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1

 

제 5 장

1

 

리동백은 장군님을 만나뵈온 첫날부터 일기를 적어왔었다. 1936년 3월 하순 그는 미혼진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자기의 일기책에 남기였었다.

 

3월 ××일 (미혼진의 첫날)

미혼진의 인상(1)

 

오후에 드디여 미혼진이라는곳에 도착하였다.

장군님께서 인민혁명군 한 부대의 밀영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던곳이다.

부드러운 기복을 이룬 산과 골짜기들은 그저 하나같이 어슷비슷하다.

사냥이나 약초를 캐려고 이곳 깊이까지 들어온 사람들은 례외없이 미혼에 빠져 향방을 잃고 헤매다가 무주고혼이 되였다는 지명의 유래가 있다고 한다.

이름그대로 미혼의 산중에 드문드문 반토굴귀틀막들이 숨어있다. 이런 귀틀막들은 용도에 따라 달리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는 군대실, 병기창, 후방병원 및 피복창들이 20∼30리씩 간격을 두고 밀림속에 숨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강세호동지로부터 앞으로 백두산기슭의 대밀림지대에 밀영들을 설치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밀영이란 어떤것인지 저으기 궁금했었는데 여기에 도착해서 뚜렷한 표상을 얻었다.

영접은 뜨겁고 육친적이면서도 조용하게 진행되였다.

말을 타고 밀영밖 멀리까지 나와 대기하고있던 몇사람이 원정의 먼길을 헤쳐나오신 장군님을 마중하여 모셔드렸다.

말보다 더 많은것을 말해주는 뜨거운 포옹과 격정의 눈물··· 육친적상봉이였다.

본영근처에 이르러 나는 보초를 서고있는 녀대원을 처음 보았다. 인민혁명군에는 녀대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남성대원들과 달리 그들은 역시 녀성적인 차림으로 치마를 입었다. 머리는 단발, 인민혁명군에는 부인네들도 더러 있는데 그들도 례외없이 모두들 단발이라는것이다.

 

잊을수 없는 영상

 

미혼진에 도착한 오늘저녁 나는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또 하나의 새로운 풍모를 발견하게 되였다. 이것을 적자니 마음이 아직도 갈앉지 않아서 자꾸만 손이 떨린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리해하지 못하였다.

본영이 있는 깔골이라는데 도착하신 다음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귀틀집에 들어가시여 이곳에 있는 지휘성원들과 잠시 마주앉으시였다가 오래지 않으시여 솜외투와 모자를 벗으신 차림으로 나오시였다.

그럴 때 여러 지휘성원들과 호위성원들이 장군님을 뒤따라 다급히 그 집안에서 달려나오더니 장군님의 두리를 에워싸고 어디엔가 가시지 말아달라고 간청들을 하였다. 강세호동지와 리북철경위대장은 그이의 팔소매까지 부여잡고 애걸하였다.

웬일인지 몰라 나는 그때 내곁에 있었던 현팔이에게 물었지만 그도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장군님께서는 여러 수원들의 간청을 물리치시고 후미진 오솔길로 내려가시였다. 그 어떤 위구와 불안때문에 몹시 당황해보이는 사람들이 장군님을 뒤따라, 더러는 장군님을 앞질러 달려들갔다.

무슨 상서롭지 않은 일이 벌어졌는지? 나도 까닭모를 불안에 사로잡혀 바깥에서 서성대다가 울상이 되여 나타난 장군님의 전령병 주봉길이한테서 사연을 알았다. 이곳의 지휘성원들에게서 밀영의 형편을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병원에 열병에 걸린 50여명의 유격대원들이 누워있다는것을 아시고 방금 그 열병환자들을 방문하시러 병원으로 내려가셨다는것이다.

미혼진에 도착하시여 다리쉼도 하시기전에 뭇사람들의 한결같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십명의 무서운 열병환자들부터 찾으시다니?!

그 이야기를 듣자 나는 가슴이 떨렸다. 장질부사와 같은 전염병환자는 모자간이나 부부간도 격리시킨다. 혈육은 혈육이고 병은 병이다.

장군님께서는 만인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셨음을 잊으셨습니까? 수십명의 운명을 심려하시여 어찌 오직 장군님만을 우러러 믿고 따르는 2천만 온 겨레의 운명을 중태에 빠뜨릴 걸음을 하십니까?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그냥 있을수 없어 장군님께서 내려가신 병원쪽으로 달려갔다. 마침 장군님께서는 뭇사람들이 막아나서는 바람에 아직 병원귀틀집에 들어가시지 못하시고계시였다.

참으로 눈물겨운 광경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앞에서, 옆에서 막아나서는 뭇사람들에게 들어가도록 해달라고 간청하다싶이 하시고 또 뭇지휘성원들은 모두 장군님께 들어가시지 마시라고 간청을 올리고··· 강세호동지와 리북철경위대장은 병원귀틀집문앞에 막아서다싶이하고들 서있는데 그들은 눈물이 글썽해서 장군님을 우러렀다.

《동무들, 이러지 마시오. 고집을 부리지 말고 물러서주시오. 내가 잠간만 들어가서 앓는 동무들을 만나보게 해주시오.》

장군님께서는 조용하신 목소리로, 그러나 몹시 절절하게 사정하시듯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 이번만은, 정말 이번만은 저희들의 청을 거역하시지 말아주십시오!》

역시 낮으나 애원에 찬 목소리로 강세호동지가 말씀을 드렸다.

《내 마음을 왜 동무들이 그렇게 몰라줍니까? 왜 그렇게 고집들을 부립니까?》

강세호동지는 그냥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선채 안타깝게 장군님을 우러러뵙기만 했다. 나는 그가 이 순간 장군님께서 촉한에 걸리셨을 때 조선혁명이 얼마나 엄중한 위험에 처했던가를 상기하고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조선혁명이 큰걸음을 내짚는 이 력사의 전환기에 조선혁명의 령도자 김일성장군님의 안녕을 지키는것은 과연 얼마나 중대한 일일것인가! 지금 이 사람들에게, 아니 나까지를 포함한 2천만 겨레에게 장군님의 안녕을 보장하는 일처럼 중대한 일이 과연 어디 있을가!

나도 장군님 앞에 나서서 무엄하나마 간절한 심정을 아뢰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끝끝내 우리모두의 한결같은 만류를 받아들이시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내 손을 잡으시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선생, 선생까지 이러지 마십시오. 나는 저안에 앓아누워서 고통을 받고있는 동무들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싸움에 나선 사람입니다. 우리의 귀중한 대원들이 앓아누워있는데 내가 이마도 짚어보지 못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아프고 괴로울 때면 사람이 더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나는 동무들의 생사를 책임진 사람이 아닙니까! 동무들이 다 들어가지 못한다 해도 나만은 들어가야 할 사람이 아닙니까?》

장군님의 뜨거운 인간애 앞에서 강세호도 리북철이도··· 모든 지휘성원들과 수원들과 나까지 울며 머리를 숙였다.

끝내 장군님께서는 병원귀틀집안에 들어가시여 매 환자들을 일일이 손잡아보시고 이마를 짚어보시며 따뜻이 보살피시였다. 환자들은 모두 목메여 울었다.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 그 사랑의 열도와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수 있는 표현을 나는 찾을수 없다. 오직 그것이 위대하다고 말할수밖에, 그리고 이 세상에 그이처럼 깊고 크고 뜨거운 사랑을 지니신분은 다시 없다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다.

우리 조선이 세상에 다시 없는 위대한 장군님 같으신분을 모시게 된것은 우리 겨레에게 얼마나 자랑스럽고 복된 일인가!

 

3월 ××일(미혼진의 두번째 날)

미혼진의 인상(2)

 

오늘도 여전히 쾌청한 날씨다.

류달리 해볕이 따사롭고 하늘이 맑았다.

홈타기마다에 녹아내리는 눈석이물이 굴러내렸다.

병기창앞마당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며 안면을 익힌 병기창일군은 3월에 접어들자부터 여기 미혼진숲우에 전에없이 따사로운 해볕이 비쳐들고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고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다가오는 이해 봄은 별스레도 살틀히 군다고 여겼는데 어제 장군님께서 미혼진에 오셨다는것이다.

나는 병기창을 구경했다. 야장간을 련상시켜주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각종 저격무기가 수리되고있다.

손으로 깎아 맞추었다는 총탁은 현대적인 군수공장의 제품에 비해도 손색없을만치 훌륭했다. 병기창일군은 자기가 도끼와 손칼로 깎아만든 그 총탁이 아까 장군님으로부터 과분한 평가를 받았다고 못내 자랑삼아 말했다.

지난날 근거지의 병기창들에서는 장군님의 지도밑에 《연길폭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각종 수류탄들과 무기들을 만들어 전투에 사용했다고 한다.

자력갱생이라는 말을 그는 즐겨 사용했다.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싸워온 이야기도 해주었다.

인민혁명군의 병기창, 이것을 현대적군수공장과 기계적인 대비를 한다면 오산을 면할수 없을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인간들이 강철로 벼려지고있다.

여기서 자력갱생의 정신이 부단히 산생되고있다.

 

장군님의 예민하신 통찰력

 

오후에는 다른 밀영들을 구경하고 돌아오던길에 보초를 선 현팔이를 만났다. 그는 어제 녀대원이 보초를 서던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무심히 보며 지나왔는데 방금 군대실에서 나누어지는 이야기를 듣고보니 그렇게 스쳐지날 일이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미혼진에 도착하신 어제밤사이로 환자들에 대한 급식이 하루 두끼 때로는 한끼의 콩죽으로 줄어든 사실과 간호 및 작식뿐아니라 병원경계근무까지도 녀대원들에게만 맡겨져있는 형편을 료해하시였다고 한다. 그후 장군님께서는 밤중으로 친솔해오신 원정부대의 남성대원들로 경계근무를 전부 바꾸어서도록 조치를 취하셨다는것이다.

또한 이 밀영이 겪고있는 곤난자체보다 환자들에 대한 홀시와 무관심성을 더 중요하게 보신 장군님께서는 예민한 통찰력으로써 이색적요소의 숨은 작간을 간파하시고 이러한 사태의 근원을 발가내셨다는것이다. 이곳 생활을 책임지고있은자가 일제와 련결된 불순분자라는것이 드러났다 한다. 그자는 녀대원들에게 열병환자들을 맡겨버리고 자기는 전염될가봐 병원이 있는 본영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서 내내 지내왔다는것이다. 그자가 환자들을 굶기다싶이하며 비상식량이라는 구실밑에 누구도 모르게 땅속에 묻어둔 낟알을 오늘 강세호동지가 찾아냈던 모양이다.

장군님께서 제때에 오시여 사태를 바로잡아주시지 않으시였더라면 미혼진밀영에서 엄중한 화를 당했을것이라고들 말하였다.

이 밤따라 대원들은 장군님에 대한 경탄과 경모의 정을 금할수 없어 그이에 대한 이야기를 앞을 다투어가며 나누고있다.

적과의 준엄한 전쟁은 외견상 고요한 후방으로 생각되는 밀영에서도 계속되고있다. 오직 보이지 않는 전쟁일뿐 역시 전쟁은 전쟁이다.

 

3월 ××일(미혼진의 세번째 날)

나는 무엇을 할것인가?

 

오늘은 아침부터 밀영지에 엄숙한 분위기가 떠돌았다. 인민혁명군간부회의가 시작되였다는것이다. 사위는 어디라없이 조용했다. 병기창의 마치소리도 오늘은 들리지 않았다.

병기창과 한지붕을 쓰고있는 군대실에는 어쩌다 지휘간부들이 한둘씩 드나들뿐 대원들은 한사람도 얼씬하지 않았다.

바로 거기에서 회의가 진행되고있다는것이다.

그앞에 지켜선 쌍보초는 오직 주봉길에게만 군대실출입을 허가하였다.

어디로인가 련락을 가던길에 나를 만난 봉길은 여느때없이 엄숙하고 점잖은 티를 지어보이며 지나갔다.

그 1호군대실에서는 무슨 중대한 토의가 시작되였는지?

나는 웬일인지 종일 외롭고 쓸쓸했다. 서러웁기까지 했다.

종일토록 대원들도 어디 갔는지?

넓은 군대실안에는 나혼자뿐이였다. 나 한사람을 위하여 모닥불은 열을 올리고 양철주전자에서는 물이 끓었다.

투박하나 굳건하게 만들어진 반통나무책상과 반통나무긴걸상도 오늘은 맘껏 써보란듯이 종일 나 한사람에게 제공되여있었다.

외로움에 못견디여 훈풍에 설레이는 숲속을 한바퀴 돌았다. 봄이 태동하는 숲속을···

하늘이 좁게 트인 공지에서 다리쉼을 하느라 나무등걸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숲을 보고있다가 문득 나자신처럼 외로운 강대 한그루를 발견하였다. 오래전에 말라버렸는지 잔가지들은 세월의 풍상에 꺾이고 거의나 줄기만 남은 아름드리 강대는 뭇나무의 설레임속에 휩쓸리지 못하고 혼자 뻣뻣이 서있었다. 온 숲이 훈풍에 푸른 가지들을 너울대며 설레이건만 강대만은 설레일 잎도 가지도 없어 그 희열의 륜무속에 휘말려들지 못했다. 가련한 관람객, 강대줄기에는 눈물같은 나무진이 배여나와 맺혀있었다.

불현듯 나의 처지를 돌이켜보았다. 가련한 탐방객으로 외로이 남아있는 나의 처지! 나무진 같은 이슬방울이 눈가에 맺히는것을 의식했다.

나는 외롭다. 못견디게 쓸쓸하다.

2, 3일째 그이의 곁에 있지 못한것이 이리도 나를 외롭게 하는줄 나자신도 몰랐다. 이제 더는 장군님 곁을 떠나서는 쓸쓸해 지낼수 없다. 그이의 곁을 떠나서는 산다는것자체가 고통으로 될것만 같다.

어찌하여 그이께서는 단 며칠사이에 혼자 있으면 이리도 애타고 외롭도록 나를 변모시키신것일가?

나는 아직 그이에 대하여 너무나도 아는것이 적다. 너무나도 적다. 그러나 이미전부터 나는 나자신의 운명을 장군님께 내맡겨야 한다는 충동을, 스스로 북받치는 충동을 받지 않았던가? 그것을 나날이 더 뚜렷하게 의식해오면서 어찌하여 아직도 나는 탐방객의 처지대로 자신을 남겨두고있는것인가?

숲언저리에 석양노을이 비끼고있다.

하루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시각은 저녁노을이 비끼는 석양녘일수도 있다.

나는 인생의 황혼기에 삶을 아름답게 장식할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이제는 외로움이 사라졌다. 나의 가슴에도 희열이 북받친다. 나는 앞으로 그이의 곁에서 무엇을 할수 있을가?

 

3월 ××일(미혼진의 네번째 날)

나의 사명

 

나는 지난밤 온밤을 모색한 끝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바라는 일이며 하고싶은 일이며 그 누가 못하게 한다 해도 하지 않으면 안될, 또 반드시 해내고야말 일이다.

어찌보면 나는 바로 그때문에 장군님 곁을 떠나고싶지 않고 떠날수도 없고 또 떠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그이와의 상봉직후부터 벌써 싹트기 시작한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력사를 기록할것이다.

력사는 기록해야 한다. 위대한 인간의 력사는 반드시 기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참된 위인의 삶일진대 그 발자취는 사말사에 이르기까지 기록되여 남겨져야 한다.

그러한 위인의 삶은 영원불멸한 전인류의 공동재부이다. 그 생활의 아주 작은 일조차도 범상한 인간들의 옹근 한생과도 비할수 없을만큼 고귀한것이다. 따라서 그런 위인과 관련되여서는 자료들의 크고작음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나의 사명이다. 만약 스스로 의식한 이 사명을 수행치 않는다면 나는 전인류와 후대들에게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될것이다.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세계

 

오늘은 종일 처음 보는 유격대의 소책자들과 바깥세상의 신문들에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줄 몰랐다.

아침에 봉길이가 갖다주었다. 갑갑할 때 보라고 장군님께서 보내주셨다는것이다.

《공산당선언》, 《레닌주의기본》, 《사회주의대의》, 《유격대동작》 그리고 지하공작에 대한 상식자료를 묶은 소책자··· 숱한 사람의 손때가 묻고 보풀이 일어 누런 종이에 찍힌 등사글자가 잘 알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흥미있는 소책자들이였다.

유격대에서 이런 출판물까지 만들어냈다는게 우선 놀랍다. 그리고 바깥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져있는 이 겨울의 심산속밀영지에 바로 며칠전 신문까지 들어와있다는 사실도 놀라왔다. 《중앙일보》, 《동아일보》, 《만선일보》 세 신문이 다 닷새 엿새전에 발행한것들이였다.

나는 주로 소책자들만 열독했다. 이전에 암송하다싶이 여러번 읽었던 《공산당선언》과 《레닌주의기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두번씩 재독했다. 가장 관심을 끈것은 《유격대동작》이다. 이 소책자는 따로 발취해두고 연구해야겠다.

지하공작에 대한 소책자 역시 깊이 연구해야 할 책이다. 이 두 책은 내가 전혀 모르고있던 세계에 대하여 나의 눈을 틔워주고 새로운 투쟁의욕을 북돋아주는 귀중한 책들이다.

특히 오늘아침 결심대로 앞으로 장군님을 모시면서 나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자면 《유격대동작》을 깊이 터득해야 할것 같다.

간명하고도 통속적으로 씌여진 《사회주의대의》는 내가 앞으로 장군님의 슬하에서 감당할수 있는 다른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업을 깨우쳐주었다.

신문들은 내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그 썩고 병든 세계에서 나날이, 끊임없이 벌어지고있는 생활사말사들로 얼룩져있다. 청신한 새로운 세계에 접한 지금에 와서는 보기에도 역겨운것들이였다.

 

추   기

 

발취하기전에 적어둘, 방금 들은 새 소식이 있다.

이틀간 련속된 조선인민혁명군 간부회의가 오늘저녁에 끝났다고 한다. 좀전에 나는 밖에 나갔다가 리북철경위대장이 강세호동지더러 《정치지도원동지》라고 말머리를 뗐다가 황황히 《련대장동지》라고 고쳐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회의에서 인사변동까지를 포함한 그 무슨 중대하고 급박한 문제들이 토의되였으리라고 짐작하고 너무나 궁금한 김에 용기를 내여 전령병 주봉길에게 물어보았더니 나를 측은하게 생각했던지 약간 선심을 써서 매우 모호하고 개략적이나마 회의의 토의내용을 좀 귀띔해주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남호두회의의 로선과 방침들을 실현하기 위한 선차적인 문제로서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의 개편문제가 중심적으로 토의결정되고 그밖에 몇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이 또한 구체적으로 토의되였다고 한다.

부대개편문제가 중심적으로 토의결정되고 강세호동지가 련대장으로 불리우게 된것으로 보아서 이제부터는 그의 수하에도 많은 대원들이 있게 될것이 아닌가.

차후 인민혁명군의 행동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듯싶다. 모르긴 해도 장군님께서는 여기서부터 대부대를 친히 인솔하시게 되시지 않을가? 이제부터는 조국진군의 거창한 흐름이 이루어지게 되는것이 아닐가? 각처에서 이곳 미혼진에 모여왔던 모든 지휘간부들과 대원들, 부대들이 새로 대렬편성을 하고 모두가 장군님의 친솔밑에 움직이게 되는것이 아닐가?

내가 보고싶었던 대군의 행군을 나는 곧 보게 될듯 한 느낌이 든다.

 

미혼진밀영에서의 마지막 밤에 리동백이 쓰던 일기는 여기에서 중단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