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

 

제 2 장

1

 

북만의 강인 목단강과 동만의 강인 할바령하는 남부로야령산줄기의 계곡들에 뿌리를 두고 하나는 동북방으로 흐르고 하나는 동남방으로 흘러내려 두만강에 들어간다.

그러나 한품속에서 태여난 두강의 지류들은 그 생김새와 성질이 배다른 형제처럼 다르다.

비교적 성급한 할바령하의 지류는 제 성미와 같이 곧은 흐름을 이루며 험한 골짜기를 내달리다가 장백산줄기에서 뻗어나온 물줄기와 합쳐질무렵에야 좀 완만해진 흐름으로 동쪽으로 꺾어져가서는 두만강에 흘러든다. 호방하고 씨원씨원한 그 성미를 닮아서인지 맑은 강물에서는 울툭불툭한 바위들이 미역을 감고 기슭에는 기암절벽이 솟고 허공에 드리운 나무들은 장쾌한 폭포가 던져주는 구슬들을 받아쥐군 한다.

그와 달리 경박호 웃쪽의 목단강 상류는 까다롭고 변덕스러운데다 음흉하기까지 하다. 물길은 바르지 않고 빌빌 탈렸고 갈래도 많다. 물곬이 어디인지 기슭은 어디서부터인지 통 알수 없다.

이 강의 상류일대는 손꼽히는 유명한 대소택지대다. 넓이가 10∼20리 때로는 사오십리씩이나 되는 습지가 펼쳐져있는 이곳에 잘못 들어서기만 하면 사람이건 짐승이건 흔적도 없이 빠져든채 솟아나오지 못한다는 무서운 대천연함정이다.

풀이나 관목덤불이 자라있는것을 보고 무심히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풀로 위장하고있었던 그 음험한 진펄이 기다렸던듯 지체없이 삼켜버리고만다. 그런 뒤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이 태고연한 침묵을 지킨다. 사람이나 짐승이 빠져들어간 자리에서는 감탕물거품이 불룩거리는 일조차 없는것이다.

소택지가 얼어붙은 겨울에만 그곳을 안심하고 지나다닐수 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가 그 무서운 사하의 대진펄지대를 무사히 횡단하던 나날들도 철로 따지면 역시 겨울날들이였다.

그러나 불과 며칠후 사령부가 무송현가까운 돈화현의 동남부지대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겨울은 물러가고 바야흐로 봄이 마중오고있다는 자연의 소식이 전하여왔다. 1936년의 첫 봄소식을 누구보다먼저 받으신분은 사령관동지이시였다. 그것은 옥수천부근 수림에서였다.

어둠이 깃든 수림속에 말을 멈춰세우시고 척후정찰을 나간 대원들을 묵묵히 기다리시던 그이께서는 곁에 있는 경위대장과 두 전령병에게 문득 조용히 물으시였다.

《동무들에게도 물소리가 들리오?》

언제나와 같이 바라지 않는 위험이 어느 시각에 어느쪽으로부터 다가들고있지나 않는가 하는데 신경을 쓰고있었던 리북철경위대장은 물론이였고 정찰나간 사람들이 나타나기만 고대하고있던 봉길이와 종삼이도 그이의 물으심에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과연 들렸다. 마치 꿈결에서처럼 어디선가 쪼르륵거리는 가느다란 물소리가 들려왔다.

《들립니다!》

먼저 봉길이가 환성을 올리다싶이 대답했다.

《들립니다!》

《들립니다!》

한종삼이와 리북철이도 잇달아 대답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예고해주는 소리인가를 온몸으로 느꼈던것이다. 그것은 눈밑에서 슴새여나온 물이 실처럼 가는 줄기를 이루어가지고 조롱박만큼이나 될 물웅뎅이에 떨어지는 소리밖에 다른것일수 없다. 그것은 분명 해묵은 풀잎을 타고 봄이 오는 소리였다.

《눈석이가 시작되는게 아닐가?》

장군님께서는 혼자말씀처럼 물으신다.

세상만사를 죄다 환히 꿰뚫어알고계시는 장군님께서 저 물소리가 봄이 오는 소리, 눈이 녹아 풀잎을 타고 작은 웅뎅이에 떨어지는 소리임을 모르시여 물으실가?

《그런것 같습니다. 날이 저문 뒤에도 오늘은 눈이 굳어지지 않고 그냥 말발굽밑에서 질적거렸습니다.》

봉길이의 대답에 그이께서는 중떠보시듯 말씀하셨다.

《래일이나 모레쯤이면 다시 꾸덕꾸덕해질수도 있지.》

봉길이 대답에 궁하여 어쩌지를 못하고있는 사이 이번에는 종삼이가 제법 경험자연한 말을 했다.

《인젠 눈이 와도 진눈까비나 오면 왔지 눈다운 눈은 오지 않을것 같습니다.》

봉길이보다 한살 맏이인 종삼이는 가끔 봉길이보다 제법 아는소리를 하군 했는데 아닌게아니라 그의 답변이 더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종삼동무도 그렇게 생각하오? 우리 종삼이가 그렇다고 말하는걸 봐서 아마도 인젠 봄이 시작되나보군.》

장군님께서는 웃으시였다.

사하의 대소택지대를 벗어나서 낮에도 해빛이 스며들지 않는 넓은 수림지대를 지나 이 옥수천부근까지 오는 사이에 날씨는 어찌나 푸근해졌는지 겨우내 수림속의 짙은 그늘밑에 깔려있던 눈도 약간씩 녹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봄의 입김앞에서 늙은 겨울이 더 이상 버틸만 한 기력을 못가지여 물러앉기 시작한 모양인지?

사령관동지께서는 올해의 눈석이가 때맞추 시작된다고 생각하시였다. 만약 인간이 임의대로 계절변화의 시기를 선택할수 있다하더라도 이 이상 더 좋은 때를 고를수 없을만치 적절한 눈석이였다. 그것이 며칠전에 시작되기만 했어도 사하의 진펄지대를 무사히 통과해내지 못했을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득불 멀고 험한 산길 아니면 위험한 도시주변의 평야지대를 에돌아야 했을것이다.

진펄을 웃쪽으로 에돌자면 말들을 버리고 로야령산줄기의 가장 험악하고 가파로운 령과 골짜기들을 지나야 하는것이며 그 길을 피하자면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적들이 우글거리는 도시와 큰 부락주변을 지나야 했을것이다.

이 두번째 우회로는 피투성이싸움을 예견해야 하는 길이였다. 당분간은 싸움을 될수록 피해야 하는 때인데 적과 맞붙는다는것은 어느 모로 보나 손실로 될수밖에 없었다.

알맞추 시작되는듯 한 눈석이로 하여 그 어느 길로도 돌지 않고 행군시일도 허비하지 않았다는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한편 눈석이가 지금보다 더 늦어진다는것도 바람직한것이 못된다.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땅이 풀리고 날이 따뜻해지고 새 움이 트는 봄이 와주는것이 아주 좋다. 눈 없는 계절들은 인민혁명군의 맹활약시기로 될것이다. 더구나 올해의 눈 없는 계절들이 더욱 그렇다.

《허허, 우리가 사하의 넓은 진펄을 지나오니 눈석이가 시작되는것 같구만. 우리 봉길이랑 종삼이랑 덜 고생하라구 날씨도 알아봐주는것 같거던.》

사령관동지의 말씀에 봉길은

《아닙니다.》

하고 당돌하게 대답을 올리였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건 사령관동지께서 미리 날씨가 이렇게 될줄 아시고 행군을 다그치셨기때문입니다. 천기를 내다보셨기때문입니다.》

《날씨란건 하늘의 조환데 내가 하늘의 조화를 알아보나?》

《사하진근처에서 얼음이 풀리기전에 어서 사하의 소택지대를 지나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지휘원들에게 출발을 재촉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어느결에 들었댔는지 그때 하신 말씀의 의도까지 정확히 알아맞히고있는 주봉길이였다. 귀도 밝고 령리하기도 한 전령병이다.

《그렇지만 날씨가 이렇게 신통하게 굴어줄 법이야 있나? 나는 봉길동무를 고생만 시키는데 하늘은 고생하는 봉길동무를 위해줬거던.》

《장군님께서는 저를 아직 철부지아이처럼 여기십니다.》

《허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사실 저는 고생을 하고있지 않습니다.》

《그건 봉길이가 자진해서 입대한것을 후회하지 않기때문에 그렇게 생각할뿐이지 정직하게 말하면 고생스럽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은말입니다. 하늘이 알아준것은···》

봉길은 자기 생각대로 말하기를 웬일인지 망설이였다.

《···》

사령관동지께서는 정찰대원들이 나타날수 있는 앞쪽 한결 희슥해지는 어둠속을 주시하시며 봉길의 말을 기다리셨다.

끝내 봉길은 무엇인가 주저되여 하자던 이야기를 못하였다. 그는 장군님은 바로 하늘이 낸 장수이시기때문에 하늘이 낸 장수가 가시는 걸음을 하늘이 알아주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라고 말씀드리고싶었지만 그 이야기를 올리기 쑥스러웠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전령병들과의 담소를 아쉬운대로 그이상 이으실수 없으시였다. 여러 사람의 성급한 발자국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한결 더 훤해진 수림속에 정찰나갔다 돌아오는 대원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을 마주 나가시여 보고를 들으셨다. 정찰조를 인솔했던 4중대장의 보고에 의하면 마을에서 숙영해도 무방할것 같았다. 밀림속 깊이 들어앉은 외로운 마을이여서 옥수천에서 이따금 적들이 올라오군하지만 겁나서 대낮에만 다녀가군 한다는것이다.

그이께서는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가지는 동시에 경각성을 높이며 특히 앞으로의 행군준비를 잘 갖출데 대한 지시를 내리시였다.

지휘원들은 흩어져갔다. 다시 마을을 향해 떠날 차비로 잠시 대렬마다 술렁거렸다.

《출발!》

나지막한 구령소리에 뒤이어 말자갈들이 절렁거리고 안장들이 삐꺽거렸다.

말들은 저벅거리며 좁은 나무그루사이를 빠져나가느라 서로 옆구리를 부딪쳤다.

수림속이 환히 밝아졌다. 마침내 솟아오른 달이 푸르스름한 빛을 던져준것이다. 축축한 땅에서 서려오르는 김이 달빛속에서 그물거렸다. 겨울을 녹여버리는 봄의 입김일가? 아니 바야흐로 눈석이철을 맞는 자연이 마련해주는 부드러운 우유빛주단인듯도 했다.

말들은 나무뿌리언저리로 엷은 안개마냥 깔린 그 우유빛주단을 주저없이 밟아 마구 헝클어뜨리며 우불구불한 수림속 오솔길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앞이 탁 틔였다. 드문드문 나무그루터기들이 박혀있는 눈덮인 공지에는 거무스름한 띠가 얼레빗살마냥 일매지게 늘여져있었다. 양지쪽이 녹아서 땅이 드러난 밭이랑들이 그렇게 보였다. 말발굽밑에서 묵은 수수그루터기들이 밟혀 부스러졌다.

은근한 빛으로 모든것을 신비롭게 채색해버린 밝은 달이 밭 저편 숲의 울바자우에 둥실 떠있다. 한쪽볼이 약간 설익은 둥근달이였다.

(그런즉 래일이 음력 보름이겠군?)

온몸에 스며드는 봄의 훈향에 혼곤히 잠겨드신채 미혼진에 가시여 하실 사업에 대하여 머리속으로 더듬으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열나흘달을 보시게 된 그 순간에 래일이 신입전령병 주봉길의 생일날이라는것을 문득 상기하시였다. 무심히 넘겨버리실수 없는 날이다.

지금쯤 흑석향의 그의 늙은 부모는 추녀끝에 걸린 저 달을 쳐다보면서 집을 떠나 객지에서 처음으로 생일을 맞게 될 외아들을 생각하며 뒤숭숭한 심정들일는지도 모른다. 늘 품고지내던 병아리같은 어린 자식을 내놓고 소식도 모를 부모들의 그 심정인들 오죽이나 허전하고 불안스러울것인가?

봉길이도 지금 없는 살림에나마 생일상을 차려주군 하던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리고있는지 모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시였다. 혼자 입속으로 무엇인가 중얼중얼 외우고있던(아마도 오늘의 학습과제를 암송하고있는것 같았다.) 봉길은 자기를 돌아보시는 그이의 시선을 감촉했던지 눈길을 쳐들며 입을 다물었다. 눈길이 마주치자 쑥스러웠던 모양 벌씬 웃는다.

언제나 사령관동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봉길은 그이께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하는 눈치다. 사령관동지께서도 사랑스러운 전령병에게 무엇인가 따뜻한 말씀을 해주고싶으시였다. 하지만 허리를 너무 꼿꼿이 펴지 말라고, 그러다 말이 나무뿌리에라도 발굽을 걸채게 되면 말등에서 떨어지리라고 타일러주시고는 머리를 돌리시였다.

(래일은 봉길이한테 뭘 좀 해줘야겠는데··· 무얼 해준다?)

마을에 당도할 때까지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한가지 생각에 골똘하시였다.

숲 저편에서 개짖는 소리와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퍼그나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