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제 3 장

1

 

사령부의 자취를 뒤쫓으며 숨가쁜 행군을 해오던 리경준일행은 녹기 시작한 사하진펄에 맞다들면서부터 사령부일행의 말발굽자리를 잃게 되였다. 모험삼아 진펄에 들어섰다가 도저히 그 위험한 소택지의 건너편기슭까지 무사하게 가댈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그들은 할수 없이 되돌아나와서 진펄을 피하여 험한 산발을 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들일행이 진펄을 되돌아서 나오게 되였을 때 최선금의 눈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슬이 맺혔다. 그는 웬일인지 걱정스럽고 불안하게 살펴보는 남편의 눈길과 부딪쳐서야 자기가 눈물을 흘린줄 알고 바삐 씻어버렸다.

일행은 사령부의 자취를 따라갈수 없게 된 조건에서 이제는 행로를 귀틀집로인이 전해주던대로 무송방향으로 잡을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무송의 그 어디에 먼저 가있을지도 모르는 사령부를 찾기 위하여 남부로야령산줄기의 험한 산발과 골짜기를 타고 넘으며 점점 더 어려운 행군을 이어갔다.

밤이였다.

이날도 힘겨운 행군에 지친 일행은 잣을 우린 더운 물을 마시고나서 여느때없이 곧 노그라떨어졌다. 아무리 지쳐도 꼭꼭 불에 끄슬린 군용밥통을 닦고서야 잠간 눈을 붙이던 장철구도, 동지들이 잠든 사이에 찢어진 옷을 꿰매주느라고 질척해진 눈덩이로 눈시울을 비비며 갈마드는 졸음을 쫓아버리던 최선금도 자기의 엄격한 생활질서를 버린듯싶었다.

유독 일행의 년장자이며 오랜 투쟁경력을 지닌 사람답게 늘 일행에게 은근히 관심을 돌리던 리경준만이 자기는 결코 잠들지 않았으며 언제나 일어날 용의가 되여있다는듯이 다리를 가드라뜨리고 나무밑둥에 엇비듬히 허리를 기대고있었지만 본인의 마음은 어떻든간에 텁수룩한 구레나룻이 자라있는 머리는 중심을 잃고 이쪽저쪽으로 군드렁거리고있었다.

바람도 잦아들고 대기는 푸근했다. 방금 헝겊으로 훔쳐낸듯이 맑게 개인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곱게 흐르고있었다. 다감하고 어딘지 모르게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밤이였다.

일행이 쉬고있는데서 얼마간 떨어진곳에 가지만 엉성한 쇠스래나무 한대가 서있었다. 그밑에서 장기령이 총을 메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보초를 서고있었다.

그는 별안간 새여나오는 한숨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어지러운 환영을 쫓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장기령은 어쩔수 없이 몸서리쳐지고 치욕스럽게 생각되는 그 저주로운 일을 다시금 회상하게 되는것이다. 일행과 같이 행군을 할 때는 어려운 일을 찾아하는것으로 그 저주로운 회상에서 벗어나던 장기령이였다. 그러나 홀로 보초를 서고있는 지금은 일감을 찾을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장기령은 《민생단》의 루명을 쓴것이 더없이 억울하였지만 그보다도 자기가 견결히 싸우지 못한 탓으로 귀중한 혁명동지를 잃었다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쓰리군 하는것이였다.

장기령은 오만복과 한 지주집에서 2년동안 같이 머슴살이를 하였다. 여름이 되면 그들은 지주집 외양간우에 있는 다락에서 자군 하였는데 오만복은 언제나 바깥쪽에 누웠다. 잠을 갈개는 장기령이가 다락에서 떨어질가봐 념려해서였다. 한밤중에도 오만복은 장기령이 제자리에 누워있나 해서 손으로 더듬어보군 하였다. 그들은 동갑이였으나 오만복은 장기령보다 키가 작아서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두형제가 한 지주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줄로 여겼다. 유격대에도 한날한시에 입대하였다. 그들은 근거지해산에 따르는 여러가지 뒤일을 처리할데 대한 사령관동지의 특별지시에 의하여 함께 근거지에 떨어지게 되였다.

그날이 바로 근거지인민들의 소개를 이틀 앞둔 날이였다. 유격대원들은 떠나는 인민들에게 식량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적의 수송대를 습격하게 되였다. 그날 유격대원들은 열다섯포대의 밀가루를 로획했는데 오만복이 메고온 포대에는 썩은 밀가루가 들어있었다.

종파분자들은 그가 유격대와 인민들간에 쐐기를 박으려고 고의적으로 그런 밀가루포대를 메고왔다고 생트집을 걸어 《민생단》으로 몰았다.

그런줄 모르고 마을에 내려가 인민들의 행장을 돌보아주다가 돌아오던 장기령은 천만뜻밖에도 길가에서 구의 무슨 책임자라는 종파분자와 두 경호원에게 호위당하여 오는 오만복과 맞다들렸다.

웬일인가고 물었더니 그자는 대뜸 《민생단》이라고 하였다. 종파분자들은 《민생단》혐의를 받은 동지들을 다소 동정하기만 해도 《민생단》감투를 씌우려고 덤벼들었지만 장기령은 자기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할사이가 없었다. 장기령은 그자의 앞길을 막아나서며 자기가 보증할터이니 묶은 오만복의 손을 끄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자는 너털웃음으로 장기령의 요구를 잘라버렸다. 보증을 서겠으면 오만복의 속을 버선목처럼 뒤집어보이라고 하였다. 장기령은 격분하여 그자의 가슴을 떠박지르고 뚝심으로 오만복을 구원하려고 하였다. 격투가 벌어졌다. 장기령은 주먹으로 치고받고 하면서 사자처럼 싸웠다. 그러나 상대방은 셋인데다가 경호원은 장총을 가지고있었던 탓으로 결국 동무를 구원하지 못하였을뿐더러 그자신도 붙들렸다. 장기령은 너무도 분하고 억이 막혀 《이놈들, 이놈들!》 하고 소리를 지를뿐이였다. 장기령과 오만복은 각각 다른곳에 갇히였다.

그 일이 있은지 며칠 지나서 울분에 차서 밖을 내다보던 장기령은 산에 끌려가는 오만복을 보았다. 두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오만복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무엇인가 힘을 주려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것은 《내 걱정은 말라. 너나 무사히 잘 싸우라.》고 하는 뜻이였으나 장기령에게는 《기령아, 날 구원해다오.》라는 뜻으로 안겨왔다. 더우기 동무를 안심시키려고 부러 그 커다란 눈에 웃음을 지으려다가 뜻밖에 볼편을 실룩거리게 되여 외면하던 오만복의 모습은 가슴을 쥐여뜯는듯 했다.

종파분자들은 장기령을 《민생단》으로 몰려고 갖은 악랄한 짓을 다하였다.

처음에는 오만복이 《민생단》이라는것을 인정하라, 그러면 석방시키겠다고 하였다. 장기령이 응하지 않자 이번에는 반대로 《혁명의 흉악한 원쑤》인 오만복을 분별없이 두둔해나선 사건도 그렇고 왜놈들과 싸울 때 장기령이 기관총으로 련발사격을 할 대신 점발사격만 한것은 왜놈《토벌대》놈들을 살려보내기 위해서이며 《민생단》이 아니고서는 감히 그런 짓을 못한다고 하였다. 장기령은 기관총명사수였다. 그는 련발사격을 하지 않았다. 짧은 점발사격으로 탄알을 아끼면서 탄알 한발로 두놈, 세놈의 적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그의 점발사격솜씨에 감탄하던 그들이 오늘은 불시에 그것을 《민생단》의 작간이라고 하는것이였다. 장기령은 모든것을 부인했다.

그후 장기령은 석방되였다. 석방이라기보다 추방되였다. 혁명대오에는 있을수 없으니 갈데로 가라고 쫓아버린것이였다.

지금도 구원을 바라듯 고개를 끄덕이던 오만복의 모습과 부러 웃음을 지으려다가 볼편을 실룩거리며 외면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밟혀왔다. 장기령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그럴 때마다 이제는 수백번이나 되풀이한 생각을 곱씹는것이였다.

(그때 내가 우둔했지, 단독으로 그자들에게 달려들것이 아니라 동무들에게 알리여 조직적으로 해결하는것이였어. 내가 우둔한 탓으로 오만복이 잘못되였지.)

장기령이 추방되여나왔을 때는 근거지에 남아있던 인민들도 떠나가고 공작차로 남아있던 동무들도 어디론가 떠난 뒤였다. 장기령은 정처없이 숲속을 헤매였다. 다행히 리경준부부와 맞다들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스스로 자결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장기령은 《민생단》의 루명을 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우둔했던 탓으로 동무를 잘못되게 한 자기만은 장군님 앞에 나설수 없다고 단정한것이였다. 그러나 리경준부부와 장철구를 만났을 때 장기령은 새삼스레 자기는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만은 꼭 장군님의 품에 안기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였다.

쇠스래나무가 바람에 설레였다. 장기령은 어린애의 천진한 눈망울처럼 시름을 모르고 반짝이는 별들을 부러움에 차서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한남실의 눈을 련상시켰다. 한남실은 아동단책임자였다. 두사람은 이렇다할 말을 건넨적은 없었지만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 떨어져있으면 그리워지고 정작 만나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말없이 묵묵히 앉아있는 그들이였다. 언뜻 자기에게 돌려지는 한남실의 맑디맑은 눈길을 느낄 때마다 장기령은 마주보는것마저 저어하여 외면하군 하였다.

(한남실동무가 이 장기령이 《민생단》원으로 몰린 사실을 안다면?)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떠올랐으나 장기령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치사한 일에 한남실이를 끌어들이는것은 죄악으로 여겨졌고 또 이런 경황에서 다정한 녀성에 대하여 생각하는것부터가 용서할수 없는 일로 여겨진것이였다.

이게 다 그 편지탓일게야··· 이렇게 생각하며 장기령은 편지를 건사한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일전에 한남실이 부탁하더라면서 장철구가 전해준 편지였다.

문득 숲속에서 바스락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나무가지사이로 예리한 쇠끝같은것이 번쩍이였다.

순간 장기령은 긴장했다.

한무리의 검은 그림자가 총창을 총에 꽂은채 허리를 구부정하고 바로 장기령과 열댓걸음 사이를 두고 지나려는 참이였다. 장기령은 륙감적으로 적이라는것을 느꼈다. 놈들은 장기령의 일행이 이곳에 있는것을 모르는것 같았다. 그것은 놈들이 눈무지며 나무가지들을 마구 밟으며 가고있는데서 알아볼수 있었다. 그러나 놈들의 방향은 일행이 쉬고있는 자리와 잇닿아있는것이였다. 장기령은 얼결에 장총을 그러쥐였으나 쏘지를 못했다. 동무들에게 알리자니 이미 때는 늦었고 그렇다고 하여 총소리를 내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지 몰라서였다.

한순간을 지체할수 없었다. 장기령은 식은땀이 등골로 흐르는것을 느끼며 대렬선두에 선놈을 겨냥하여 쏘았다.

총성이 울리고 앞선놈이 비명과 함께 꺼꾸러지자 적들은 주춤거렸다. 장기령은 얼결에 발밑에 짚이는 돌을 집어들어 놈들을 향해 냅다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그의 과감한 행동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검은 그림자들은 술렁이였고 뒤이어 나무그루에 총탁을 부딪치는 소리며 격발기틀 여닫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울렸다. 그는 뒤걸음질을 치면서 또다시 소리를 쳤다. 이번에는 술렁거림 대신에 숲속이 번쩍하면서 단단한 바위가 짝하고 갈라지는것과 같은 야무진 소리가 났으며 그와 동시에 꽛꽛한 나무가지가 그의 어깨우에 떨어졌다. 이어 숲속에서는 줄번개가 인듯 불꼬리가 수없이 번쩍거렸다.

순간 장기령의 두툼한 입술은 피여오르는 미소로 하여 벙싯거렸다. 적들을 자기에게 유인하여 동지들을 구원할수 있게 되였다는 생각이 이런 다급한 정황속에서도 기쁨을 준것이였다.

장기령은 얼마간 달리다가는 돌아서서 소리를 치고 소리를 치고는 또 달리였다. 총알이 비오듯 하였으나 그는 한번도 허리를 굽히지 않고 꿋꿋이 달려갔다. 이러한 때 전투원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것을 모르는바는 아니였다.

후에 장기령자신이 자기 행동에 대하여 총화한바이지만 그는 사실 차라리 놈들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희생되는것을 바랐던것이다.

날이 밝을무렵에야 총소리는 뜸해지고 놈들은 기진해서 어디로인지 사라졌다. 장기령은 움푹진곳에 앉으려고 하였으나 자기도 모르게 눈우에 펄쩍 늘어지고말았다.

그의 눈앞에는 밤하늘에 곱게 비꼈던 은하수며 초롱초롱한 별들이 흘러갔고 무사했을 장철구며 최선금의 얼굴들이 번갈아 떠올랐다. 그들은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있었다. 그러나 리경준을 회상하였을 때 속이 깊은 사람이 되여서 그런지 말없이 일행을 책임지고있어서 그런지 웃을 대신에 시무룩해서 그를 바라보는것이였다.

왜 그럴가? 장기령은 언뜻 간밤에 왜놈들과 맞다들린 순간 당황했던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그때처럼 그의 등골로 식은땀이 흘렀고 숨이 가빠졌다. 그는 자기가 과오도 무서운 과오를 저질렀다는것을 비로소 똑똑히 깨달았다.

(보초가 적들이 턱앞까지 기여든것을 모르고있다니, 이 얼마나 엄중한 일인가? 딴 구실이 없는거지. 잡념에 빠졌던걸. 그래놓고서는 자기가 동지들을 구원한것처럼 생각했었지. 너절해. 너절하지 않구. 장기령이! 언제부터 이렇게 너절한 인간이 되였나? 그리구두 네가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는 유격대원이라구? 어림없지. 아ㅡ)

그것은 유격대에 입대한후 그가 범한 첫 과오였다.

리경준이 움푹진곳에서 장기령을 찾은것은 정오가 가까운무렵이였다.

그때까지 장기령은 눈우에 반듯이 누워서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않고있었다.

그가 리경준이 뒤를 따라갔을 때 일행은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명일이와 명숙은 아저씨가 왔다고 팔에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기뻐하는것을 보니 장기령은 더욱 괴로왔다.

장철구는 기쁘다는 말 대신에 눈에 띄우리만치 해쓱해진 얼굴에 웃음을 담고 머리를 돌리고 앉아서 배낭뒤에 매달려있는 두개의 밥통을 풀었다. 밥통을 만지는 그의 손등에 한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장철구는 떨리는 손으로 군모를 벗어 눈물을 훔치는데 머리가 반나마 빠진 정수리가 오늘따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보였다. 한낮때가 되였는데도 장기령이 오기를 기다려 아침밥을 짓지 않고있은것이였다.

리경준은 장기령의 손에서 장총을 받아쥐고 말없이 닦았고 최선금은 나무가지에 걸려 찢어진 장기령의 솜외투를 살펴보며 천천히 배낭 뒤주머니에서 바늘을 찾았다.

일행은 장기령이 무사히 돌아온 기쁨으로 하여 이날 보통때보다 두배나 되는 거리를 행군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피곤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 일행은 커다란 잣나무밑에서 숙영하게 되였다.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 장철구는 밥통을 닦아서 배낭뒤에 매달고 잣을 깠으며 최선금은 가위밥을 대고 장기령의 벙어리장갑을 기웠다.

일행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기령에 대한 존경을 더 두터이 하였으며 그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였다. 누구도 그러한 심정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장기령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은 한결같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그럴수록 장기령은 그들의 눈길을 피하듯 고개를 떨구고 앉아서 너울거리는 불길을 바라보고있었다.

《놈들이 장동무한테 된벼락을 맞고 혼줄이 났지. 그놈들이야 이 한적한 밀림속에 유격대가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라구.》

리경준은 눈밑에서 긁어온 마른풀을 고르롭게 펴면서 얼핏 장기령을 쳐다보았다. 장기령에게 말을 시키려는 눈치였으나 그는 여전히 잠잠했다.

《정말 다행이였어요. 나는 우지끈하고 총소리가 나는바람에 얼결에 밥통을 찾았는데 어디 쉬이 손에 잡혀져야지요.》

장철구는 잣을 까다 말고 진정이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장기령은 더는 참을수 없었다. 그는 자세를 바로 잡으며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 제가 잘못한 탓이였습니다.》

뜻밖의 소리에 일행은 일손을 멈추고 장기령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은 한결같이 웬일이냐고 묻고있었다.

《잘못이라니? 장동무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지 마오.》

하고 리경준은 타이르듯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과오를 범했습니다.》

장기령은 리경준의 말을 밀막듯 떨리는 목소리로 황급히 말했다.

장기령은 가슴이 답답한듯 가쁜숨을 내쉬였다.

《저는 보초를 서면서 쓸데없는 잡념에 잠겨있었습니다. 그래서 적들이 턱밑에까지 기여드는것도 모르고··· 사실 저는···》

이번에는 리경준이가 아니라는듯 머리를 저었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소. 장동무가 보초를 잘못 섰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한자리에 앉아있을수 있겠소? 그런 소린 애당초 하지도 마오.》

최선금이 벙어리장갑을 깁다 말고 나무라듯 말했다.

《어두운 밤이니까 그럴수도 있지 않아요? 그게 무슨 과오겠어요. 장동무가 너무 그러면 오히려 우리가 괴로와요.》

장철구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만두고 장기령에게 측은한 눈길을 보내였다. 동지들의 따뜻한 말을 들을수록 장기령은 점점 더 얼굴을 붉히며 괴로와하였다.

《아닙니다. 동무들은 아직 저의 과오를 모릅니다. 저는 보초의 임무를 잊어버리고 딴 생각에 정신이 팔렸더랬습니다.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우등불가에는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제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한참후에 장철구가 살며시 머리를 들었다.

《장동무의 심정은 리해할만 해요. 저도 자기 문제때문에 때로 맥을 놓기도 하고 일손이 잡히지 않아서 멍하니 있기도 하였습니다. 장동무라고 어떻게 자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수 있겠어요? 그게 무슨 과오고 여기에 무슨 책벌이 있겠어요?》

장철구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본인이 있는데서 이런 말을 해서 안됐지만 장동무가 희생적으로 적들을 끌고가지 않았더라면···》

개회도 없고 의제도 상정되지 않은 회의는 이렇게 시작되였으나 누구도 그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철구어머니 말씀이 옳아요.》

최선금은 동정어린 눈길로 장기령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생각엔 량심의 가책은 받을수 있겠지만 비판받아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아져요.》

선금은 이렇게 말하고 일손을 잡았으나 바느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리경준이 말할 차례였다.

최선금과 장철구는 은근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가 속시원한 소리를 해서 울적한 분위기를 가셔주고 장기령의 침통한 마음을 돌려주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왔다.

《나는 그러한 내막이 있었다는걸 몰랐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엄중합니다.》

장철구와 최선금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눈길을 떨구었다. 늘 유순하던 리경준의 얼굴은 엄한 빛을 띠였다.

녀성들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해졌으나 장기령은 이런 일이 있을것을 바란듯 머리를 떨군채 까딱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하는 사람은 언제 어데서나 혁명의 원칙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루명을 쓴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혁명가임을 그만둔것은 결코 아닙니다. 더우기 일시 혁명대렬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산만무질서하게 생활할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혁명가이기때문입니다. 혁명가들이 생활하는데는 반드시 혁명질서뿐만아니라 혁명적인 도덕과 의리도 따르는 법입니다.》

리경준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하였다.

《장동무의 자기비판은 정당합니다. 보초가 자기 의무를 잊어버리고 잠념에 빠져있었다는것은 엄중합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과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어려운 행군을 합니까? 육체적인 생명이나 구하자는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혁명을 하자고, 그래서 잃어버린 조국을 찾자고 이렇게 어려운 행군을 하는것입니다.》

우등불에 사려놓은 나무가지가 탁탁 튀였다. 잣나무가지에서 솔방울만 한 눈덩이가 떨어져 우등불속에 들어가더니 씩ㅡ 하고 녹아버렸다.

《우리는 누가 모이라고 해서 모인것도 아니고 우리스스로 우연히 만나서 한집단을 이루었습니다. 여기는 명령하는 사람도, 그에 복종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같이 혁명적인 생활질서에 복종하고있는것입니다. 이런 혁명적인 생활질서가 없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견디여내지 못할것입니다.》

최선금과 장철구도 고개를 숙이고 서로 억울한 처지에 빠진것을 동정한 나머지 원칙보다 인정에 흘렸던 자신을 뉘우치고있었다.

이윽고 장기령은 동지들의 비판이 고맙다고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하고나서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것을 엄숙히 맹세하였다. 그러면서도 오만복과의 사이에 있었던 치욕스러운 이야기는 끝내 하지 못했다.

모임이 끝나고 리경준이 장철구와 보초를 교대하고 우등불가에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났다. 최선금은 그냥 우등불가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있었다.

《밤이 깊었는데 그만하고 쉬오.》

리경준은 안해의 건강이 념려되여 이렇게 말했다.

《이젠 다 됐어요. 장동무의 장갑이 판이 났길래 하나 지었어요.》

최선금은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거 잘했소.》

최선금이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지나치지 않았어요? 아직 어린 동문데···》

리경준은 안해가 장기령을 두고 하는 소리임을 인차 알아차렸다.

《장동무가 깊이 잠들었소?》

《예. 몹시 피곤했던가봐요.》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리경준은 만족한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면 됐소. 깊이 잠든걸 보니 비판이 지나치지 않은것 같소.》

《그러지 않아도 여러가지로 괴롭겠는데··· 좀 따뜻하게 이야기해줄수 있지 않아요?》

《모르는 소릴 마오. 장동무가 먼저 자기 과오를 우리들앞에서 공개하지 않았소? 그는 비판을 받기를 원했던것이요. 회의도 아닌데서 그것도 자기만이 알고있는 결함을 내놓고 자기비판을 할 때 나는 무척 놀랐소. 내가 장동무한테 도리여 큰 교양을 받았소. 장동무를 잘 도와줍시다···》

최선금은 그제서야 남편의 뜻을 리해하였는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며 《예.》 하고 대답하였다.

리경준부부는 장기령과 날로 수척해지는 장철구를 두고 오래동안 걱정을 하였다.

《보초는 서지 말라구 그렇게 사정하는데두 기어코 서겠다고 하질 않소. 인차 나가서 교대해줘야겠소.》

《남성동무들이 수고를 많이 한다구 말끝마다 걱정해요.》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리경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여보···》

최선금은 왜 그러느냐고 묻는듯 한 눈길로 리경준을 바라보았다.

《여보,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당신이 약한 마음을 가지면 되오?》

《무슨 일인데요?》

최선금은 눈을 치뜨며 조용히 되물었다.

《당신이 눈물을 흘리다니. 원 당신답지 않소.》

《아니? 제가 언제 눈물을 흘렸게요?》

《전날 사령부의 자취를 놓치구 진펄에서 돌아설 때말이요···》

그제서야 최선금은 눈에 미소를 담고 머리를 숙이였다.

《정말 그땐 어떻게 할수 없었어요. 막 가슴이 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는게··· 금시 장군님을 만나뵈옵게 되는줄 알았는데 사령부의 자취를 놓치게 되니 이러다 만나뵙지 못하구 말지 않겠는가 겁이 나구 막막해지겠지요. 그렇다구 제가 마음이 약해져서만 그런건 아니예요.》

최선금은 고개를 돌려 먼 하늘가의 별빛을 우러렀다.

《나도 당신이 정 약한 마음에서 그런게 아니라는걸 모르진 않소. 그리움이 사무치면 누구나 눈물을 흘리기마련이지. 그건 결코 약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요. 그러나 아이들은 그 눈물을 다르게 받아들일수도 있지 않소? 그날 당신이 그러니 멋모르던 아이들은 내내 울적해하질 않았소?》

《저도 미처 제가 아이들앞에서 눈물을 보이게 된줄 몰랐어요. 그때 저는 장군님께서 근거지 부녀회사업을 돌봐주시러 나오셨던 일이랑, 제가 처음으로 장군님의 군복을 지어드렸을 때 몹시 기뻐하시며 변변치도 못한 저의 재봉솜씨를 높이 치하해주시던 일이랑 생각던 때였어요. 그때 장군님께서는 저더러 선금동무는 재봉기라는걸 구경도 못하구 자랐고 근거지에 와서 처음 재봉일을 배웠는데 정말 솜씨있게 지었다고 하시며 장군님의 어머님께서 삯바느질을 하시며 고생하시던 지난 일이랑 들려주셨댔어요. 전 그때 첨으로 장군님의 어머님 이야길 들었댔어요··· 그런것을 두루 더듬으니 장군님을 만나뵈올 생각이 더 간절해졌는데 그만 사령부의 자취를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그래 그만··· 그렇게 되였어요.》

조용히 말하던 최선금의 눈에는 또 전날 진펄에서 돌아설 때와 같은 맑은 이슬이 맺혔다.

안해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먼 하늘가의 별빛을 보고있던 리경준이도 눈굽이 뜨거워졌다.

이밤, 장군님께서는 어디 계시는지? 귀틀집로인이 말해주던대로 과연 건강하신지? 전번 북만원정에서 돌아오셨을 때처럼 축가시지는 않으셨는지?

그들 부부는 저마끔 장군님에 대한 생각에 잠긴채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우등불만 이따금 탁탁 불찌를 튕기며 타올랐다.

《엄마, 저기 잣송이!》

하고 불쑥 명일이가 잠꼬대를 하면서 덮었던 솜외투를 차던졌다.

리경준은 아이들이 차던진 솜외투를 덮어서 꼭꼭 여며주고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명숙이도 인제는 다 자랐소, 전번에 엄마는 장군님 만나면 눈물 안흘리나 하고 엉뚱한 소리를 했지···》

최선금은 조용히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얘들은 정말 총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면서 자랐소. 눈보라와 비바람을 맞으면서말이요.》

《얘들이 크면 저희들이 자라던 때를 알기나 하겠는지 모르겠어요.》

《왜 모르겠소. 다 회상할거요. 그 애들이 크면 우리가 무엇때문에 이 힘겨운 행군을 했구 무엇때문에 장군님을 찾아 천리눈길을 헤쳤는가를 다 리해하게 될거요. 그때면 오늘을 두고 옛말처럼 외우게 되겠지. 혁명이 승리한 다음에 장군님을 해방된 조국땅에 모시고 우리가 이 밤을 회상할 그때를 상상해보오.》

부부는 행복한 그날을 눈앞에 그려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밤하늘에서 별찌가 꼬리를 길게 내뿜으며 아득히 멀리 밀림 저쪽변두리로 흘러갔다.

날이 밝자 일행은 또다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