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4

 

제 12 장

4

 

장군님께서는 그럴수 없다, 그럴수 없다고 거듭거듭 마음속으로 되뇌이시며 나무가지들을 마구 헤쳐나가시였다. 발에 걸채이는 풀대들과 관목덤불들을 마구 짓밟아나가시였다.

가시 돋친 나무가지들이 그이의 낡은 군복자락을 걸어채고 손등을 허비고 날카로운 침엽수의 바늘잎들이 얼굴을 스쳤지만 그이께서는 감각하지 못하시였다.

가시는 앞길에 나무가지가 막아섰는지, 실개울이 누워있는지, 돌판이 깔려있는지 그런것도 보시지 못하시였다.

오직 그이의 눈앞엔 마안산을 떠나면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리경준의 그 얼굴이, 곁을 떠나는 서운함을 감추고 웃음지으며 떠나가던 그의 얼굴만이 보이시였다.

신발과 바지아래도리를 적시시는줄도 모르시는듯 그냥 물속에 들어서시여 개울을 건느시고 개버들숲을 헤쳐나오신 장군님께서는 나직한 둔덕우에 우거진 이깔나무숲속을 곧추 질러 넘으시며 마음속에 오직 그 하나의 생각뿐이신듯 거듭 되뇌이시였다.

(그럴수 없다. 그런 일이 있을수 없다. 아니,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이다!)

장군님께서는 이제 사령부의 귀틀집문을 여시고 들어서시면 리경준이가, 항상 침착한 그 리경준이가 반가운김에 의자를 넘어뜨리며 마주 달려나와

《사령관동지!》 하고 소리쳐 부르며 가슴에 와락 안길것만 같으셨다. 길을 서둘러 오느라고 경준이는 제때에 면도도 못했을수 있다. 이틀만 면도질을 못해도 보기좋은 구레나룻이 시꺼멓게 자라오르군 하는 리경준이의 껄껄한 볼도 비벼보시게 될듯싶으신 장군님이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 군모와 군복자락에 거미줄처럼 달라붙은 송라들과 잎갈이를 한 묵은 침엽수잎들을 털지도 못하신채 개울물에 젖은 군복바지아래도리에 물방울을 흘리시며 사령부 귀틀집문을 여시였을 때 그안에는 부은 얼굴에 안경을 낀 박문필 한사람만 있을뿐 리경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문필은 중학생복을 입던 시절에 헤여진 다음 8년만에 처음으로 장군님을 다시 뵈옵는 자리였지만 상봉의 기쁨 대신 너무나도 가슴아픈 사연을 전해드리지 않으면 안되는 기막힌 심정때문에 한마디의 인사말조차 못 올리고 눈두덩이 퉁퉁 부은 얼굴을 깊이 숙였다.

젖은 신발자국을 내시며 말없이 인사를 드리는 박문필에게로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도 그의 손을 잡으셨지만 잠시 말씀을 꺼내지 못하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짤막한 오직 한마디의 인사말을 하시였다.

《수고했습니다···》

그 말씀은 비록 짧았지만 그동안 박문필이 리경준이와 함께 진행해온 지하혁명사업은 물론 그 기간에 그가 겪은 모든 경난과 고초를 다 헤아리신 뜻깊은 말씀이시였다.

박문필은 장군님의 손을 맞잡은채 그냥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그동안 박동무가 수고한것도 보고받고 성의를 다해 보내준 사진기도 받았습니다··· 박동무랑 만나기를 기다렸는데 이렇게 와줘서 고맙습니다···》

박문필을 만나시면 학창시절도 회고하시며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실것 같으셨던 장군님이시였으나 그와 같이 나타났어야 할 리경준이 보이지 않기때문이신지 그이상 말씀을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전에없이 설렁하고 휑뎅그렁한듯 한 귀틀집안을 둘러보시고 다시 둘러보시였다.

아무리 둘러보셔도 여기 들어서시면 옛 학우의 얼굴과 함께 꼭 보시게 될듯싶으셨던 구레나룻자리가 푸릿푸릿한 리경준의 얼굴은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으시였다.

(정말 박문필동무만 왔는가? 리경준동무가 오지 못했다는게 사실인가)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이 전해주던 말이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으시여, 경준이를 더는 보실수 없다는것을 아무리 해도 믿으실수 없으시여 마음속으로 물으시고 또 되물으시였다.

문득 머리를 숙이고 서있던 박문필에게서 무거운 무엇엔가 짓눌리운듯 한 흐느낌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저며내는 그 흐느낌소리는 믿어지지도 않고 믿고싶지도 않은 그 비보가 움직일수 없는 사실임을 말해주고있었다.

《그래 그게 정말입니까?》

마침내 장군님께서는 박문필의 두어깨를 잡으시며 조용하나 비분에 차신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

박문필은 더 깊이 머리를 숙였다. 안경밑으로는 줄줄 굵다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걷잡을수 없는 슬픔에 잠겨 온몸을 떨며 울고있는 박문필이로부터 장군님의 두팔을 거쳐 심장에 굽이쳐오는 흐느낌의 파도는 그이의 가슴속에 마지막 남아있던 의혹마저 말끔히 지워버리고말았다.

장군님께서는 마음을 찌르고드는 아픔에 가벼이 몸을 떠시며 박문필의 어깨에서 힘없이 손을 내리우셨다.

그이께서는 눈을 감으시고 잠시 움직이시지 못하시였다. 감으신 속눈섭사이로는 눈물이 배여나와 이슬방울처럼 눈가에 맺혔다.

《어떻게 그렇게 됐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냥 눈을 감으신채 조용히 갈리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흐느끼고있던 박문필은 소리를 억제해가며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고문받은 흔적과 숲속을 헤맨 흔적, 모진 쇠약과 피로와 그우에 겹친 모진 비애의 그림자를 한꺼번에 다 담고있는 얼굴이였다.

앙다문 입술을 부르르 떨며 울음소리를 삼키고있던 박문필은 불현듯 울음섞인 목소리를 터쳤다.

《리경준동지는 저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사람이 저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기어코 회의에 참가시키려고 희생적으로···》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눈을 뜨시고 물기어린 눈으로 흐느낌에 온몸을 떨고있는 박문필을 말없이 건너다보시였다.

박문필은 말마디들을 더듬으며 끊겼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를 그냥 감옥에 있는대루 두고 리경준동지가 먼저 떠났더면··· 저를 기어이 데리구 오느라구···》

《진정하시오.》

장군님께서는 박문필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만 못지 않게 북받쳐오르는 슬픔을 진정하실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들창앞에 가시였다.

열려있는 그 들창으로는 봄빛어린 개울건너편 숲가에 회의장으로 짓고있는 커다란 귀틀집과 그 집앞에 외로이 서있는 하얀 봇나무가 내다보였지만 장군님께서는 바깥풍경이 연한 초록색의 얼룩으로만 되여보이시였다.

통나무를 깎아 회의장에 놓을 긴 걸상의 통널감을 만드는 도끼소리가 울려왔다. 아까는 장군님께 그렇게도 흥겹게 들리셨던 그 도끼소리가 지금은 가슴아프게 들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제라도 부르시면 금시 눈앞에 나타날듯싶은 경준을 마음속으로 부르시였다.

그러나 부르시면 언제나 첫마디에 대답하며 달려오군 하던 사랑하는 전사의 구레나룻은 그이의 눈앞에 웃음지으며 나타나지 않았다. 대답하는 소리조차 없었다.

(저렇게 회의장도 거의 다 돼가고 동무가 앉을 자리까지 저기 마련됐는데··· 동무는 어디 있소? 그렇게도 애써 조국광복회창건사업을 준비해온 동무가 창립대회를 열게 된 이 기쁜 때에 십여리밖에 안되는데까지 와서 못들어오고 거기 누워있단말이요? 내가 그렇게 기다렸는데 밀영문턱밑에까지 와서 누워있는 법이 어디 있소? 내가 기어이 오라구 했구 동무도 꼭 오겠다구 약속해놓고 못오다니?···)

여러 가락의 도끼소리가운데 어디선지 가까운데서 통나무가 서로 부딪치여 딩굴어가는 소리가 웅글게 들려오며 땅이 우르르 흔들렸다.

장군님께서는 그 소리가 멎어버린 뒤에도 한참동안 움직이실줄 모르시였다.

그러시다가 마침내 흥건히 젖은 손수건을 낡은 군복바지주머니에 넣으시였다.

《박동무, 경준동무한테로 가봅시다. 마지막으로 나를 찾더라는데 그 동무가 못보더라도 그의 곁에 갑시다.》

장군님께서는 박문필을 부축하시여 출입문밖으로 나가시다가 방안에 그 무엇인가 남기고 떠나시는것만 같으시여 잠시 이구석저구석 살피고계시였다. 그러나 특별히 두고 가시는것도 없고 또 가지고 가실것도 없으시였다.

그이께서 문께로 채 다가가시기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리북철이 최선금의 도착을 알리려고 들어왔다. 그러나 미처 문을 닫을 사이 없이 리북철의 뒤로 단발머리에 연분홍색 리봉을 달고 깜찍스러운 아동단복을 입은 작은 계집애가 살짝 빠져들어오더니 《장군님!》 하고 소리치며 무작정 장군님의 바지에 매달렸다. 리경준의 딸 명숙이였다.

장군님의 가슴속에서 뭉클 뜨거운것이 치받쳐올랐다. 이제는 이 귀여운 명숙이한테 아버지가 없다는 생각이 일순간에 떠오르셨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방끗 웃는 명숙이를 드시여 꽉 부둥켜안으시였다. 명숙이는 그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뺨을 장군님의 볼에 꼭 갖다붙이며 작고 귀여운 두팔로 그이의 목을 휘감아안았다. 그랬다가 금시

《이봐요 댕기!》

하고는 장군님 앞으로 머리를 숙여 거기에 꽂힌 분홍색댕기를 보여드렸다. 그 엄혹한 시련의 나날 고이고이 간직해오며 장군님을 만나뵙는 가장 기쁜 날에 매자고 했던 댕기였다.

《장군님께 온다구 엄마가 매줬어요. 나 곱지?》

그러며 명숙은 그이의 목에 힘껏 매달렸다.

《참··· 곱구나···》

그이께서는 입술이 떨리시여 그이상 더 말씀을 못하셨다.

《나 장군님 보고싶었댔다.》

명숙이는 맑고 챙챙한 목소리로 다시금 재잘거렸다,

《그래?!》

장군님께서는 뜨거운것을 삼키시며 가까스로 대답해주셨다.

《장군님도 나 보구싶었나요?》

《그럼!》

《정말?》

《정말···》

명숙이는 보조개를 지으며 얼굴을 돌려 장군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금시 눈이 둥그래졌다.

《장군님 왜 우시나?》

《명숙일··· 만나··· 기뻐서 울지···》

《해해, 난 장군님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

명숙이는 다시금 장군님의 얼굴에 뺨을 꼭 붙이고 목을 그러안았다.

《엄마두 아버지두 장군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대.》

《그래?》

《엄마는 장군님의 새옷을 만들었지뭐.》

《그건 무슨 소리냐?》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아버지가 먼데 가서 장군님이 입으실 군대옷을 만들라구 옷감을 보냈거던. 그래서 엄마가 곱게 만들었지뭐. 장군님이 회의할 때 입으실 옷이래. 장군님은 그걸 모르시나?···》

명숙이는 장군님더러 엄마가 이제 새옷을 가져오면 지금 입고계시는 낡은 군복을 갈아입으시라고 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목이 꽉 메시여 말씀을 못하시고 그렇게도 맑고 천진스런 명숙의 눈을 피하시며 머리를 돌리시고마시였다.

《엄마가 아버지두 여기 온다구 그랬어.》

명숙이는 가장 아픈 말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못하시고 머리만 끄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명숙이를 꼭 안으시며 마음속으로 뇌이시였다.

(아버지를 잃은 너희들을 위해서도 우리 기어이 나라를 찾아 너희들에게 돌려주겠다.)

명숙을 안으신채 출입문쪽으로 향하시던 장군님께서는 꼭 닫기지 못한 문짬으로 얼굴을 싸쥐고 소리없이 흐느끼고있는 최선금의 모습이 언뜻 비쳐들자 주춤 걸음을 멈추시고 눈길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더욱 깊어지는 가슴아프심을 느끼시며 명숙을 꼭 껴안으시였다.

최선금의 가벼운 흐느낌소리는 한동안 그렇게 계속되였다.