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2

 

제 6 장

2

 

미혼진을 떠나 서쪽으로 향한 단출한 사령부일행은 새 행군의 첫날 밤을 어느 한 산전막에서 보냈다.

그것은 돈화땅과 안도땅을 한품속에 걷어안고있는 넓은 밀림속에 외따로 있는 산전막이였다.

이 산전막에도 세상을 등지고 사는 하얀 채수염의 늙은이 한분이 있었다.

일행은 그 늙은이에게서 며칠전에 사령부를 찾아 헤매다니는 두 아낙네가 먹을것을 구하러 이 산전막에 들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만땅 어디에선가 떠나 사령부가 원정간 북만으로 찾아들어가던중에 사령부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서서 그 행처를 찾아 헤매더라는것이였다.

늙은이는 그 아낙네들이 산전막을 나선지 얼마 안되여 어지러운 총소리가 한동안 울렸기때문에 개처럼 쏘다니는 《토벌대》놈들에게 필경 잘못된줄 알고 산중을 돌아다녀보았지만 멀리 사라져간 발자국들과 눈우에 얼마간 흘린 낟알들, 점점이 떨어진 피자국, 그리고 여러번 어푸러졌던 자리밖에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다행히 어두울무렵이여서 용히 몸을 피한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튿날 또다시 기마행군을 해가던 일행은 한 우등불자리에서 가위밥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가둑나무물을 올린 군복천오리였다. 우등불주변에 있는 바람받이언덕밑에는 바람에 날려와 쌓인채 녹지 않은 눈우에 조꼬만 어린아이의 생생한 짚신자국과 흘려진 잣알이 있었다.

그것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해가 아직 퍼그나 남아있었지만 행군을 멈추어세우시고 오늘은 여기에서 숙영하자고 말씀하시였다. 몇명의 인원으로 숙영준비를 갖추도록 지시하시는 한편 그이께서는 세사람씩 조를 짜주시며 부상당한 몸으로 어린것들까지 데리고 사령부를 찾아 헤매고있을 근거지 녀성대원들을 그 주변일대에서 찾아볼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도 친히 경험 없는 리동백이와 현팔이를 데리시고 한 방향을 맡아 떠나가셨다. 강세호도, 리북철이도 한조씩 맡아가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찾아떠났다.

···사령부를 찾아 헤매고있다는 부상당한 부녀자들을 찾지 못한채 조원들과 약속한 바위아래에 먼저 돌아온 리북철은 아까부터 서성거리며 그들이 나타나기를 초조히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이따금 근심어린 눈으로 흰눈이 깔린 이깔나무숲을 살피였다.

숲의 설레임소리에도, 바람에 마른 삭정이가 부러지는 소리에도 날카롭게 귀를 도사렸다. 그러다가 그것이 인기척이 아니라 바람소리임을 알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문득 맞은편 이깔나무숲에서 텅ㅡ텅ㅡ하고 나무밑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처음에 두번, 다음에 세번 울리였다. 그런데 그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김빠지게 울리였고 두번째 마지막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리북철은 대뜸 주봉길이가 왔으며 그것도 사람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는것을 알았다.

이윽하여 아름드리 이깔나무사이로 주봉길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작달막한 키에 총탁이 눈우에 끌리는 기병총을 멘 그가 숲속에서 나왔을 때 리북철은 혹시나 해서 그의 어깨너머에 눈길을 주었다. 뒤따르는 사람이 없나해서였다.

《아무것도···》

주봉길은 기가 죽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리북철은 다른것을 묻지 않고 《수고했소.》 하고는 그의 차거운 손을 다정히 잡아쥐고 바위가 있는데로 갔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다놓았던 나무로 불을 피웠다. 떡갈나무가지는 찌르륵찌르륵 진을 내뿜으며 기세좋게 타올랐다. 그들은 서로 묵묵히 앉아있었다.

이윽고 숲속에서 또다시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둔중하게 천천히 두번, 다음에는 되알지고 크게 세번 울리였는데 마지막에는 은은한 메아리같은 여운까지 남기였다.

《문룡동무가 왔소!》

리북철은 이렇게 소리치며 일어섰다. 무엇인가 기대를 가지게 하는 신호였다. 리북철은 주봉길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자 주봉길은 우등불곁에서 재빨리 맞춤한 나무토막 하나를 손에 잡더니 나무밑둥을 텅텅 하고 연거퍼 두드렸다. 그것은 응답신호였다.

얼마후 허우대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문룡이 너부죽한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담고 솜외투의 어깨와 가슴에 앉은 눈을 털며 나타났다. 가죽혁띠를 두른 그의 둥실둥실한 허리에는 수류탄 두알이 매달려있었는데 그것은 황소목에 매달린 왕방울처럼 데룽거렸다. 리북철은 이번에도 기대에 차서 문룡의 뒤를 살폈으나 역시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리북철의 눈치를 알아차린 문룡은 의미심장하게, 전에없이 활기있게 경례를 하는것이였다. 그다음에는 묻는듯 한 눈길로 자기를 빤히 올려다보고있는 주봉길에게 눈을 껌벅해보이였다.

불이 달린 떡갈나무가지들을 헤쳐놓고 언손을 쪼이며 문룡은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문룡은 숨을 크게 쉬고나서 이렇게 덧붙이였다.

《이렇게 허탕만 치다보니 앞이 막막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몹시 심려하고계신다고 생각하니 발이 떨어지질 않습디다. 그래서 경위대장동지랑 봉길동무랑 기다릴줄은 알면서두 골짜기 하나를 더 뒤졌지요. 한창 올려추는데 앞에 저것보다 엄청나게 더 큰 바위가 턱 나지더란말입니다. 집채만 합디다. 바위밑은 함지박처럼 우묵 들어갔는데 사람 대여섯명은 넉넉히 앉아 쉴수 있고 또 찬바람도 막을수 있겠습디다. 에라 여기나 한번 보구 가자. 그래 가서 살펴보았더니 글쎄···》

문룡은 여기서 이야기를 중둥무이하고는 솜외투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엇인가를 찾았다. 그리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리북철의 눈앞에 줌을 펴보이였다. 문룡의 손바닥에는 열개가 되나마나한 새노란 잣껍질이 놓여있었다.

《그게 뭐요?》

리북철은 의혹에 찬 눈으로 잣껍질과 문룡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다그쳐물었다. 그리고 문룡의 대답을 기다릴 사이 없이 그것을 얼른 받아쥐였다.

《경위대장동지, 거기에도 우등불자리가 있었습니다.》

문룡의 목소리는 떨렸다.

리북철은 연한 속껍질이 안에 남아있는 그 잣껍질에서 무슨 비밀이라도 찾아내려는듯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조심스레 이리저리 굴리여보기도 하였다.

《다른것은 없었소?》

리북철은 그 잣껍질들을 주봉길에게 넘겨주면서 은근한 기대가 담긴 눈으로 문룡을 쳐다보았다.

《다른게 없나해서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봉길동무는 어떻게 생각하오?》

이렇게 리북철이가 묻자 주봉길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글쎄말입니다··· 우리 동무들일가요?》

《이 속껍질을 보오. 마르지도 않고 상하지도 않았소. 잣을 깐지가 며칠 되지 않았소. 분명 우리 동무들이요. 우리 동무들이 아니면 이 엄동설한에 이런 깊은 산속에서 누가 잣알을 까고있겠소.》

뒤말을 더 이으려던 리북철은 무엇인가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등뒤로 밀려간 권총갑을 앞으로 당겨놓았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주봉길은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봅시다!》

리북철은 서둘러 앞장섰다.

그들은 눈속에 빠져 서로 부축해가며 두어아름이나 되는 진대나무를 기여넘으면서 보통때 같으면 한시간은 실히 걸릴 길을 반시간만에 대여갔다.

드디여 일행은 유격대의 귀틀집만큼이나 큰 거밋거밋한 바위앞에 이르렀다.

이깔나무숲이 묵묵히 리북철의 일행을 맞아주었다. 새소리 하나 없는, 모든것이 죽은듯이 적막한 숲이였다. 그 깊이를 알수 없는 공허가 그들을 휩쌌다.

리북철은 가까스로 찾은 한가닥 희망의 실오리마저 끊어지는것 같아 맥이 풀려 우뚝 서버렸다.

《경위대장동지, 저깁니다.》

문룡은 경위대장의 심중을 모르고 성큼성큼 앞질러나가면서 어린 봇나무 세대가 나란히 서있는 바위밑을 가리켰다.

《가만있소. 문룡동무!》

리북철은 손을 들어 문룡을 멈춰세웠다. 그가 무슨 귀중한것을 마사버릴것만 같았고 또 자기가 직접 우등불자리를 돌아보고싶었던것이다.

《우등불자리는 내가 보겠소. 동무들은 여기에서 다른 표적이 없는가 살펴보오.》

리북철은 팔소매를 걷어올리면서 무릎을 치는 눈길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우등불자리로 걸어갔다. 그는 우등불자리라고 하는, 눈우에 널려있는 네댓개의 거밋거밋한 숯덩이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옆에 덮여있는 눈을 밀어냈다. 처음에는 타다 남은 이깔나무가지와 참나무가지가 나왔다. 리북철은 그중에서 한뽐이나 되는 참나무가지를 손에 들고 귀중한 보물이라도 찾아낸것처럼 얼굴에 반가운 미소를 띠웠다. 눈을 털고보니 도끼날자리가 력력하였다. 그것은 누가 도끼로 나무를 찍었다는것을 말해주었다.

리북철은 나무토막을 따로 내놓고 이번에는 숯덩이를 손에 쥐여보았다. 숯덩이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숯덩이를 꺾어보니 곁에는 습기가 있으나 속은 말랐다.

리북철은 눈가루에 뒤범벅이 된 재를 헤치고 손끝으로 밑바닥의 흙을 뚜졌다. 썩은 락엽이 덮인 겉층은 얼지 않은채로 있었다.

리북철이 우등불자리 근처에서 실낱모양으로 오려진 누런 천쪼박을 찾아낸것은 얼마후의 일이였다.

《동무들ㅡ》

리북철은 이렇게 웨치며 가위밥을 쥔 손을 머리우로 높이 흔들었다.

버섯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잣나무밑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돌아가던 주봉길이 먼저 달려왔다. 그는 리북철의 손에서 가위밥을 받아들더니 환성을 올렸다.

《이건 아까 거기서 발견한 가위밥과 같은 천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가위밥입니다.》

뒤이어 문룡이도 허리에 찬 수류탄을 데룽거리며 허둥지둥 달려왔다.

《경위대장동지, 이건 그 군복쪼각이 아닙니까?》

리북철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건 제가 왕청에서 해입은 작년 여름군복천이 틀림없습니다. 제겐 첫 군복이였습니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문룡은 그 천이 바로 작년봄에 왜놈수송대를 들이치고 로획한 천이라고 하였다.

《그때 재봉대 녀성동무들이 여름군복을 짓노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최선금동무랑 모두 밤을 밝혔지요.》

리북철은 가위밥에서 깊은 밤에 동지들의 해진 군복을 기우며 사령부를 그리워했을 녀성대원들의 뜨거운 마음을 읽었다. 좀 더 일찍 우등불자리를 찾았더라면 그들을 만나 사령부로 데려갈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운 생각에 가슴이 아릿하였다.

그는 오늘 행군을 여느때없이 일찌기 멈추어세우신 사령관동지의 뜻을 짐작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눈우에 찍힌 아이들의 발자국과 가위밥을 보신 순간에 리경준내외를 생각하신것이였다.

이 사나운 겨울에 경준네 내외간이 아이들을 데리고 장군님을 찾아떠났다는 소식을 들으신 때부터 리경준과 최선금, 그리고 그들의 재롱스러운 두 남매에 대한 걱정을 한시도 못놓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그런 장군님께로 또다시 빈손을 들고 돌아갈수 없는 심정인 리북철은 우등불자리를 세번씩이나 돌다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이 속이 만만한 잣껍질과 속이 얼지 않은 숯덩이는 그들이 여기를 떠난지 대엿새밖에 안된다는것을 말해주고있소. 그러니 여기를 거쳐 그 산전막에 갔다가 아까 그 우등불자리가 있는쪽으로 향해간것 같소. 이 근처는 더 찾을 필요가 없으니 서남쪽으로 좀 더 나가봅시다.》

서남쪽 숲언저리우로 희끄무레한 쪼각구름떼가 서서히 밀려가고있었다.

해가 어느덧 서쪽 하늘가로 기울어지고있었다. 앞으로 가닿아야 할 무송땅이 있을 그 하늘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