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3

 

제 3 장

3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삶은 감자와 귀밀떡을 안겨주고 눈물속에 손저어 바래주는 마을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사령부일행은 미혼진을 향하여 또다시 길을 떠났다.

길에 늘어선 기마대렬은 꼬리를 물고 수림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처음에는 발구길을 따라가고 다음에는 눈에 묻힌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그 다음부터는 길 없는 길을 내며 차츰 더 울울창창해지는 밀림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돈화와 안도, 두 현접경지대의 높고 넓은 땅을 한품속에 덮어버린 거창한 밀림은 사람들과 말들을 깊숙이 삼켜버렸다.

《꽤 미끄러는대는군.》

대렬이 출발한뒤 어디 있었는지 보이지 않다가 불쑥 리북철의 곁에 나타난 강세호가 혼자소리처럼 투덜댔다.

《어디 계셨습니까?》

《음, 전방척후와 후미척후를 좀 돌아봤댔소. 어떻게들 사나 해서 구경하느라구, 오래간만에 고향집에 온것 같아서 구경하고싶더란말이요.》

강세호는 한바탕 산보라도 한듯이 말했지만 리북철은 그가 결코 구경하러 가지 않았다는것을 알았다. 여전히 다심하고 빈틈없는 그 강세호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동무는 출발직전에 어디 갔댔소?》

《뭘 좀 구하러 갔댔습니다.》

《뭘 구하느라구?》

북철은 무슨 비밀이나 말하듯이 낮은 소리로 알려주었다.

《주봉길동무의 생일이 음력 2월 보름날이랍니다. 그래서 사령관동지께서 뭘 좀 구해보라구 하시여서···》

《주봉길동무? 흑석향에서 입대했다는 전령병말이요?》

《네, 저기 저앞에 <대통령감>이라던가요? 그 사람과 같이 이야기하며 가고있는···》

《그래 좀 구했소?》

《겨우 닭알 세알밖에 못구했습니다.》

《오늘이 음력으로 2월보름날이던가?》

《그렇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오늘이라구 하십디다.》

《그래, 그래.》

하며 강세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새벽달이 만월에 가까왔지.》

그리고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더니 불쑥 묻는것이였다.

《어떻소? 철이 좀 일러지는것 같지 않소?》

《글쎄요? 그런것도 같습니다.》

북철은 얼결에 나가는대로 대꾸하였다.

《동무두 그렇게 생각되오?》

《그저 그만한것 같기두 하구.》

《허허··· 대체 어느쪽이요?》

웃음속에서도 예리한 빛을 잃지 않는 강세호의 눈을 대하자 리북철은 약간 면구스러워하며 솔직하게 말했다.

《일러지는지 늦어지는지 전 그 점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렇다고 대답해야지.》

하며 눈빛이 부드러워지는 강세호를 보고 리북철은 비위를 맞춰주기 위하여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하는것을 질색으로 여기는 그 성미 역시 여전하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지난해초에 공작임무를 받고 떠난게 바로 음력으루 보면 어제였는데 그땐 밀림속에 쌓인 눈이 이렇게 녹기 시작하지 않았댔소.》

《정말 그랬던것 같습니다. 기억납니다. 그때 눈보라가 뽀얗게 이는 길로 떠나가던 일이, 그게 바로 한해전 이때였군요.》

참말 하루도 어김없는 만 1년만에 다시 만난 어제날의 중대정치지도원 강세호와 분대장 리북철이였다. 그런 사이였지만 지난 새벽에 만나자마자 강세호가 사령관동지께로 달려가서 출발직전까지 거의나 그이의 곁에서 지내다싶이 했으므로 서로 그간의 회포를 나눌만 한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그들이였다.

《그래 만 한해전이지. 그땐 눈보라가 치구 그냥 한겨울이였소. 그런데 올해엔 벌써 저게 녹는 꼴이 아니요? 하긴 또 모르지. 하늘이 무슨 변덕을 부릴는지?》

《변덕을 부리지 않을겝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알겠소?》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고있으니말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여기 나오는 도중에 큰 진펄지대를 지난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꽤 크다고 하는 진펄이라는데··· 크기는 정말 큰것 같습니다. 드문드문 섬처럼 숲이 있을뿐 눈덮인 초원같이 가도가도 그냥 번번하기만 하더란말입니다. 그 진펄이 얼어붙었으니말이지 지금처럼 녹기 시작했더라면 숱한 고생을 하며 진펄을 에돌아 멀고 험한 산길로 행군했을겝니다. 그렇게 되면 날자두 여러날을 허비할뿐더러 아마 말들도 버리게 됐을게구요.》

《정말 그렇겠군.》

《아주 신통스럽지 않습니까? 진펄을 지나오자 녹기 시작했거던요. 그래서 주봉길동무가 뭐랬는지 아십니까? 저보구 말하기를 장군님께서는 하늘이 내신분이시기때문에 하늘이 장군님께서 중대한 길을 떠나신 걸음이시라는것을 알아봤다는겁니다.》

《하하, 처음으로 사령관동지를 모시는 봉길동무고보면 느끼게 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거요. 행군로정의 지형과 기후조건을 면밀하게 타산하신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령군술은 또 하나의 전설을 남기였군.》

강세호는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봉길의 말대루 된다면 앞으로도 날씨가 방정맞게 굴진 않을겝니다.》

《그랬으면 좀 좋겠소?》

강세호는 입을 다물고 얼마동안 묵묵히 가다가 웬일인지 오한을 느끼는 사람처럼 문득 몸을 움츠러뜨렸다.

리북철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웬일이냐고 묻는듯 한 눈길로 강세호를 바라보았다.

강세호는 리북철의 마음을 알아차렸던지 머리를 저으며 걱정스런 음성으로 말하였다.

《눈두 밝군, 지독스레 춥던 먼저번 생각이 났댔소.》

리북철은 강세호가 전번 북만원정에서 돌아나오다가 로야령에서 겪었다던, 회상하기조차 끔찍스러운 그때 일을 상기하고 저도 모르게 몸서리쳤다는것을 깨달았다.

언제인가 강세호자신이 리북철이한테 말한바와 같이 그에게 있어서는 로야령에서 당하였던 그 일이 일생 영원히 잊을수 없는 가장 준엄한 체험으로 남아있을것이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것을 바라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강세호이기에 불원천리 행처도 똑똑히 알지 못하는 길을 수소문하여 달려왔으리라는것을 리북철은 넉넉히 짐작하고있었다.

리북철은 가슴이 후더웠다. 존경어린 그의 눈길이 수척한 강세호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더듬었다.

강세호가 나타난 순간부터 마치 형이 곁에 와있는것처럼 마음든든해짐을 느낀 리북철이다.

리북철이 아는 사람들가운데는 강세호처럼 정확하고 견실하고 능숙하고 단정한 지휘원은 드물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나 그는 립장이 석연하고 명확했고 일단 결심했거나 하겠다고 대답한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집행하는 사람이였다.

《네》 또는 《아니》 하면 두말없이 그대로 하였다. 립장을 바꾼다든가 변덕을 부린다든가 흥정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사고에 있어서는 원칙적이고 행동에서는 절도가 있었으며 생활에서는 절제가 강하였다. 그는 례절바르고 검박했으며 절대로 허튼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자기앞에서 허튼소리를 하는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옷차림으로부터 전투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을 하건 빈틈없이 모가 나게, 맵시있게 그리고 두벌손질이 가지 않게 해내군 하였다.

침착하고 인내성있는 강세호도 간혹 분노를 터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정 비위에 거슬릴 때면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팩해서 냅다쏘는것이다. 강렬한 정의감의 이 지나친 분출이 때때로 그의 결점으로 되기도 하였다.

《뒤로 전달, 허리를 굽히고 지나올것!》

앞으로부터 전달이 왔다.

리북철은 그 말을 되받아 뒤에 전하며 허리를 굽혔다. 말우에 바싹 엎드려 등을 스치는 굵은 이깔나무가지밑을 빠져나가자 이번에는 갑자기 길이 좁아졌다.

그는 고삐를 나꿔채여 좁은 길에 먼저 들어서려는 말을 멈춰세우고 강세호를 앞세웠다.

《실은 아까부터 알아보자고 했는데.》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가운데로 이리저리 에돌아 빠져나가 마른 들쭉덤불이 눈우에 한벌 깔린 훤한 공지에 이르자 강세호는 곁에 다가오는 리북철을 기다렸다가 넌지시 물었다.

《군복예비가 없겠소?》

《없는데요.》

리북철의 눈길은 무심중 저앞에서 사령관동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말타고가는 조두칠의 솜옷차림새를 스치였다.

《천은 좀 있소?》

《옷감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단말이요?》

《네.》

믿고 손을 내민 강세호에게 꼭 필요한것 대신 무안만 준것 같아 미안스러워진 리북철은 변명하듯 덧붙였다.

《좀 있었댔는데 남호두를 떠나올 때 북만에 남게 된 동무들에게 몽땅···》

《다 주었소?》

《네.》

강세호는 소리없이 한숨을 쉬고 잠시동안 침묵을 지키고있다가 다시 물었다.

《경위대 대원이 열명이라던가?》

《네.》

《그러니 동무까지 호위성원은 도무지 열한사람뿐이요?》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적소?》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거의 절반이나 되는 동무들을 사령관동지께서 북만의 다른 부대들에 파견하시였습니다. 그것도 제일 우수한 대원들을 뽑아서말입니다.》

《먼저번 북만원정때에도 사령관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친히 키우신 우수한 대원들을 파견하시여 부대들을 강화해주시군 하시였소. 이번에도 그래서 그렇게 하셨을것이요. 하지만 그대신 동무가 보충해와야지.》

《보충하려고 했지만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는 일없다고, 백두산기슭으로 나가면서 경위대도 인원을 증가하구 주력부대도 꾸리자고 하시며 사람들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더 어쩌지 못했겠소?》

《네···》

《참 사람두··· 욕심두 없구만.》

리북철은 눈을 내리깔고 덤덤히 있었다.

질척거리는 말발굽소리가 두사람사이에 팽팽히 헤워진 침묵의 공간을 채웠다.

마침내 강세호는 조용히, 그러나 엄하게 말했다.

《경위대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처신하는 법이 어디 있소?》

머리를 들고 한숨을 쉬며 강세호를 돌아보는 순간 그의 얼굴에 너무도 심각한 기색이 어려있는것을 본 북철은 황황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참뒤에 리북철의 귀에 어쩐지 자책에 시달리는듯 자주 동강나는 강세호의 갈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래두 통신원으루 왔던 현팔동무한테서 북철동무가 경위대장직무를 수행하구있다는 이야길 듣구 마음이 놓였댔소. 동무가 경위대장이니까 우리모두가 바라는대로 사령관동지를 잘 모시구있으리라구 믿었댔소. 그런데 오늘새벽에 일어나 밝은데서··· 그이께서 입고계시는 군복바지를 보니 눈물이 나서 견딜수 있어야지··· 경위대장이란 사람이 그이께서 입으실 예비군복 한벌도 건사해두지 않다니? 호위성원이란것두 고작 열명밖에 안되고···》

강세호의 말을 들으며 북철이도 새삼스레 가슴이 저려들고 눈굽이 뜨거웠다. 제구실을 못한 자기에 대하여 안타까와하는 그 말들이 두려울 대신 오래 바랐던것처럼 도리여 심금을 울려주었다. 혼자 붙안고 애타게 모대기며 하소할데를 못찾던 남모르는 자기의 심정을 알아주고 받아줄 사람을 만난 순간처럼 설음이 북받쳤다.

강세호는 갈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동무도 어쩔수 없어 그랬겠지. 나도 짐작은 가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소? 대체 어찌된 일이요? 군복이야기부터 좀 들어보기요. 나도 동무에게서 교훈을 찾게 좀 말해보우.》

북철은 긴 한숨을 내쉬고나서 이야기했다.

···남호두를 떠나 액목현의 어느 수림속에서 숙영할 때였다.

언제나와 같이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숙영하게 된 경위대는 그날 밤도 물론 불무지보초를 세워놓았었다. 그런데 당번보초였던 신입대원 주봉길이 피곤을 못이겨 조는바람에 우등불에서 튀여난 불찌가 사령관동지의 군복바지에 가닿은줄도 모르게 되였다.

잠결에 심상찮은 냄새를 맡고 리북철이 벌떡 일어났을 때는 이미 사령관동지께서 바지에 달린 불을 끄신 뒤였다.

단 한벌밖에 없는 그이의 군복을 태웠으니 이를 어찌하랴?

리북철의 가슴은 찢기는것 같이 아팠다.

봉길은 돌아앉아 소리없이 어깨를 들먹거렸고 련달아 깨여난 경위대원들 역시 얼마나 딱하고 민망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는지를 알자 한숨을 쉬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오히려 자신께서 깊이 잠드셨던 탓이라고 웃음속에 말씀하시면서 탄 자리에 손수 바늘실을 대시기 시작하시였다···

리북철은 거듭거듭 경험도 없고 단련도 되지 못한 주봉길에게 불무지보초임무를 맡겨놓고 잠들어버린 자신에 대하여 힐책하였다. 주봉길이가 불무지보초를 몇번 실수없이 잘 섰기때문에 그날 밤에도 안심했다는것이다.

《안심하고 부주의했다니? 불무지보초당번을 짜주면서 주의의 말을 안해줬소?》

이야기를 듣고있던 강세호가 물었다.

《그 말이야 해줬지요. 제가 잤으니말입니다.》

《부주의는 거기 있지 않소. 동무가 매일밤을 꼬박 밝힐수야 없지 않소?》

《그렇지만 글쎄 신입대원을 세워놓구···》

《신입대원에게 내내 과업을 주지 않으면 언제 경험을 쌓고 단련되겠소? 동무는 이깔나무가 불찌를 몹시 튕긴다는걸 몰랐소?》

그에 대해서는 언제인가 강세호자신이 리북철이한테 알려준적이 있었다.

《···채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음부터는 이깔은 안피우구 봇나무나 쇠스레만 골라 피웠습니다.》

《불을 피울적에야 물론 그랬겠지. 그러나 불만 그렇게 해선 안되오.》

리북철은 말이 없었다.

《동무에게는 하치않은 일이란 없다는걸 알아야 하오. 동무가 하게 되는 모든 일은 불을 피울 나무를 고르는것이나 밥 지을 물을 뜨는 일이나 어느것 하나도 허술히 여길 일이 없다는걸 알아야 하오. 동무가 하는 모든 일은 무엇이나 다 아주 중대한 일이요. 말하자면 동무가 하는 일에는 어느것에나 최고의 중대성을 기해야 한다는거요.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보다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이 있을수 있고 별치 않게 여겨도 될 일이 있소. 그러나 동무나 경위대원들처럼 직접적으로 사령관동지를 모시고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소. 학습이나 전투는 중요하고 불을 피우거나 물을 떠오는것은 중요치 않고 그렇게 될수 없소. 어느 일이나 동등한 중요성을 가질뿐아니라 그 모든게 최대로, 최고로 중요하오. 동무들의 일거일동은 례외없이 다 그이를 모시는 사업의 한부분이기때문이요. 이것을 명심하지 않다간 이깔나무로 우등불을 피우는 일은 없어지겠지만 그보다 더 하치 않은것 같은 일을 소홀히 해서 그보다 더 엄중한 실수를 할수도 있소. 그런데 동무의 실수나 과오는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나 과오정도에 머무르는게 아니구 우리 인민혁명군에서 가장 큰 엄중성을 띠는 죄악으로 된다는걸 또한 알아야 하오···》

강세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북철은 자기가 그이의 군복을 태운 일에서 교훈을 본질적으로 찾지 못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강세호는 북철이자신에게 석연치 못하였거나 일면적으로 리해된 잘못이 근본적으로 어디에 있었던가를 명확하게 깨우쳐주었다. 그리고나서 북철이더러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하였다.

북철은 그날 밤 이후 여기까지 행군해나오면서 내내 사령관동지의 군복을 새로 마련할데 대하여 마음을 써왔지만 그럴만 한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그럴수록 남호두에서 떠나올 때 그이의 군복예비를 끝끝내 건사해가지고 떠나오지 못한것이 갈수록 깊이 뉘우쳐졌다.

《왜 몽땅 다 내놓았소?》

《다른게 아닙니다. 제가 미물이였던 탓이지요. 내놓으라고 하신다고 해서 그것까지 내놓는 그런 미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대체 왜 그런 어이없는 짓을 했소?》

잠시 입을 다물고 씩씩거리던 리북철은 별안간 불을 뿜듯 열띤 말을 터쳐놓았다. 괴였던 물이 뚝을 틔워주자 마구 쏟아져나오는것과 같았다.

《말하겠습니다. 이것만은 정말 말해야 하겠습니다. 이건 강세호동지두 아시구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할 문제입니다. 남호두에서 떠나올 때 제가 뭐 군복이랑 신발이랑 모포랑 여벌로 건사한게 없었던줄 압니까? 제가 경위대장 구실은 제대로 못할망정 영 속궁리가 없었겠습니까? 있었습니다. 여벌로 하나씩 다 가지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는 북만에 남을 동무들이 더 추운데서 더 어려운 고생을 하게 될게라구 걱정하시면서 몽땅 다 내주라고 하시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 그래서 모두 다 털어내놨지요. 그리구 오직 저만 예비를 그냥 감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그것마저 내놓으라구 하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정말 무엄하달만치 고집을 쓰니까 나중에는··· 우리곁에서 떨어지기 아수해하는 동무들에게 그걸 마저 주고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좋겠느냐구, 그걸 가지고서야 어찌 발걸음이 떨어지겠느냐구 그러시면서 오히려 간청하시다싶이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북만에서 활동할 때엔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저 주봉길동무가 입대하던 날 밤입니다. 봉길동무는 놈들의 쌀을 지구 짐군으로 산에 끌려들어왔다가 우리에게 구원돼서 그 자리에서 입대하게 됐는데 그곳에 나타났던 아버지가 장군님의 유격대에 입대하게 된 아들에게 자기가 입었던 낡은 솜저고리를 입고가라고 벗어줬습니다.

봉길동무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도루 아버지에게 드리려구 했구요. 그걸 지켜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봉길이더러 아버지의 사랑이 깃든 솜저고리를 받으라고 이르시고 봉길의 부친한테는 자신께서 입으셨던 털외투를 입혀보내셨단말입니다. 이렇습니다. 그후 한동안 외투 없이 지내시는 그이를 모신 우리가 얼마나 딱했겠습니까? ···경위대인원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 있다는 사람들은 다 지난해와 올해에 입대한 동무들뿐입니다. 어디 전부터 있는 동무가 한사람이라도 남아있습니까? 얼굴을 알 동무가 있습니까?

저는 정 보내시겠으면 신대원을 배합해서 뽑아보내주실것을 간청했습니다. 뽑아보내신 다음에도 그만한 인원을 보충해주실것을 여러번 제기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이께서는 호위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저는 정말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이께서 늘 다른 사람들만을 돌보시구 자신에 대해서는 너무나 생각지 않으시니 대체 어쩌면 좋습니까? 좀 말씀해주십시오. 저를 도와주구 가르쳐주십시오!》

안타까와하는 북철의 심정을 강세호는 충분히 리해하였다. 그와 같은 경우를 한두번만 당해온 강세호가 아니였다.

《그러시질 못하시게 할수는 없소. 그건 안되오. 누구도 안되오.》

강세호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마 더해지실거요. 날이 갈수록 더해지실거요.》

《그러면 어쩝니까? 우리는 어쩝니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민들에 대한 그이의 사랑과 심려가 커가고 깊어갈수록 우리는 더욱더 사령관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더 잘 모시기 위해 애써야지. 사령관동지께서 심려하시지 않도록 처신하구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도록 세심히 살펴 일하구 잘 받들어올려야 하오.

례를 들어 동무가 주봉길동무의 생일을 알아두고 그이께서 봉길동무의 생일날에 섭섭치 않게 해주시려고 심려하실수 있다는것을 미리 알아맞추어서 예견성있게 스스로 준비했다면 사령관동지의 걱정을 덜어드리지 않았겠소? 또 동무가 채심해서 숙영 우등불감으로 이깔나무를 엄금하구 봇나무나 쇠스레만 골라 피웠더면 지금 우리가 뵈옵기조차 민망스럽구 딱한 일은 안생겼을게 아니요?

그리구 사령관동지를 받들어모시구 안녕을 도모해드리는 일에서는 양보없이 욕심을 써야 하오. 그 일에서는 양보를 해서는 안되오. 앞으로는 절대로 경위대인원을 내놓지 마시오. 나와 같이 온 두칠동무도 다른데서 끌어가기전에 동무가 당겨오오. 현팔동무도 내가 경위대에 배속되도록 하겠소. 그리고 나도 경위대원으로 취급하오. 동무에게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미혼진으로 가지 않고 사령부를 찾아오게 된것도 실은 현팔동무의 말을 듣고보니 이러루한 일이 있을것 같애서 나 한사람이라도 동무의 사업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때문이요. 조선혁명의 대앙양기를 앞둔 지금 사령관동지의 안녕을 지키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은 동무도 잘 알거요. 그건 동무의 심정이자 내 심정이고 우리 모든 조선사람들의 심정이란말이요.》

웬일인지 기마대렬이 앞으로부터 멎기 시작하였다.

강세호는 허리를 솟구고 잠시 앞을 살피더니 마치 량해나 구하듯 말했다.

《아무래두 좀 나가봐야겠소.》

《저두 갈가요?》

《안되오. 동문 있어야 하오.》

강세호가 전방척후를 찾아 멈춰선 기마대렬옆을 따라 앞으로 나가는것을 보며 리북철은 경위대장으로 임명된후 자기의 직책을 어떻게 수행해왔던가를 돌이켜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