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5

 

제 12 장

5

 

회의실로 지은 동강밀영에서 제일 큰 귀틀집지붕꼭대기에 한폭의 붉은기가 봄바람에 나붓기고있었다.

그 지붕우에 붉은기가 꽂힌것은 닷새전 바로 리경준의 소식이 사령부에 전해진 다음날인 전세계무산자들의 국제적명절날부터였다.

그 5월초하루날부터 이 귀틀집주변에는 엄숙한 고요가 떠돌았다.

가둑나무물을 들인 새 군복차림의 경위대원들은 알른알른하게 닦은 총을 세워잡고 닷새째나 정숙을 지키며 보초를 서고있었다.

지붕우의 붉은기보다 훨씬 키높이 솟은 봇나무가지끝에 목덜미와 가슴털이 하얀 백두산멧새가 날아와 앉았다.

물이 오를대로 올라서 한껏 연해지고 발그스름해진 가느다란 나무가지는 멧새의 무게에 눌려 한참이나 흔들거렸다.

불현듯 정숙하기만 하던 귀틀집창문으로부터 좌르르- 요란한 박수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갑작스러운 박수소리에 놀란 멧새는 포르르 깃을 치며 날아가버렸다.

하늘은 가없이 맑고 푸르다.

다시 고요가 깃든 숲속의 곳곳에서 뭇새들이 우짖으며 화창한 봄을 노래하고있다.

또다시 좌르르 쏟아져나오는 우렁찬 박수소리···

귀틀집안에 꽉 들어찬 사람들이 가슴가슴에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일시에 터뜨려내군 하는 소리다.

여기에 2천만겨레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유구한 반만년의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온 조선인민의 각계각층 대표가 한자리에 마주앉았다.

유구한 반만년의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온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고저 백두산지맥이 잇닿아있는 광활한 땅 곳곳에서 이 백두밀림속의 귀틀집으로 찾아들왔다.

두루마기차림의 수염기른 늙은이와 양복차림의 대머리중년, 농사군차림을 한 장년과 무명치마저고리를 입은 부인, 학생복차림의 청년과 긴머리채끝에 붉은 댕기를 드린 처녀, 새 군복을 차려입은 인민혁명군 남성대원과 단발한 녀성대원··· 형형색색의 차림을 한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연설을 시작하신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러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올리는것이다.

설레며 술렁이는 그 뭇사람들가운데는 무송지구의 대표로 참석한 박문필의 안경 쓴 얼굴도 보이고 리경준을 대신하여 그가 앉기로 된 자리를 차지한 최선금의 얼굴도 보이였다.

회의장 정면의 귀틀벽에는 커다란 조선지도가 걸려있었다. 지도우로 길게 가로늘인 흰 광목필에는 먹글씨로 《조국광복회창립대회》라고 쓴 글발이 씌여져있었다.

회의장에는 높고 호화로운 연탁대신 나무토막을 그루박듯 하고 그우에 널판지를 건너대고 모포를 씌워놓은 책상이 앞에 놓이였다.

책상우에는 흰 양철주전자와 양철고뿌가 놓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투박한 통나무책상옆에 서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박수소리가 가라앉기를 기다리시였다가 감회에 잠기신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강산같이 쌓인 눈을 헤치며 북만땅 남호두에서 떠나던 일이 어제 같은데 여기 동강에서는 어느덧 나무가지에 새움이 트는 봄을 맞습니다.

불과 두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 혁명은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전반적조선혁명의 핵심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이 량적으로 늘어났고 또 질적으로 튼튼히 꾸려졌습니다.

우리는 남호두회의에서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 주류를 이루고있는 항일무장대오를 확대하기 위한 가장 선차적인 과업으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튼튼히 꾸릴데 대하여 토의하고 그 중요한 대책으로서 새 부대들을 편성하며 그의 정치군사적위력을 강화할것을 결정지었습니다. 남호두회의후 두달이 지나는동안 이미 새 부대들은 편성되였고 그 대렬은 급격히 늘어나고 무장장비가 개선되고 정치군사적위력도 나날이 강화되고있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진정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당을 창건하기 위한 준비사업과 새롭게 백두산근거지를 꾸리기 위한 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고있는데 대하여 개괄하시고나서 바로 오늘의 이 창립대회를 맞이하기까지의 뜻깊은 로정과 경과에 대하여 새로운 격조를 담아 말씀을 이으시였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우리 2천만 백의동포가 사랑하는 조국강토를 원쑤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강탈당한지도 어언간 31년이 되였습니다. 우리 동포들은 일제의 식민지폭압밑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으며 피땀을 흘리면서 짐승보다 못한 망국노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수많은 우리 동포들은 일제의 학정밑에서 견딜래야 견딜수 없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남부녀대하고 류랑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까지 갔으나 외로운 그들은 이르는곳마다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고 짓밟히며 학살당하고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전대미문의 참담한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조국강토를 강탈당하고 암담한 비운에 처하여있는 우리 민족앞에는 강도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길밖에 없으며 오직 이 길로 나감으로써만 조국광복의 서광을 맞이할수 있는것입니다.》

장군님의 목소리는 민족의 수난을 한몸에 받아안으신듯 비분에 떨리기도 하시고 그 모든 민족의 불행을 단매에 쳐없애실듯 힘에 넘치시기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숙연한 분위기에 잠긴 장내를 둘러보신 다음 지난날 조국애에 불타는 조선인민들이 벌려온 용감한 반일투쟁을 분석하시면서 아직까지 민족적독립과 해방의 목적을 이룩하지 못한 주요원인이 통일적인 정치강령과 정확한 투쟁방침을 못가지고 반일애국력량의 튼튼한 통일단결을 이룩하지 못한데 있다고 하시면서 다시금 오늘의 창립대회가 가지는 크나큰 민족사적의의에 대하여 격조높이 말씀하시였다.

《···이번에 국내와 국외의 모든 반일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그에 대한 통일적인 령도를 보장하기 위한 총령도기관으로서의 조국광복회의 건립은 참으로 오랜 기간에 걸친 조선인민의 간고한 투쟁과 로정을 거쳐오면서 수많은 혁명가들과 애국자들이 흘린 숱한 피눈물과 고귀한 희생의 대가로 얻게 된 귀중한 열매입니다···》

대표들은 기다렸던듯 또다시 우렁찬 박수를 터쳤다.

감격에 넘쳐 요란한 박수소리를 울리는 그들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감개무량한 이 자리를 뼈아픈 회고없이 맞으실수 없으신 장군님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시였다.

실로 이 뜻깊은 날을 맞기 위하여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을 거쳐왔으며 얼마나 많은 피눈물과 고심에 찬 나날을 바쳐왔던가.

백두의 하늘높이 광복성전의 첫 총소리를 올린 그날로부터 그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지나온 자욱우에 얼룩졌던가.

그 모든 피와 눈물의 준엄한 시련을 거쳐 위대한 탄생이 만천하에 고해질 오늘이 마련되였다.

《···그간 모두가 참으로 오늘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워왔습니다. 백두산지맥이 잇닿아있는 이 넓은 땅, 그 어느곳에 우리 혁명동지들의 피어린 자욱이 찍히지 않은데가 있습니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헤쳐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왜놈들의 총칼이 항상 우리 앞길을 가로막았고 우리를 뒤따랐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이 덮쳐들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조선혁명에 주력하며 조선혁명에 충실하려는 우리들의 주장과 조선혁명가로서의 우리의 응당한 권리와 의무수행을 달가와하지 않고 훼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모인 조선인민혁명군 여러 대표동지들과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각계각층 대표여러분 그리고 여러분들을 대표로 보낸 각계각층 인민들의 불굴의 투쟁과 성실한 노력과 아낌없는 지지성원에 의하여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강유력한 혁명무력으로 자라났고 조선혁명은 승승장구하면서 마침내 조국광복회의 건립을 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장내는 기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였다.

대표마다 정숙을 지키고 앉아서 장군님의 말씀을 감명깊게 받아안으며 지나온 나날들을 더듬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 깊은 감회에 잠긴것은 리동백이였다.

비록 짧기는 했지만 그는 돈화땅에서부터 이곳 백두산기슭까지의 로정을 장군님을 모시고 따라오며 그 로정우에서 빚어진 눈물겹도록 자랑차고 위대한 력사의 목격자로, 참가자로, 기록자로 되여왔던것이다. 그 짧은 력사의 한순간에 그는 어떻게 열다섯명의 전사와 한정의 기관총이 혁명무력의 최정예주력부대로 변하고 혁명가의 존엄과 인간적가치를 상실당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운명과 력사의 주인으로 변해지는가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숭고한 삶을 마치는가를 보고 알았으며 찬서리를 맞은 꽃망울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나 활짝 꽃을 피울수 있게 되였는지를 알았다.

그는 어떻게 불가능한것이 가능한것으로 되여 어떻게 먼 장래에나 실현될지 말지 막연하게 여겨졌던 리상이 삽시에 현실로 변하는 그러한 기적이 이루어지는가를 보고 깨달았다.

이 백두산기슭까지 그가 따라오며 목격하고 체험한 모든것은 장군님께는 불가능한것이란 없으시다는것을 력력히 증명하고 확신케하였다. 장군님께서 의도하는것이면 그 어느것이나 실현되지 않는것이 없었다. 사람들을 키우는 일도, 새 부대를 편성하는 일도, 새 근거지를 꾸리는 일도, 2천만의 온 겨레를 조국광복의 기치아래 하나로 묶어세우는 거창한 일도 그이의 의지대로만 되여왔고 또 되여가고있는것이다.

그는 지난날 그처럼 막연하게 생각되였던 온 겨레의 한결같은 절절한 숙원인 조국의 광복도 이제 반드시 그이의 의지대로 이룩되고야말리라는것을 굳게 믿어마지 않았다.

남들보다 더한 우여곡절을 겪어오면서 세상의 단맛 쓴맛도 다 보고 명색만 그럴듯 했던 운동들의 기울어져가는 형세와 거짓위인들의 감출수 없는 본바탕과 파쟁의 돌이킬수 없는 후과도 보았으며 이제는 참과 거짓을 똑바로 가려볼수 있게 된 리동백은 지나온 행로를 더듬어보는 이자리에서 새삼스럽게 오직 위대한 김일성장군님만이 나라의 민족을 구원하실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그이께서 밝혀주신 길만이 가장 옳바르고 빠른 조국광복의 길임을 절절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이를 따라 나아가는 그 길만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고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달성하고 민족의 휘황찬란한 장래번영을 가져오게 될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였다.

(우리 조선의 2천만겨레는 한결같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우러러모셔야 한다!)

리동백은 마음속으로 격조높이 부르짖었다.

조국광복회 정치강령의 취지를 서론적으로 설명하신 장군님께서는 마침내 그간 친히 작성하신 강령을 한조항 한조항 읽으시기 시작하시였다.

모든 대표들은 더욱 숭엄하고 경건한 정적속에 귀를 기울여 가슴에 새겨듣고있었다.

그 강령을 이미 수십번이나 읽고 자기가 책임진 출판소에서 수백부나 등사하여 모든 대표들에게 배포한 리동백은 강령의 어느 한자도 빠짐없이 죄다 외우고있었다.

그러나 광복회의 창립을 선포하게 되는 이 엄숙하고 장엄하고 감개무량한 자리에서 친히 그것을 저술하신 장군님께서 발표하시는 강령의 매 조항, 매 구절들에서 리동백은 전에 미처 다 깨닫지 못했던 찬란한 예지의 빛을 보았다. 강렬한 사상의 광원으로부터 빛발쳐나오는 빛나는 그 예지를 온몸으로 느낀 이 순간 리동백은 자기의 머리속에 비쳐드는 태양의 빛을 의식하였다.

그와 함께 자기를 따사롭게 감싸주는 해볕을 감수하였다.

번쩍이는 섬광같은 생각이 날아들었다.

(태양에는 두가지 속성이 있다. 빛과 열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도 두가지 성품을 지니고계시니 즉 빛나는 예지와 뜨거운 사랑이다!

그이께서 지니신 빛나는 예지, 그것은 곧 태양의 빛이다.

그이께서 지니신 뜨거운 사랑, 그것은 곧 태양의 볕이다.

그 광휘로운 빛과 따사로운 볕을 한몸에 지니신 그이는 인간세계의 찬란하고 위대한 태양이시다!)

강령을 그대로 채택할것을 지지결정하는 우렁찬 박수속에도 리동백은 자기 머리속에 떠오른 그 생각에 더욱더 깊이 잠겨들었다.

(장군님께서 계시여 캄캄했던 조선혁명의 앞길이 저렇게 환히 밝혀졌고 민족재생과 번영의 광명한 미래가 내다보이게 되였다!

그이의 뜨거운 사랑속에서 사람들은 소생하고 삶의 보람과 투쟁의 행복을 받아안았다.

장군님께서 계시지 않으셨다면 저 얼굴들이 저렇게 밝을수 있으며 저 눈물이 저렇듯 반짝일수 있으랴?

태양의 광휘로운 빛발을 받지 않는다면 뭇행성들이 그 무슨 빛을 내며 태양의 빛과 볕을 받지 않는다면 만물이 무슨 삶을 영위할수 있으랴?

우리는 광원이 없이는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들이다. 태양이 있어야 빛을 내는 행성들이다.

뭇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돌듯이 우리는 그이의 두리에 뭉치고 그이를 옹위하며 높이 우러러모셔야 한다!)

생각에 깊이 잠겨있던 리동백은 대표들앞에 나선 강세호가 누구의 이름으로 방금 채택된 창립선언을 발표하겠는가고 정중한 음성으로 물었을 때 머리를 쳐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렁거리던 장내는 남먼저 일어선것만으로도 성차지 않아 머리우에 높이 손까지 쳐든 인민혁명군에서 가장 나이 많은 그를 존중하여 소음을 갈앉혔다. 첫 언권을 받은 리동백은 사람들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리동백은 모포가 씌워져있는 통나무탁상옆에 나서자 눈을 빛내며 자기를 쳐댜보고있는 대표들을 향하여 인사를 하였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대변해줄 그의 말을 엄숙하게 기다렸다.

그는 한참이나 입술을 감빨며 말마디를 고르다가 불쑥 갈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맡으신분은 우리모두의 운명을 한몸에 맡아안으신 장군님밖에 없습니다.

저는 김일성장군님을 조국광복회 회장으로 높이 추대하며 회장명의로 창립선언을 발표할것을 제기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랐다. 한번 터져오르자 멎지 않는 그 눈물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나 올리는 폭풍같은 박수소리와 우렁찬 만세의 환호성을 들었을뿐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대표들에게 답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강세호와 차동범, 최선금, 박문필, 리동백, 장기령을 비롯하여 오늘을 위하여 시련의 길을 함께 헤쳐온 사랑하는 전우들과 대표들이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리는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시였다.

조선혁명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간고한 길을 걸어왔던가! 그이께서 조국광복의 높은 뜻을 품으시고 압록강을 건느신 그때로부터 어언 10년세월이 흘러갔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세월··· 그러나 조국광복의 위업을 성취하자면 또다시 10년세월이 흐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인들 헤쳐가지 못하랴.

장군님께서는 젊음과, 의지와 신념이 넘쳐흐르는 안광으로 장내를 둘러보시며 이제는 그만 자리에들 앉으라고 거듭 손을 흔드시였다.

우렁찬 만세와 박수소리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였다. 그 소리는 메아리치며 태고연한 정적속에 묻힌 동강밀림을, 백두산기슭을 뒤흔들었다.

이날은 1936년 5월 5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