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

 

제 3 장

2

 

서쪽숲언저리로 지는 해를 걱정스레 쳐다보기를 그 몇번, 한남실은 열명남짓한 아동단원들을 데리고 깊은 산골짜기 막바지에 초막을 쳤다.

분비나무가지를 꺾어다가 대충 웃설미를 한 자그마한 초막, 그것은 한남실이가 열번째로 지어보는 초막이였다.

아동단원들이 손을 불며 안아온 송라며 마른 풀을 초막안에 골고루 폈다.

어설픈 초막의 이영사이로 스며들던 마지막 해빛이 사위여질 무렵에야 한남실은 잘룩하게 동여맨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섭아래서 유순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담차보이는 좀 클사한 눈이 밝은 빛을 뿌렸다. 촘촘하고 긴 속눈섭은 발산하는 눈빛을 가리울것 같아 저어하는듯 초리를 약간 쳐들고있었다. 그 눈빛만이 색이 바랜 풀색의 처진 솜옷과 오랜 행군에서 지친 한남실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것을 막고있었다.

한남실은 초막안을 휘둘러보았다.

초막안은 깨끗하고 아늑했다. 그는 만족한듯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비로소 호ㅡ 하고 가볍게 숨을 내쉬였다. 초막을 치기 시작해서부터는 여직껏 숨 한번 돌릴새 없었던것이다. 초막안에서는 모닥불이 느물느물 피였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미소를 담고 모닥불곁에서 불을 쪼이고있는 아이들을 돌아다본 남실은 경수를 곁에 오라고 불렀다.

어깨에 허리가 휘여든 나팔을 맨 경수가 입술을 무겁게 다물고 정기가 도는 눈으로 묵묵히 서있는 동무들을 살피고있다가 한남실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과 도툼한 입술에는 가벼운 웃음이 어리였다.

한남실은 경수의 손을 눈가까이에 대고 찬찬히 살펴보고 다음에는 손바닥과 손등, 손가락끝을 차례로 꼭꼭 쥐여보고 눌러보았다. 얼지 않았나 해서였다. 경수는 씩 웃었다. 손이 얼지 않았으니 선생님 걱정 마세요, 하고 그 억실억실한 눈이 말하고있는것 같았다.

《응남이, 감기들지 않았나요?》

응남은 바지를 추어입고나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한남실에게 되박이마를 내댔으나 한남실은 그의 이마를 짚어보고서야 안심되는듯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감기들지 않게 조심해요, 순녀, 이리 오세요.》

눈섭이 류달리 검고 코가 납작한 처녀애가 사뿐사뿐 걸어왔다.

남실은 순녀의 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귀바퀴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선생님, 아무 일도 없습니다.》

순녀는 한남실을 쳐다보며 해쭉 웃었는데 그 웃음은 자기들때문에 고생하는 선생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것이였다. 한남실이도 따라 웃었다.

《광석이ㅡ 어데 있어요?》

한참후에야 아이들사이로 커다란 솜모자를 쓴 열살쯤 나보이는 아이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한남실앞으로 걸어왔다.

한남실이가 손을 보자고 할 때 광석은 왼손만 내보였다. 호주머니에 넣은 바른손을 보자고 한남실이가 몇번 독촉해서야 마지 못해 내보이는데 손은 천쪼각으로 동여매있었다.

《어떻게 다쳤나요?》

한남실은 놀란 눈으로 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대답을 기다릴사이없이 한남실은 헝겊오리를 풀었다. 손바닥에는 무엇에 긁힌 자리가 있었다. 리광석은 그런데는 아랑곳없이 흐린 한남실의 안색을 근심스레 쳐다보았다.

어느 애가 손수건을 찢어 처매주었구나. 한남실은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였으나 짐짓 엄하게 물었다.

《누가 처매주었어요?》

광석의 눈길은 동무들뒤에 서있는 순녀한테 가서 멎었다. 순녀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광석은 우등불을 피우려고 나무가지를 끌고오다가 넘어졌는데 그통에 끝이 뾰족한 나무가지에 손바닥을 긁혔다. 광석은 순녀가 손을 처매줄 때 선생님이 아시면 걱정하시겠는데 그만 숨기자고 하였다. 순녀도 광석의 말에 찬성했다. 그러지 않아도 선생님에게 얼마나 걱정이 많게! 한남실이도 물론 아이들의 이런 갸륵한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것은 아니였다.

《순녀, 동무들이 다치면 인차 선생님한테 알려야 해요. 그래야 약을 바르지 않겠어요?》

약이란 말이 어떻게 튀여나왔는지 모를 일이였다. 어데 다치면 응당 약을 바르기마련이니까 그런 맹랑한 소리가 입밖에 나간것이였다. 한남실에게는 아무런 약도 없었다. 상처를 소금물에 씻고 두툼한 벙어리장갑을 끼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한남실은 아동단원들의 손과 귀를 차례로 살피였다. 그것은 하루의 행군이 끝난 뒤에 꼭꼭 있군 하는 하나의 일과였다. 오늘따라 추위가 심했다. 한남실은 행군해오면서 아이들의 손발이 얼지 않나 해서 마음을 놓지 못했다. 대렬앞에서 눈을 헤가르며 걸으면서도 누가 기침을 하지 않나, 괴로와하는 아이는 없나 하고 내내 아이들의 얼굴을 살피는 한남실이였다. 오늘은 아이들이 몹시 지친것 같아서 다른 때보다 한시간 일찍 초막을 쳤다.

한남실은 배낭뒤에 지고다니는 자그마한 남비를 풀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에 뛰지 않게 한홉이 될가말가한 피쌀을 꺼내서 남비에 담았다.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활기를 띠였다. 자기들의 배낭안에는 아동단학교에서 쓰던 공책, 연필꽁다리, 나무권총과 소리 안나는 하모니카, 고무총, 허리부러진 피리, 이런 잡동사니를 끄집어내여 펼쳐놓고는 뚝딱거리기 시작하였다.

경수는 광석의 곁에 앉아서 그의 허리부러진 피리를 고치느라고 씩씩거렸다.

《광석아, 손이 아프지 않니?》

《아니.》

《지금은 앓지두 말구 다치지두 말아야 해. 선생님한테는 아무 약도 없지 않니?》

광석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손이 아프면 나한테 가만히 오너라. 선생님한테는 가지 말구, 응?》

《아프지 않은데 뭐.》

《아프면말이야.》

광석은 그러겠다는 뜻으로 다시 머리를 끄덕이였다.

경수는 말없이 피리를 입에 대고 불어보았으나 빽빽거리기만 하고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드름이 달렸던 아이들의 옷에서는 어느덧 김이 문문 피여올랐다.

《응남아, 인젠 몇개 남았니?》

찢어진 외투를 깁고있던 순녀가 옆에 앉은 응남에게 하는 말이였다. 순녀의 말에 끌리듯 아이들의 눈길은 일시에 응남에게로 쏠렸다. 끄덕끄덕 졸던 아이들도 정신을 차리고 응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모니카를 고치느라고 낑낑거리고있던 응남은 고개를 들고 동무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머리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아무러한 응답도 없었다.

《응남아, 그만하구 빨리 세여보라는데두.》

《어서, 빨리.》

아이들이 등이 달아서 사방에서 졸라대자 응남은 하모니카를 품이 후렁후렁한 솜외투주머니에 찔러넣고는 자그마한 배낭뒤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꾸물거리다가 꿩알만 한 솔방울 한개를 내보였다.

《또 없니?》

《마지막이야.》

아이들속에서는 가벼운 실망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순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눈을 슴벅이며 응남의 배낭뒤주머니를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솔방울이 더는 없는 모양이여서 순녀는 큰 잘못이나 저지른것처럼 자기를 쳐다보고있는 동무들을 외면하였다.

《벌써 열흘이 지났구나.》

광석이가 하늘이 내다보이는 초막지붕을 올려다보며 혼자소리를 했다.

응남은 아쉬운듯 솔방울을 손바닥우에 놓고 굴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모닥불속에 던졌다. 솔방울은 이내 불길에 휩싸이였다.

《오늘도 장군님을 만나지 못하는구나.》

《이제 며칠만 더 가면 될가?》

《그걸 누가 알겠니.》

허리 부러진 피리를 고치고있던 경수가 《쉿ㅡ》 하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말하지 말라는 뜻이였다. 아이들은 한남실의 눈치를 흘끔 살피고는 목을 움츠렸다. 초막안은 잠잠해졌다.

한남실은 아이들의 말을 못듣는척 하고 앉아서 나무숟가락으로 끓는 죽을 조용히 휘젓고있었다. 행군을 시작한지 닷새가 되는 날에 아동단원들은 그에게 이제 며칠만 더 가면 장군님께서 계시는 곳에 닿을수 있는가고 물었다. 그때 한남실은 열흘만 가면 된다고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환성을 올렸다.

이튿날 행군을 시작할 때였다. 응남이와 순녀는 무어라고 소곤거리더니 솔방울 열개를 따서 응남의 배낭뒤주머니에 넣었다.

어려운 행군의 하루가 지나고 저녁 우등불이 타오를 때마다 응남은 그 솔방울을 한개씩 불속에 집어넣군 하였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기뻐했다. 솔방울로 흘러가는 날자를 계산하며 장군님을 뵈옵게 될 그날을 손꼽아기다리는것이였다. 응남과 순녀의 이 날자세기는 어느덧 아이들모두의 관심사로 되였다.

솔방울은 행군의 하루하루가 지남에 따라 점점 줄어들고 거기에 따라 아동단원들의 기쁨은 커갔지만 한남실의 마음은 도리여 불안스러웠다. 행군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래일 하루사이에 무송땅에 가닿을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유격근거지가 해산되자 대렬내에 숨어있던 배타적인 좌경분자들은 아무러한 대책도 세우지 않고 아이들을 적통치구역의 친척집들에 보내라고 강요하였다. 《민생단》에 관계한 자식들이 아니면 그러한 사람들과 친척되는 아이들이니 돌볼 필요가 없다는것이였다.

《우리는 장군님한테 갈래요. 적통치구역에는 죽어두 안갈래요!》

아이들은 아동단학교 선생인 한남실을 붙잡고 발을 굴렀다.

한남실은 불현듯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래 장군님을 찾아가자. 너희들은 고아가 아니다. 장군님이 계시는데 왜 고아겠니. 장군님을 찾아가자.》

그리하여 길을 떠났는데 벌써 열흘이 지났지만 사령부의 소식은 두말할것도 없고 유격대원들조차 만날수 없는것이였다.

피쌀죽으로 저녁식사를 끝낸 다음 아이들은 모두 혼곤히 잠들었다.

한남실은 잠간만이라도 쉬고싶었다. 그러나 한남실은 배낭안의 피쌀을 남비에 쏟아놓은 다음 나무숟가락으로 떠서 주머니에 세여넣었다. 한 아이앞에 하루 한숟가락씩 쳐도 닷새분하고 두숟가락이 모자랐다. 그는 자기자신은 언제나 셈에 넣지 않았다. 때식을 준비할 때에는 자신을 잊어버리군 하는 한남실이였다.

닷새동안 행군하면 사령부를 찾게 될는지 그것은 알수 없는 일이였다. 식량을 구해올 생각은 가슴속에서 불붙듯 일었으나 아동단원들때문에 자리를 뜰수가 없었다. 안타까움과 괴로운 심정을 하소연할 사람도 없었다. 한남실은 자기의 얼굴만 쳐다보고있는 아동단원들을 생각해서 모든 시련들을 조용히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남실은 가슴에 갈마드는 어지러운 생각을 털어버리려는듯 머리를 흔들었다.

(가야 해, 어떤 일이 있어도 장군님 품으로 가야 해, 나는 저 아동단원들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이야, 내가 약한 마음을 가지다니, 절대 그럴수 없어! 장군님께서는 《혁명전에서 쓰러진 렬사들의 귀중한 자녀들을 동무에게 맡기오.》 이렇게 말씀하셨지. 나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키우고 교양할 무거운 책임을 진 혁명가야.)

약해지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한남실은 바늘을 찾아들고 아이들의 해진 옷과 신발을 깁기 시작했다. 옷은 그럭저럭 기우면 되겠지만 근심되는것은 신발이였다. 신발들이 인제와서는 다 거덜이 났다. 여섯아이가 어른들의 지하족을 신었고 세아이는 노루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었으며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짚신을 신었는데 그중에서도 짚신이 걷잡을수 없게 판이 났다. 응남의 지하족은 어제 밤에 기워준것인데 벌써 처졌다. 응남은 어찌나 곤하게 자는지 신발을 벗기는줄도 몰랐다. 어제는 신총이 끊어졌던 순녀의 짚신이 오늘은 바닥에 구멍이 뚫리였다. 한남실은 배낭안에 건사해두었던 피곁으로 신총을 꼬았고 판이 난 바닥에는 노루가죽을 오려서 덧댔다. 짚신바닥을 대는데 쓰노라고 여러번 도려내서 어른이 깔고 누워도 남던 노루가죽이 인제는 손바닥만하게 되였다. 그 노루가죽은 근거지아동단침실에 있던것이였다. 짐도 많고하여 그것을 버릴가 어쩔가 하고 여러번 망설이다가 버리기는 아까와서 배낭에 쳐가지고 온것인데 뜻밖에도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는것이였다.

마지막으로 한남실은 광석이의 다친 손에 벙어리장갑을 만들어 주려고 자기의 솜옷을 벗었다. 말이 솜옷이지 여러번 솜을 뽑아써서 인제는 거죽만 남았다. 그래도 한남실은 목도리부분에 아직 한줌 남아있는 솜을 뽑아내서 장갑을 만들었다.···

어설픈 잠이 들었던 한남실은 잣나무가지에서 커다란 눈덩이가 떨어지면서 초목이영을 내리치는바람에 눈을 떴다. 눈보라가 일었다. 바람은 눈을 몰아다가 나지막한 초막을 사정없이 묻어버렸다.

무릎치게 쌓인 눈이 앞을 막아버렸다.

한남실은 맨손으로 서둘러 눈을 헤치기 시작했다. 입술을 앙다물고 온몸으로 눈을 헤치는 한남실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하였다.

눈보라는 여전히 초막에 눈가루를 몰아다가 덧쌓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