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

 

제 4 장

1

 

사령부가 미혼진쪽으로 나간줄 알지 못하고있는 리경준일행은 그냥 곧추 무송방향으로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들것을 든 장기령과 《재봉소》가 든 안해의 배낭을 맨 리경준이 앞에서 걸었고 명숙을 업은 장철구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명일은 아버지가 잡은 들것의 채를 잡고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들은 숲언저리우로 낮게 드리워 북쪽으로 밀려가는 검은 구름을 침울한 눈으로 바라보다가는 눈길을 조심스럽게 들것우에 떨구군 하였다. 들것에는 최선금이 솜외투를 덮고 누워있었다. 얼굴이 해쓱해진 그는 들것이 흔들릴 때마다 남몰래 파릿한 입술을 옥물었다.

그때마다 뒤에서 들것의 채를 잡은 리경준은 괴로운 눈길을 하늘에 돌리며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리경준은 심한 부상을 입은 안해가 그 몸으로 어떻게 아픔을 참고 견디는지 상상할수 없었다.

최선금의 얼굴에서 눈만이 예전처럼 정기를 잃지 않고 은근한 빛을 뿌리였다.

최선금은 동무들이 걸음을 늦출 때마다 안심시키느라고 애썼다.

《난 일없어요. 아프지 않아요. 빨리 가자요.》

그의 목소리는 앓는 사람 같지 않게 여전히 맑고 정답게 울리였다.

《아닙니다. 숨을 좀 돌리느라고 그럽니다.》

들것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애쓰면서 장기령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벌써 여러번 이런 말이 오고갔다.

때때로 최선금은 자기를 두둔해달라고 부탁하는듯 한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았으나 리경준은 모르는체 하고 외면하였다.

최선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의 상처는 대수로운것이 아니며 이렇게 들것에 누워가는것은 긴장이 풀린탓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래일 아침에는 꼭 걸어가게 된다고 하였다.

또 실지 최선금은 아침마다 걸어간다고 걸음을 떼였으나 몇걸음을 옮기지 못하여 입술이 파랗게 질리군 하였다.

동지들에게 근심과 부담을 끼치지 않으려는 최선금의 노력은 도리여 동지들을 괴롭혔다.

최선금의 건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나빠졌다. 동지들은 그것을 눈치챘지만 서로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명숙이만이 상처가 나아진다는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명숙은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아버지와 아저씨를 의아쩍게 쳐다보군 하였다.

쉴참이면 늘 그러하듯이 장철구는 장기령과 리경준이 들것을 들고 서있는동안 반반한 눈우에 나무가지를 깔고 그우에 마른 새초를 고르롭게 펴놓았다. 명일은 장철구의 일손을 도와주느라고 부산스레 여기저기를 뛰여다니며 마른 풀잎이며 나무가지를 끌어왔다. 어머니가 들것에 누운 다음부터 명일은 통 말이 없어졌다. 들것이 마른 풀우에 내리워졌을 때 최선금은 자기를 부축하려는 장철구의 손을 가볍게 밀어놓으며 자기 힘으로 일어나 앉았다.

우등불이 피여오르고 장철구가 배낭에서 군용밥통을 풀어내여 점심차비를 하자 최선금은 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철구어머니, 오늘은 특식을 차리자요. 모두 시장들 하겠는데 조밥을 푼푼히 하구 느타리로는 버섯채를 만들자요.》

장철구는 주름잡힌 눈가에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묵직한 배낭을 소중하게 어깨에서 풀어내렸다.

《느타리는 이리 줘요. 내가 물에 헹궈놓을게요.》

최선금이 들것에 앉은채 이렇게 독촉했을 때야 장철구는

《걱정 말라구. 내 어련히 하지 않을라구.》

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배낭끈을 풀기 시작하였다.

그는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오는것을 느끼였다. 그리고는 얼결에 한홉들이 고뿌에 그득히 좁쌀을 퍼냈다가 놀란듯이 도로 고뿌를 기울였다.

《너무 적지 않아요? 좀 넉넉히 하자요.》

최선금은 간청하듯이 말했다.

《적을가?···》

장철구는 다시 고뿌를 배낭아구리로 들이밀어 듬뿍 좁쌀을 퍼올리는척 하다가 또다시 최선금이 몰래 고뿌를 흔들어 쌀을 덜었다. 그리고는 꼼꼼히 배낭아구리를 동여매는것이였다.

이윽하여 구수한 쌀 익는 냄새가 우등불 변두리에 퍼졌다. 피로 바꾼 쌀이였다.

얼마전이였다. 행군기일이 하루하루 늘어남에 따라 일행앞에는 어려운 일이 곱으로 늘어났다. 그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가 식량문제였다. 그동안에 장기령이 한번 식량을 구해오긴 하였으나 며칠이 못가서 동이 났다. 이번에도 선참으로 식량을 구해오겠다고 나선 사람은 장기령이였다.

숲과 눈밖에 없는 이 밀림속의 어디쯤에 인가가 있으며 또 갔다오자면 얼마나 시일이 걸려야 하는지 장기령자신도 몰랐다. 그러나 동지들과 어린것들이 잣을 우린 물이나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는것을 볼 때마다 그의 가슴은 터질것 같았다. 장철구는 장기령의 제의를 듣고 펄쩍 뛰였다.

《장동무두 참, 이것 봐요. 배낭이 이렇게 불룩하지 않우? 그렇다고 낟알이 남아돌아가는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형편도 아니라우. 근거지에 있을 때 비상미를 장만해두지 않았수? 그때처럼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좀 절약하자고 했을뿐인걸.》

이러면서 장철구는 가위밥이며 머루나무줄기며 마른 풀잎 등속을 넣어서 배가 불룩한 배낭을 내보이였다. 그의 배낭은 언제나 그 모양으로 배가 불러있었다.

자기가 자진하여 맡은 취사문제지만 동지들에게 근심을 끼치지 않으려는 장철구의 뜨거운 심정이 담겨져있는것이였다. 이때에도 장철구는 식량문제가 제기되자 자기의 책임으로 받아들였으며 낟알을 구하러 간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가야지 그러지 않아도 고생이 많은 남자들을 또다시 보낼수 없다고 생각한것이였다.

리경준은 처음에 장기령과 같은 심정이였으나 그동안 남아있을 녀성들과 아이들을 생각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결국 장기령과 리경준은 장철구가 배낭을 내흔들며 우기는바람에 속히우고말았다.

그러나 최선금의 눈을 속일수는 없었다. 그는 녀자만이 느낄수 있는 감각으로 배낭안에는 서너숟가락 되나마나한 밀가루가 남았으며 다른것은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장철구는 그처럼 최선금과 가까운 사이면서도 배낭만은 그에게 맡기지 않았다. 밤에 잘 때도 배낭을 베고 잤다.

낟알을 구해오는 문제가 화제에 오른 다음날 아침 장철구는 전에없이 밀가루로 뜨더국을 끓이였고 잣잎을 우려서 차물 대신 내놓았다. 이리하여 장기령과 리경준은 장철구의 세간살이솜씨에 감탄하였고 사실 그의 말대로 낟알이 아주 떨어지지는 않은게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서로 밀가루뜨더국을 권하며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였으나 장철구는 그릇이 모자라는것을 핑게삼아 그릇이 나는대로 천천히 하겠다고 하였다.

《념려들 말아요. 아무려문 작식을 맡은 사람이 배곯을라구요.》

그릇이 난 다음 장철구는 몇술 뜨는척 하고는 더운 물을 끓여야겠다면서 밥통을 들고 정한 눈을 얻으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최선금이 장철구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그한테 간것은 아이들이 식사를 하는것을 돌보아주노라고 얼마간 지나서였다.

숲속의 눈우에는 장철구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장철구는 이깔나무사이로 봉긋이 부풀어오른 바위밑에 등을 돌리고 앉아있었다.

《철구어머니ㅡ》

하고 최선금이 불렀을 때 장철구는 무엇인가 보여서는 안될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귀방울이 빨개지며 입에 넣었던것을 급히 삼키였다. 그리고나서 장철구는 붉어진 얼굴을 돌렸다.

《오랜간만에 뜨더국을 먹었더니 물이 당기누만.》

그의 입언저리와 손에는 녹다만 눈덩이가 붙어있었다. 최선금은 눈시울이 뜨거워 못본척 하였다. 장철구는 동지들을 위해 자신은 굶고있는것이였다.

그날밤 역시 늦도록 녀성들끼리 세워놓은 생활질서대로 일하고 난 최선금과 장철구는 배낭을 베고 나란히 누웠다. 벌써 잠들었는지 장철구의 훌쭉한 볼우에는 한오리의 흰 머리칼이 차겁게 드리워져있었고 입은 맥없이 반쯤 벌어져있었다. 미더운 동지들의 곁에 있으니 자기는 이렇게 마음놓고 잔다는 표정이였다. 늘 보아오던 장철구였으나 이 밤따라 더 측은하기도 하고 더 돋보이기도 하였다.

최선금이 어떤 일이 있어도 낟알을 구해와야겠다고 다짐한것은 이때였다. 최선금은 장철구가 베고있는 배낭아구리에 살며시 손을 들여밀었다. 천쪼박이며 머루나무줄기가 손에 닿았다. 한참 손더듬해서야 겨우 줌안에 들가말가한 밀가루주머니가 손에 잡혔다. 최선금은 소스라쳐 놀랐다. 그는 장철구에게 말없는 감사를 보내였다.

문득 깊이 잠든줄로만 알았던 장철구가 거칠은 손으로 최선금의 손목을 더듬어 지그시 잡았다.

《왜 이러나··· 선금동무.》

장철구는 최선금의 손을 두손으로 꼭 감싸쥐였다. 최선금은 장철구의 뜨거운 체온이 자기의 가슴속으로 흘러드는것을 느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철구어머니ㅡ》

그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장철구의 껄껄한 손을 볼에 대고 비비였다.

《철구어머니, 난 다 알고있어요.》

《알긴 뭘 안다고 그래, 그러지 말고 어서 자요.》

철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며 슬며시 돌아누웠다. 그리고는 점도록 말이 없었다. 얼마후 장철구는 돌아누운채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눈에 덮여서 그렇지 숲속은 온통 먹을것 천지라니까. 숲속에 한벌 깔렸던 고사리, 더덕, 참나무버섯은 다 어디 갔겠다구, 잣도 그렇지. 이 고장에 잣나무가 그렇게 많은데 왜 잣송이가 한두개밖에 보이지 않겠어. 우리가 뭐 어느 나라에서처럼 사막에나 와있는가요. 노력만 하면 풀려요. 그저 이 몹쓸 눈때문에 그러지.》

장철구는 입버릇처럼 눈타령을 하였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장철구의 어깨는 가볍게 떨고있었다. 장철구는 이때 일행이 부딪친 난관이 생각던것보다 엄청나게 큰데 비하여 자신의 힘이 너무도 보잘것 없음을 새삼스레 통감한것이였다. 최선금은 참을수 없었다.

《난 철구어머니가 동지들을 생각하여 눈으로···》

최선금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억이 막혀서 흑흑 느끼였다. 깜짝 놀라며 몸을 돌린 철구는 최선금의 손을 거머쥐고 다짐하듯이 물었다.

《명일이 아버지랑 장동무는 모르지?》

최선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장철구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선금동무두 참, 남이 물이 당겨서 그런걸 가지고···》

그러나 그의 유순한 눈에는 커다란 이슬이 맺혀있었다.

별들도 잠든 밤이였다.

최선금과 장철구는 눈우에 반짝이는 별빛을 밟으며 숲속을 걸었다. 물론 동서남북 끝없는 밀림속 어디에 인가가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디이건 찾아가야 했다. 그대로 이 밤을 지새울수는 없었다. 그들은 남정들과 어린것들 모르게 식량을 구하러 떠난다는 그 한가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만족하였다.

얼마나 걸었는지 삼태성이 기울무렵에 그들은 묵밭을 찾았다. 찾았다기보다 발에 밟히는 느낌을 통하여 그렇게 짐작한것이였다. 그들은 서둘러 정갱이를 치는 눈을 떠밀어내고 한줌의 흙을 그러쥐였다. 어슴푸레한 별빛으로도 거밋거밋한 흙과 몇오리의 조잎이 또렷이 보였다. 그때 그들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지 모른다. 그것은 한줄기 희망의 빛살과 같은것이였다.

밭을 찾은 다음에도 그들은 한식경이나 숲속을 헤매다가 겨우 어설픈 산전막을 찾았다.

산전막에는 흰 수염을 가슴우에까지 드리운 로인이 투박한 손에 나무숟가락을 들고 앉아서 수수지짐을 지지고있었다. 최선금이 찾아온 사연을 말했을 때 안개가 낀듯 희뿌옇던 그 로인의 눈은 금시 밝아지였다.

로인은 최선금의 손을 덥석 잡아쥐였다.

《늙으니까 새벽잠이 없어서 이렇게 앉아있었네. 자, 어서들 편히 앉으라구. 세상에 사내대장부로 태여난 내가 자네들 볼 면목이 없네··· 자네들까지 나섰는데 하늘인들 어찌 무심하겠나. 오래지 않아 우리 백의민족이 나라를 찾게 되겠지!》

로인은 바삐 부엌바닥을 파헤치더니 그속에서 한말가량의 좁쌀을 꺼냈다. 그것이 로인에게 있는 식량의 전부라는것을 느낀 최선금이 망설이고있을 때 로인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념려 말고 가지고 어서 떠나라는것이였다. 그리고 요긴할 때 쓰라고 시렁우에 얹어두었던 느타리퉁구리도 내놓았다. 잊을수 없는 고마운 로인이였다. 최선금과 장철구는 로인에게 부디 몸 성하여 조국광복의 그날까지 사실것을 신신당부하고 산전막을 나섰다.

그들은 배낭을 서로 지려고 싱갱이질을 하다가 결국 최선금이 지게 되였다.

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앞길에 불행이 기다리고있을줄은 몰랐다.

산전막을 나섰을 때 하늘이 흐렸었다. 그때문에 그들은 오던 길을 잃었다. 그리하여 얼마동안 숲속을 헤매게 되였는데 밀림속에 숙영하고있던 왜놈《토벌대》보초놈과 맞다들게 되였다. 놈은 다짜고짜로 왜가리소리를 지르며 서라고 호통을 쳤다.

최선금과 장철구는 얼결에 멈추어섰다가 홱 돌아서 냅다뛰였다. 갑자기 명주필을 째는 소리를 내며 불줄기가 휙 날아왔다.

처음에는 하나, 둘 셀만 하였는데 잠간사이에 숲속은 불줄기로 덮이였다. 이때 그들에게 밀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였는지 몰랐다. 아름드리이깔나무와 전나무가 그 탄탄한 줄기로 그들을 막아준것이였다.

그 경황없는 속에서도 두사람사이에는 싱갱이가 벌어졌다. 최선금은 아무것도 부담이 없는 장철구더러 앞서라고 하였고 장철구는 그런 걱정은 말고 어서 달리라고 하였다. 장철구는 뒤에 섬으로써 어린것이 달린 동지와 식량을 자기 몸으로 보위하고있는것이였다.

《이러다가 큰··· 큰일 나겠어요. 어서요!》

이러며 앞을 막는 집채만 한 바위를 에돌다가 최선금은 오른쪽 어깨가 뜨끔해지는것을 느꼈다. 부상을 당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총알에 뚫어진 배낭구멍을 더듬어 쥐였다.

놈들의 추격에서 멀리 벗어나서 장철구에게 배낭을 넘겨주려고 걸음을 멈추었을 때 최선금은 눈앞이 아찔하여 자기도 모르게 눈우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꿰진 배낭에 얹은 자기의 손을 가리키며 힘겹게 말했다.

《쌀이 새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그제서야 장철구는 최선금이 부상을 당한것을 알았다.

장철구가 최선금을 부축해가지고 숙영지에 돌아왔을 때 리경준과 장기령은 깊은 한숨으로써 말없이 맞이하였다.

장철구에게는 그 한숨이 무서운 질책보다도 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리경준이 일행의 책임자답게 안해를 자리에 눕히고나서 한마디 하지 않았더라면 장철구는 목놓아울기라도 했을것이였다.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장군님께서 들으시면 기뻐하실거요.》

그러나 장기령만은 속이 풀리지 않는지 침울해있었는데 그의 눈은 《철구어머니, 왜 나한테는 알리지 않았소, 예?》 하고 원망하는것 같았다···

장철구는 느릅나무껍질을 짓이기려고 밑에 받칠 헝겊을 꺼내였다. 최선금의 상처를 치료하려는것이였다.

리경준은 명일이와 명숙의 손목을 잡고 우등불곁을 떠났다. 안해의 상처를 치료할 때마다 리경준은 내내 이렇게 했다. 아이들에게 제 어미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장기령도 리경준의 뒤를 따랐다. 느릅나무껍질은 최선금의 유일한 약이였다. 그래서 장기령은 이번에도 그것을 구하는 일을 도맡아나섰는데 그의 허리에는 늘 도끼와 함께 느릅나무껍질타래가 데룽거렸다.

재빛하늘에는 이름모를 새들이 끽ㅡ끽ㅡ 울면서 낮게 떠돌고있었다.

수리개가 잘망궂은 메새들을 비웃듯이 천천히 나래를 스적이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수리개는 검은 구름도, 가없는 밀림도 아랑곳하지 않는것 같았다. 장기령은 부러움에 찬 눈으로 나무우듬지우로 사라지는 수리개를 좇으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ㅡ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면 이제라도 장군님의 품에 안기련만···

《수리개가 가는쪽이 남쪽이 옳지요?》

《분명히 남쪽이요.》

리경준은 더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장기령은 여느때없이 침통해진 그의 표정에서 그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더듬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최선금은 남정들과 아이들을 가벼운 웃음으로써 맞아주었다.

상처가 퍽 나아졌다는것을 알리려는것이였다.

리경준과 장기령은 고개를 숙이고 들것에 마른 풀을 펴고있는 장철구의 얼굴을 살폈다.

환자인 최선금에게서가 아니라 장철구의 표정을 통해서만 상처의 경중을 헤아려낼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장철구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그늘진 얼굴을 보고 리경준과 장기령은 최선금의 상처가 나아질 대신 더 중해지고있다는것을 알았다. 두사람은 서로 모르게 한숨을 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