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제 4 장

2

 

아침에 숙영지를 떠난 기마대렬은 또다시 한줄로 긴 행군종대를 이루고 조용히 수림속을 누벼나가고있다.

또다시 눈앞에서 말엉뎅이가 탄력있게 뚱기적거리고 또다시 말발굽에 찍힌 눈덩이들이 튀여오르고 또다시 눈에 덮인 땅과 나무그루들이 말옆구리로 흘러가고있다.

무수한 아름드리기둥들에 떠받들리운 숲의 천정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듯 아득히 펼쳐져있다.

껍질들이 터슬터슬 갈라터진 나무줄기들도, 앙상한 관목가지에 어쩌다 한두잎씩 매달려있는 강굴강굴 마른 잎사귀들도, 해묵은 풀이파리들도 밤새 내린 서리를 뽀얗게 들썼다. 그 서리 낀 나무들과 흰눈우에 숲천장을 꿰뚫고 비스듬히 비껴든 수만갈래의 해빛이 알룩달룩 아롱지며 대낮에도 밀림속에 거접하려는 어둠을 쫓고있다.

어제 하루사이에 받은 인상들을 머리속으로 더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리동백은 오른쪽 목덜미와 볼편에 끼쳐드는 후덥고 눅눅하고 비린 말입김을 느끼고 얼굴을 돌렸다.

새까만 말대가리가 자갈 물린 주둥이를 쳐들며 불쑥 옆에서 나왔다. 말우에는 강세호가 타고있었다.

《말행군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강세호가 물었다. 리동백은 그를 오래간만에 만나기라도 하듯 가볍게 머리를 숙이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니 편합니다. 마침 잘 만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를 지나 앞으로 나가던 강세호는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뒤돌아보았다.

《정 바쁘지 않다면 잠간만 나에게 시간을 내줄수 없을가 해서··· 꼭 알아보고싶은게 있어서 그럽니다.》

강세호는 당장 꼭 봐야 할 급한 일은 없었던지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합시다. 뭔지 이야기해보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래두 강동지하구 제일 구면이 돼서···》 하고 마음속을 터놓은 리동백은 엊저녁부터 의문스럽게 생각해오던 이야기를 꺼냈다.

《봉길이라던가요? 제일 어린 장군님의 전령병말입니다.》

《네, 주봉길입니다.》

《그 봉길이라는 전령병은 장군님 밑에서 퍽 어릴적부터 자라왔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장군님께서 오래전부터 잘 알고계시는 젊은이인지?》

《아닙니다. 입대한지 두석달밖에 안되는 동무입니다. 북만에서 자란 동무이기때문에 전부터 아시지도 못하시구요.》

강세호의 그 대답에 리동백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강동지한테 내가 이야기했던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세분이 우리 누이집에 왔던 그날이 우리 부친의 제사날이였지만 별로 명심하지 못하구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기전에 누이한테서 잔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명심하지 못하면 흔히 제 아버지의 제사날도 그냥 넘기는수가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신 장군님께서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따로 외우기도 헐치않은 일일줄 짐작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령병의 생일날까지 기억하셨다가 쇠여주실가 하는게 엊저녁부터 내가 풀지 못하고있는 수수께끼입니다. 엊저녁에 보니 당자인 봉길은 자기 생일날인줄 몰랐던것 같습니다. 그러니 봉길이가 장군님께 자기 생일날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다는건 명백한데···》

리동백은 심중한 표정으로 강세호를 돌아보았다.

강세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봉길의 생일을 장군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는 나도 딱히 물어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경위대장동무에게서 들은 다른 이야기를 통해 짐작은 갑니다.

장군님께서는 봉길이의 입대청원을 받으시고 그의 아버지를 만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마 아버지한테서 알아두셨던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 음력으로 계산하시여 봉길이의 생일을 쇠여주신것을 보아서도 그렇구요. 나이 많은분들은 다 자식의 생일을 음력으로 기억하고있지 않습니까?》

《듣고보니 정말 그렇군요.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신대원을 받으시면서 생일날까지 죄다 헤아려가시며 알아두시는가요?》

《사령관동지께서는 언제나 대원들에 대하여 놀랄만치 세심하게 료해하시고계십니다. 비단 생일날뿐아니라 그가 어떤 집안에서 어떻게 자라고 어떤 성격과 취미를 가지고있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생활습성을 가지고있는가 하는것까지도 죄다 알고계시며 그가 바라는것은 무엇이고 고민하는것은 없는지, 기분이 어떤지도 일일이 헤아리시며 세심히 돌봐주십니다···》

리동백은 딴 세상의 이야기나 듣듯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강세호를 지켜보며 숨을 죽이고있었다.

그 무슨 지나간 일이 회고되였던지 강세호는 잠시 명상에 잠긴 기색이다가 말을 이었다.

《언제인가 내가 남몰래 집을 그리워하는 한 신입대원의 생일을 모르고 지난적이 있는데 그때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깨우쳐주시였습니다. 그 동무의 부모는 조국광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내맡겼소. 부모들이 우리를 믿고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식들의 운명을 내맡겼고 대원들자신도 우리에게 자기의 모든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있는데 그들의 운명을 맡아안은 우리가 생일조차 모르고 지나서야 되겠는가··· 하구말입니다.》

강세호의 이야기를 듣는 리동백의 머리속에는 그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지난날 자기가 겪었던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는 《주의자》들속에 섭쓸려 돌아가던 마지막 시기에 이번에야말로 기대를 걸만한 《지도자》라는 사람을 만나서 은근히 숭배하였다. 한번은 그 사람의 지시를 받고 두달가까이 상해에 심부름을 갔다온 리동백이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각각 다른 서류 갈피속에 끼여있는 전보 두장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한달전과 보름전에 자기한테로 온 전보들이였는데 앞의것은 고향에서 아버지가 사망되였다는 전보였고 뒤에 온것은 안해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였다.

후에 리동백은 안해가 해산직후의 병약한 몸으로 남편 없이 혼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느라 바람을 맞고 무리했던탓에 뒤이어 인차 사망하였다는것을 알았다.

리동백이 서류철에서 얻어낸 전보들을 내놓고 어떻게 된것인가고 물었을적에야 그를 상해에 보낸자는 바빠서 그만 잊어먹고 그에게 전보를 치지 못했노라고 변명삼아 사과삼아 말하였다. 리동백은 전보장들을 발기발기 찢어 그자의 상판대기에 던지고 문을 차고 거기서 영원히 떠나왔었다···

그것은 자기들을 믿고 따르고 시키는대로 한 사람에 대한 배반이였다.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배신이였다.

강세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의 갈피속에 묻혀있던 자기의 지난 일을 문득 회고하게 된 이 순간, 리동백은 섬광같이 번쩍이는 심장의 느낌으로 장군님께서 지니시고계시는 특출한 성품을 발견하였다.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나 여직껏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못하였던 비범한 성품! 그것은 사람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진 숭고한 정신과 거룩한 인품만이 빚어낼수 있는 위대한 인격이였다.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한몸에 체현하신 거룩하신분!

이것이 바로 리동백이 마음속으로 탄성을 올리며 놀라 마지않은 새 발견이였다.

(그렇다. 그이는 군을 통솔하시는 사령관이실뿐아니라 그 각자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시고 한몸에 맡아안으신 위대한 령도자이시다! 이야말로 만인의 운명을 한몸에 맡아안으실 비범한 천품이시며 만인이 의탁한 운명을 감당하실 특출한 자질이시다.)

갑자기 새벽빛이 비끼고 눈이 밝아진듯 한 이 순간, 리동백은 비로소 사십이 넘도록 붙일데를 못찾고 정처없이 헤매던 자기의 인생쪽배를 안심하고 갖다붙일수 있는 포구에 와닿아있음을 문득 눈앞에 본 심경이였다. 형언할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이 온몸을 휩쌌다.

그는 열기띤 눈으로 만인의 운명을 감당해나서신 장군님을 눈앞에 그리며 홧홧 달아오른 입술을 추겼다.

《저는 세상에서 이야기되는 장군님에 대한 여러가지 전설들을 들었습니다. 별별 이야기들이 다 있는데 그가운데는 장군님께서 어리실 때 백두산에 걸터앉으시여 동해에 발을 씻으시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것은 벌써 의문을 풀어보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그러한 전설에 대한 열렬한 공감의 표시였다.

그러나 강세호는 리동백의 회의적인 말에 버릇이 되여있었기때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 전설의 출처로 된 이야기가 생각난듯 웃으며 말하였다.

《그건 아마 장군님의 할머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이 그렇게 된것 같습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리동백은 흥분때문에 목소리마저 떨면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였다.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라면 끝없이 듣고싶었다.

《···제가 언젠가 장군님의 어머님께서 들은 이야기인데 장군님께서 열두살되실 때 아버님께서 그이를 조선서 공부시키시려고 조부모님들이 계신 고향집에 떠나보내신 일이 있었답니다. 장백 팔도구라는데서 평양 만경대까지는 천리가 되는 길인데 그때에는 철도라는것도 빽빽이차길이 겨우 개천이남까지 놓인 때였기때문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대부분의 로정을 걸어가셔야만 하시였답니다. 그런데다가 눈이 강산같이 쌓인 겨울철이였다니 얼마나 어려운 걸음이시였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열사흘만엔가 평양부근에 있는 만경대고향집에 들어서시였는데 열두살 되시는 나이에 혼자 천리 눈길을 헤쳐오셨다는것이 아마 할머님께는 잘 믿어지시지 않으셨던것 같습니다.

할머님께서는 몹시 놀라시며 네가 어떻게 천리나 되는 두 나라 지경길을 혼자서 왔느냐구 물으신 모양입니다. 그러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목책을 내보이시면서 아버님께서 그 목책에 적어주신대로 걸으시고는 주무시고 주무시고는 걸으시고 어디어디서는 아버님께 어딜 지나신다는 전보도 치시군 하시면서 오셨다고 대답하셨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신 할머님께서 억이 막히시여 말씀하시기를 어린 너를 혼자 떠나보낸 네 아비도 범 같은 사람이다만 두 나라 지경 천리길을 혼자 온 너는 이담에 백두산에 걸터앉아 동해물에 발을 씻자고 할게다. 사내가 다르긴 다르구나··· 라고 하셨답니다.》

벌써 어리신 시절부터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품이 남달리 담대하시고 출중하시여 친할머님마저 놀래우신 장군님의 비범한 풍모에 리동백은 다시금 넋을 압도당해버린듯 한동안 머리가 뗑할뿐이였다.

(열두살··· 천리길··· 백두산··· 동해물···)

머리속에 이런 이어지지 않는 말마디들만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백두산마루턱에 걸터앉아 푸른 동해에 발을 씻는 소년장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에는 그 소년장수가 발을 그대로 동해바다에 잠그고 일어나서 하늘의 구름당반우에 얹어놓았던 어마어마하게 큰 장검을 내리워 백두산을 숫돌삼아 썩썩 갈고있는 모습으로 바뀌였다.

그런 장엄한 환각속에 옛장군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백두산 바위돌은 칼 갈아 다 닳고

두만강에 넘치는 물은 말 먹여 다 말리리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 편히 못하면

그 누가 뒤세상에 대장부라 일러주랴

 

때이른 소년기에 벌써 백두산에 걸터앉으시여 동해에 발을 씻으셨다고 하여도 말이 모자랄만치 담대무쌍한 기개를 나타내신 장군님이시다.

10대에 벌써 구국의 장검을 비껴드시고 광복성전의 진두에 나서신 희세의 청년장군님이시다.

옛시대로 장군님께서 지금 한창 20대,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대로 올해에 참말로 장군님에 의하여 2천만 온 겨레가 일일천추로 고대하는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해방이 이룩된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강세호는 행군종대의 앞쪽으로 나갔다. 리동백은 말이 움직이는대로 몸을 흔들거리며 그냥 명상에 잠겼다.

기마대렬은 여전히 긴긴 행군종대를 이루고 조용히 수림속을 누벼나가고있다.

여전히 말엉뎅이는 앞에서 탄력있게 뚱기적거리고 여전히 말발굽에 찍힌 눈덩이들이 튀여오르고 여전히 눈에 덮인 땅과 나무들이 말옆구리로 흘러가고있다.

그러나 태양은 어느새 자리를 바꾸어 하늘 한복판에 높이 떠있었다. 리동백의 눈도 달라진듯 주위의 산천초목을 새로운 기분으로 보았다.

오, 참으로 황홀하게 찬란한 하늘땅이였다. 신비롭게 아름다운 숲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