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2

 

제 2 장

2

 

밤중에 새로 갈아대였던 두번째 초대도 이제는 손가락 한마디기장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새벽닭은 두홰째 울었다.

책에 열중하신 장군님께서는 닭울음소리를 듣지 못하시였다. 행군중의 휴식짬과 숙영의 밤에 틈틈히 사흘째 읽으시는 책이였다. 어떤 책이건 일단 시작하시게 되면 끝까지 철저히 읽으시고마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갑자기 너무 밝아지는 초불에 눈길을 돌리신 그이께서는 성냥개비로 거의 타서 처져내린 새까만 심지를 끊어내시고 대밑에 흘러내려 고드름처럼 엉켜붙은 초쪼각들을 뜯어 불심지옆에 올려놓으시였다. 불길은 곧 움츠러들었으나 잠간사이에 얹어놓은 초쪼각들을 녹여버리고는 다시 키를 솟구었다.

그러기를 몇번, 마침내 심지가 다 타기전에 마지막 책장을 덮으신 장군님께서는 회중시계를 꺼내보시였다. 곧 주무시면 두시간쯤은 쉬실수도 있으시였다.

장군님께서 주무시기전에는 자기들도 자지 않겠다면서 공부를 하던 봉길이와 종삼은 어느새 노그라져버렸는지 들어가도 모르게 정신없이 자고있다. 사령부의 행군서고로 되고있는 책배낭은 봉길의 베개가 되여 그의 잔등과 머리밑에 깔려있었다.

열여섯, 아직 한창 자랄 나이인데다 익숙치 못한 행군에 어지간히 지친 모양인지 제법 코고는 소리까지 낸다.

손수건으로 봉길이의 입언저리와 뺨을 닦아주시고나신 장군님께서는 움쭉 허리를 펴시고 봉길의 곁에서 일어나시려다가 전령병의 머리맡에 둔 책을 보시였다. 어떤 불의의 정황이 생긴다해도 곧 행동할수 있도록 책을 배낭속에 넣어두는것도 필요했지만 전령병들이 편하고 뜨뜻이 쉬게 하기 위해서도 그들을 자는대로 두실수 없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주무실 자리로 내여놓은 방아래목에 봉길이를 조심스럽게 들어옮겨눕히시였다. 책배낭에 책을 간수하시고 웃목에서 새우잠을 자는 종삼이도 옮겨눕히시였다. 그래도 전령병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저절로 다 사위여가는 초불을 불어끄신 장군님께서는 뙤창가의 맨 웃목에 누우시였다. 빨간 반점이 되였던 초불심지는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방문에는 달빛이 환했다. 달이 퍼그나 기울었는지 사이 뜬 문살들이 폭넓은 그림자를 진하게 비꼈다. 지금쯤 달은 아주 둥그러져서 저렇게 밝은지 모른다.

달이 아주 둥글게 영글면 보름이다. 음력 2월보름이다.

생일날이면 혈육이 더 그리워지는 법이다. 래일은, 아니 오늘은 봉길이를 섭섭치 않게 해주어야 한다.

처절썩··· 문앞에서 무엇이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동기와지붕처마끝에서 떨어진 고드름인듯 하였다. 환한 창문지에 고드름그림자들이 비꼈다. 아래로 길게 드리운 그 그림자끝부리에서 이따금 락수방울 그림자가 언뜻거리고 뒤미처 쭐벙쭐벙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눈이 다 녹아버리면 새 움이 트고 꽃피는 계절이다.

봄! 1936년의 봄, 우리 조선혁명이 활짝 피여날수 있는 봄, 조선혁명을 일대앙양에로 이끌어올리시기 위하여 하셔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은 봄이다.

갓 진행한 남호두회의의 결정대로 무장투쟁을 더욱 확대하여 국내에까지 들어갈 준비를 갖추며 조국광복회의 기치아래 전민족을 굳게 단합시키며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독자적인 당을 창건하기 위한 조직사상적준비도 힘차게 내밀어야 할 봄이다.

이 모든 사업을 풀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먼저 인민혁명군대렬을 튼튼히 꾸리고 확대하여야 한다. 적들에게 심대한 군사정치적패배를 안겨주는데서는 두말할것도 없고 민족통일전선결성에서도, 당창건의 준비에서도 인민혁명군은 주추돌로, 기둥으로 되는것이다. 그 고리부터 풀어야 다른 모든 고리들이 풀린다.

인민혁명군을 정비, 보강, 확대하는데서 가장 중요하게 취해야 할 조직적대책은 사령부의 친위대로 될 새로운 사단을 편성하고 튼튼히 꾸리는것이다.

사령부가 친솔하게 될 이 새로운 사단은 전체 조선인민혁명군의 핵심으로, 주력으로, 본보기로 되게 꾸려야 한다. 앞으로의 국내진공을 비롯한 인민혁명군의 모든 군사작전과 군사행동은 바로 이 새로운 부대를 주력으로 삼아 수행하도록 해야 할것이다.···

엇갈려 갈마드는 궁금하신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해지시여 잠 못 이루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갑자기 자지러지게 짖어대는 개소리에 생각을 깨치셨다. 마을끝에서 여러 마리가 짖어댔다. 무슨 일이 생긴것인가? 낯선 사람이 마을에 나타난것인가? 순찰대원을 보고 짖어대는것일가?

한동안 소란스럽게 짖어대던 개소리는 점차 뜨음해졌다. 이따금 컹컹 짖다가 얼마후에는 아주 잠잠해졌다.

그러나 몇분쯤 지나서 다시금 일제히 짖어대는 소리가 일더니 그 소리가 점차 가까이로 옮겨왔다.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무슨 정황이 생긴듯 했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달빛어린 방문턱밑에 들여놓아두셨던 지하족을 신으시여 바깥소리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시였다.

두사람의 발걸음소리였다. 한사람의 발걸음소리는 규칙적이였고 다른 한사람의 발걸음소리는 한쪽발을 살룩살룩 저는 발걸음소리였다. 먼길을 온 통신원들이 아닌가?

집근처에 와서 그 발걸음소리는 동안이 떠지는것 같더니 사립문밖에서 멎어버렸다. 사처에서 개들이 기승스럽게 짖어댔다.

창호지를 바른 출입문 한가운데 붙어있는 손거울만 한 유리쪼각을 통하여 바깥이 내다보이였다.

달빛 푸른 마당에 시꺼먼 그림자를 던지며 솟아있는 발구채옆에서 세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한사람의 어깨우에서는 날창이 서늘한 빛을 뿜고있다. 보초근무를 서고있는 경위대원 문룡이였다.

멜띠 달린 군복에 권총을 차고 귀덮개를 올린 털모자를 쓰고있는 사람은 경위대장 리북철이였다. 항상 사령부호위에 신경을 쓰고있는 리북철은 어쩌다 눈무지속에 박혀 잠자게 되는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추운 때라도 절대로 귀덮개를 내리워놓는 법 없이 지내는 사람이다. 그의 별명과 같이 《밝은 귀》를 언제나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모자를 벗어들고 주무르며 이 집을 향해 서있는 세번째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으셨다. 달빛은 시원한 이마만 륜곽을 드러내보인다. 일행중에 저렇게 번듯한 이마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여시고 마루에 나서시였다.

《북철동무,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사령관동지께서 불쑥 문을 여시고 나오시는것을 본 리북철은 저으기 당황했다.

《아니, 별일이 없습니다.》

북철은 어물어물 대답하며 슬며시 곁사람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어서 물러나자는 신호였다.

《그건 누굽니까? 먼길을 걸어온것 같은데.》

장군님께서는 낮고도 웅글은 목소리로 물으시며 마당에 내려서시였다.

뜻하지 않은 정황에서 피할 도리가 없게 되였다는것을 깨달은 순간 리북철은 몸가짐을 바로잡고 보고를 드렸다.

《강세호동지가 찾아왔습니다. 저희네 중대 정치지도원으로 사업하던···》

《옆에 선게 세호동무란말이요?》

《네.》

장군님께서는 천만뜻밖이시였다.

그를 생각하실 때마다 이번에 미혼진에서 만나시게 되면 다행이리라 여기시였던 강세호였다. 미혼진에도 오게 될지 말지 걱정스럽던 그 귀중한 사람이 사령부가 지나다가 하루밤 자고가게 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돈화오지의 작은 산간마을에 나타나게 될줄은 장군님께서도 짐작하시지 못하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급해진 걸음으로 강세호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강세호도 부르튼 발을 가볍게 살룩거리며 장군님 앞으로 마주 달려왔다. 그대로 장군님의 품속에 안겨들듯 다가오던 강세호는 겨우 자신을 다잡고 두어걸음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춰서며 털모자굽에 오른손을 올려다붙였다.

《사령관동지!!》

기쁨에 겨워 아뢰는 그의 목소리는 감격의 목메임속에 잦아들었다. 이전보다 퍽 수척해서인지 관골이 더 두드러진듯 한 그의 량볼에서는 두줄기의 눈물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왔구만! 동무가 왔구만!》

장군님께서는 몹시 그리웠던 전사를 가슴에 부둥켜안으시였다. 전보다 어쩐지 더 넓어진듯 한 강세호의 어깨와 잔등이 소리없는 감격의 흐느낌에 물결쳤다. 이 억센 사내대장부의 뜨거운 눈물을 대하시는것은 얼마만이시였던가? 로야령의 낯선 외딴 집에서 처음으로 정신이 드시였을 때 첫눈에 뜨인것이 바로 이 강세호의 눈물범벅이 될 얼굴이였다.

이번 북만원정을 떠나시기전에 그에게 정치공작임무를 주시고 공작지로 떠나보내실 때에도 역시 눈물이 그렁해지던 강세호였다.

《반갑소. 동무가 이렇게 살아 돌아와서 고맙소!》

장군님께서는 강세호의 어깨를 떼여놓으시고 그의 얼굴을 잠간 마주보시고는 또다시 꽉 그러안으시였다.

장군님의 속눈섭에도 이슬방울이 맺혀 달빛에 반짝이였다.···

《손을 잡아보니 강세호가 분명키는 분명쿠만.》

포옹이 거듭된 뒤 마침내 강세호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가시려고 그의 손을 잡으신 장군님께서는 새삼스러우신듯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강세호의 손을 잡으신 순간 오가자에서 머슴살이를 할 때 작두질을 하다가 다친 허물자리를 감촉하신것이다.

《부상당했던 상처는 다 아물었소?》

《다 아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리는 저오? 왼발에 관통상을 받았댔다지?》

《네, 다 나아서 이렇게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모르겠다, 정말인지···》

장군님께서는 혼자말씀으로 뇌이시며 미심쩍게 웃으시였다.

강세호는 마주 웃는 가운데서도 장군님의 신색을 살피고 또 살피군 했다.

강세호의 마음을 알아차리신 장군님께서는 유쾌히 말씀하시였다.

《내가 또 촉한이라도 걸리지 않았는가 해서 그러는게 아니요? 이번엔 일없소. 감기에도 안걸렸습니다. 그런데 련락갔던 현팔동무는?》

장군님께서는 리북철을 돌아보시며 물으시였다.

《현팔동무도 같이 무사히 왔습니다. 제가 아침에 만나뵈라고 했습니다. 강세호동지도 뵙기는 아침에 만나뵙겠는데 사령관동지께서 주무시는 이 집울타리밖에까지만이라도 와보자구 해서···》

장군님께서는 조금이라도 가까이 와있고싶어했을 강세호의 뜨거운 마음을 느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정겹게 강세호를 돌아보시였다. 그러나 강세호는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자기를 어색하게 만든다고 나무라듯 리북철을 슬쩍 흘겨보았다. 그런 눈치를 챈 리북철은 강세호이야기를 중둥무이하고 보고드려야 할 다른 이야기를 마저 말씀올렸다.

《그밖에 또 두사람이 같이 왔습니다. 강세호동지가 데리고 온 사람들인데 그들은 현팔동무와 같은 집에서 쉬도록 했습니다.》

리북철의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다시 강세호를 돌아보시였다.

《데리고 왔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제가 데리고 온게 아니라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데리고 온게 아니구 따라왔다?··· 가만 이렇게 여기 서있지 말구 들어가서 들읍시다. 우리가 떠들어서 주인집사람들이 다 깨여나겠습니다. 자 어서 들어갑시다.》

장군님께서는 강세호의 팔을 잡으시였다.

주저하며 장군님께 이끌려오던 강세호는 퇴마루밑에 이르자 멈춰서고말았다. 그는 장군님께 죄송스러운듯 아뢰였다.

《저도 같이 온 동무들한테 가서 자고 아침에 와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가기를 사양하는 강세호의 속심을 장군님께서는 대뜸 알아차리시였다. 날이 샐녘이 오라지 않았는데 장군님께서 좀 주무시게 해드리자는것이였다.

《그럼 나와 같이 잡시다. 내가 말을 시키지 않을테니.》

웃음속에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이였다.

강세호는 어줍게 뒤머리를 긁고는 장군님을 뒤따라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갔다. 리북철이도 따라들어가서 자못 궁금한 강세호의 이야기를 듣고싶었지만 방안이 비좁은데다 경계초소들을 마저 돌아보아야 할 일들때문에 바깥에 남고말았다.

두 어린 전령병들은 장군님께서 강세호를 따뜻한 자리에 앉히시느라 자기들을 약간씩 떠밀어올리고 다시 이불을 덮어주시는데도 그냥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새 초대가 배낭안에 있지만 어두운대로 그냥 잠간 이야기합시다.》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화로를 강세호앞에 옮겨놓으신 장군님께서는 부저가락으로 재속에 파묻혔던 불들을 헤집어놓으시였다.

《자, 불을 쪼이며 대체 어떻게 돼서 여기로 오게 되였는지 그것부터 좀 말해보시오. 어디서 현팔동무를 만났습니까?》

《제가 치료받고있는 화전막으로 찾아와서 상처가 나았으면 미혼진으로 오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처음엔 미혼진으로 가자고 했댔습니다. 그랬는데 남호두회의 이야기와 사령부가 나오고있다는 이야기랑 듣고나니 가슴이 끓어번져 미혼진에 가서 사령부가 나오기를 기다려낼것 같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남호두회의에도 참가 못하고 중도에서 발을 묶이운게 분하고 안타까왔댔는데 그 소식을 들으니 한시바삐 뵙고싶어서 견딜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곧장 미혼진으로 넘어가면 길도 그리 멀지 않고 고생도 덜 할텐데 채 낫지도 못한 그 발로 행처도 잘 모르는 우리를 찾아오다니? 나는 동무생각을 할 때마다 미혼진에도 꽤 와낼가 하구 걱정했댔습니다.》

자기를 나무라시듯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에 강세호는 변명처럼 말했다.

《현팔동무한테서 이번 남호두회의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조선혁명에 전력해야 한다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뜻대로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풀리고 우리 조선혁명앞에 새로운 창창한 앞길이 열리게 되였다는 이야기랑 듣고나니 한시바삐 직접 만나서 통쾌한 회의이야기를 자세히 알고싶기두 하구 새로운 방침을 받들고 하루속히 일하고싶기두 했습니다. 그래서 현팔동무를 만난 그길로 길을 떠났는데 제가 치료받던 주인집아들이 따라나서지 않겠습니까. 조두칠이라고 하는 청년인데 유격대에 넣어달라고 저한테 그냥 조르군 했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둠속에서 소리없이 웃음지으시였다.

《동무도 그 집 신세랑 지구 했으니 떠날 때 같이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겠지?》

《전 그저 어정쩡하게 말해두었는데···》

강세호는 뒤말을 어물어물했다.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하여튼 좋습니다. 부상당한 몸으로 치료를 받으면서도 유격대원까지 양성해냈으니··· 같이 데리고왔다는 다른 한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정말 제가 데리고 온것이 아니라 저절로 우리까지 속이며 따라온 사람입니다. 화룡과 연길 접경지대의 벽지에서 간이학교 선생노릇을 하는 리동백이라는 사람인데 좀 별난 사람입니다···》

강세호는 오는 도중에 바라지 않았던 동행자를 만나던 사연을 간단히 말씀드렸다.

《···이튿날 새벽에 그 집에서 다시 길을 떠날 때 그 사람도 먼길 가는 행장으로 따라나서며 자기도 다니러 올데가 있는데 한동안 길을 안내해주는겸 동행하겠다질 않겠습니까? 우린 그저 그런줄 알고 고맙게 생각하며 같이 떠났습니다. 수십리를 와도 어디까지 다녀가려는지 떨어지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 사람때문에 우리 걸음은 지체되고 해서 이제는 그만 갈데로 가라고 했지만 그냥 같이 가자고 하며 따라왔습니다. 나중에는 량해를 구하고 우리는 길이 바빠서 먼저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자기의 속심을 털어놓는데 자기는 장군님을 뵈옵기 위해서 따라나섰으니 같이 가자는겝니다···》

무슨 까닭으로 장군님을 찾아뵈옵자는가? 공식적태도로 묻는 강세호의 질문에 리동백이도 또한 정중한 태도로 그것은 이미전부터 갈망해왔던 평생의 숙망이였다고, 그이를 뵈옵는것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고, 당신네가 의심하거나 경계할만 한 불순한 동기는 자기 가슴의 그 어느 구석에도 없다고 대답하면서 만일 자기를 따라가지 못하게 하더라도 자기는 기어코 따라가야겠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는것이다.

《···한번 그렇게 말을 내놓고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을념을 안했습니다. 지레대로도 움직일수 없는 고집이였습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데리고왔습니다. 의심스러워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감시는 철저히 하라고 제가 현팔동무와 두칠동무에게 일러두었습니다.》

강세호는 이런 말로 바라지 않았던 동행자였다는 《별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맺었다.

내내 아무런 말씀도 없이 듣고계셨던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몇살이나 됐습니까?》

《마흔이 넘은것 같습니다. 코수염을 기르구 나이가 있기때문에 저하구 같이 온 동무들은 <대통령감>이라구 합니다.》

《대통령감이라니?》

《담배를 피울 때면 꼭 파이프에 담아 피우군 합니다. 그의 말을 좀 들어보니 공부도 했구 도회지물도 먹고 경력도 꽤 복잡한 인테리인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는줄은 어떻게 알고 찾았습니까? 현팔동무도 우리의 행군로정은 모르고 동무한테 갔겠는데?》

《미혼진에서 제일 가까운 돈화의 마지막마을부터 남호두쪽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찾느라면 사령부를 꼭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일이 되느라 묘령에서 잘가 하다가 달이랑 좋은김에 령을 내려와서 이 마을까지 행군해왔는데 마을어구에서 만난 첫 사람이 리북철동무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동무들을 만난건 잘됐지만 그렇게 찾아오자니 얼마나 숨차게 걸었겠습니까? 그 성하지도 못한 다리를 가지구··· 어쨌든 동무가 오니 나도 마음이 더 든든해지는구만. 참 잘 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한번 허물자리 있는 강세호의 손을 꽉 잡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강세호가 채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어찌하여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하여 행군중의 사령부를 찾아달려왔는지를 충분히 짐작하시고도 남으시였다. 강세호가 남호두회의 이후 새롭게 해결하여야 할, 전에없이 벅찬 사업들을 벌려야 하시는 장군님을 한시바삐 가까이에서 모시고 그 사업들을 보좌해드리기 위하여 달려왔음을 간파하신 그이께서는 강세호를 무척 고맙게 여기시였다.

자신께서 친히 키우신 믿음직한 지휘성원의 한사람이 지금 여기, 바로 곁에 와있는것이 장군님께서는 마음 든든하시였으며 기쁘시였다.

그이께서는 감개무량하신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도 현팔동무한테서 들어 대강 알겠지만 이번에 녕안현 남호두에서 가진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는 우리가 이제는 조선혁명을 마음먹고 크게 앙양시켜야 하겠는데 그러자면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놓고 여러날 토의하고 결정을 지었습니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일대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해서 첫째로 하자고 토의결정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조선인민혁명군이 국경지대와 국내에까지 진출해서 싸우자는것입니다. 그래야 일제의 야수적인 폭압속에서 우리를 희망의 등대로 바라보고있는 국내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희망과 혁명승리의 신심을 안겨줄수 있고 국내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지도를 능동적으로 보장할수 있으며 조국광복을 위한 투쟁에 대앙양의 바람을 일으킬수 있습니다.

우리가 국경지대와 국내에 나가 싸우자면 국경연안에 새로운 근거지가 있어야 하고 또한 우리의 무장대오를 확대강화해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이번 회의에서는 백두산일대에 새로운 형태의 유격근거지를 창설할데 대한 결정과 그곳에 나가 싸울 력량을 꾸리기 위해서 튼튼한 주력부대로 될 새로운 사단이랑 편성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했습니다.》

얼핏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부풀고 힘이 용솟음치는 장군님의 명쾌한 말씀에 흥분한 강세호는 기쁨을 못이겨 불쑥 이야기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번 조국땅에 나가서 왜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겨봤으면 하는게 큰 소원이였는데 이제 저도 그 소원을 풀게 되였습니다!》

《왜 동무만 그렇겠습니까?》

하고 장군님께서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되받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도 그렇고 모든 대원들이 다 그런 숙망을 품고있었는데 과히 멀지 않는 앞날에 그 숙망들이 풀릴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얼마만큼 빨리 새로운 주력부대를 편성하구 백두산근거지를 꾸려내는가에 따라 그 숙망을 푸는 날이 가까와질수도 있고 좀 멀어질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앞당기면 앞당길수록 그만큼 조선혁명도 빨리 앙양될것이고 나아가서 조국광복의 날도 앞당겨질것입니다.》

언제나 침착한 편이던 강세호였지만 그는 자주 앉음새를 고치며 어둠속에서 부시럭거렸다. 날듯 한 기분으로 하여 마음을 진정시킬수 없었던것이다.

《···우리 혁명의 새로운 앙양을 위해서 또한 우리가 시급하게 해결해야겠다고 토의결정한 중요한 문제는 극소수의 반동분자들을 제외한 전체 조선인민을 조국광복전선에 하나같이 묶어세우는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체를 내오자는것입니다. 온 민족의 힘을 총동원해서 일제와 맞서 싸우게 하자면 정연한 조직체계를 가진 포괄적이고 전일적인 통일전선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인민혁명군이 국경지대와 국내에까지 나가 적들을 치게 되고 전체 민족이 단합하여 광복전선에 떨쳐나서게 되면 우리 혁명은 한층 고조될것이 명백합니다. 거기에 또한 당창건준비사업까지 적극 추진시키게 되면 우리 조선혁명은 바람을 탄 불길처럼 세차게 타오를것입니다.》

강세호는 3천리조국의 온 강토에서 장엄하게 타번지는 혁명의 불길을 눈앞에 보는듯싶었다. 그것은 말그대로의 불길이였다. 그 화염속에서 순식간에 타버린 일장기가 재티로 되여 산산이 흩어지며 날아나는 통쾌한 모양도 보이는듯··· 그 장엄한 불길에서 풍기는 뜨거운 열기가 자기 몸에도 끼쳐지는듯 하였다.

《···남호두회의에서 토의결정한 이러한 방침들과 과업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백두산기슭을 향해서 먼 행군길을 떠났습니다. 이 길은 곧 우리의 새로운 투쟁무대인 국경지대와 조국땅에로 나가는 길이며 새로운 근거지를 꾸리러 나가는 길입니다. 그리로 나가는동안에 우리는 새로운 주력사단이랑 편성해서 튼튼히 꾸려야 하고 전민족을 하나로 묶어세울 반일민족통일전선체인 조국광복회의 창립도 실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백두산기슭에 가닿을 때에는 조국땅으로 진군할 군사적준비도 기본적으로 해놓고 온 민족이 단합해서 조국광복전선에 총동원할수 있는 준비사업도 다 하자는것입니다. 즉 백두산으로 나가는 이번 행군을 통하여 조선혁명의 일대앙양을 마련하자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다시 이으시였다.

《나는 이제 나가다가 미혼진에서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의 개편문제, 특히 새 사단 편성문제를 토의하자는것입니다. 그래서 동무랑 미혼진에 불렀습니다. 앞으로 새로 편성하게 될 부대를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로 만들자고 합니다. 새로 꾸리는 부대에서 동무는 튼튼한 주추돌이 돼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동무가 미혼진에 꼭 와주었으면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맺으시고 어둠속에서 눈만 반짝이는 강세호를 넘겨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강세호를 새 사단의 한개 련대를 맡기실것을 생각하시고계셨지만 그것만은 아직 말씀하시지 않으시였다. 흥분에 겨워 내내 몸을 안정하지 못하고 앉아있던 강세호는 갑자기 얼어붙은듯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사령부의 친위부대, 인민혁명군 주력부대로 될 새로운 사단의 하나의 주추돌로 믿어주시는 장군님의 크나큰 은정이 그한테는 너무도 엄청나고 아름찼던것이다. 과연 자기가 사령관동지를 떠받들어올릴 굳건한 주추돌이라 할만큼한 자격이 있겠는지 또 그렇게 책임적이고 무거운 사업을 감당할수 있겠는지? 감격스러운 동시에 아름차게도 느껴진 강세호는 소리없이 큰숨만 내쉬였다.

《동무가 너무 남호두회의이야기를 듣고싶어하는것 같아서 이야기를 좀 해준다는게 길어진것 같습니다. 자, 이제는 이만큼 이야기하고 좀 눈을 붙입시다. 이제 눈을 붙여도 한시간은 잘수 있습니다. 래일은 또 길을 떠나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강세호에게 목침을 내주시고 묵묵히 앉아있는 그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기시였다.

《어서 누우시오.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누워봅니다. 왕청에서 갈라진 후로는 처음이지?》

《네.》

《참 잘 왔소.》

《···》

《빨리 잠드는 법을 잊지 않았겠지?》

《네.》

《그럼 어서 잡시다.》

숲너머에 달이 기울었는지 창문은 아주 어두워졌다. 오래지 않아 날이 밝아올것이다.

철썩!

창밖에서는 녹아떨어진 고드름이 땅에 부딪쳐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