>혐의에 걸렸었다는 이야기를 안했더면 당신은 어쨌겠소?》

리경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걸음 내디디였다.

《그랬더면 우리도 골치거리를 또 당하지 않았을지 모르오.》

《그 우리라는건 대체 누구들이요?》

《위임받은 사람들이요. 그건 더 이상 알 필요 없소.》

그는 리경준일행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자기 한사람만이 아니라는것을 암시하였다. 아마도 이 귀틀막에 잠자리를 두고있는 몇사람들을 념두에 둔 말인듯 하였다.

《그럼 당신네는 우릴 어쩔테요?》

《<민생단>혐의를 받았던 사람들인 이상 그냥 놓아보낼수는 없소. 우리도 당신들 같은 혐의자들이 한사람이라도 불어나는게 시끄럽소. 여기엔 지금 거의 백명이나 되는 당신네 같은 사람들이 있소. 해명될 때까지 당신들도 그들과 같이 있어야 할것이요.》

《당신들한테서 우리가 죄인취급을 받자고 여기까지 온줄 아오?》

《어쩔수 없는 일이요. 할수 없소.》

그는 여전히 랭담한 어조로 내뱉듯 말하였다.

장기령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울기오른 그의 이마와 목줄띠에서 피줄이 툭 불거져나와 풀떡풀떡 뛰였다. 그러더니 드디여 탁 터진 입술사이에서 불같은 한마디의 말이 튀여나왔다.

《이 개자식!》

그 말을 토해버린 그는 밑둥이 잘린 나무그루마냥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때마침 들어선 두명의 총멘 사람에게 정치주임이 지시를 주었다.

《이 사람들을 혐의자들의 귀틀집에 호송해가시오.》

그것은 산에서 길을 가르쳐주던 처음 만난 사람이 가지 말라던 그 귀틀집들이였다. 그들에게 길을 대주던 사람도 바로 그 귀틀집에서 지내고있는 혐의자의 한사람이라는것을 리경준과 장기령은 그날 밤에 알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