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2

 

제 5 장

2

 

한창 그날의 일기를 쓰고있던 리동백은 강세호가 나타나는바람에 채 끝내지 못하고 중단하였다.

《제가 방해되지 않겠습니까?》

강세호는 리동백이 쓰던 일기책을 곁눈으로 살펴보며 미안쩍은듯이 물었다.

《어서 앉으십시오. 일없습니다.》

리동백은 일기장을 덮어서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무얼 쓰시는가요?》

《그저 좀 적어두고싶은게 있어서···》

리동백은 만년필뚜껑을 닫으며 강세호쪽으로 돌아앉았다.

《요즘은 뵙기 힘듭니다. 어떻게 왔습니까?》

《선생과 상론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강세호를 만나 이야기할 기회를 은근히 바라왔던 리동백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인지요?》

그의 물음에 강세호는 주저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래일 우리는 장군님을 모시고 이곳을 떠나 다시 먼길을 가게 됩니다. 이번에 떠나면 아마 선생이 살고있는곳과는 반대되는쪽으로 멀리 행군하게 될겝니다. 선생이 우리를 이이상 더 따라가게 되면 집에 돌아갈 길이 너무 멀어집니다. 선생이 장군님을 찾아온지가 그럭저럭 한주일 잘됐으니 그쯤하면 선생의 숙망이 풀리지 않았겠는가 생각됩니다. 마침 래일 선생의 누이네가 살고있는 화룡쪽으로 새로운 공작임무를 받고 떠나는 대원이 있는데 길동무가 있는 기회에 여기서 선생을 집으로 돌려보내드리는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집이 훨씬 더 멀어지기전에 말이지요. 선생의 의향은 어떻습니까?》

강세호는 조심스런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네···》

엄숙하게 앉아 강세호의 이야기를 듣고난 리동백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는 갑자기 정기가 사라지고 입술까지 바르르 떨렸다.

그는 한숨을 쉬고 침울한 어조로 말하였다.

《어느땐가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나올줄 몰랐을뿐이지. 아마 부담이 되겠지요. 짐이 되구···》

《부담이 돼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돌아갈 길이 멀어지는것이···》

《그렇게 생각해주시는건 고맙습니다만 나는 다른 생각을 품구있습니다. 그때문에 나도 강동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드리자던 참인데···》

리동백은 약간 동안을 두었다가 심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주제넘은 생각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여러분들과 함께 있기로 작정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내가 강동지를 따라서 떠나올 때는 장군님을 잠간 뵈옵고 돌아갈 생각이였습니다. 그러나 며칠간 장군님 곁에서 지내고보니 돌아가고싶질 않습니다. 나도 장군님을 모시고 여러분들과 같이 조국광복을 위한 성전에 몸바쳐 싸우고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왕 나를 위해서 마음을 써주는 김에 더 크게 마음을 써서 나를 인민혁명군에 받아주길 바랍니다.》

정중하게 청을 하는 리동백의 이야기에 강세호는 저으기 놀랐다. 그렇게 회의적인 사람같았던 이 대통령감이 요즘엔 유격대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인 립장에로 기울어지기는 하였지만 지난날 이러저러한 잡스러운 운동자들을 따라다니다가 겪은 쓰라린 체험도 있는것만큼 유격대에 입대할것을 청원한다든가 혁명투쟁에 스스로 투신할 용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더우기 그 나이로 보아서도 입대할 생각을 가질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해본 강세호였다.

자기의 말을 듣고 아무 대꾸도 없는 강세호를 잠시 지켜보고있던 리동백은 그가 자기 나이때문에 망설이며 주저한다고 해석하고는 서둘러 말을 하였다.

《나는 나의 청이 강동지를 매우 딱하게 해드리리라는것을 생각못한게 아닙니다. 내 나이로는 모두가 젊고 팔팔한 인민혁명군대원들을 따라다니기가 힘들리라는것도 생각해봤구 유격대생활이 지난 며칠동안 내가 겪어본것보다 훨씬 어려워질수 있으리라는것도 생각해봤습니다. 고생할 각오는 이미 다 되여있습니다.》

《선생의 년세에 입대할 결심을 가질 때에는 생각도 많았고 각오도 높았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주 기쁜 일입니다만 욕망만으로 뜻을 이룰수야 없지 않습니까? 년세와 육체적조건을 우리 유격대에서는 고려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고쳐 생각해보는것이 어떻습니까?》

《고쳐생각해볼 여지없이 결심이 확고하니 허락만 해주시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강세호는 딱해하는 웃음을 지으며 자신없이 말했다.

《사령관동지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는지··· 보통 다른 청년들의 입대청원이라면 몰라도 선생의 경우엔 저혼자 확실한 대답을 할수 없습니다. 정 의향이 그러시다면 그대로 말씀드려는 보겠습니다만···》

《제 입대문제에서는 강동지가 어떤 립장을 취하시는가 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 말에 강세호는 서슴없이 자기의 립장을 밝혔다.

《나는 선생이 직접 총을 들고 유격대원들을 따라다니는데는 적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우리를 도와줄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온 민족을 광복전선에 한결같이 떨쳐나서게 할 통일전선체조직을 가까운 앞날에 내오시기 위해서 각지에 우리 유격대공작원들을 파견하시게 됩니다. 래일 선생이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그 동무도 그런 임무를 받고 떠나게 됩니다. 선생도 그 거족적인 조직을 내오는 사업을 도와준다면 어떻겠습니까?》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십시오.》

리동백은 강세호가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던듯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지하공작원들을 돕는 일이 중요하고 내게 알맞을수 있습니다. 그리구 내 나이에 총을 들고 젊은 유격대원들과 같이 싸운다는게 나도 썩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진 않습니다. 내가 보통유격대원이 되자는 생각만으로 받아달라는건 아닙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엄하고 버릇없는 생각이였습니다만··· 나는 그토록 이름 높으신 장군님께서 과연 어떤분이신지 한번 뵙기나 하고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강동지를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장군님 곁에 와서 며칠 지내는동안 나는 장군님이시야말로 소문이나 전설보다 훨씬 더 위대한분이시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신분으로서 우리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구원하실 유일한분이시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이야말로 우리 2천만겨레가 높이 우러러모셔야 할 분이십니다. 늘 장군님을 가까이 모시고 지내는 당신네들은 장군님께서 얼마나 걸출하신분이시며 위대한 령도자이신가 하는것을 곡절이 많은 나만큼은 심각하게 생각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당신네들은 지금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고있는 이 하루하루가 얼마나 빛나는 력사의 한페지 한페지로 되고있는지를 나만큼은 느끼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당신들은 자신들이 흔히 있는 보통일로 여겨 흘려버리고말지도 모를 그 매일, 매시간, 매분의 생활이 얼마나 귀중한 력사의 흐름으로 이어져가고있는가를 나만큼 모를수도 있습니다. 나는 장군님의 곁에 있으면서 그 모든것을 력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력사의 관조자로서가 아니라 이 빛나는 력사의 적극적인 참가자로 되면서 말이지요. 강동지!》

자기의 속심을 절절하게 털어내놓은 리동백은 강세호의 손을 두손으로 잡아쥐였다.

《이 일은 강동지의 결심여하에 달린 일입니다. 장군님 앞에서야 어찌 이런 속심을 다 여쭙겠습니까? 나를 위해 힘써주십시오. 나를 도와주십시오.》

리동백은 강세호의 손을 열정적으로 잡아흔들었다. 언제나 뿌옇게 퇴색한것같이 보이던 그의 재빛눈은 이글이글 타는 불덩이처럼 열기를 띠였다.

강세호는 가슴속이 후더워지는것을 느꼈다. 사령관동지를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높이 우러러모시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기울여오느라 애쓴 자기였지만 력사의 망각속에 묻혀서는 안될 사령관동지의 거룩한 투쟁과 활동의 걸음걸음을 력사의 기록으로 남길데 대해서는 미처 머리를 돌려본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운 반면에 자기를 깨우쳐준 대통령감이 고마왔다. 강세호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각별한 친근감과 존경심을 품고 기쁨에 넘쳐 이야기하였다.

《선생의 깊은 뜻을 잘 알겠습니다. 선생의 뜻대로 유격대에 남도록 해봅시다.》

《그게 정말입니까?》

어린아이의 웃음같이 천진한 웃음이 리동백의 얼굴에 피여났다.

《그렇게 하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사령관동지께 선생을 집으로 보내드리겠다는 말씀을 드리려던 참입니다. 선생이 래일 집으로 가시겠다면 사령관동지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만나뵈올 기회를 어떻게 좀 마련해드리자는 생각도 했고 ···아마 사령관동지께서도 선생을 여기서 돌려보내실 생각이신것 같은데 이제 저하고 같이 가서 청을 올리는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리동백은 서둘러 일어났다. 일기장을 자기의 등산용 배낭주머니에 넣고 강세호를 뒤따라나서던 그는 자기가 보고난 신문장들에 눈이 갔다.

《신문들을 다 봤는데 어떻게 할가요?》

장군님께서 자기를 위하시여 보내주신것들인데 가져다드려야 할것 같아서 물어본 말이였다.

《가져갑시다.》

강세호는 문을 열고 나서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