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4

 

제 3 장

4

 

리동백은 말까지 얻어타고 사령부일행속에 끼이기는 했으나 얼마동안은 혼자 무료히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대렬이 마을을 출발한 뒤에 곧 현팔이와 두칠이의 곁으로 가시였고 대렬앞으로 사려졌다가 다시 뒤쪽으로 갔던 강세호는 마침내 자기곁에 와주는가 했더니 경위대장이라던 사람과 어울려버렸다.

초면인사를 드린데 지나지 않은 장군님에 대해서나 그이를 모시고 가는 유격대원들에 대해서나 아직 너무나도 아는것이 적고 너무나도 알고싶은것이 많은 리동백이였다.

앞뒤를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바로 자기의 얼마뒤에서 말깨나 붙여볼수 있을만큼 풋낯을 익힌 사람을 발견했다.

장군님께서 패신 장작을 규모있게 가려쌓던 나어린 전령병, 바로 자기한테 지금 타고가는 황부루를 끌어다주던 젊은이였다. 늘 장군님 곁에서 지내면서 그이의 령을 아래에 전하는 사람이니 비록 나이는 어리다해도 그 누구보다 장군님에 대하여 잘 알것이요 또 장군님께서 품고계신 생각도 남먼저 알고있을게 틀림없었다.

리동백은 주봉길의 곁에 가고싶었다. 그러나 사정사정하여 겨우 혁명군행렬에 끼여든 처지에 정연한 행군대오에서 제멋대로 행동한다는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혁명군의 질서를 무시하고 문란시키는 행위로 되는것 같아서 삼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눅잦히고 말이 가는대로 몸을 맡긴채 앞에서 움직여가는 기마행렬을 멍하니 바라보며 혼자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이 혁명군대오는 어디로 향해가는것일가? 북만원정의 뜻을 이루고 지금은 조국땅을 향해 진군해나가는 걸음일가?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인원이 적은 대오였다.

장군님께서 북만원정을 가셨다는 이야기를 처음 강세호로부터 들었을 때 그리고 미구에 조선으로 쳐나가시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리동백은 장군님께서 북만에서 대군을 거느리시고 나오시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장군님의 수하에는 한눈에 헤여볼수 있을 정도의 군사밖에 없었다.

조국해방의 큰뜻을 이룩할 대군은 어느 딴 고장에 있을가? 뒤에 떨어져오는가? 아니면 앞서 먼저 나갔는가?

혹은 불행히도 북만에서 꾸려가지고 나오던 대군이 도중에 참화를 당한것인가? 낡고 해진 군복들을 입은것으로 미루어보면 모두들 숱한 고생을 겪었던것이 틀림없는듯했다. 그리고 행군방향이 남쪽으로 잡혀 있는것으로 보아서 그리운 조국땅이 있는쪽으로 나가고있는것도 분명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보면 북만에서 막심한 고생을 겪고 나서 되돌아나오는 걸음이라는 짐작도 갔다.

그러나 군사이동이란 지도우에 자를 대고 화살표를 긋는것처럼 행방이 언제나 곧바르고 아무 눈에나 두드러지게 드러나는것은 아닐것이다. 지금은 남쪽으로 가는것 같이 생각되지만 결국에 가서는 서쪽이나 북쪽에 가닿게 될지도 모르는것이다. 중도에서의 행군방향은 지형조건과 군사적필요에 따라 이렇게 될수도 있고 저렇게 될수도 있을것이다.

《심심치 않았습니까?》

곁에서 나는 우렁우렁한 귀익은 말소리에 리동백은 혼자 생각에서 깨여났다. 현팔이와 두칠이의 곁에서 같이 행군해가시던 그이께서 그들과의 이야기를 끝맺으시고 리동백이한테로 오시는 참이시였다.

《뭐 별로···》

리동백은 자기가 괜히 바쁘신 장군님께 부담을 끼쳐드리는것만 같아 죄송스러웠다.

《혁명군동무들의 행군모습을 구경하느라구 심심한줄은 모르고 왔습니다.》

《심심했겠는데 이제는 내가 선생한테 말동무를 해드릴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닿을데까지는 꽤 머니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한테 찾아오신 사연을 풀어헤치자면 여러날 걸리겠다고 하셨는데 맘놓고 말씀해보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군복웃단추를 하나 끌러놓으시였다. 그 여유작작하신 모습에서 리동백은 이야기에 조바심치지 않아도 되리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웬일인지 자기의 모든것을 죄다 털어놓고 또한 이 기회에 자기가 알고싶었던것을 죄다 묻고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두서없이 되겠는지 모르겠지만···》

《두서없어도 괜찮고 길어도 괜찮습니다. 나는 워낙 이야기를 듣기 좋아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하잘것 없는 저를 위해 시간을 내주시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리동백은 입을 다시며 잠시 생각하다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식민지노예의 운명에 처한 우리 민족을 구원하는데 리롭다고 하는데는 여기저기 다 약간씩 얼굴을 들이밀어보다싶이 한 사람입니다.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로도 가보고 저리로도 가보는 난파선처럼 시대풍조를 따르면서 그러느라면 나라와 겨레가 구원될가 하고 이 운동 저 운동에 몸을 잠가보군 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 운동들에 대해서는 신물이 나도록 맛볼대로 맛을 봤구 그 모든 운동들에 대한 제딴의 결론도 가지고있습니다. 그러나 모든것이 헤실바실되고 갈길을 몰라 헤매고있을 때 저의 얼어붙고 터갈라진 가슴에 새 희망을 안겨준 청신한 세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군님께서 거느리시고 조국광복을 위한 싸움을 벌리시고계시는 항일유격대입니다.

좀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전시대의 공산주의운동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공산주의운동세력이 나타나서 유격투쟁을 벌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해왔습니다.》

리동백의 이러한 이야기에 장군님께서는 각별한 흥미를 느끼시고 새삼스럽게 그를 돌아보시였다.

《어떻게 되여 그런 관심을 가지게 되였습니까?》

《그건 파쟁으로 종말을 고한 이전의 공산주의운동자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것을 느꼈기때문입니다.》

《매우 흥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선생은 우리 유격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신다는데 어떤 점을 가지고 그런 판단을 내릴수 있었습니까?》

《장군님께서 지도하시는 새로운 공산주의운동세력은 말보다 오히려 행동을 앞세웠습니다. 총을 들고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무찌르자고 나섰고 유격구역에 공산주의제도를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반면에 제가 잘 알고있는 20년대의 공산주의운동자란 사람들은 아무런 실천적행동도 안하고 헤게모니쟁탈을 위한 파쟁에 몰두하여 공리공담만을 일삼았습니다. 저는 저의 체험을 통하여 그들의 추한 정체를 알게 되였고 쓰라린 교훈을 찾았습니다.》

《종파군들이 해괴망칙한짓들을 참 많이 했지요. 어디 리선생의 체험담이나 들어봅시다.》

《제가 찾아온 목적을 석연하게 말씀드리는 의미에서는 소용될 이야기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시 자기의 지난날을 더듬고난 리동백은 구슬픈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멋도 모르고 감옥에서 저에게 공산주의사상을 주입시켜 주었던 이른바 선배 공산주의자란 사람을 따라다니다나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운동판에 끼여든 첫걸음부터 파쟁바람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공산주의운동자들속에서 애숭이취급을 받으며 그들 축에 끼지도 못하고 지내던 어느날, 그 사람이 저한테 와서 쏘련 원동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당을 창건하기 위한 대단히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거기에 가지 않겠느냐구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때 저는 세계최초의 로동자, 농민의 국가로 된 쏘련을 몹시 동경하고있었습니다. 다른것은 그만두고 우선 쏘련에 한번 가본다는것만 해도 얼마나 굉장한 일이겠습니까? 거기에다가 듣기만 해도 요란한 당창건대회에 참가한다는게 저같은 애숭이공산주의신봉자한테야 상상할수 있는 일입니까? 그런 대회에 대표로 참가했다면 누구도 저를 얕보지 못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보내달라구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무슨 아지트라고 하는델 데리고 갔는데 거기에서는 대표증이라는걸 만들고있었습니다. 등사한 줄칸을 친 종이장에 이름이랑 적더니 이르꾸쯔끄파의 당대표가 분명하다는 둥그런 도장을 눌러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일이지만 그때 저는 기쁨에 들뜬 나머지 그 치사스러운 협잡놀음을 보고 구역질을 느낄 대신에 사정이 그러니 감자도장을 찍는게구나 하고 너그럽게 해석해버렸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수치감도 느끼지 못했던것입니다.》

묵묵히 리동백의 이야기를 들으시던 장군님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그러니 선생은 진짜 감자도장을 봤겠습니다?》

《보다뿐이겠습니까? 대표증을 받구나서 시들시들해진 감자도장에 인즙이 잔뜩 묻어 글자가 제대루 나타나지 않는다구 해서 그걸 파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참 희귀한 물건을 구경했습니다. 나도 종파분자들이 더럽게 노는 꼴을 수태 보아왔고 오가자에 살던 변뜨로쯔끼라는 로인한테서는 고려공산당원증이라는것도 구경했습니다만 진짜 감자도장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체 그런 감자도장을 찍어가지고 가서 뭘하나 했더니 세력권확대에 필요했더군요. 그게 아마 1922년 10월경이였던것 같은데 원동에 있는 엘프뉴진스크라는데서 상해파와 이르꾸쯔끄파의 합동대회라는걸 열게 되였습니다. 그 대회에 량파가 서로 저의 파의 대표를 더 많이 참가시키려고 협잡했습니다. 감자도장을 새겨가지구 가짜대표증을 수태 만들어 그 합동대회에 엉터리대표를 보낸셈이지요. 자기 파 세력이 승해야 헤게모니를 장악하겠으니까요. 그 협잡이 드러나가지구 또 서로 옥신각신 물고뜯었습니다. 회의에 림박해서는 서로 상대방을 공격비난하는 성토문과 선언문을 발표하구 란장판이 됐습니다. 그러니 합동회의라는게 성립될리 없었지요. 그런 일이 있은 뒤에 결국 이르꾸쯔끄파의 고려공산당을 창건하려던 시도는 파탄되구 그 사업을 국내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섰습니다. 그러자 종파분자들은 국내에 쓸어들어 또다시 헤게모니를 걷어쥐기 위해 별의별 짓들을 다 했습니다···》

아까부터 여러번 조심스럽게 장군님 뒤에 다가와 머밀머밀하다가 물러나군 했던 리북철이 실례될것을 무릅쓰고 장군님 곁에 다가왔다. 웬일이냐고 물으시는 그이의 눈길을 받은 리북철은 점심때가 지난지 오랬다는 말씀을 드렸다.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장군님께서 중천을 훨씬 기울어간 해를 쳐다보시고 이어 회중시계를 꺼내보시였다.

《선생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시간가는줄도 몰랐습니다. 오늘 점심은 좀 늦었구만, 휴식합시다.》
《알았습니다.》

활기있게 대답하고 옆에서 물러나려는 경위대장을 장군님께서는 다시 찾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낮은 목소리로 은근히 물으시였다.

《좀 구했소?》

《좀 구하느라구 했습니다만···》

경위대장은 난색을 지었다.

《···겨우 세알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점심참에 해주랍니까?》

《이제야 어떻게 하겠소? 간단히 주먹밥들이나 구워 요기를 하구 곧 다시 떠나야지.》

《저녁이 좋겠습니다. 강세호동지하구 같이 어디에 무엇이 더 좀 없겠는지 알아보는중입니다.》

《고맙소.》

리북철이 물러나자 장군님께서는 말을 멈춰세우시였다.

《내려서 좀 쉬면서 점심요기를 합시다. 시장하겠습니다.》

《제가요? 전 정말 시장기를 못느꼈습니다.》

《선생에게 담배 태우실 짬도 없이 이야기를 시켜서 안됐습니다. 한대 태우십시오. 내 잠간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서야 리동백은 그렇게 즐기는 담배마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말우에서 땅바닥에 내려온 그는 진대나무에 걸터앉아서 가루담배를 두둑이 눌러담은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이를데없이 맛좋고 구수한 첫모금에 노근한 취기를 느끼며 멎어선 대렬앞쪽으로 나가시는 장군님의 뒤모습을 뜨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간편한 유격대의 식사와 짧은 휴식이 끝난 다음 다시 길을 떠나자 리동백은 아까 끊어졌던 화제를 잇대여 고려공산당이 해체된 이후 자기가 지내온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런 뒤에 저는 서울로 갔습니다. 한데 거기엔 거기대로 벌써 여러 파가 생겨나고있지 않겠습니까? 화요파요 서울파요 북풍회요 상해파요 하는것들이 저마다 제가 주류라고 우겨대면서 아직 태여나지도 않은 당의 령도권을 걷어쥐여보려고 미쳐날뛰고있었습니다.》

리동백은 1923년 1월 제3국제당 원동국에 내왔던 고려국까지 해산해버리지 않을수 없게 만든 종파들의 가지가지 추잡한 파쟁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그자신 새삼스럽게 어이가 없었던지 문득 입을 다물고 구슬픈 눈매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하고 한동안 침울한 표정에 잠겨있던 리동백은 갈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밤낮 서로 물고뜯는 내외사이에 태여난 기형아와도 같이 태안에서 벌써 병들어 나온 조선공산당이 그래도 3년동안이나 목숨을 부지했다는것이 오히려 기적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중앙위원이란 사람들을 자루속에 잡아다가 곤봉으로 때리고 목침으로 머리를 까고 지어는 반대파를 경찰에 밀고해서 잡아가두게까지 했으니 가뜩이나 병든 기형아가 어찌 오래 살기를 바랄수 있겠습니까?》

리동백은 말끝에 한숨을 쉬였다.

《정말 수치스러운 종말입니다.》

혼자말씀처럼 외우시는 장군님의 안광에는 서늘한 빛이 비껴있었다.

《그렇게 파쟁만 일삼았으니 당을 말아먹지 않을수 있었겠습니까. 모두 단결해서 당을 보존하고 잘 키워왔더면 우리가 싸우기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혁명초기부터 우리 혁명대렬내에서 반종파투쟁을 강하게 벌릴데 대하여 강조해왔습니다만··· 그런데 그들이 무슨 강령 같은게라두 있어서 그렇게 싸운것도 아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그들한테 무슨 그럴듯 한 주장이라도 있어서 싸운게라면 지금껏 제가 이렇게 심한 정신적허탈감을 느끼진 않을겝니다. 사실은 그무렵에도 파쟁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려 돌아치다가 약간이나마 정신이 드니 저에게도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상반되는 리념이라도 있고 론리라도 있어서 피투성이 파싸움을 하는것이냐 하구말입니다. 그러구보니 혁명을 한다는 말뿐이지 순 자리다툼만이 아니겠습니까?

자칭 맑스주의권위자라는 사람들이 웨치는 소리라는건 짧은 제소견으로 들어봐두 허망하기 짝이 없는 엉터리론리였습니다. 탐위욕만 머리에 가득찬자들이니 어찌겠습니까? 리성도 지성도 없는 공허하고 빈곤한 두뇌에 있다는건 야심뿐이니 거기에서 나온다는게 순전히 다른 파와 엇서기 위해 줴치는 그따위 주장밖에 더 있겠습니까? 전수 자리다툼만 일삼는 고약한놈들이였습니다. 아주 나쁜놈들이였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아무것도 기대할것이 없고 또 미련을 둘 여지도 없는자들이였습니다. 그자들에 대한 환멸감과 자기의 지난날에 대한 허무감에 사로잡혀있었던 제가 항일유격대에 대한 소문을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하는것은 짐작이 가실줄 압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나든 문을 열어보지도 않겠다고 결심하고 방안에 들어박힌 사람에게 신선한 바람이 스며든것과 같다고 말씀드릴지.》

리동백은 항일유격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때로부터 강세호를 만나 떠나오게 되기까지의 긴 사연을 장군님 앞에 숨김없이 말씀올렸다. 그러나 장군님에 대하여 자기 마음속에 품고있는 경탄의 감정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인민들속에서 떠도는 장군님에 대한 소문도 많이 들었다는 정도로 말씀드렸을뿐이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리동백이 비록 말하지 않았으나 그가 찾아온 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으시였던지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겸손한 웃음을 띠우시며 딱해하시는듯 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니 선생은 우리한테 소문대로 기대를 가질만한 사람들인가 알아보자고 정찰을 온셈이군요.》

《아니 그렇게까지···》

퍼그나 당황해진 리동백은 말끝을 마무리지도 못하고 허둥거렸다.

《머리를 낮추십시오.》

하시며 장군님께서는 그의 눈앞에 다가드는 나무가지를 손에 받쳐 올려넘기시였다. 그러시고는 안심시키시듯 아량있는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생소한 강을 건너가자면 먼저 깊이를 알아봐야 합니다. 군사행동에서는 정찰을 앞세우는것이 하나의 원칙인데 선생이라고 우리 유격대에 대해 정찰을 앞세우지 못하겠습니까?》

말씀드리지 않은 자기 마음속까지도 환히 꿰뚫어보시고 그 심정을 깊이 리해해주시는 그이의 말씀과 너그러우신 웃음앞에 리동백은 깊이 숨겨두었던 자기 마음속 비밀의 마지막 매듭까지 저절로 스르르 풀려나가는것을 느꼈다. 아직까지 약간 굳어져있었던 그의 모든것이, 눈빛도 안면근육도 몸자세도 죄다 탁 풀어지고말았다.

《장군님 앞에선 속을 다 털어놓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나살이나 먹은 사람이 지나치게 불손한 호기심을 품고 왔다구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은 두루 알아보구나서 따라가 싸움길에 나서든지 집에 돌아가 다시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든지 하자는 속궁리도 노상 없었던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런 기회주의자입니다.》

《허허허···》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솔직한 말씀을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생의 마음에 들지 않구 우리들이 하는 일이 승산이 없는게라구 판단되면 그것으로 선생과 우리와의 관계는 끝나버리고마는셈이 되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신념을 얻어내지 못하면 아마 그렇게 될것 같습니다. 신념이 없이는 지조를 지켜낼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진리와 신념을 찾고있습니다.》

《진리를 찾자고 모대기는것은 결코 기회주의가 아닙니다. 의로운 뜻을 품고 진리를 탐색하는 선생과 같은분을 만나니 참 기쁩니다. 량심을 저버리지 않고 뜻을 잃지 않은 선생 같은분이 많이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혁명에 많은 도움을 줄수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때 혁명을 해보겠다는 뜻을 품고 나섰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것 같은데 더러는 변절해버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다 감옥에 붙잡혀 들어가고 나머지는 이렇게 저렇게 흩어지고말았습니다.

선생은 지조를 굽히지 않은채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진리를 찾고계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선생을 위해서도 우리 혁명을 위해서도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자기와의 상봉을 진심으로 기쁘게 여기시는 장군님의 환하고 밝은 웃음에 리동백은 눈굽이 뜨끈해지는 한편 어리둥절해지기도 하였다.

기쁨과 행복으로 말하면 장군님을 만나뵈옵자던 오랜 숙망을 이룩한 오늘의 자기이상 기쁘고 행복할 사람이 다시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하잘것없는 존재인 자기와의 상봉을 더 기쁘게 여기시는것이다.

그렇게도 탁류에 오염된 인테리이며 혁명을 외면하고 촌에 들어박혀 지내온 무맥한 은둔자였으며 넋뿐만아니라 기력마저 쇠진해버린 초췌한 초학훈도에 지나지 않는 이 리동백을 만나신것이 어찌하여 장군님께서는 저처럼 환하고 유정스러운 웃음을 피여올리시는 기쁨으로 되시는것일가?

리동백은 그 까닭을 헤아려내지 못한채 두눈을 연신 슴벅이며 말없이 장군님을 우러러뵙기만 하였다.

밀림속엔 어느덧 이 하루의 해가 저물어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